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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나꼼수 실명공개 논쟁에 대한 첨언

조회 수 2992 추천 수 0 2012.03.08 07:50:16


진중권이 나꼼수가 박은정의 실명을 공개한 것에 대해 '아웃팅'이라 규정한 것이 나꼼수팬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다. 지탄 중 하나는 그 행위가 문제의 본질인 기소청탁 문제를 흐린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주장이 그릇되었단 것이다. 먼저 전자에 대해서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든 다른 세세한 문제들도 지적될 수 있어야 한다고 대꾸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이건에 대해선, 기소청탁이 훨씬 중요하단 부분에 대해 동의하는 바도 있기 때문에, 나도 지금 이 글을 리트머스에 올리고 있지는 않다. (리트머스에 다른 글도 좀 쓰고, 좀더 상황을 지켜본 다음에 정리해서 올리든지 말든지 하는게 바람직할 거라 생각한다.)



그럼 그 부분은 제끼고 그의 주장이 그릇되었다는 영역을 살펴보자. 이 주장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하나는 "진중권이 충분한 정보가 나오기 전에 사태를 예단하고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진중권이 추측하는 사실관계가 드러난 정황으로 비추어 볼 때 오류라는 것이다.



이 중 전자에 대해서도 쉽게 대꾸할 수 있다. 물론 이 주장엔 타당한 지점이 있다. 진중권은 백혜련의 인터뷰만 보고 박은정의 의중을 과감하게 예단했는데, 이를 성급했다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나온 정보를 조합해서 나온 합리적인 판단을 좀 일찍 공표한 상황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그런데 난 이 상황이 좀 우스운게, 그들은 "나꼼수와 박은정 사이에 사전합의가 없었단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 백혜련 말만 듣고 어찌 알 수 있느냐?"라고 하는데, 실명공개에 대한 사전합의가 없었다는 걸 뒷받침시켜주는 가장 유력한 증거는 그들이 모두 들었다는 봉주7화다. 봉주7화의 서사는, "우리는 그를 말렸지만, 그는 주진우를 지키기 위해 진술을 하기로 했다. 따라서 우리도 그를 검찰로부터 지키기 위해 공개한다. 그 이름은 박은정이다."라는 것이다. 여기에 사전합의에 관한 내용은 없는데, 문맥상으론 없었다고 읽는게 더 상식적이다.) 



또 진중권은 보도의 어떤 흐름이 이어지던 시점에 "기소청탁은 없었지만 전화는 있었다."는 결론에 일찍 도달했는데, 이 역시 성급했다. 이에 대한 비판 역시 타당하다. 하지만 이 또한 당시까지 나온 정보를 조합해서 나온 합리적인 판단을 좀 섣불리 공표한 상황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정보가 나오면 판단이 수정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혹자는 진중권이 조선 중앙 찌라시 보도만 보고 '크로스체킹' 없이 결론내린게 문제라 보는데, 그 시점엔 한겨레도 그런 수위의 기사를 쓰고 있었다(그러니 당시엔 그런 종류의 얘기가 나돌고 있었던 거라 보는게 더 타당하다). 매체의 성격만 가지고 사태를 재단하려는 시도는 그래서 현실세계에선 좀 우스워지기 십상이다(가령 지난번에 김용민은 정봉주 지역구 출마 협의를 부정하면서 중앙일보 보도를 비판했는데, 그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요즘 그런 걸 굳이 '검증'하려는 이들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고 있지만 말이다. 



