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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왜 '아키에이지'가 화제일까?

조회 수 1299 추천 수 0 2013.02.05 11:21:34
게이머들 사이에서 엑스엘게임즈의 ‘아키에이지’가 화제다. 이 게임은 그간의 MMORPG와는 다른 특성을 강조해왔다. 다른 특성이란 기존의 게임과는 달리 특유의 ‘자유도’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캐릭터 만들고 괴물을 사냥해서 레벨을 올리고 다른 플레이어와 경쟁하는 단순한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 사회의 구성에 가까운 시스템을 선보이겠다는 게 제작사의 결의다.


▲ 감옥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 이용자들 ⓒ엑스엘게임즈

이를테면, 게임 상에서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감옥에 갇히는 시스템 같은 것이 그렇다. 감옥에 갇힌 플레이어들은 감옥에서 나름의 수형생활을 한다. 심지어 탈옥을 하기도 한다. 아키에이지의 이러한 특성을 웹툰 작가 이말년이 그린 ‘두덕리 온라인’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웹툰 두덕리 온라인은 실패를 거듭하던 한 게임개발업체가 현실과 최대한 유사한 온라인 게임을 만들었지만 현실과 너무 비슷해 오히려 망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최근에는 게임 상의 축산 분야가 지나친 생산성 증대를 보여 이른바 ‘구제역 패치’가 단행되기도 했다. 가축들이 병에 걸렸다는 설정으로 생산성을 억지로 저하시킨 것이다. 제작사 측이 한 부분에 너무 많은 유저가 몰리면 게임의 전체 경제 구조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게임 상에서 마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받아들이고 다른 경제활동에 집중하겠다는 이용자가 있는가 하면 돈을 내고 게임을 하는 데 사전 공지도 없이 이런 만행을 저지르냐며 격분하는 이용자도 있는 것 같다.

‘자유도’란 무엇인가?

‘자유도’의 구현은 오랫동안 주로 롤플레잉 게임 장르를 중심으로 논란거리가 돼왔다. 이는 컴퓨터·비디오 게임이 가진 두 가지 특성이 상충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게임들은 특정한 룰에 따라 경쟁을 하는 특성을 가지면서도 이용자에게 어떤 대리체험을 선사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일정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축구와 같은 스포츠를 컴퓨터 게임으로 만드는 사례에 대해 생각해보자. 축구의 룰을 게임으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동일한 룰에 따라 상대방과 컴퓨터 게임을 통해 경쟁하고 우위를 점하는 것에서 쾌락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을 게임이 가진 첫 번째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특성은 이 축구 게임을 대리체험의 도구로 가정했을 때 내가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 대상이 어디냐의 문제를 따지면 드러난다. 전체 경기 상황을 조망하고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개별 선수가 아니라 공을 가진 선수를 조종해야 한다는 점은 ‘나는 이 시스템에서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다는 문제를 야기한다. 나는 감독인가? 내가 감독이라면 선수에게 대략적 지시는 할 수 있어도 그의 움직임을 직접 컨트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선수인가? 내가 선수라면 상대방이 공을 패스할 때까지 기다릴 순 있어도 공을 잡은 모든 선수들의 움직임을 컨트롤할 수는 없다. 즉, 축구 게임에서는 대리체험의 도구라는 측면 보다는 상대방과 동일한 룰로 즐길 수 있는 경쟁의 도구라는 점에 좀 더 방점이 찍히고 있는 것이다.


▲ 아예 축구감독을 대리체험시켜주는 풋볼 매니저의 게임화면. 전술을 수립하고 있다. ⓒIGN

슈팅 게임이나 스포츠 게임 등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런 ‘경쟁’의 측면이 더욱 부각된다. 축구 게임에서라면 누가 더 많은 점수를 내는가에 관심이 집중된다. ‘태클을 할 때 왜 선수가 내미는 발의 각도를 섬세하게 조종할 수 없는가?’ 라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비행기 슈팅 게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저 비행기는 어떤 연료를 사용하기에 이렇게 무한정 비행을 할 수가 있는 것인가?’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은 이런 게임에서는 부당한 일이다. 즉, 이러한 종류의 게임들은 ‘상상화’를 거친 결과물임을 전제하는 것이 상식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거대한 세계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게임인 ‘롤플레잉’에서는 이런 것보다는 ‘대리 체험의 도구’로서의 성격이 좀 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필연적으로 ‘이 게임에서 재현할 수 있는 현실의 상황은 어느 정도의 수준인가?’라는 물음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즉, 게임이 얼마나 현실의 질서, 그러니까 상징계를 잘 반영하고 있는 지를 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게이머들이 흔히 말하는 ‘자유도’라는 개념의 정체다.

