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딴지일보] 변희재 요정설

조회 수 3233 추천 수 0 2009.09.03 16:45:13

오늘 딴지에 글을 두 편이나...ㄷㄷㄷ

여튼 변희재에 대해 연재를 해볼테니 기대하삼...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20installment_id=270&article_id=4716


[변희재 요정설] 변희재는 강준만과 진중권을 화해시킬 것인가

2009.9.3.목요일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옛 분들의 말씀이 옳은 것인가, 변희재가 오랜만에 쓸모있는 일을 했다. 하긴 본인이 하려고 한 일은 아닐 테니 '일'이라고 평가하긴 뭣하지만 그런 쪼잔한 것에 신경쓰지는 말기로 하자. 변희재라는 인간의 행동이 파생시키는 온갖 종류의 외부효과들이 부정적인 것밖에 없었는데 이런 엄청난 일을 만들어 내다니 그 어찌 놀라지 않을쏘냐.


네티즌이 합성한 변희재

'진중권 구하기' 논객 5인 성명에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이름을 올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말로 변희재는 강준만과 진중권을 화해시킬 수 있을까. 만일 그리 된다면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화해 같은 객쩍은 일보다 훨씬 의미있는 일이 될 텐데 말이다.

사실 홍대 강의 취소 사태를 통해 드디어 '진보진영' 사람들의 인내심에 한계를 불러일으킨 금번 '진중권 사태'에 대한 가장 적절한 반응은 경향신문에 실린 조국 교수의 칼럼이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 칼럼은 변희재의 입장에서도 예상가능한 범주의 것이었고, 그만큼 쉽게 대응할 수 있는 글이기도 했다.

진중권과의 대학시절 인연을 공개한 조국 교수의 글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어, 그래?'라는 반응을 불러일으켰겠지만 변희재에게는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반론할 '건수'를 전해준 격이다. 즉, 변희재는 "386세대의 패거리주의"라는 진중권을 비판하는 기존의 수사법을 반복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논객 5인의 성명서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안티조선 운동 진영의 패거리주의라는 변희재의 반응은 딱 그런 수준의 것이다. 단, 강준만이 끼어 있지 않았더라면. 강준만의 이름을 발견한 변희재는 당혹스러워 하면서, 가장 의외의 인물인 강준만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의 문제제기를 하겠다고 한다.

변희재는 듣보잡이 아니다.

성명서 명단에서 강준만의 이름을 발견한 변희재의 당혹스러움은 그것을 명백하게 감지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그가 딛고 서 있었던 묘한 포지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든다. 말하자면 변희재는 진중권과 같은 평론가에게는 듣보잡이 될 수도 있었지만, 나같은 키보드워리어의 입장에서까지 듣보잡은 아니었다. 진중권을 따라 누리꾼들이 변희재를 듣보잡이라고 부르는 유희를 진행할 때 내가 키득키득 웃으면서도 좀 저어했던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변희재는 90년대 후반-21세기 초반까지 진행된 누리꾼 운동의 흑역사에서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가진 사람이었다. 물론 본인은 실제의 지분보다 자신을 훨씬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고 폄하할 정도의 위인은 아니었던 거다. 변희재는 사실상 사이버 세계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지식인이었던 강준만의 가장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옹호자로 취급받았다. 당연히 그건 키보드워리어 바닥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그런 제한된 명성이긴 했으나, 특유의 정치력으로 그는 한때 키워에서 오프라인 글쟁이로 변모하는 '성공 모델'을 보여줄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하긴 가장 잘 나갈 때에도 그의 한심한 능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그 불만은 그가 능력에 비해 더 많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수준의 것이었다. (그 시절에도)  

