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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상산의 뱀'님께

조회 수 1782 추천 수 0 2011.12.01 00:04:54
이제 이런 논쟁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몇 가지 지적을 하지요.

그 유명한 당 규약 1조 논란을 다시 한 번 봅시다. 이 논쟁에 대한 수많은 도식과 레토릭과 말 꼬리 잡기가 1세기 동안 이어진 셈입니다만, 오늘은 규약 그 자체만을 놓고 다시 한 번 비교하여 봅시다. 당원의 자격을 규정하는 레닌의 원안은 이렇습니다.

"당의 강령을 받아들이고 물질적 수단으로 당을 지원하고 당의 조직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개인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당을 지지하는"

다음은 마르토프의 안입니다.

"당의 강령을 받아들이고 물질적 수단으로 당을 지원하고 당의 조직들 가운데 어느 하나의 지도를 받아 정기적으로 개인적으로 협조함으로써"

그냥 문장만 봐서는 이게 그렇게 엄청나게 싸울만한 일인가 싶은 생각도 들 것입니다. 하지만 늘 논쟁은 문장 그 자체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맥락을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논쟁을 둘러싼 맥락 그 자체를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겠지요. 자세한 맥락은 '일보전진 이보후퇴'에 잘 나와있을 것입니다만, 핵심만 말씀드리면 이것은 20세기 초 정당의 조직론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에 등장한 논쟁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 사건을 두고 마치 레닌이 '잘 훈련된 혁명가들로만 조직된 전위정당'을 원했고 마르토프는 '보다 느슨한 네트워크 형태의 대중정당'을 원했다고 하면 그것은 이 논쟁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 시기에는 아마 당원 명부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정당이야 누가 당원인지 어떻게든 확인이 가능하지만 과연 이때 러시아 사회민주당이 그런 정도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을까요? 과연 당원이 당비를 납부하고 이것을 통해 당직 선거권을 획득하였을까요? 기껏해야 당원을 자처하는 어떤 지식인의 존재를 확인하면 되는 그런 수준이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러한 맥락을 고려하면 오히려 레닌의 주장은 당원이 누군지, 당 강령에 동의를 하는지 여부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 아니었을까요?

실제 2차 당대회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다뤄졌던 문제는 소위 '분트'라 불리는 유태인 단체의 성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분트를 대표하는 대의원에게 의결권이 있는지 여부를 두고 시작된 논쟁인데 분트가 대표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대표한다는 것이 당의 조직 원리에 맞는 것인지, 이후에 분트가 하게 될 활동은 어떤 당 조직 체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인지 등이 애매했던 것입니다. 마르토프는 분트와 연합했고 레닌은 분트의 위상을 정확하게 정리하길 원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갈등을 빚느라 결국 분트는 집에 가버렸습니다. 이 외의 여러 논쟁에서도 마르토프의 레닌의 조직론은 일관된 지점에서 계속 충돌하고 있습니다.

마르토프의 조직론대로 움직이는 자전거 동호회를 떠올려 봅시다. 마르토프의 주장대로라면 수원의 자전거 동호회 대표가 있으며 이 사람은 분명히 자전거 동호회의 회원입니다. 수원의 자전거 동호회 대표가 친구라며 데려온 사람도 자전거를 타기만 하면 회원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 동호회와는 관계없이 수원시 권선동을 중심으로 한 권선동 중국인 클럽도 자전거를 함께 탔다면 자전거 동호회 회원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오늘 자전거 동호회의 회원일 수도 있고 내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레닌의 조직론으로 한다면 자전거 동호회에 수원시 지부가 있는 것이고 수원시 지부의 대표자를 뽑는 것은 수원시 지부 아래의 권선동 대표이며 권선동 대표는 권선동 모임에서 선출되는 것입니다. 이 체계 외의 친구나 중국인들은 같이 모여 자전거를 타기는 하겠지만 자전거 동호회의 회원은 아닌 것입니다.

즉 제가 보는 마르토프와 레닌의 충돌은 전근대적 조직론과 근대적 조직론의 충돌입니다. 강경파와 온건파의 충돌도 아니고 계급정당과 대중정당의 충돌도 아니고 폐쇄적인 정당과 개방적인 정당의 충돌도 아닙니다. 물론 이들이 논쟁을 하면서 온갖 수사를 동원하였고 이후에 스탈린주의가 도식화한 정당론의 맥락에 맞게 이들의 논쟁은 여러 측면에서 다르게 해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하여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라는 겁니다.