이 지점에서 진중권은 비판받을 지점도 있고 옹호받을 지점도 있는데, 말하자면 "빨리 지르는 이들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진중권에 대한 비판은 일단은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서 우리 모두 이런 사안에 대해 침묵하고 기다려야 하냐고 묻는다면 좀 난감하다. 나같은 사람은 함부로 끼어들지 못하는 그 순간에 먼저 지르는 이들이 있어 논의가 다양해지는 순기능도 분명히 있으니 말이다. 어떤 이들은 "진중권이 나꼼수를 비판하는 행태 그대로를 진중권이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진중권이 잘못했다."고 말한다. 일단 그 주장이 옳다면 그들은 '진중권이 일관성'을 문제삼는 것인데, 그렇다면 말하는 이의 일관성도 문제가 된다. 인터넷 토론에선 신원공개의 비대칭이 생기기에 저런 종류의 비판이 손쉽긴 하지만, 이 경우엔 말하는 본인이 나꼼수의 지지자라면 그에서도 자기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맥락을 정확히 살펴보자면 진중권은 나꼼수가 "빨리 지른다"고 비판했던 적이 없다. 가령 진중권은 나꼼수에 대해서 곽노현의 재판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침묵하라고 한 게 아니다. 오히려 진중권 역시 빨리 판단을 내리고, 곽노현의 사퇴를 주장했다. 즉 진중권은 "빨리 지르는" 그 영역에서 나꼼수에 반대되는 의견을 종종 낸 것이지, 나꼼수더러 사태 정리될 때까지 입닫고 있으라고 한 적이 없다. 



즉 이 영역에선 분명히 진중권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지만, 나꼼수를 즐기던 분들이 그를 비판하기엔 좀 애매한 지점이 많다. 왜냐하면 앞서 설명했듯 나꼼수도 '빨리 지르는' 형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선, 김어준의 영감과 주진우의 팩트는 정확하지만 진중권이 말하는 건 개판이기 때문에 양자는 구별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논점은 아까 두개로 구별한 것 중 후자로 넘어간다. 빨리 말한게 문제가 아니라 빨리 말한 것의 타당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물론  "나쁜 놈들에 대해선 의혹제기해도 괜찮고 좋은 우리편에 대해선 대법원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로 양자를 구별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건 논박을 할 수 없는 신념의 영역이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지적을 하자면, 민주통합당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1심선고를 받은 임종석을 공천하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내세우는 것처럼, 그런 '편가르기'는 논리적 일관성만 없는 게 아니라 '우리편'을 어디까지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는 혼돈을 야기할 거라는 것.  



여기서 마지막으로 진중권의 문제를 정리해보자. 애초에 진중권의 <건조한 시나리오>는 박은정의 진술이 '기소청탁'인 상황이나 "전화는 했지만 명백하게 청탁을 말하진 않았다."이나 상관없이 유효했다. 다만 전자인 경우에도 성립할 수는 있지만 후자인 경우에는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이는 그런 시나리오였다. 그런 상황에서 진중권은 어느 시점의 보도가 "전화는 했지만 명백하게 청탁을 말하진 않았다."로 정리되는 듯하자 '게임 끝'을 선언했다. 성급한 일이었고, 다시 보도가 다른 방향으로 넘어오면서 '게임 끝'이 아님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건조한 시나리오>의 논지나 '아웃팅' 의혹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가 폐기되는 건 아니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했듯 아웃팅 문제는 온전한 기소청탁이었을 경우에도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중권의 <건조한 시나리오>의 추기와 몇몇 트윗만 보고 '명백한 기소청탁'이 있었다면 진중권의 나꼼수 비판이 '무효'가 된다고 믿은 나꼼수 팬들이 많은데  진중권이 후에 범한 문제와 상관없이 그 지적은 맥락을 벗어난 것이다. 리트머스에 숱하게 올라오는 덧글들이 논점일탈인 이유는 그래서다. 



그럼, 논점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긴 설거지를 끝내고 본 요리로 들어가겠다.  