변희재가 한때 강준만의 적자였다면, 우리는 여기서 언론학자 강준만의 포지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김대중 죽이기"를 통해 호남차별과 김대중 문제를 제기하고, 뒤이어 "서울대 폐지론"을 통해 학력차별 문제와 '조선일보 비판'을 통해 언론문제를 제기, 사실상 안티조선 운동의 선구자였던 강준만의 포지션은 무엇이었을까. 정치적으로 민주당을 뚜렷하게 지지하면서 구체적인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현실적 개혁주의' 노선이었다고 서술하면 적절한 평가가 되겠지만, 이런 포지션이 기존의 좌파적 논평가들과 대립하면서 보여준 모습이 무엇이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상업주의에 대한 긍정이었고, 진보/개혁 세력이라는 사람들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강준만은 조선일보의 '국가 안보 상업주의'를 비판했지만, 한편으로는 상업주의를 운동을 위해 개혁진영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보았다. 가령 서태지에 대한 강준만의 논평을 생각해보라. 90년대 중반 온갖 좌파 평론가들도 서태지에 대해 찬양하고 있었지만 그 논평은 서태지의 한쪽 측면에 대해 눈을 감고 있었다. 이를테면 서태지가 상업주의적이라고 얘기하면 그게 부정적인 얘기는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편집에서 누락시키는 식이었다. 그러나 강준만이 서태지를 높게 평가할 때 그것은 서태지가 상업주의를 매우 잘 활용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강준만은 그렇게 텍스트로 상업주의를 옹호하면서, 자신 스스로도 상업주의를 실천했다. 말하자면 단행본 인물과 사상과 월간 인물과 사상을 통해 그는 매체를 가진 지식인이 되었다. 신문권력이 입맛에 맞는 글만을 받아주는 상황에서, 그가 원하는 비평활동을 치열하게 전개하기 위해선 그는 지식인이면서도 스스로 매체를 소유한 지식인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변희재는 강준만 노선을 어떻게 활용했는가?

변희재는 그러한 강준만의 노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거기에 살짝 덧붙여 강준만의 생각을 대중문화에 적용시키고 싶어 했다. 그가 자신을 '대중문화의 전문가'라는 주장의 근거로 여기는 듯한 "스타비평"이라는 시리즈는 거기에서 탄생했다. 이 책은 아마 1권은 주로 변희재가, 2권부터는 변희재가 모은 몇몇 사람들이 썼을 텐데, 당시 월 1만부를 팔아주던 강준만의 독자들에게 어필하여 어느 정도 판매는 되었던 것 같다.

변희재는 기존의 (좌파?)이론적 문화평론과는 다른, 요즘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비자 입장에서 문화상품에 대해 평가하는 그런 잡글들을 쓰면서 자신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그러면서 그는 진보진영이 스타 마케팅을 통해 지지자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스타를 지지자로 확보하든지, 아니면 지식인을 스타로 키우는 마케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지적수준이 되지 않는 연예인은 발언을 하지 말라는 오늘날의 그의 발언은 논리적으로 볼 때는 그 당시의 생각과 '모순'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연예인의 '정치적 힘'에 대한 과대평가라는 문맥에서 볼 때는 일관성이 있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글들을 썼을 때의 변희재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저 손발이 오글오글해진다.

한편 대학사회에서 변희재는 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반-운동권/반-페미니즘적 성향이었고 그들과의 대립을 통해 시대와 불화하고 있었다. 하긴 90년대 대학사회만 해도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런 대립이 반드시 의미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운동권들의 '삽질'을 합리적으로 규탄한다는 포지션을 취하면서 (오늘날에도 그렇듯 종종 변희재 생각에만 합리적인 행동이기도 했지만) 그는 비판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운동권이 거의 멸종하다 시피 하는, 혹은 운동권이 더럽게 특이한 취향의 오덕으로 풀이되는 대학사회의 변모에서 그의 위치도 설 자리를 잃어갔다.

이쯤에서 우리는 "변희재는 어째서 강준만주의자였던 걸까?"라고 물어볼 수 있겠다. 혹은 "변희재는 오늘날에도 강준만주의자인 것일까?"라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구체적인 활동이나 평가야 어찌됐건 안티조선 운동 진영에 속해 있던 변희재가 조선일보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변절'이라 평가하고, 그가 이전에 자신이 가졌던 자신의 생각들을 모두 버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변희재는 변희재이다. 한나라당에 들어간 좌파들의 '변절’은 그들이 소련 붕괴 이후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한 사정과 결부되어 있겠지만, 그런 결정적 순간을 겪지 못한 변희재는 자신의 생각을 아주 조금씩 기울여 조선일보에 글써야 먹고 살 수 있는 자신의 유물론적 조건에 적응시켜 나가야 했다. 상업주의를 자신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대립되는 것으로 보지 않는 그의 세계관에서는, 그게 나쁘게 작용할 경우 출세와 자기 영달을 위한 몸짓마저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한 것으로 해석될 수가 있는 것이다.

변희재는 어떻게 자신의 욕망을 가지고 조선일보에 투항했나?