울티마의 유산

그렇다면 이런 ‘자유도’의 개념은 언제부터 게임 상의 논란거리로 등장하게 됐을까? 아마 롤플레잉 게임에서의 자유도가 이용자들에게 대중적인 수준에서 크게 어필하게 된 최초의 작품은 ‘울티마7(Ultima 7 : The Black Gate)’이었을 것이다. 이 게임이 기존의 게임과 크게 달랐던 것은 게임 상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대상(object)화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게임들은 이런 방식을 사용했다. 먼저 시나리오를 검토한다. 주인공이 숲 속에서 바위를 들어 강물에 내던지는 장면이 있다면 그 장면을 재현하기 위한 설계를 한다. 이 경우 숲 속의 온갖 바위와 나무와 지저귀는 새들과 아름다운 꽃들이 전부 ‘배경’ 그림 한 장에 들어간다. 그리고 주인공이 들어야 하는 바위 한 개만 object화 된다. 오래 된 애니메이션에서 곧 움직이게 되어있는 물체만 이상하게 작화가 다른 경우를 종종 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우를 떠올리면 된다.


▲ 울티마7의 플레이 화면. 화면에 갑옷, 투구, 가방, 당근, 양고기, 포도, 돌멩이 등 온갖 종류의 오브젝트가 보인다.

하지만 울티마7의 경우에는 산과 바다마저도 object로 구성돼있었다. 이러한 설계는 구성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일단 작업이 완료되면 각각의 object에 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것으로 접시와 컵의 위치를 바꾸는 등의 소소한 행위들과 밀가루를 반죽으로 만들고 밀대로 민 후 모양을 만든 후 오븐에 넣고 구워서 빵을 만드는 식의 행위들이 가능하도록 하는 설계가 가능해진 것이다.

울티마7의 이러한 특성은 MMORPG로 다시 개발돼 ‘울티마 온라인’의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채용된다. 울티마 온라인은 최대의 자유도를 보장하는 이러한 특성으로 한동안 세계적 인기를 구가했다. 울티마 온라인에서는 안 되는 것이 없었다. 닭을 잡아 닭고기와 깃털을 얻은 후 닭고기는 구워 먹고 깃털은 나중에 나무를 잘라 가공하여 화살을 만드는데 쓰는 식의 작업도 가능하다. 따라서 직업도 여러 가지를 가질 수 있다. 재단사, 광부, 나무꾼, 어부, 심지어 거지도 당당한 직업으로서 있을 정도다.

디바이스의 변화

문제는 이러한 형태의 게임에 일정한 ‘진입장벽’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임의 모든 요소를 즐기기 위해서 플레이어는 일정 정도 이상의 반복 플레이를 각오해야만 한다. 울티마 온라인에서 나무꾼 스킬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서 적어도 수백 번의 반복 마우스 클릭을 해야 한다. 도끼를 클릭하고 나무를 클릭하는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이 반복되면 도끼의 내구성이 하락해 못쓰게 되기도 하고 나무에서 더 이상 목재를 채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하며 채취한 목재가 너무 많아 그 무게 때문에 이동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기도 한다. 가볍게 게임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러한 작업을 한없이 하고 있어야 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 물레를 돌려 실을 뽑고 있는 울티마온라인 이용자들

때문에 울티마 온라인이 MMORPG의 이상적인 작품이라는 점을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모양으로 쉽게 온라인 게임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국내 온라인 게임 개발의 현실이었다. 비슷한 것을 시도한 사례는 있지만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기까지는 조금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자유도’를 강조한 온라인 게임이 화제의 중심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디바이스에 따른 유저 층의 분리에 따른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그동안 온라인 게임의 개발은 앞서 언급했듯이 라이트 유저층과 헤비 유저층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소형 게임기기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일정 부분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라이트 유저층이 즐길 수 있는 소위 ‘캐주얼 게임’들이 소형 게임기기와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즉, 라이트 유저층으로서는 더 이상 데스크탑 컴퓨터를 잡고 앉아서 게임을 즐길 이유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헤비 유저층의 경우는 다르다. 이들이 원하는 게임의 개발에는 방대한 규모의 하드웨어적, 소프트웨어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이들의 취향에 맞는 게임은 소형 게임기기와 스마트폰을 플랫폼으로 해서는 제대로 만들어 낼 수가 없다. 특히 앞서 설명한 ‘대리체험의 도구로서의 게임’을 충실하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런 소형 디바이스들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스마트폰 게임인 확산성 밀리언 아서는 캐릭터성과 경쟁적 게임 요소를 성공적으로 부각시켜 일부 헤비 유저들의 지지를 받는데 성공했다.

따라서 데스크탑을 기반으로 한 MMORPG를 만드려는 계획을 세운다면 차라리 애초에 헤비 유저층의 취향을 타겟으로 하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아키에이지’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 역시 이러한 차원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새로운 운영체제인 윈도우8의 개발에도 이러한 디바이스의 변화가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 윈도우8의 핵심 컨셉은 소형 디바이스부터 데스크탑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OS를 사용하되 그 중심은 소형 디바이스에 두는 것이다. 이는 직관적인 사용자 편의성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라이트 유저층이 소형 디바이스에 집중되어 있음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헤비 유저들은 어차피 윈도우8을 어떻게 만들든 덩치가 큰 프로그램을 돌리기 위해 적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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