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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인간이 도구를 이용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일단 게임을 구동할 수 있는 기계가 필요하고, 게임의 내용에 해당하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며, 비디오를 출력할 수 있는 화면도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의사를 기계의 것으로 번역해주는 ‘컨트롤러’는 게임기계와 인간을 이어주는 결정적인 도구다. 따라서 게임의 역사는 컨트롤러의 역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컨트롤러는 게임의 트렌드를 뒤바꾸며 게임 산업의 핵심 요소로서 발전해왔다.

초기 콘솔게임기의 컨트롤러

아직 컴퓨터가 집집마다 보급되지 않던 시절, 집에서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TV에 연결할 수 있는 콘솔게임기를 갖추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 시절을 대표하는 게임기는 후일 ‘아타리 쇼크’로 유명해진 ‘아타리’ 시리즈이다. 아타리 시리즈가 포함하고 있는 컨트롤러는 기종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스틱, 스타트, 셀렉트 버튼과 발사 버튼 1개가 부착된 것이다. 후일 이러한 방식의 컨트롤러는 ‘조이스틱’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지는데, 단순한 조작을 필요로 하는 게임이 주종일 이뤘던 아타리 시리즈의 컨트롤러로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고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 아타리와 컨트롤러. (위키백과)

당시 게임기마다 서로 다른 형태의 컨트롤러가 달려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굳이 아타리의 컨트롤러를 하나의 표준으로 간주한다면 이후 세대의 콘솔게임기에서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을 꼽자면 누가 뭐래도 닌텐도의 패밀리시스템의 컨트롤러일 것이다.

십자버튼과 스타트, 셀렉트, A, B 버튼으로 이루어진 이 컨트롤러는 게임 컨트롤러의 역사에 매우 큰 족적을 남겼다. 가장 큰 특징은 A, B라는 2개의 버튼으로 말할 수 있는데 이게 중요한 이유는 게임 소프트웨어의 역사에 남을 게임인 ‘수퍼 마리오 브라더스’ 시리즈가 바로 이 버튼의 존재를 전제하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수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 게임의 주인공인 마리오는 B버튼을 누르고 십자버튼을 조작하는 것으로 ‘대쉬’를 할 수 있다. 대쉬를 한 상태에서 점프를 하면 더 멀리 뛸 수 있고 이를 응용한 다양한 행동이 가능하게 된다.


▲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됐던 패미컴 컨트롤러. (위키백과)

A, B버튼이라는 형식은 이후에도 다양한 게임 형식의 발전을 도모했다. 패미컴 게임의 대표적 타이틀 중 하나인 ‘악마성 드라큐라(영문 타이틀은 ’Castlevania’)’ 역시 이런 흐름을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이다. 악마성 드라큐라에서 주인공인 뱀파이어 헌터는 A버튼을 이용해 점프를 하고 B버튼을 이용해 채찍을 휘두름으로써 적을 공격하거나 피하는 동작을 구현해낼 수 있었다. 악마성 드라큐라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발상은 점프를 A버튼을 이용해 함으로써 사실상 거의 쓸 필요가 없게 된 십자버튼의 ‘위’방향을 B버튼과 조합해 특수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정된 컨트롤러의 기능을 십분 활용하여 게임은 더욱 재미있는 형태로 발전해나갈 수 있었다.

컴퓨터 게임의 발전이 가져온 변화

하지만 PC가 집집마다 보급되고 PC를 이용한 게임이 대중화되면서 게임 컨트롤러의 발전은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PC는 애초에 게임만을 위해 만들어진 기기가 아니지만 오히려 이것 때문에 PC로 구현할 수 있는 게임의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PC에는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라는 주변기기가 기본으로 갖춰진다. 이를 잘 활용하면 훨씬 다채로운 형태의 게임을 구동할 수 있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사고해보면, 조작이 다소 어려워지긴 하겠지만 키보드 키 하나하나를 게임에서 전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훨씬 풍부한 내용의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실제 복잡한 조작이 필요한 비행기 운항 시뮬레이션 같은 경우 키보드를 활용하지 않으면 사실상 게임을 완벽하게 즐기는 게 불가능한 수준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PC게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롤플레잉 게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게임 소프트웨어의 경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행위’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키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PC게임의 가장 막강한 무기는 ‘마우스’의 존재이지 않았나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마우스는 하이퍼텍스트 등 오늘날 웹 기술의 기초적인 개념을 고안한 더글러스 칼 엥겔바트(Douglas Carl Engelbart)에 의해 개발됐다. 마우스가 생겨나면서 PC의 사용자들은 모니터 화면의 모든 장소를 점령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게임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게 됐다. 오늘 날 큰 인기를 끈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RTS)이나 일인칭슈팅(FPS) 등의 장르는 마우스와 키보드의 조합을 전제하지 않으면 쉽게 조작법을 생각해내기 어려운 것들이다.

