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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사는 게 힘들어서…

조회 수 1428 추천 수 0 2012.08.17 20:33:04
지난번에는 이 지면에 중년들이 다짜고짜 반말을 쓰는 세태에 대해 썼고, 그 전에는 운동권에서 만난 꼰대들의 얘기를 썼다. 글을 읽은 젊은 사람들이 긍정적 반응을 많이 전해 왔다. 이런 부조리를 나 같은 진보정당의 운동권들만이 겪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내세울 것은 나이밖에 없는 사회에서 ‘꼰대’의 출연은 필연적인 지도 모른다. | 경향신문 자료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는 어떤 젊은이는 중년의 상사가 직접 작성해야 하는 문서임에도 젊은 사람이 컴퓨터를 잘 다룬다는 이유를 들며 문서 작성을 떠넘기는 상황을 겪고 하소연하기도 했고,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어떤 젊은이는 간부를 선출하는 선거에 나갔다가 ‘아직 어려서 때가 덜 묻어 순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낙선해 마음고생을 했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또 사회단체에서 활동한다는 어느 젊은이는 같이 일하는 중년이 다짜고짜 “한 10년 잘 키우면 될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대체 중년들은 왜 그러는 것일까? 왜 다들 대접을 못 받아 환장한 사람처럼 구는 것일까?

이런 때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내가 중년이 됐다고 가정하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운동권 20년차라면, 20년을 운동에 바쳤는데 망하기만 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고 나의 지난 20년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할 수는 없는 처지이니 하던 일을 계속하거나 신념을 조금 꺾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진보신당에서 통합진보당으로 당적을 바꾼 어떤 중년은 이제는 운동이 아니라 정치를 해야 할 때라며 “야, 우리가 언제까지 이런 거나 해야겠냐?”라는 말을 남겼다.

운동권이 아닌 다른 데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많은 중년들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기보다는 ‘이것밖에 이루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년들이 새로운 시대에 잘 적응하는 젊은 사람들 앞에 내세울 수 있는 것이란 오직 ‘나이’밖에 없는 세상이 돼버린 것이 세상에 만연한 꼰대질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디 중년들만 그런가? 사실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부끄러움을 부르는 단어가 따로 있다. 이것은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인터넷 신조어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터넷 공간을 통해 무언가를 비판했을 때, 비판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덧글에 붙는 ‘열폭’이라는 단어를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열등감 폭발’의 줄임말로 ‘이런 비판은 당신이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않는가?’라는 용례로 주로 쓰인다. 이러한 표현은 이제 일반적인 것이 됐는데,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사실 다들 만성적인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보면 ‘열등감’은 사실상 오늘날의 시대정신인 셈이다.

전 사회적 열등감의 표출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만든 팬플레이션(panflation)이라는 말은 인플레이션이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서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데, 직책의 인플레와 같은 것을 가리킨다. 기업에 입사하자마자 대리가 되거나 젊은 나이에 임원급 직함을 달고 있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당연히 불황으로 기업의 규모가 줄어든 상태에서 슈퍼갑(Super甲)을 상대해야 하거나 영업활동을 수월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중년들의 꼰대질도 다 사는 게 힘들어서 그렇다는 얘기다.

내 직함은 ‘국장’인데, 작은 정당이니 국장인들 오죽하겠느냐마는 일부 사람들이 종종 방송사 보도국장 대하듯 하니 기분이 과히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기분에 비례해 1.13% 정당의 국장일 뿐이라는 사실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러한 생각을 빨리 떨치지 않으면 나도 곧 꼰대가 되고 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늘 불안하다. 역시 이 세상을 다 뜯어고쳐야 한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208131639011

댓글 '3'

처절한기타맨

2012.08.18 00:46:08
*.128.231.134

ㅎㅎ 20대 후반때 기획실장 명함들고 다닌적 있는데...
그나이에 일찍 성공하셧다고 추카의 변을 먹어본적이 있다능. ㅎㅎ

Q

2012.08.18 17:12:10
*.132.80.32

그런데 어디 중년들만 그런가? 사실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부끄러움을 부르는 단어가 따로 있다. 이것은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인터넷 신조어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터넷 공간을 통해 무언가를 비판했을 때, 비판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덧글에 붙는 ‘열폭’이라는 단어를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열등감 폭발’의 줄임말로 ‘이런 비판은 당신이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않는가?’라는 용례로 주로 쓰인다. 이러한 표현은 이제 일반적인 것이 됐는데,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사실 다들 만성적인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보면 ‘열등감’은 사실상 오늘날의 시대정신인 셈이다.
 
전 사회적 열등감의 표출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만든 팬플레이션(panflation)이라는 말은 인플레이션이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서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데, 직책의 인플레와 같은 것을 가리킨다. 기업에 입사하자마자 대리가 되거나 젊은 나이에 임원급 직함을 달고 있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당연히 불황으로 기업의 규모가 줄어든 상태에서 슈퍼갑(Super甲)을 상대해야 하거나 영업활동을 수월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중년들의 꼰대질도 다 사는 게 힘들어서 그렇다는 얘기다.
 
->
이부분이 이해가 안되네요. 열등감하고 직책의 인플레이션하고 어떤 관계가 있나요?

이상한모자

2012.08.18 18:29:21
*.192.210.237

지면이 짧아 제대로 표현이 안 됐는데, 남에게 얕보일 수 없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그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듯한 직책명을 지어야 하는 고충을 얘기하고자 했던 것이죠. 이를테면 우리 어머니의 직업은 '화장품 외판원'이지만 회사에서는 '뷰티 카운셀러'로 불러주길 원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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