1. '아웃팅'이란 용어의 적절성 문제


아웃팅이란 용어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부분은 나꼼수의 행동을 비판하는 capcold 님도 글에서 지적하는 바다. http://capcold.net/blog/8287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아웃팅'이란 용어가 널리 쓰이는 맥락이 있단 것도 고려해야 한다. 가령 트위터 프로필에 종종 올라와 있는 "신상 아웃팅 금지"란 말은 뭐란 말인가. 물론 capcold 님의 의중은 이렇게 널리 쓰이는 조류가 불편하단 것이겠지만, 그럴 경우엔 진중권의 지적을 '아웃팅'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그래서 capcold 님은 이 문제를 '취재원 보호 측면'으로 재규정하고 있다. 하려면 이렇게라도 해야지 이 상황엔 '아웃팅'이란 용어가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진중권의 문제제기는 무효라고 말하면 논점파악을 못한 것이다.



2. 취재원보호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문제


이 부분에 대해선 나와 트위터에서 평행선을 달리는 논쟁을 했던 올드보모어 님이 수고를 해주셨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4695113 참고로 난 이 글의 3번단락까지는 동의한다. 그리고 이 챕터와 관련해서 살펴봐야 할 단락은 5번단락이다. 



이 분의 주장은 박은정 검사가 검찰에 나가서 진술을 한 이상  '제보자'를 넘어서며 따라서 '취재원보호'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언론윤리가 어떻게 되어 먹었는지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니 기자들의 의견을 한번 수렴해 보고 싶다. 단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은 그것과도 별도이기 때문에 논지는 계속 밀고 나갈 수 있다. 



사실 capcold 님의 포스트에 달린 덧글에서도 이게 취재원보호의 영역에 들어가냐는 부분에 관한 논쟁은 있다. capcold 님의 답변은 "우리나라에선 아직 확립이 안 된 윤리인 듯하지만, 그렇기에 문제제기를 해서 확립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올드보모어 님의 주장처럼 "박은정은 더 이상 제보자가 아니므로 그 영역을 벗어났다."라고 말해버리면 이 영역으로 커버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엔 할 수 없이 아까 말했던 '아웃팅' 개념을 범위를 넓혀 다시 가져와야 할 듯하다(물론, 올드보모어 님의 '개념'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앞서 말했듯 그건 내가 모르는 영역이니 여기서 접자 *추가: 물어보니 주변의 기자들과 법조인들은, 올드보모어 님의 이야기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라고 카더라. capcold님의 지적으론 원론적으론 취재원이 허락을 해줘도 말하면 안된다는데, 한국에선 뭐 그 정도까지 지켜지진 않지만, 여하간 취재원과의 합의없이 말을 했다면, 그건 명백한 잘못이라고. 현장에서 다 지켜지지 않는 원칙이긴 하지만 여하간 잘못은 잘못이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아웃팅'이든 '취재원보호'이든 이 원칙들을 규정하는 게 무어냐는 거다. 나는 그것을 '개인의 선택과 자발성에 대한 존중'으로 이해한다. 올드보모어 님이 제기한 부분은 '규칙'의 차원에서 이 행위가 그 규칙이 적용되는 영역 안에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올드보모어 님은 주진우의 행위가 그 바깥에 있기 때문에 어떤 원칙에 대해서든 해당사항이 없고, 따라서 진중권의 문제제기도 오류라고 말한다. 진중권이 주진우를 법으로 처벌하자고 말했거나 기자윤리강령(이런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추가:capcold님의 제보 http://www.journalist.or.kr/com/rule-2.html  이런게 있긴 있는데, 물론 원칙은 추상적이라고.)으로 제재하자고 말했다면 이런 반박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개 우리가 시민사회에서 토론을 할 때 그런 차원에서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나꼼수가 법리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을 것이고 명문화된 기자윤리강령에 저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개인의 선택과 자발성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고 보기에 비판하는 것이다.



3. 나꼼수의 실명공개는 정당했는가?  


