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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19대 총선을 앞두고 최근 여론조사 기관들이 수행한 조사 영역은 크게 세 가지 분야였습니다. 하나는 여당이 실시한 25% 현역의원 평가 컷오프 조사, 두 번째도 역시 여당이 실시한 국민참여경선 모집인단 조사, 세 번째는 여야 모두 실시한 경선 혹은 공천을 위한 예비후보 지지율 조사였습니다.

민주통합당이 이번에 도입한 모바일 경선은 경선 투표권자가 무작위로 ‘피선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조직동원형’ 모집이었기 때문에, 여론조사 기관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누가 더 많은 선거인단을 모집하느냐가 관건이었기 때문에, ‘차떼기’, ‘대리투표’, ‘투신자살 사건’ 등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물론 무작위로 실시한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지요. 바로 ‘거짓응답’의 문제인데요. 실제 나이와 다르게 응답을 하는 이유는, 통계과정에서 허용되는 가중치 부여 과정, 즉 할당 표집에서 응답자수가 실제 인구비례보다 모자라게 집계되는 2~30대 유권자들의 표심이, 통계과정에서 ‘가치절상’되는 원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2~30대 1인당 2표~4표 가량의 가중효과가 나타나는 원리 때문에, 후보자 입장에서는 ‘거짓응답’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고, 거짓응답은 여야를 무론하고, 또 전화면접 조사와 자동응답 조사를 무론하고 나타난 것이지요. 이번 관악(을) 지역의 야권후보 경선 여론조사에서, 이정희 대표의 보좌관이 200여명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도 바로 그런 거짓응답을 유도한 메시지였고, 그래서 문제가 심각해진 것입니다.

사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경선 여론조사 룰(Rule)은 사실 여론조사 기관의 입장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좀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조사대상 선정의 문제였는데요. 새누리당의 경우에는 조사대상이 중복되지 않게, 여론조사 기관들이 전화번호 명부를 무작위로 생성(RDD)하여 1/N으로 나눠서 쓴 반면, 야권 경선 여론조사의 경우 ARS 조사는 KT 전화번호부로, 전화면접조사는 RDD(KT전화번호부+무작위발생번호)로 하여, 양 조사간에 KT 등재가구가 중복되게 조사를 시켰다는 점입니다.

문제가 됐던 관악(을)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경선지역에서 KT전화번호부 등재가구에 포함된 응답자들은 1인 2표를 행사할 수 있었고, 2-30대의 경우에는 거기에 또 최대 1.5배 가중치를 부여함으로써, 1인 3표까지 행사하게 돼서, 표의 등가성이 크게 훼손된 것입니다. 때문에 KT 전화번호부로만 조사를 한 ARS조사에서 이정희 대표가 큰 격차로 이길 수 있던 반면, RDD로 한 전화면접 조사에서는 김희철 의원이 1%p 미만의 격차로 이긴 것이지요.

이번 야권 경선 여론조사는 조사대상 선정과정에서부터 1인 2표가 되도록 이미 설계가 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 여론조사에 비해 이미 불법의 소지가 더 컸던 셈이고, 더 나아가 KT등재가구만을 대상으로 한 ARS 조사에서, 응답자의 거주지역을 확인하지 않고 다른 지역구에서 여론조사를 한 사례까지 발생하면서, 안산단원‘갑’ 지역은 3표차이로 패배한 백혜련 변호사에게 민주통합당에서 공천을 주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여론조사의 원리를 알고 있었다면 조사대상을 이렇게 중복되게 하거나, 다른 지역에 조사되도록 하지 않았을텐데,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 있었다면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잠시, 연령별 할당 과정을 이정희 대표 측에서 어떻게 알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는지와 관련해서 살펴볼까요?

이정희 대표 진영이나 김희철 의원 진영이나, ‘전화면접 조사 과정에서 면접원에 의해 해당 연령 조사 중단 멘트를 듣고 판단했다’고 하는데, 이 대표 측의 문자메시지의 발송 시간이 17일 오전이었고, 김 의원 측의 문자메시지 발송 시간이 18일 오전이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이 대표 측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입니다.

왜냐하면 17일 오전 11시는, 전화면접 조사에서 연령별 할당이 채워지기 한참 전 시간이었고, 그 시간대에 문자메시지 내용대로 연령층 할당을 논했다는 것은, ARS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은 한겨레신문에서도 보도를 했는데요. 전화면접 조사의 경우, 조사개시일인 17일 밤 10시까지 샘플을 결국 채우지 못했고, 다음날인 18일 밤 10시까지도 20~30대 샘플을 다 채우지 못하고 끝났는데, 이 점을 고려할 때 조사 첫날 조사 시작 1시간 만에 ‘전화면접 조사의 면접원 멘트로 조사 중단 멘트를 듣고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이정희 대표 측의 설명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져 보입니다. 

결국 ARS 조사과정에서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바, 보다 가능성이 농후한 부분은 바로 여론조사 참관 과정입니다. 

ARS 조사당일인 17일 ‘ㅁ’리서치에는 공교롭게도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시간에 민주통합당에서는 참관인이 도착하지 못했고, 통합진보당에서만 참관인이 참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참관 과정에서 ARS 조사정보가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참관인은 조사 완료 이후인 3시에나 참관하러 왔기 때문에, 적어도 민주통합당측에서 17일 오전에 정보가 새나갔을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지요. 그 시간 참관인 소재와 관련한 내용은 해당 조사기관의 대표에게 제가 직접 확인한 바입니다. 


물론 여론조사 기관에서 정보가 직접 새나갔을 가능성이 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여론조사 기관에서 정보가 유출되었을 가능성은 적고, 시험 감독하러 나간 참관인이 시험 문제를 유출했을 가능성이 보다 높습니다. 이 부분은 당시 참관인의 통화기록을 보면 알 수 있을 테지만 사법당국의 수사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알 수 없겠지요. (향후 각 정당에서 참관하는 경우에는, 차제에 휴대전화를 여론조사 기관에 모두 맡기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정행위를 참관하는 참관인이, 부정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결론적으로 이번 사태를 보면서 여론조사 기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각 정당에 바라는 것은, 투표과정에서 개인 신분을 확인하여 거짓응답의 가능성이 없는 ‘국민경선제도’를 보다 확대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즉 여론조사기관들에게는 모두(冒頭)에 언급한 세 종류의 여론조사 대행 중에서, 국민참여경선 모집인단 조사를 중심으로 용역을 대행시켜야 하고, 경선 여론조사로 후보를 뽑는 유형의 조사 용역은 가급적 삼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새누리당의 경우 국민참여경선으로 후보를 선출한 지역은 246개 지역구 중에서 10%가 채 안됐고,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여론조사를 통해서 선출하면서 경선 불복 사태가 나타났고, 이는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20대 총선에서는 여든 야든, 선거관리위원회 도움하에 국민참여경선의 적용 지역구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론조사는 원천적으로 오차(표집오차, 비표집오차, 포함오차 등)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후진적인 경선 불복 사태가 불가피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 정치는 계속 후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이번 야권연대 경선 여론조사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권연대에 심각한 균열을 초래하였고, 민주통합당 1당 목표나 통합진보당 원내 교섭단체 구성 목표는 커다란 벽에 부딪히게 됐습니다. 남은 기간 이 균열을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1당이 누가될지, 진보정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하게 될지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양당의 수장인 한명숙, 이정희 대표가 수습을 잘 할 수 있을까요?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 (한국정치조사협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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