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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안전한 사회’에 대한 갈구

조회 수 1678 추천 수 0 2013.01.16 17:53:02
작년 말부터 또래들 사이에서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이 인기다. 종편인 채널A의 간판 고발 프로그램인 ‘먹거리 X파일’은 그야말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영돈 PD의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와 “그럼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라는 말은 이미 유행어가 됐다.

이 프로그램의 인기 요인에는 무엇보다도 지난해 유행한 tvN의 ‘SNL 코리아’에서의 패러디 코너가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개그맨 신동엽이 이영돈 PD의 어눌한 말투와 몸짓을 따라하는 ‘이엉돈 PD의 먹거리 X파일’ 역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 코너에서 신동엽은 누군가 음식을 먹으려고 하거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갑자기 나타나 “이 음식,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라고 말한 후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라며 음식을 빼앗아 먹고는 “그런데 이런 음식에는 많은 부작용이 있습니다”라며 남은 음식을 던져버리는 식의 코미디를 구사한다.


<먹거리 X 파일>을 진행하는 이영돈 PD. | 경향신문

패러디의 대상이 된 ‘이영돈 PD의 X파일’도 비슷한 포맷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특정 음식을 선정해서 그 음식이 어떻게 저질 형태로 유통되는지를 취재한다. 시청자들이 차마 받아들이기 힘든 유통 실태를 고발하고, 이영돈 PD가 직접 이러한 저질 음식을 제작하는 광경을 보여주고 이것을 직접 먹어보는 등의 방법을 통해 문제를 검증한다. 그리고 이런 나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음식을 판매하는 ‘착한 식당’을 찾아내 홍보를 해준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포맷은 이미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는 대중들의 요식업계에 대한 불만을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테다. 가계 소득은 저하되고 식재료 가격은 오르는 상황에서 저렴한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저질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현실에서 먹거리에 대한 이러한 우려는 증폭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맛집 블로거’ 등이 인기를 끌게 되는 세태도 이러한 어려움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냉정하게 음식점의 편법 등을 과감하게 지적하는 블로거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중들의 음식에 대한 불만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의 정책도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당선인은 후보 시절 TV토론을 통해 ‘4대악’을 척결하겠다고 말했는데, 4대악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든 것은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 불량식품’이었다. 여기서 불량식품이란 초등학교 앞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달고나’ 장사 같은 것이 아니라 앞서 얘기한 사례와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이 4대악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보인다. 그것은 대중의 ‘안전한 사회’에 대한 갈구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영돈 PD의 X파일’도 큰 틀에서 보면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라는 저서를 통해 자본주의의 새로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인간이 문명화할수록 환경오염과 같은 사회적 위험요소가 증가하게 됐고, 이것이 다시 자본주의의 새로운 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현대사회라는 얘기다.

그런 측면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새해가 오자마자 동아일보는 ‘지난해 하반기 6개월 동안 지상파를 제외한 모든 TV채널 중에서 채널A가 프라임 시간대, 오후 시간대 시청률 1위를 했다’며 ‘4대 지상파 채널과 함께 빅5에 등극했다’고 평해 사실상의 자화자찬을 늘어놓은 것이다. 울리히 벡은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성찰적 근대화’를 통해 ‘새로운 근대’로 나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사회적 안전장치를 확보하는 것에 맞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 정부가 이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오늘 점심식사는 ‘안전한 것’으로 먹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301151334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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