나꼼수가 박은정의 실명을 공개한 것이 하등 거리낄 일이 아니었다는 견해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박은정이 검찰진술을 한 순간 실명을 공개하는 언론보도에 동의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추가:이 점을 밝히지 않아도 이 글의 논지는 유지되지만 올드보모어 님의 이 주장은 업계종사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대부분 기자들은 주진우와 박은정의 사전합의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므로 말을 아끼겠다고 한다). 둘은 나꼼수가 박은정의 실명을 공개했기 때문에 그녀를 검찰로부터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단 전자에 대해선 어떤 사안에서든 그런 함의를 추론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고 본다. 검찰진술을 할 때 박은정 검사는 검찰조직이 이를 묵살하거나, 외려 박은정을 탄압하려 하거나, 김재호를 비호할 경우 언론보도를 통해서라도 바로잡아야 겠다는 결심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심을 한 것과 그 결심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녀와의 합의없이 (합의를 논하려면 그걸 말하는 이들이 입증을 해야 한다. 사실 나꼼수도 한번도 그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나꼼수에서 실명을 공개하는 건 그 효과와 상관없이 '개인의 선택과 자발성에 대한 존중'을 훼손하는 일이다.



물론 올드보모어 님의 주장대로 박은정 검사의 진술 자체가 이미 실명으로 언론보도에 나와도 무방한 사안이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추정하는데, 봉주7화에서도 그렇고 나꼼수팬들도 그렇고 "실명공개를 해야 그녀를 지킬 수 있(었)다."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술을 한 순간 보도해도 상관없었다고 진실로 믿는다면 굳이 이런 종류의 변명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논점은 다음으로 넘어간다. 나꼼수는 그녀를 보호했는가? 혹은, 나꼼수의 실명공개가 없었다면 박은정은 위험했는가? 



4. 나꼼수는 박은정을 보호하였는가?


나꼼수팬들은, "나꼼수가 그런 일을 안했다 하더라도 박은정이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에" 진중권은 틀렸다고 한다. 이건 좀 앞뒤가 뒤바뀐 변태적인 진술이다. 대부분 자발성을 침해하는 명분은 당장 자발성을 침해하지 않을 경우 그에게 극심한 위해가 올 것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자발성을 침해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가 위해를 받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침해했다고 하면 이 세상에서 자발성이 보장받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진술조서를 낸 박은정의 실명이 공개되지 않았더라면 사태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이에 대한 답은 '모른다.'이다. 나도 모르고 당신도 모르고 진중권도 모르고 나꼼수도 모른다. 그런데 나꼼수의 실명공개라는 행동은 이걸 '알았다.'라는 답변에 기초해 있다. 진중권은 이에 반대하기 위해 나꼼수와 반대방향으로 '알았다'란 추론을 한 후 나꼼수 행동을 비판한다. 이걸 두고 나꼼수팬들이 "진중권 너는 어떻게 알았냐."라고 성토하는데 이런 코미디가 없다. 진중권은 나꼼수의 구부러진 막대를 다시 한번 구부려본 것일 뿐이고, 설령 그가 나꼼수와 비슷한 독선전 재단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번에 모종의 행위를 한 건 나꼼수이지 진중권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비중으로 비판받을 수는 없다.



이 글에 거론된 사람 중에서 박은정의 행위가 검찰조직에 어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맥락적 지식이 많은 사람은 박은정 본인이라 할 수 있다. 이것 역시 '개인의 선택과 자발성에 대한 존중'이란 원칙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다. 이번 건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안에서 그렇기 때문이다. 물론 박은정조차도 사태를 예측할 순 없었다(그게 나꼼수의 판단에 우리가 복종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하지만). 근데 그건 검찰총장조차 예단하기 어려운 문제였을 거다. 여하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행동을 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재빨리 개입해 그녀의 자발성을 억압해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영역에서 그전까지는 다소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던 올드보모어 님의 주장은 망상으로 치닫는다. 그는 1) 보수언론이 먼저 보도했다면 상황이 더 불리했을 것이기 때문에, 2) 검찰조직이 그녀를 내친 후에 개입하면 너무 늦기 때문에 나꼼수의 폭로가 탁월한 행위였다고 칭송한다. 원칙을 억압하는 명분으로 일종의 정치공학적 썰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 썰은 정치공학적으로도 어불성설이다. 1)부터 부인하자면 보수언론은 절대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을 거다. 그것은 제살 깎아먹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결코 새누리당에 유리할 게 없는 '나경원 논란'으로 정국을 소란하게 하여 파묻을 만큼, 조중동이 박은정에게 이해관계나 억하심정을 가지고 있었던게 아니다(이제부턴 좀 다를 수도 있겠다). 실제로 나꼼수 폭로 후 경향신문과 한국일보, 그리고 한겨레가 사정당국에 접촉하여 드른 얘기를 기사화할 때 조중동은 그부분에 대해선 침묵을 지키며 검찰과 법원에게 엄정한 수사를 한 후 결과를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박은정의 진술은 조중동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으로 될 수 있는 한 외면해야만 했다. 심지어는 그녀가 합동기자회견을 하더라도 되도록 적게 내고 싶어 했을텐데 뭘 미리부터 폭로했으이란 건지 모르겠다.



