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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오늘날 '사상'을 언급하면 보통 두 가지 반응에 마주하게 된다. 하나는 사상을 언급하는 것이 너무 무서운 일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상에 대해 말하는 게 구식이라는 것이다. 후자는 현대에 이른바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이고, 전자는 정치·사회적 맥락에 대한 문제의식을 크게 갖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세이다.

사상을 언급하는 게 무서운 일인 이유는, 익숙하지 않은 일인데다 그 사상의 내용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이나 사고체계에 관련되어 있는데 형이상학적 내용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저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도 나름의 복잡한 생각은 필요하지만 그게 꼭 형이상학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계에 대해 고찰하려면 반드시 형이상학적 개념과 사고를 요하게 되는데, 평소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것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 <사상이 필요하다>(김세균·홍세화·손호철·강내희 등 지음,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문제는 세계를 다루는 일에 대한 것, 즉 '정치'다. 정치는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올바른 정치를 위해서는 세계에 대한 깊은 고찰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동시에 사상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고찰의 결과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 의견을 모아야 한다는 게 정치의 어려운 점이다. 따라서 정치에 있어서 사상을 논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며 여기에 정치적 실천을 결부시키는 것이야말로 정치인이 짊어져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세계를 변혁하려고 했던 운동권들이 사상을 논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수립하는 데 사상적·실천적으로 결정적인 기여를 한 혁명가 레닌은 "혁명적 이론 없는 혁명적 운동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세상의 근본에 대해 알아야 하니 이에 대해 고민한 사상가들의 사상을 섭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결론이었다. 그래서 운동권들은 변증법을 논하고 구조주의를 읽었다.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갈증에 목마른 사람들이 천지에 널려있었던 1980년대를 거치며 2000년대 초반까지 철학과 사상의 향연이 나름대로 펼쳐질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경험이 주효하게 작용한 측면이 있다. 헤겔, 마르크스, 레닌, 루카치, 아도르노, 벤야민, 그람시, 프로이트, 알튀세르, 발리바르, 라캉, 푸코, 네그리, 보드리야르, 지젝, 랑시에르, 아리기, 바디우 등 최근까지도 회자되는 이름의 소유자들이 세계의 근본과 변혁에 대해 고민한 사람들임은 다시 재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정치를 돌아보면 과연 이러한 사상적 고민의 결과가 제대로 반영되어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정치에서도 사상에 대한 두 가지 부정적인 태도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을 거부하는 태도와 낡은 사상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우리가 '야권'이라고 부르는 정치세력들에서 이러한 태도는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2010년 이래로 지금까지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소위 '안철수 현상'은 정치가 사상을 거부한 경우의 대표적인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면서 동시에 정치에 대한 실체적 냉소주의의 표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안철수가 '새 정치'라는 방향을 말하지만 새 정치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제나 '더 많은 분들과 소통해서 정리가 되면 말씀드리겠다'는 식의 언명으로 얼버무리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 기대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오히려 잘 보여준다. 안철수에 대한 정치적 기대는 안철수가 자신의 사상을 밝히지 않는 방식으로 행보하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는 것이며, 오히려 '사상들'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며 멀리하는 태도가 정치적 반사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안철수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들은 대개 바로 이 지점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안철수가 무엇을 하려는지 방향을 명확히 하지 않고 모두에게 칭찬받을 만한 행보만을 고집하려 한다는 지적들은, 결국 안철수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에 사상의 자리가 없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안철수의 정치적 근거를 구성하는 것은 그의 인격적 요소들일 뿐이다. 국민들이 그와 같은 인격을 갖춘 사람이 정치에 뛰어들기를 바랐기 때문에, 안철수는 자신이 정치를 통해 무엇을 하려는지 스스로도 정확히 모르는 채로 정치인이 되어야만 했다. 때문에 그는 '좌우에 관계없이 새 정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안철수가 사상을 가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면, 민주당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사상을 외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민주당은 오랜 기간 한국 사회의 대표적 야당으로서 활동해왔고 10년의 집권경험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경험은 그들 사이에 서로 다른 두 가지 결의 사상이 공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게 됐다.

민주당 내에서 야당으로서의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소위 운동권과 관계된 사상과 연관된 삶을 산 일이 있었을 것이다.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사회 운동의 경험 속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고민을 하면서 얻을 수밖에 없는 사상적 단초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민주당이 종종 '중도적 진보'를 표방하고 스스로를 중산층‧서민의 정당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런 구성적 특징이 작용하고 있다.

반면 여당으로서의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정의의 실현이라는 관점보다는 '통치'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본다. 국가를 잘 통치해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루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앞서의 정체성과는 배치되는 행보를 할 때에는 이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서민의 생존에 실체적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는 한미FTA 체결과 같은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들을 민주당 정권이 추진했다는 것에 대한 그들 내의 논리적 정당성은 이러한 사상에서 도출된다.

민주당이 당 내에 내재한 상이한 두 가지 사상적 특징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면 다소 논란에 휩쓸릴 수 있을지라도 대안적인 정치세력으로서 다시 한 번 국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런 방법을 선택하기보다는 서로의 차이를 봉합하고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함으로써 단기적인 정치적 이득을 얻는 것에만 급급했다.

