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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그 놈의 조직노동

조회 수 1084 추천 수 0 2012.08.31 17:00:49

또 무슨 말을 길게 하기 싫어서 옛날에 썼던 글 중 일부를 여기에 다시 붙여둔다.


생디칼리즘에 대해


생디칼리즘이란 노동조합으로 혁명을 하겠다는 사상이다. 남한에는 80년대 전노협 시절에 자생적으로 탄생한 바 있다. 오늘날 노동조합 운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주의와 비과학적 인간주의 등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생디칼리즘을 넘어서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바로 이 문제들이 80년대 생디칼리즘에서 비롯되어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80년대와 같은 상황에서는 생디칼리즘은 사실 어쩔 수 없이 이용되었던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전노협을 거쳐 민주노총이 만들어지고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생디칼리즘 특유의 비타협적 전투성이 상실되어가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운동 활동가들의 일부는 재빨리 ‘노동자 정치세력화’ 구호를 외치며 표류하는 노동조합의 정치적 지향을 붙잡아 고정시키려 노력했으나 잘 성공하지 못하였고 결국 오늘날과 같은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다.


핵심적인 문제는 생디칼리즘 노선을 추구했던, 또 지금까지도 추구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혁명적 사상은 노동 계급의 외부에서 온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운동이 전체 변혁 운동에 복무하려면 노동조합 그 자체만이 아니라 외부의 변혁적인 그 무엇이 노동조합 운동 내에 지속적으로 개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많은 생디칼리스트들이 ‘노동조합 본연의 활동’을 열심히 하면 노동계급이 중심이 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한다. 심지어 노동조합은 부르주아 헌법에도 그 기능과 권한이 보장되어 있는 기관인데 말이다!


유일하게 노동조합이 변혁적일 수 있는 순간은 조합원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외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자본주의 사슬에 포함된 ‘창문’ 역할을 할 때뿐이다. 노동조합 운동 활동가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그 무엇을 체험하고 직관할 수 있도록, 창 너머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물론 오늘날의 생디칼리스트들도 노동조합이 이러한 변혁적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러분, 창밖을 보세요. 그곳이 자본주의 세계의 너머랍니다. 저 곳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치적 영역에서 바람직한 답은 “진보정당을 지지해야 하겠습니다.”이다. 그러나 생디칼리스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노동조합 활동, 투쟁을 열심히 해야지요.” 이는 결국 동어반복이다. 대중 조직과 당 조직은 이러한 방식으로 종종 혼동된다.


그러한 결과가 오늘날 더 이상 변혁적인 전망을 가지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노동운동이다. 생디칼리즘에서는 명확하게 노동조합 내부에만 바람직한 정치가 존재하지만 오늘날 우리 노동운동에 존재하는 사상은 타락한 것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는 노동조합에서 정치가 사라졌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노동조합 안에만 정치가 존재하다가 하는 꼴이 되었다. 전자의 경우가 오늘날 만연한 경제주의로 나타났고 후자의 경우가 ‘100만 민중대회’, ‘민주노총 독자 후보론’ 등의 조야한 노동자주의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오늘날 노동조합 운동에서 변혁을 이야기 하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정치’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조합원들에게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다.


생디칼리즘의 극복은 오히려 생디칼리즘의 원형을 다시 사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타락한 사상으로부터 소위 전노협 정신을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새로 태어날 전노협 정신은 20년 전과 같은 모양이 아니라 그 외부에 진보정당과 진보정치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중략)


새로운 노동조합운동에 대해


다시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어찌됐건 더 이상 노동조합운동을 이 상태로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앞의 문단에서 나는 우리 노동조합운동에서 생디칼리즘이 문제였고 생디칼리즘으로부터 다시 이 문제를 사고해야 한다고 적었다. 그것은 노동조합운동에 정치성의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되, 그것이 적절히 응집될 수 있는 구심이 외부에 존재하도록 운동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민주노총 모델은 그렇지 않았던가? 물론 민주노동당 배타적지지를 선언한 초기에는 이것이 그러한 모델로 발전되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랬다. 그러나 모든 것이 뒤틀려버렸다. 오늘날 민주노동당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운동을 열망하는 대중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거듭된 후퇴로 민주노총은 단지 민주노동당에 돈을 대주고 그것을 통해 일정 지분을 보장받는 조직이 되어버렸다. 민주노총의 그 돈은 어디서 나왔는가? 돈의 상당부분이 정규직 노동자들, 그래도 살 만한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민주노동당이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매수당해서 비정규직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그것이 그저 그런 사실일 뿐이다. 노동조합 운동과 진보정당의 필요성과 역할이 승리를 경험해본 일이 없는 그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서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노동조합운동은 지리멸렬 할 것이다.


핵심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고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미 기반이 단단한 노동조합운동, 이제 어느 정도 할 만한 노동조합 운동에서의 기득권은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정규직, 비정규직 편을 가르자는 이야기인가? 비정규직만 중요하고 정규직은 안 중요한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현실에 안주하는 정규직 노동조합운동의 가슴에 새로운 불을 붙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주의에 찌든 정규직 노동자들과 정치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연대 투쟁이 사회적 의의를 가지며 그것이 곧 진보정치를 통해 유의미한 정치적 영향력을 분출될 수 있다는 기대감과 확신을 체득할 수 있는 기회가 똑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상실하거나 혹은 아직까지 얻지 못한 것이 바로 이러한 정치의 영역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경제주의를 원한다고 해서 경제주의를 던져주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분노를 흩뿌릴 대상을 찾는다 해서 아무 의미 없는 난타전을 만드는 현재의 노동조합운동의 방식은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누군가 진보신당을 말하고 그것을 위한 분당을 이야기 한다면, 새로 출현할 진보 정당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지향의 운동이 지지할 수 있는 당으로서 처음부터 출발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형태의 노동조합 운동이 존재할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운동은 어떤 진보정당을 지지할 것인가가 진정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직면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만 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한 예로서 프랑스의 ‘SUD노조’와 같은 모델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물론 이들은 글자 그대로의 전형적인 생디칼리즘에 충실한 조직이지만 자신들의 투쟁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하고 있고 또 그것을 정치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법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참고해봄직한 조직이다. 현재 존재하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운동에 SUD노조와 같은 조직 원리를 접목시킬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조직이 새로운 진보정당을 사실상 배타적으로 지지하게끔 할 수 있다면 기존의 조직된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도 진보정치의 새로운 진정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조합 조합원들에 대한 심도 있는 교육이 받쳐주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계획이다. 따라서 새로운 진보정당의 창당준비위원회부터 노동조합 운동에 개입하기 위한 교육 기구를 조직하는 것이 시급하고 필수적이며, 이 교육 기구의 커리큘럼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이념을 대표해야 하고 앞서 언급한 지금까지 우리 운동의 한계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내용이 되어야 한다. 지금 노동조합 운동이 대중을 겨냥해 만들어 내는 그저 그런 교육자료와 같은 수준의 내용이면 안 된다.


이 새로운 노동조합운동의 조직은 민주노총에 종속적인 처지여도 안 되지만 배타적인 관계를 형성하거나 분리된 조직일 필요도 없다. 민주노총이 냉정하게 내칠 수 없는 조직임과 동시에 민주노총에 버림을 받아도 하나 아쉬울 것 없는 조직을 지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들이야 말로 노동조합운동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외쳤던 ‘산별정신’의 놓쳐버린 중간 고리를 메꾸는 핵심이다.

원문 : http://weirdhat.net/xe/halloffame/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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