PC에 도전하는 콘솔 컨트롤러들

이렇게 되자 게임 콘솔의 컨트롤러는 PC의 키보드, 마우스 조합의 편의를 넘어서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수퍼 패미컴, 메가드라이브, 세가새턴 등의 콘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변화는 입력할 수 있는 버튼의 수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검지손가락으로 조작할 수 있는 L, R버튼과 C, X, Y 등의 버튼의 추가는 PC게임에서 키보드의 편의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버튼 수의 증가는 플레이스테이션의 ‘듀얼쇼크’라는, 진동기능을 포함한 컨트롤러의 경우는 A, B, X, Y에 L1, L2, R1, R2까지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 플레이스테이션과 컨트롤러 '듀얼쇼크'. (위키백과)

PC게임에서 키보드의 편의는 컨트롤러의 버튼을 늘리는 것으로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더욱 시급한 것은 ‘마우스’를 대체 할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걸 가장 잘 나타내는 장르는 FPS다. PC를 이용한 FPS게임은 마우스로 시점을 조작하며 키보드로 캐릭터의 움직임을 조작한다. 이를 통해 인간이 고개를 돌려 시야를 바꾸면서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걷는 행위의 구현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게임 콘솔의 컨트롤러로는 이러한 행위를 구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 따라서 과거에는 콘솔 게임기용 FPS가 큰 인기를 얻기 힘들었다. 물론 콘솔 게임 진영에서는 곧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수단을 개발해냈다. 그것은 바로 조이패드에 ‘아날로그 스틱’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이제 게임 콘솔에서도 십자 버튼을 이용해 캐릭터의 움직임을 재현하면서 동시에 아날로그 스틱을 조작해 시야를 바꿀 수 있게 됐다. 플레이스테이션의 듀얼 쇼크 패드에는 2개의 아날로그 스틱이 채용됐다.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둘을 동시에 조작하면 PC의 키보드, 마우스 조작 못지않은 조작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던 것이다.

휴대용 게임기에서 촉발된 변화

하지만 마우스의 화면 전체를 대상으로 포인터를 빨리 이동시켜 조작할 수 있는 장점을 컨트롤러로 취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오히려 휴대용 게임 콘솔의 새로운 시도로부터 도출됐다.

닌텐도DS는 사실상 최초로 ‘터치식 스크린’을 채용해 큰 성공을 거둔 휴대용 게임기다. 닌텐도DS에는 두 개의 화면이 있는데, 상단의 화면은 보통 LCD스크린이지만 하단의 화면은 터치식 입력을 받도록 되어 있다. 이를 활용해 닌텐도DS의 소프트웨어들은 PC게임의 마우스에 대항할 수 있게 됐다. 화면 어디든지 터치를 하는 것으로 입력을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닌텐도DS. (위키백과)

문제는 당시로서 이러한 방법은 휴대용 게임기에만 활용될 수 있었다는 거다. 즉, 터치식 스크린을 활용한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일단 터치식 스크린이 있어야 하는데, 각 가정마다 터치식 스크린을 보급된 상황이 아니라면 스크린을 같이 끼워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오늘날 순식간에 해결됐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보급은 이제 누구나 터치식 스크린을 하나쯤은 갖고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성공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닌텐도DS에서 통용되던 터치 입력을 활용한 게임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활성화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치 스크린의 활용은 게임 컨트롤러의 역사에 있어서도 혁명적 발상이었던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스케일이 큰 형태로 밀어 붙이고 있다. 서피스, 엑스박스, 윈도우폰에 모두 동일한 OS가 구동되는 환경을 만들고 각각의 기기들이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태블릿PC인 서피스나 윈도우폰의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엑스박스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소니는 좀 더 소박한 방식으로 컨트롤러의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4에 장착되는 컨트롤러에는 컨트롤러 자체에 작은 터치패드가 장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니 측은 이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 위 리모컨. (위키백과)

닌텐도는 좀 더 근본적인 컨트롤러의 변혁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나름 틈새시장을 공략해 큰 성공을 거둔 위(Wii)의 리모컨은 21세기 게임 컨트롤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위 리모컨은 모션센서가 장착돼있어 리모컨의 움직임 그 자체가 게임의 내용에 반영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를 이용한 복싱이나 테니스 등을 재현한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좀 더 발전시켜 인간이 신체 중 20개 포인트에 반응하는 동작 인식 컨트롤러인 ‘키넥트’를 개발해 보급하기도 했다.


▲ 모션 인식 컨트롤러인 키넥트. (위키백과)

최근 일본에서는 ‘소드 아트 온라인’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게임 컨트롤러는 뇌와 직접 연결돼 신경을 제어하도록 설계돼있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최근까지 게임 컨트롤러의 발전상을 보면 언젠가 실현이 될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새로운 가상현실과 이를 통한 게임의 등장, 그리고 이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전면에 부상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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