2012년 선거 국면에서 진보정당과의 야권연대를 외치다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강령 및 주요 정강‧정책을 보다 온건한 쪽으로 바꿔버린 것은 이들의 이런 선택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행동해온 탓에 내부적인 계파 갈등이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자신들이 유리한 국면에서도 제대로 이득을 취하지 못하는 문제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어떻게 보면 국정원 선거개입을 둘러싼 국면에서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무력하게 발목을 잡혀 있는 상황 역시 민주당의 사상을 외면한 기회주의적 처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 문제가 된 통합진보당의 경우는 낡은 사상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다. 이석기 의원을 둘러싼 내란음모의 혐의와 비상식적 언행에 대한 추문들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기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국가를 전복하려는 범죄자에 가까운 사람들이 입법기관으로 행세할 수 있느냐며 분개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이들을 망상증 환자라며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로 취급하기도 한다.


▲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연합뉴스

하지만 분명히 말하자면 이들의 행태는 단지 범죄의 문제도 아니고 심리적 치료의 문제도 아니다. 8, 90년대에 이들이 공유했던 사상을 접해본 사람들은 이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즉, 문제는 이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공유하고 있는 사상에서 비롯되고 있다.

엄혹한 군부독재 시절, 국민들의 정치적 자유가 억압되고 언론이 통제되는 것이 당연시되던 때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대안적 사회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지금은 이른바 뉴라이트로 전향한 김영환 씨가 소위 '강철서신'이라는 문건을 배포해 대학가에 북한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보급한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세계 변혁의 청사진을 얻게 됐고 이를 위해 어떤 고난과 헌신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이석기 의원을 둘러싼 논란을 이해하려면 이들의 이러한 신념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부당한 제재와 천재지변으로 북한이 경제적 곤란함을 겪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대외정치적 환경이 개선되면 북한 정권이 얼마든지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다. 이들 입장에서 남한 정권은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에 가까운 곳이며 자본주의의 온갖 부조리가 집약된 곳이다.

따라서 북한 정권이 남한과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일으키게 되면 이들이 가담해야 할 진영이 어디인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이들이 합정동에 모여서 유류저장고 습격과 무기 탈취 및 제조를 언급한 것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반도 전체가 북한의 자주적 정권의 지배하에 들어가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이들이 단체로 괴이한 소리를 늘어놓은 이유는 자신들의 사상과 신념의 관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라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이런 생각이 아무리 좋게 봐줘야 '낡은'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이 통제되던 군부 독재 시절에야 북한 정권에 대한 호의적 '오해'를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낡은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정체된 삶을 살아오던 사람들의 행태가 정보기관의 필요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는 것, 이것이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스캔들의 본질이다.

앞의 세 가지 사례는 한국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올바른 정치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 누군가 이들과는 구분된 올바른 정치로 변혁을 이루려 한다면 새로운 사상을 적극적으로 쟁취하려는 시도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사상이 필요하다>(김세균·홍세화·손호철·강내희 등 지음, 글항아리 펴냄)는 다양한 방면에서 이를 고민해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풀어놓은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한 논설들은 크게 두 가지 성격으로 구분할 수 있다. 홍세화, 손호철, 조희연, 김세균, 하승수의 글은 민주주의와 진보정치가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됐는지를 탐구하려는 글들이다. 민주주의와 진보정치는 결국 세상을 바꾸기 위한 올바른 정치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고찰해보아야 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들의 고민은 지금까지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불러온 것이 무엇이었으며 진보정치가 여기에서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해석과 미래에 대한 제안으로 귀결된다.

강내희, 심광현, 우희종, 이도흠의 글은 세계의 근본에 대해 탐구하려는 것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자유주의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새롭게 규정해왔는지, 역사는 어떤 동력을 통해 움직여왔는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의 의미와 우리가 생명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찰해보자는 게 이들의 제안이다. 세계의 근본을 아는 것은 영원히 지속될 변혁을 이루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말할 수 있으므로 이들의 사고를 따라가는 것은 나름대로 흥미로운 경험이다.

물론 이들의 글에는 일정한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도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도식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논의가 진행되는 부분이나 소위 '운동권 사투리'가 여과 없이 적시되는 부분 등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불친절한 부분으로 다가올 수 있다. 앞서 언급하기를 정치의 역할 중에는 사상을 무서워하는 사람들로부터 동의를 구하는 것이 있다고 했는데 이 책의 이런 부분들은 사상에 대한 공포를 더욱 강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사상이 필요하다>의 이러한 단점은 뒤집어 말하면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사상의 문제를 고민해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거의 날 것 그대로 접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비록 이 책이 여러 부분에서 단점을 지적할 수 있는 구성의 한계를 보이지만, 나름의 가치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는 점을 평가할 수밖에 없게 한다.

특히 추천할 만한 홍세화의 글이다. 오랫동안 지식인으로 활동하다 2011년 진보신당의 대표를 맡으며 잠시 정치인의 길을 걷기도 한 홍세화는 이 책에 실린 글을 통해 가장 현실과 가까우면서도 날카로운 통찰과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외치며 등장한 박근혜 정부와 여기에서 박정희의 향수를 공유하는 대중의 시선, 이에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야권의 무기력한 대응이 근본적 차원에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지금 이 시점의 진보정치에 반드시 필요하다.

한 시대가 지났고 진보정치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시기지만 세계의 변혁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남아있는 한 '사상'은 또다시 호출되어야 하고 새로운 실천으로 전화되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사상이 필요하다>의 독서가 긴 여정의 첫 걸음을 떼는 계기가 된다면, 가치 있는 책으로서 나름의 역할을 충분히 다 하는 것이 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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