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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차악'을 선택할 것인가 선명 좌파를 선택할 것인가

조회 수 1683 추천 수 0 2012.01.16 01:02:48

OWS나 '아랍의 봄', 스페인의 '분노하라' 시위대는 바라는 모든 것을 성취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적인 담론을 신자유주의가 설파하는 이데올로기적 주문(呪文)에서 불평등과 부정의, 탈식민주의 같은 주제들로 변화시켰다. 참으로 오랜만에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체제의 속성에 대해 토론했다. 그들은 더 이상 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

 

따라서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세계의 좌파들에게 전례없는 수준의 정치적 단결이 필요하다. 사실 좌파 내에는 장기적 목표와 단기적 전술 모두에서 심각한 불일치가 존재한다. 이런 이슈들이 토론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격렬히 토론됐다. 그러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진전은 거의 없었다.

이런 분열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풀기 쉬운 문제도 아니다. 좌파 내에는 두 가지 커다란 대립이 있다. 첫째, 선거에 대한 것이다. 선거에 대해서는 두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선거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가지는 그룹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효과가 없을 뿐더러 현존하는 세계 체제의 정당성만 강화시켜 줄 뿐이라고 주장한다.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룹도 둘로 나뉜다. 그 중 한 갈래는 실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내부에서부터 시작하기를 원한다. 다당제 시스템에서는 주류 중도좌파 정당 내에서, 의회에서의 정권 교체가 허용되지 않을 경우는 사실상의 단일 정당 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차악'을 선택하는 이런 노선을 비판하는 갈래도 있다. 이들은 주요한 대안 정당들은 별 차이가 없으며 '선명한'(genuinely) 좌파 정당에 투표할 것을 지지한다.

.....

 

필자는 조화를 이루는 방식이 있다고 믿는다. 단기적 전술과 장기적 전략을 구분하는 것이다. 필자는 국가 권력을 잡는 것이 세계체제의 장기적 전환과는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전환의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데에 매우 동의한다. 국가 권력 장악은 전환의 전략으로 여러 번 시도됐지만 실패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기적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시간낭비라고만 할 수는 없다. '99%' 중 매우 많은 사람들이 당장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이것이 그들의 주된 근심거리다. 그들은 살아 남으려고, 또 가족친구들을 살아남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만약 정부를 사회 변화를 이끌 잠재적 집행자가 아니라 즉각적인 정책 결정을 통해 단기적인 고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하나의 '구조'로 생각한다면, 세계 좌파들은 그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의무적으로 해야한다.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선거 참여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차악'을 선택할 것이냐 선명 좌파정당을 지지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어떨까? 이는 각 나라별 전술에 따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선택은 국가의 크기, 공식적인 정치 구조, 인구 구성, 지정학적 위치, 정치의 역사 등 많은 요소들에 따라 달라진다. 모범 답안은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 2012년의 답이 2014년 혹은 2016년의 답이 될 수도 없다. 이는 적어도 필자에게는 원칙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각국의 변화하는 전술적 상황에 대한 문제다.

 

.....

 

세계 좌파의 두번째 대립 지점은 이른바 '발전주의'(developmentalism)를 택하느냐, 아니면 문명적 변화를 우선시하느냐에 대한 입장의 차이다. 우리는 이런 토론을 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예를 들어 볼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등지에서는 좌파 정부와 원주민 운동 사이에 열띤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북아메리카와 유럽에서는 고용을 유지·확장하는 데에 우선순위를 두는 노동조합과 환경론자·녹색주의자들 사이에서 토론이 벌어진다.

좌파 정부건 노동조합이건 '발전주의적' 주장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일정한 경제적 성장이 없다면 국가 내의 양극화나 국가 간 양극화 등 오늘날 세계의 경제적 불균형을 교정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그룹은 좌파 내 반대파에 대해 의도적으로 또는 최소한 사실상으로 우파들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비난한다.

반면 반(反)발전주의적 대안의 지지자들은 경제 성장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두 가지 이유로 틀렸다고 말한다. 발전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나쁜 특성들이 계속되게 하는 정책이며, 생태적·사회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

 

좌파들 간의 이런 분열이 5~10년 내로 극복될 수 있을까? 확실치 않다. 하지만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졌을 때(이는 확실하다) 그 다음의 체제를 놓고 벌어질 20~40년 동안의 싸움에서 세계 좌파들이 승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댓글 '5'

이상한 부자

2012.01.17 14:25:11
*.117.90.164

한국의 경우 진보신당이 통진당보다도 '선명 좌파'인지 입증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는게 문제... 정책의 내용, 걸어온 길, 총선 공약, 무엇보다도 '문제해결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차악이냐 선명 좌파냐는 문제인식은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둘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선명 좌파니까...

이상한 부자

2012.01.17 14:26:29
*.117.90.164

하지만 큰스승님이 출동하면 어떨까? 큰스승께서 진보신당이 통진당을 무찌르는 선봉에 서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사오며... 그 무리인 하뉴녕, 찐기춘과 함께 나꼼수를 점령하실 것임을 믿사옵 나이다 

백수

2012.01.21 16:07:35
*.206.112.107

이념적/정책적 측면을 거세하고 선거에 대응하는 방식만을 보면, 정권교체를 최우선에 둔 통진당과 가치에 기반한 선거연대(수 틀리면 파토낼 수 있는)를 주장하는 진보신당의 차이는 명백해 보입니다. 특히나 큰 스승처럼 정권교체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좌파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지요. 그것은 교체된 정권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정세파악 하에서 나오는 선택이라 봅니다. 다만 조직을 보존하고 중심을 잡기 위한 실용적 행보에 대해서는 고민해야 하지 않을지..

이상한 부자

2012.01.21 16:34:53
*.117.90.164

최근 노/심이 통진당에서 추진하는 일들을 보면 '가치에 기반한 선거연대'라는 차이점마저 점점 없어져가는 것 같더군요. 며칠 전에도 가치에 기반한 선거연대를 제안했고, 민주당은 무시하는 중이구요. 사실 진보신당이 민노당보다 더 좌파라는 인식을 지난 4년간 못주긴 했습니다만, 그것이 문제의 전부라고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진보신당, 통진당에 적을 두지 않고 있는 '좌파'들에게도 진보신당이 '선명한 대안'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제일 문제인 것이죠. 어쩌면 이 당의 존재 자체가 '실용적 행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백수

2012.01.21 16:53:26
*.206.112.107

말로는 누구나 '가치에 기반한 선거연대'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선완주를 하느냐 마느냐는 다른 문제고, 전 통진당은 완주할 수 없다고 봅니다. 노회찬 때도 보여줬듯 진보신당은 민주당의 패배에 여의치 않고 완주 가능하죠(완주에 대한 가치판단은 일단 무시합시다). 그런 상황에서 선명성을 중시하는 좌파들에겐 통진당보단 진보신당이 대안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핵심 전략 자체가 완전히 어긋나는 상황에서, 진보신당의 존재를 실용적이다 아니다 평가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죠. 우선 한다고 결정했으면, '전술적 실용성'은 당연히 고려해봐야 할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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