2)번 역시 엉터리인 건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이는 올드보모어 님이 박은정의 참고인진술이 사실상 언론보도 실명공개와 다를바 없는 행위라고 강변한 것과도 모순되기 때문이다. 검찰에 와서 직접 진술한 박은정을 검찰조직이 경원한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그건 나꼼수 폭로가 진행된 현재 상황과 비슷하거나 덜할 것이다. 왜냐하면 검찰이 무슨 조폭집단이 아닌 이상 박은정의 행동의 자유를 그때부터 차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술을 한 박은정이 그 사실을 언론에 흘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상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검찰에 진술할 때 박은정은 카드를 한 장 더 들고 있었다. 그 카드를 통해 그녀는 검찰의 선택을 압박할 수도 있었고, 그게 잘 안될 경우엔 그 카드를 써버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유도리를 발휘하기도 전에 그걸 터트려 버린 것이 나꼼수다. 그러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이건 무슨 상황이냐면, 내가 비행기 슈팅게임을 하고 있는데, '적'들이 아직 대거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옆에서 친구란 놈이 도와준답시고 '폭탄' 키를 눌러버린 상황에 해당한다. 그거 없이도 이번 판을 깰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그 녀석 때문에 손해를 본 건 확실한 뭐 그런 상황인 것이다.  



5. 나꼼수와 박은정의 이면합의?


또 다시 음모론의 기질을 발휘하여, 나꼼수와 박은정이 치밀하게 합의하여 역할분담을 했다고 얘기하는 수도 있다. 맥락을 살펴볼 땐 별로 가능성이 없는 시나리오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이 경우엔 우리가 그 '연극'을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그 합의에 대해 모르는 척 해야 한다. 그 역할분담의 정치적 목적은 우리가 그 역할분담을 모를 때에야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 이런 식의 추정을 하면서 그걸 자랑스럽게 공표하는 것은 무슨 심리인지 이해가 안 간다. 그건 여러분이 정권 수뇌부나 조중동이나 검찰 수뇌부의 입장에서 "야, 박은정 짤라버려!!!"란 주장을 하고 싶을 때나 캐내야 하는 시나리오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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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얘기를 하면 "대체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진중권을 옹호하느냐."란 말을 듣는다. 글 전체가 진중권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사안에 있어 그와 의견이 다르면 사정없이 비판도 하는 사람에게 할 말론 궁색하지만, 그들은 어차피 내가 평소에 뭘 하고 사는지도 모르니 아무렇게나 말해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문제제기를 논점으로 받는 게 아니라 "착한 주진우를 괴롭히는 진중권 일당이라는 사악한 세력을 척결하면 되는 게임"으로 시나리오를 짜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논의를 하고 있다고 믿는 상황이 꽤나 엽기적이다.)  


