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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이틀 간의 술자리

기타 조회 수 875 추천 수 0 2013.06.20 00:47:55
1.

어제는 예정됐던 회의가 취소되어 존경하는 김현우 선생님과 조개찜을 먹게 됐다. 2시간 만에 소주를 둘이 5병 마신 것 같다. 8시 쯤 만취한 김현우 선생님은 집에 가고 중간에 합류한 양돌규 선생님이 술을 고파하는 것 같아 맥주를 한 잔 마셨다. 맥주를 마시다 다른 분들도 합류를 하셨지만 이미 나도 완전 취해버렸기 때문에 인사를 하고 집에 왔다.

11시 쯤에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9시였다. 회사에는 10시에 도착했다.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지만 그것보다는 나의 상태가 더욱 문제여서 가방을 의자에 놓자마자 사무실 문 밖 소파로 향했다. 거기서 자다 깨다를 하다 보니 12시가 됐다. 12시 반에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에서 의사양반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억지로 일어나서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위태로웠다. 금방이라도 길에 구토를 할 것 같았다. 오렌지 주스를 하나 사서 빨대를 꽃고 마셨지만 한 모금을 넘길 때마다 역겨워졌다. 그렇게 길에 서있다가 서있는 것도 힘들어서 무슨 돌 위에 앉았다. 12시 20분이었다. 의사양반에게 금요일에 뵙자고 말씀을 드리고 백배 사죄를 하였다.

다시 간신히 사무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정신을 잃었다. 1시 반쯤 이렇게 있느니 집에 가라는 말을 들었으나 도저히 집에 갈 자신이 없었다. 2시부터 자리에 앉아 기사를 검색하는데 글자를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2시 반 정도가 되자 서서히 회복이 시작됐고 이제는 정상 컨디션의 70% 정도는 회복을 한 느낌이다. 과거에는 만취해도 정오가 되면 거의 회복이 됐는데 이제 오후 3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나이의 무게이다!

2.

어제 김현우 선생님과 나눈 대화의 정리. 대화의 느낌을 살리기 위하여 고유명사 등에 호칭을 붙이지 않는 것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우리는 망했다.
- 모든 사람들이 다 잘못됐다.
- 우리도 잘못됐다.
- 구 중앙파들이 이해가 안 된다.
- 금민도 이해가 안 된다.
- 장석준은 모범생이다.
- 장석준의 '끄덕끄덕'은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라는 뜻이다.
- 김종철은 이상하다.
- 최백순의 책은 좋은 책이나 왜 썼는지는 모르겠다.

3.

오늘의 술자리는 진짜 웃겼다.

어제 그렇게 만취해놓고 해장술을 먹어야 한다고 두 번, 세 번을 주장하는 김현우님을 뿌리치지 못했다. 내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자 김현우님은 중앙당에서 기획실 국장으로 근무하는 양솔규님에게까지 전화를 해 결국 서대문에 모두 모여 족발을 먹게 됐다. 몇 차례나 건강한 술을 건강한 안주를 놓고 건강하게 마시자는 취지를 확인하였으나 족발이라는 야만적인 음식을 먹으면서부터 건강 따위는 없는 얘기가 됐다.

양솔규님과는 나름 오래 알았는데 처음 만나게 된 계기에 대한 기억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양솔규님은 나를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실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기억하고 있으나 내 기억은 그보다 더 오래된 시점에 있다.

아마 2005년이나 2006년의 전진 정치대회였는지 그랬던 것 같다. 그 때 양솔규님은 술에 취해 모두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저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기라성 같은 노동운동가들에게 저렇게 노골적인 욕을 하다니... 술에 취한 양솔규님은 나에게 와서 "너 우리 형이 누군지 알아?"라고 묻고는 사라졌다.

도대체 양솔규님의 형이 누구기에 나에게 이러는 것인가? 양씨니까 양경규인가? 규로 끝나는 게 그런 것도 같았다. 아니면 양동규인가? 양경규와 양동규가 형제였단 말인가? 양경규 위원장과는 약간 이목구비에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기도...

이 의문은 얼마 후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창립 기념 행사에서 풀리게 됐다. 양솔규님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타나 양돌규라고 자신을 소개한 것이었다. 양솔규님의 형은 양돌규님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사회학에 관련한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양돌규님이 진보진영에서 어떤 대단한 역할을 하는 학자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지금은 레드북스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계신다.

한참 그런 얘길 하는 와중에 양솔규님이 갑자기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왔다. 누군지 물으니 중앙당의 구형구 조직실장님이라고 한다. 구형구 실장님은 김현우님이 전진을 탈퇴하고, 녹사연을 탈퇴하고, 당 대표 선거에 막 출마를 하고, 게시판에 당명에 대한 무슨 불평을 쓴 이후 매우 화가 나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일순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렇게 김현우 그룹으로 찍힐 순 없었다.

그래서 10시에 술자리를 파해 얼른 집에 왔다. 다른 자리에 가보려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오늘 개판을 친 일도 있고 하여 조용히 집에 와서 빨래나 하기로 한 것이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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