그럼 이런 전제를 갖고 생각을 해봅시다. 현대에 존재하는, 진성당원제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의 진보정당에서 마르토프적 조직론이냐 레닌적 조직론이냐 하는 갈등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미 최첨단 시스템을 통해 당원이 누구인가를 아주 잘 확인할 수 있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으며 발달된 관료제적 기능을 구현하여 중앙당-광역시도당-지역위원회의 잘 짜여진 조직에서 그가 속해있는 당 기구를 논란없이 구별해낼 수 있습니다. 즉, 오늘날 진성당원제가 구현되는 정당은 예외없이 레닌이 요구하였던 조직론적 문제를 해소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당의 강령을 받아들이고'(가입원서의 작성), '물질적 수단으로서 당을 지원하고'(당비 납부), 당의 조직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개인적으로 참여'(지역위원회 편재)하고 있으니까요.

말이 길었습니다만, 따라서 레닌의 조직론을 사노위가 따르고 있고 다른 조직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며, 물론 저는 사노위의 조직체계를 잘 모릅니다만, 최소한 제가 그들이 조직을 건설할 때에 조직체계에 관하여 토론하는 행사에 직접 참관하여 본 경험으로 미루어 생각해볼 때, 오히려 레닌의 조직론이 덜 구현되는 형태이지 않는가 하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 전진은 사노위와 같은 조직 형태를 주장한 일이 없고요. 오히려 구 전진은 지금과 같은 형태의 조직 형태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다만 김종철 등의 일부가 당원 자격 심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일이 있는데, 이것은 말씀하신 그런 방식이 전혀 아니고, 정기적으로 당원 교육을 이수한 사람에게만 당원의 권리를 부여한다는 정도의 것이었습니다.

제 개인의 의견을 말하자면, 정치학 교과서에도 대중정당과 다른 형태의 정당을 분리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대중정당의 조직노선을 따른다고 하면 당원가입원서를 쓰고 당비를 내는 것만으로 당원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당원의 자격 제한 논란은 이념적 동질성이 문제가 아니라 정파적 대결구도가 심화될 때 당비를 대납하여 자신들의 머릿 수를 늘리고 대리투표를 하던 패권주의적 사업작풍을 청산해야 된다는 점을 주장할 때에 필요했던 것이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당원 자격의 제한 논란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오히려 중요하게 우리가 다루어야 할 것은 진보정당다운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이며 그것의 핵심은 기관지의 발행과 당원 교육 사업의 강화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시절에도 지금처럼 정치학 교과서의 대중정당적 조직론에 충실한 당이었습니다만 결코 이런 꼬락서니는 아니었습니다. 민주노동당 시절이었다면 통합 논란 이후 벌어진 여러가지 불미스런 사태에서 십 수명은 당기위에서 처벌을 받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기관지와 교육사업에 대해서는..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면 이야기 하도록 하지요.

댓글 '5'

상산의 뱀

2011.12.01 15:26:16
*.109.69.239

레닌과 마르토프의 충돌이 근대적 조직론과 전근대적 조직론의 충돌이라고 보는 해석도 존재하는군요. 솔직히 저는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제가 아는 정설은, 그 1조에 대한 논쟁은 레닌의 조직론 - 전위당, 중앙집권, 엄격한 규율에 의한 당원 통제, 높은 수준의 이념적 결사-를 관철시키기 위한 당내 투쟁이라는 것입니다. 일단 제가 직접 일보전진 이보후퇴를 읽어봐도 그게 명확해 보이고, 당을 다루는 IS 계열의 책들(존 몰리뉴, 토니 클리프의 책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이런 논쟁을 별로 안좋아하신다니, 굳이 레닌의 글을 직접 인용하며 주장할 생각은 없지만, 솔직히 이상한 모자님의 해석에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레닌주의와는 다른 입장에서 이 논쟁을 바라본 글 같은 걸 본적이 없어서 생소하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겠다만.. 혹시 참고하신 문헌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다음으로, 사노위가 처음 제안서를 돌렸을 때 제시한 정치원칙 중의 당 관련 부분에 이런 항목이 있습니다. "당원이 당 기구 중의 하나에 반드시 속하고". 저는 사회주의정당을 만들려는 이들이 이 문항을 중요시하는 이유가 1조 논쟁의 맥락에서 강한 이념적 결사체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문구대로 해석해서 진보신당 당원이 지역위원회에 편재되는 것과 등치를 시킨다면, 솔직히 일보전진 이보후퇴가 레닌의 주요저작이 될 이유가 없는거고, 사노위가 이걸 정치원칙으로 삼는 이유도 전혀 이해할 수 없겠죠.

