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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한국은 한국이고 싸이는 싸이다
뉴미디어 공략한 싸이의 성공… 올드미디어 촌스런‘드립’에 휘발돼

싸이의 ‘겨땀’보다 더 많은 말이 쏟아진다. <강남 스타일>의 성공에 쏟아진 말 중 가장 앞장서는 건 뉴미디어와 ‘글로벌 싸이’에 대한 것이다. 대중음악 유통에서 유튜브가 ‘갑’임을 싸이가 재빠르게 간파했고 그 덕에 싸이가 글로벌 스타가 되었다는 이야기, 과 <허핑턴포스트> 기사, 그리고 프랑스 텔레비전까지 유튜브와 싸이를 언급한다는 이야기 등등. 여기까지는 싸이가 <강남 스타일>을 통해 ‘글로벌 오빠’가 되었다는 미담에 속한다.

뉴미디어와 글로벌 무대를 정복했다는 미담은 갑자기 국가 성공담으로 바뀐다. 올드 미디어인 신문과 방송의 오버가 이를 주도한다. 싸이의 성공이 곧 한류의 성공에 정점을 찍었다는 말은 평범한 축에 속한다. 국격 상승에 도움된다는 설레발에 이르면, 올드 미디어들은 살림살이가 어려워 다 국영으로 바뀌었나 의문이 들 정도다. 그들의 입놀림은 화려하지만 진정으로 축하하는 것처럼 들리진 않는다. 오히려 국가 경계를 넘어서는 초국가적 현상을 단숨에 국가적 경사로 되돌려버리는 내부 단속용 멘트에 더 가깝다. 글로벌 오빠는 올드 미디어 덕분에 졸지에 격하를 겪어 내수용 ‘동네 오빠’가 돼버린다.

시작을 얼추 비슷하게 한 탓이었을까. 올림픽의 선수들과 비슷한 운명처럼 보인다. 귀국을 늦추라는 촌스러운 작전 지시를 접하는 선수나 ‘국격’ 운운에 파묻혀버린 싸이의 운명은 매한가지다. 그들의 성공이 내수용으로 급전직하되자 그들은 갑자기 수단으로 바뀐다. <강남 스타일>의 빠른 비트와 선수들의 환한 웃음은 증발의 도구가 되고 만다. 흥과 웃음이 비치는 비율만큼 컨택터스, 녹조 강물, 뇌물 공천은 그 모습을 줄여간다. 싸이와 선수들 본인은 억울하겠지만 그들은 졸지에 추한 것을 숨기는 알리바이가 되는 운명을 맞는다.

싸이의 뮤직비디오에는 눈여겨볼 점이 많기는 하다. 전문가들도 놀라는 음악영상을 구사하고 있다. 한여름의 폭염을 날려버릴 만큼 시원한 음향이기도 하다. 문화평론가들이 들여다볼 패러디도 여기저기 구겨져 있다. 하지만 그를 꼼꼼히 분석하며 호사를 부릴 여유는 없다. 싸이가 국내용 알리바이로 수단화되며 증발시켜버리는 것이 너무 많다. 그의 음악적·영상적 감각도 한국 내 강남식 개발, 치부, 불의를 훌러덩 증발시키는 수단이 되고 있다. 강남 스타일의 존재 여부, 강북 스타일과의 차이를 질문하고 답하는 일도 사치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그 질문들은 싸이가 알리바이가 되었음을 숨기는 맥거핀일 뿐이다. 싸이는 글로벌하고 섹시하고 신났으나 그를 내부 단속용으로 활용한 올드 미디어 덕에 더러운 것을 껴안고 가는 ‘강남 휘발유’가 되고 말았다. 싸이는 그냥 싸이일 뿐인데도 말이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부



저렴한 화면 생각 없는 쾌락 
클럽 코드가 숨겨진 강남 스타일… ‘진정한 무엇’에서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던 중, 깜짝 놀랐다. 미국의 유명 래퍼 티페인(T-Pain)이 싸이의 <강남 스타일> 가사를 트위터에 써놓은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검색해보니, 외국인들이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매우 재미있어하는 장면을 찍은 영상이 연이어 나온다. 가히 폭발적인 인기라고 할 만하다.

외국에서의 인기는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때문일 것이다. 트위터를 통해 <강남 스타일>을 미국에서 유행시키는 데 역할을 한 티페인은 ‘엽기’로 표현될 수 있는 스타일의 유머를 좋아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의 코미디 힙합 트리오 더론리아일랜드(The Lonely Island)의 <아임 온 어 보트>(I’m on a boat)의 녹음에 참여하고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한 전력을 보면 그의 취향이 명백해진다. 외국인들의 환호는 이런 취향에 대한 선호에서 비롯됐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한 서술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에서의 인기 비결은 뭘까? 이 점에 대해 생각하려면 이 노래 전체가 일종의 ‘맥거핀’으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이 노래를 들을 때 정숙함과 팜므파탈적 매력이 공존하는 여성을 갈구하며 동시에 남성인 자신도 그런 매력을 갖추고 있다는 식의 가사에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이 곡의 구성 자체가 일종의 클럽뮤직에 특화된 형태이고, 가사 내용의 핵심도 눈치 볼 것 없이 그냥 만나서 즐겁게 놀자는 얘기인 것이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 역시 오직 ‘저렴해 보이는’ 화면으로만 구성돼 있다.

되풀이되는 ‘오빤 강남 스타일!’이라는 구절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이것 역시 클럽에 대한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 사람들은 주로 홍익대 앞, 이태원, 강남의 클럽에서 노는데 지역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홍대 앞 클럽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 20대 초·중반에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반면, 강남의 클럽에서는 외제 차를 몰고 온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까지의 남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빠’가 ‘홍대 스타일’이 아니고 ‘강남 스타일’인 이유다.

즉, 이 노래는 ‘생각이 없는’ 노래다. 여기에 대한 대중의 환호는 이 직전까지 임재범을 재발견하게 해준 <나는 가수다>나 버스커버스커의 인기를 만들어낸 <슈퍼스타 K> 등을 통해 ‘진정한’ 가수를 찾는 것에 쏠리던 대중적 관심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조금 성급하게 말하자면, 대중은 ‘진정한 무엇’을 찾다가 그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무것도 없는 것’에 열광하다 이것이 지겨워지면 다시 ‘진정한 무엇’을 찾는다. 프로그래밍 용어로 표현하면, ‘널’(Null)과 ‘0’ 사이에서의 방황이다. 이 방황을 통해 우리는 또다시 ‘보편’의 부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27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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