댓글 '9'

무식쟁이

2012.03.08 09:34:23
*.220.43.187

올드보모어라는 분의 글에서 

"2월에 박은정이 공안부를 찾았다. (박은정의 진술조서가 작성되어져서 경찰에 전달되었는데 전화통화로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하지는 않았을 터이니 출두’했을것이다. 설령 전화통화나 이메일로 답변서를 제출하였을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별반차이없다)"


그런데 "기소 청탁 논란은 지난달 28일 팟캐스트 라디오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박 검사가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 남편인 김재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에게서 부인을 비난한 누리꾼을 기소해 달라는 청탁을 받은 사실을 공안수사팀에 말했다`는 내용을 방송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박 검사 측은 기소 청탁 논란과 관련한 진술서를 제출하라는 검찰 측 요청에 따라 5일 오후 5시 진술서를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에 제출했다. 당초 검찰은 박 검사에게 해당 진술서를 경찰에 제출하라고 했지만 "경찰에는 못 내겠으니 전달해 달라"는 박 검사 요청에 따라 박 검사 진술서를 대신 받아 봉해진 서류 그대로 서울지방경찰청에 전달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로 되어있어요.


이를 통해

공안부에 나가서 한 진술은 어딘가에 제출할 정식 서류 형태는 아니었던 것.

게다가 검찰은 (검찰의 의중에 반하는? 태도를 밝힌) 박은정 검사가 자유 상태에서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이는 검찰이 자신에게 똥칠을 할 박검사에게 보복한다는 상황 설정과는 거리가 있어보입니다.

하뉴녕

2012.03.08 09:59:00
*.96.161.91

말씀하신대로 그 방송 이전 진술의 형식이 올드보모어 님이 전제하고 있는 것과는 좀 다른 것 같네요. 

무식쟁이

2012.03.08 12:12:37
*.220.43.187

개인적으로 올드보모어의 글을 읽기가 난해했는데, 박검사의 2번과 3번이 무슨 차이가 있는 때문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올드보모어는 2번을 철회 가능한 사적 대화 형태의 보고, 3번을 정식 진술을 함으로써 공식화 이런 차이로 보는 것 같은데, 위에 밝힌 시점상 나꼼수 이전에 아직 2번의 여지가 남아 있었다는 거죠. 
(5일 제출한 진술서가 그 이전 공안부 진술 당시 '추후 진술서로 제출하라'고 미리 결정되어 있던건지, 나꼼수로 화제가 되니까 검찰에서 다시 요구한건지 알 수 없지만)
오히려 올드보모어의 논지에 따라보면 박검사는 28일 이전에 박검사는 2번에 가까운 입장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뒷다마 같아서 이 블로그에서 할 얘긴 아니지만 (그래도 하는 이유는 3번까지 동의한다고 하셔서)
팩트인 박검사의 행동은 휴가를 내고 휴대폰을 끊은 것도 있죠. 
오늘은 후임에게 남긴 쪽지 '김판사가 부탁한 사건'이라는 포스트잇이 붙은 사건철도 있었다고 하고 ...

종합해보면 공안부를 찾아가 진술한 것, 휴가를 낸 것, 사직서를 제출한 것,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것 (순서는 명확치 않습니다.) 네 개의 팩트가 있습니다.
추가로 박검사가 공개한 '청탁 전화가 있었고, 후임에게 전달했고, 증거도 있다.' 라면 ..
어쩌면 (의로운 박검사를 음해한다고 욕먹을 것 같긴 한데) .. 공안부에서의 진술은 김판사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김판사와 연루된 박검사 자신의 자수 내용도 포함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허접한 시나리오를 써보자면 
과거에 청탁을 수용했고 일정한 역할을 했으며, 무죄인 주진우에 대한 일이 생기자, 양심적으로 자수를 하고 심경이 복잡해 휴가를 내고 생각 중 '나꼼수가 터져'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사직서를 제출...  
이런 게 아닐까 하는데...
제 시나리오는 몇 점인가요. 채점해 주세요.

capcold

2012.03.08 10:53:32
*.151.107.17

!@#... 아, 링크해주신 제 글의 이후 덧글에서 인용했지만, 명문화된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실천요강이 있습니다: http://www.journalist.or.kr/com/rule-2.html (강령들이 그렇듯, 큼직큼직한 원칙으로만 쓰여있지만)