전진에 대한 부분은 제가 오해한 부분이 있군요. 저는 김종철 님이 당원이 당 기구에 속해서 활동해야 한다고 말한걸 어느 동영상에서 본거 같은데, 착각이었나보네요. 찾아봤는데 안나오더라구요. 이상한 모자님처럼 그걸 현재 같이 당원이 지역위원회에 편재되는 걸로 생각하다면 그렇게 말할 이유가 전혀 없겠군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걸 하자고 할 이유가 없을테니깐요. 꿈에서 봤나;;

기관지와 당원교육에 대한 글이 궁금해지네요.

이상한 모자

2011.12.01 22:30:29
*.246.72.239

제가 지금 밖에서 술먹다가 흥분해서 아이폰으로 쓰는데요.

레닌의 주장을 볼땐 두 가지를 유념해서 봐야 됩니다. 첫째, 레닌은 1900년대 초를 살아갔던 (그냥 이론가가 아닌) 정치인입니다. 그런 시대적 배경에서 이 사람이 주장하려고 했던 바가 무엇인지 통찰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스탈린주의적 도식으로 레닌을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도식에서 탈피하여 실제 레닌의 주장이 적용된 상황 그 자체를 보세요.

레닌이 논쟁에서 이기시 위해
동원했던 레토릭들을 걷어내고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조직원리가 무엇이었는 지를 한 번 연대기별로 정리를 해보세요. 그의 조직론이 일관되게 근대적 조직체계를 지향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노위 문제도 단순한 레토릭을 보지 말고 실질적인 조직체계 확립 과정을 보세요. 황당 그 자체 입니다. 진보신당 강령에 '우리는 레닌주의다'라는 강령을 넣으면 레닌주의 정당이 될까요? 아니죠? 실제 뭘 하느냐가 중요하죠? 그런걸 보세요.

이상한 모자

2011.12.01 22:34:26
*.246.72.239

아이 진짜 아이폰으로 쓸라니까 답답해서 성질나네.. 그냥 좀 절 믿으세요!

상산의 뱀

2011.12.01 23:32:52
*.109.69.239

음.. 그럼 이상한 모자 님은 레닌이 왜 당 분열을 만들어내며 1조 논쟁을 크게 벌였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시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을 근대적 당으로 개편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게 당시 레닌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이죠? 게다가 그 당은 그 시기 뿐 아니라 한참 이후로도 비합적 조건 속에서 당위원회같은 조직도 제대로 못세우고 간신히 만들어도 붕괴되고 간부들이 체포되거나 외국에 떠나고 그런 당인데, 그런 당이 근대적 의미의 당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레닌이 당을 직업적 혁명가 조직으로 만들려 했던 것은, 그 시기가 혁명이 임박한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1905년 혁명의 시기가 도래했을 때는, 이와 반대로 당을 급속히 확장시키죠. 1908년 레닌은 그 시기 자신의 주장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크라가 직업혁명가들의 조직이라는 사상을 지나치게 강요했다(1901년과 1902년에)고 지금 주장하는 것은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러시아 군대의 전력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전쟁 전에 러시아 군대와 싸우기 위한 준비의 필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비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중략) 그들은 문제의 핵심을 알지 못하고 오늘날 직업혁명가들의 조직이라는 사상이 이미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당시에 이런 사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면, 그 사상이 실현되지 못하게 하려 했던 사람들에게 그 사상을 납득시키기 위해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았다면 그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레닌1, 토니 클리프)

레닌이 규약 1조 논쟁을 크게 확장시켰던 것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이런 맥락이 있는 것이죠. 레닌 스스로도 직접 그 맥락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실제 논쟁 과정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이상한 모자님께서 자꾸 아니라고 하시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요.

* 잘못된 정보가 있어서 약간 수정했습니다.

이상한 모자

2011.12.02 14:50:26
*.208.114.70

이 댓글은 지금 제가 왜 이런 글을 썼는지,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위에 제가 새로 쓴 글을 보세요. 심지어 클리프의 그 표현은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가 있어서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다'로 요약할 수 있는 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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