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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리얼’이 아니다 그러므로 즐긴다
‘리얼 예능’ <나 혼자 산다>가 그리는 1인 가구의 고충
소소한 연대 훈훈하지만 ‘로망’의 전시는 ‘환상’임을 상기시켜


<나 혼자 산다>(MBC)라는 리얼 예능 프로그램이 요즘 관심을 끌고 있다. 제목 그대로 혼자 사는 ‘남자들’의 일상을 소재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노홍철, 김태원, 김광규, 이성재, 데프콘, 서인국은 각기 다른 사정으로 1인 가구로 살면서 ‘그룹채팅’, ‘번개’를 매개로 소소한 연대를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실제 1인 가구가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인 생활 형태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경제적 이유로 가정을 꾸리지 못하거나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유명 연예인들 역시 각자의 사정으로 혼자 살면서 1인 가구로서 삶의 양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특히 김태원, 이성재가 기러기 아빠로서 겪는 고독을 그린 부분은 이 프로그램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들이 1인 가구로서 겪는 여러 고충을 ‘무지개 회원’이라는 공동체적 틀로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1인 가구의 어려움이란 단지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외로움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1인 가구의 존재는 우리 삶이 공동체에서 유리되고 파편화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많은 사람이 마음을 나눌 대상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이로 인한 자존감의 상실과 만성적 우울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 혼자 산다>의 등장인물이 한자리에 모여 ‘성욕 해결의 곤란함’ 등을 토로하며 보여주는 소박한 연대의식은 시청자에게 일종의 위로가 될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프로그램은 ‘예능’이라는 카테고리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혼자 산다>에서 등장인물의 대부분은 ‘할 일이 없다’며 금요일 밤에 집에 틀어박혀 집안일 등으로 소일한다. 하지만 우리는 유명 연예인인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스케줄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누추한 주거 공간에는 서인국이 붙박이처럼 앉아 있는 소파도 없고, 김광규가 먹다 남은 치킨을 보관하는 양문형 냉장고도 없다. 노홍철 집에 있는 커다란 식탁은 어떤 사람에겐 그야말로 ‘로망’이다. 여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이미지들은 이 프로그램이 ‘현실’이 아닌 ‘환상’을 그려내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바로 이 덕분에 우리는 안심하고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이러한 장치야말로 ‘리얼 예능’의 필수 조건이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 혼자 사는 남자들의 일상을 소재 삼아 만든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인 의 주요 장면. MBC TV 화면 갈무리

대통령도 혼자 사는 나라에서 너무 소소한 웃음
중산층의 혼자 삶이 독거노인·반지하방 등의 의제 밀어내
한 손만 더 내밀면 풍부한 정치 의제에 닿게 되련만


혼자 사는 삶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능 프로그램과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시사 프로그램의 카메라 세례를 받는 그늘진 공간 이었다. 평범한 삶과 격리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삶으로 그려져왔다. 기러기 아빠들의 돌연사, 병든 독거노인, 볕들지 않는 반지하 방 청년세대 등등. 그런데 그곳에 갑자기 예능의 웃음과 함께 볕이 들기 시작했다. 그늘이라곤 한 점 없는 연예인, 싱글, 돌아온 싱글 들이 대표선수를 자처하며 그 삶을 대변하고 있다. 혼자 삶을 전하는 전도사들의 움직임은 분주하고 그 복음들의 음량도 만만찮다.

각종 사회 장치들도 혼자 삶이 예찬받는 데 일조하고 있다. 혼자 삶을 위한 편의시설, 상품들로 넘친다. 외로움을 떨쳐주는 각종 단기 처방적 이벤트와 애완산업은 거대 사업화하고 있다. 혼자 삶의 전도사들의 간증과 이같은 장치들이 어울리면서 혼자 삶이 화려한 색으로 치장되고 그쪽만 책임지는 스타도 등장할 정도다. 음지에서 양지로 왔을 뿐 아니라 그를 응원해주는 뒷배까지 속속 등장하니, 화려한 싱글이란 말은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게 되었다.

물론 양지로 들어서는 혼자 삶에 브레이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 전문가를 자처하는 친지들의 익숙한 목소리. 사회의 재생산을 걱정하며 온갖 복지를 내거는 국가적 유혹. 혼자 산 경험이 이기적 삶을 만들고 사회 파멸로 이끌 거라며 같이 유대하자는 운동권의 슬로건들.

혼자 삶은 그를 찬양하는 간증, 그를 걱정 하는 말, 그리고 둘 간의 충돌의 복판으로 들어섰다. 혼자 삶이 정치적 공간에서 부유하는 정치 의제가 되고 만 것이다. 중산층의 혼자 삶이 독거노인, 반지하방 등의 의제를 밀어냈으니 이는 분명 배제의 정치다. 혼자 삶이 상품화하고, 새로운 시장에 대한 자본의 욕망이 커지고 있음을 자본 확장의 정치라 불러 무방할 것이다. 재생산 없는 홀로 삶을 불편한 눈으로 보고 복지 혜택을 줄이려 하는 국가 정치 또한 존재한다. 혼자 삶에 뒤따를 수밖에 없는 사랑, 외로움, 배려의 문제 등은 일상, 몸의 정치 의제 아니던가.

두 번 방영에 지나지 않지만 개그맨, 로커, 탤런트의 행보는 대강 방향을 잡은 것처럼 보인다. 혼자 삶으로 파생되는 다양한 정치 의제를 되도록 지워가며 조용한 행복 찾기, 쏠쏠한 재미 구하기 등 평범한 개인적 의제로 좁혀갈 태세다. 한 발만 더 걷고, 한 손 만 더 내밀면 풍부한 정치 의제에 닿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통령도 혼자 삶을 사는 나라에서 그 정도 주제를 찌질한 웃음으로만 마무리짓는다면 참 못난 짓에 그치고 말텐데 하는 아쉬움.

원용진 서강대 교수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42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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