하뉴녕

2012.03.08 13:31:12
*.96.161.91

'취재원 보호'로군요. 제가 아는 얘기는 한 신문이 한명의 취재원을 통해 정보를 얻어 기사를 썼을 때, 그후 그 취재원이 다른 신문에는 실명을 걸고 인터뷰를 하여 기사가 작성된다고 하더라도, 그를 취재원으로 썼던 최초의 신문은 계속해서 익명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입각해서 볼 때는 설령 박은정 검사가 어떤 행위로 나아가더라도, 주진우 기자와 정보를 교환하는 관계였다면 주진우 기자는 '취재원 보호'의 의무가 생기는 것일텐데, 제가 이 글에서 링크한 올드보모어 님의 주장은 진술을 했으니 그딴 거 없다 이런 것이죠. 근데 저는 박검사가 검찰에 나아가 했다는 그 진술의 성격이 궁금한데, 저분은 그것을 이미 공개되어도 무방한 행위로 단정지어서 의아했습니다. 이부분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니 결국 기소청탁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더라도 더 많은 정보들이 나오지 않을 것 같고, 결국엔 우겨우겨서 넘어갈 수가 있겠죠...쩌비;;

무식쟁이

2012.03.08 13:52:16
*.220.43.187

저는 언론인이 아닙니다만

[한 신문이 한명의 취재원을 통해 정보를 얻어 기사를 썼을 때, 그후 그 취재원이 다른 신문에는 실명을 걸고 인터뷰를 하여 기사가 작성된다고 하더라도, 그를 취재원으로 썼던 최초의 신문은 계속해서 익명을 고수해야 한다.]

이건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사건을 예로 들면, '박은정이라는 검사가 청탁이 사실임을 밝혔다.' 라고 다른 신문들이 떠들 때는 주진우도 같은 사실을 밝힐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다만 '내 정보원이 박은정이다.'라는 건 끝까지 숨겨한다.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싶은데요.

하뉴녕

2012.03.08 14:03:28
*.96.161.91

저번 기사의 관계자가 누군지는 안 밝힌다는 겁니다.이 경우는 기사가 나온 것도 아니니 참 뭐라 할 말이 없네요.

꼬뮌

2012.03.09 01:38:16
*.254.238.61

이건 무슨 상황이냐면, 내가 비행기 슈팅게임을 하고 있는데, '적'들이 아직 대거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옆에서 친구란 놈이 도와준답시고 '폭탄' 키를 눌러버린 상황에 해당한다.<----- 요 부분에서 빵터졌슴 ㅋㅋㅋ


한윤형님을 알게 된게, 동아대 교수였던가 뭐 그 분에 대한 한윤형님의 반박글을 읽고 와 대단하다. 그러다, 고종석님의 한윤형님에 대한 찬탄의 글을 읽게 되고,


다만, 한가지 아쉬웠던게...물론 나만의 오해일수도 있겠지만, 글 속에 유머가 없다는 것이었는데...물론 논쟁적인 글에 있어서, 유머라는 게 우스꽝스럽고 값싸보일 위험성은 있지만, 논점을 흐릴수도 있고, 


유머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진중권님에 대해 말하자면, 전형적인 소양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마 선생의 사상체질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에 어느 정도 유의미성이 있다고 본다.


말은 그 내용자체보다도, 말하는 시점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사족-트윗질은 왜들 해대는지 잘 몰게따 ㅋㅋㅋ 특히나 앞으로 뻗어나가야 할 젊은 지성들이

황당

2012.03.09 16:22:01
*.191.121.31

하뉴녕아, 진중권이 성급했다고? 풋~^^

 

진중권 트윗에나 가보렴...네 말대로라면 성급한게 아니라 확신범이여 ㅋㅋ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먼저 진중권하고 토론하고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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