돌이켜보면 지난 세월 한번도 그의 글을 좋아한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의 그의 글은 어찌됐건 그와 마찬가지로 이 참혹한 시대에 글을 써서 먹고 살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정도로 참혹한 것이었다. 조선일보에 글을 써서 문제가 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조선일보에 쓴 글이 너무 허접해서 문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특히 모든 사회문제를 진중권이라는 개인의 문제로 끼워맞추는 글을 볼 때마다 나는 변희재의 '진정성'이란 것이 어디에 있었던가를 생각했다. 내가 '진정성'이라 표현하는 건 변희재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사용하는 진정성이라는 말은 말하자면 이명박의 대운하에 대한 집착이 건설토호족에 이문을 남겨주려는 현실적인 계산 이전에 어떤 개인의 로망에 기초해 있을 거라는 식의, 이미 이해타산을 벗어난 그 개인의 뜨거운 욕망을 일컫는 말이다. 그가 강준만을 가장 존경했던 것과 오늘날 저렇게 살고 있는 것은 똑같이 그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함이었을 거다.

나는 아마도 그 진정성이, 그 욕망이 '매체'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리브 타일러가 주연한 <맥쿨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저 그런 은꼴 영화일 뿐이지만, 여기서 리브 타일러는 온갖 남성들을 등쳐먹으면서 자신의 '집'을 추구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홀려있는 남자들에게서 그저 돈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대신 자신이 가꾸어야 할 집을 가지고 싶은 거다. 변희재의 욕망 역시 그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않을까라고 나는 추측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는 자신의 매체를 가지고 싶다. 그를 그저 기회주의자로 몰아붙이는 것도 가능한 일이겠지만, 출세와 돈에 대한 그의 욕망은 반드시 매체를 매개로 가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변희재는 단순히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매체를 가져야 돈도 명예도 따라 온다고 믿는 사람인 거다. 어쩌면 변희재는 조선일보에 입사하는 것보다 지금처럼 조선일보와 협력관계를 가지면서 빅뉴스의 편집장으로 일하는 쪽을 택할지도 모른다. 물론 빅뉴스는 그의 생각에 성에 차는 매체는 아닐 것이며, 그래서 오늘도 그는 미디어워치를 키울 꿈에 부풀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세월 동안 매체를 만들고 부수기를 수십 차례, 변희재는 오늘도 자신이 가꾸어야 할 집을 찾기 위해 분투 중이다. 조선일보가 원하는 것을 채워주면서까지.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조선일보의 졸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조선일보 기자가 자신을 비판하자 발끈하는 그의 모습을 보라. 그는 여전히 자신을 독립적인 편집장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강준만주의자로서의 자신을 부정하는 방식은 아니었다는 것이 또한 내 생각이다. 강준만주의는 매체를 욕망하는 변희재로서는 떠날 수 없는 고향이다. 설령 진중권을 편든 오늘의 강준만을 비판한다 하더라도, 변희재는 강준만의 텍스트를 인용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변희재는 몇 가지 논리과정을 거쳐 조선일보에 안착했다. 친노성향의 인터넷 매체 서프라이즈에서 권력투쟁 끝에 쫓겨난 이후 그는 마침 민주당 분당-열린우리당 창당에 발맞춰 민주당지지 포지션으로 돌아서서 노빠들과 반목했다. 그것은 굳건한 민주당 포지션이었던 스승 강준만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이기도 했다. 민주당 스탠스에서의 참여정부 비판은 그가 강준만주의를 배반하지 않고도 조선일보 류의 시각에 마음에 드는 참여정부 비판을 할 수 있는 알리바이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는 어느날 느닷없이 안티 포탈 운동을 시작한다. 사실 포탈에도 문제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생 매체 권력의 반칙을 지적하고 그것이 참여정부 편향적이라고 역설하면서 그는 과거 안티조선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활동을 하면서 조선일보의 코드에 자신을 맞추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포탈 권력에 맞서 신문을 지켜야 한다는 알리바이를 내세우며 조선일보에 글을 쓰기로 했다. 안티 포탈 운동에 관한 글만을 쓰겠다는 자기-규제를 내세우면서. 건전한 담론형성을 위해 인쇄매체의 존재와 권위가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에는 나도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변희재가 숱한 신문 중에서도 하필 조선일보로 간 까닭은 한겨레 경향이 자신의 글을 더 이상 받아주지 않았던 개인적인 사정과 더 큰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포탈 문제를 벗어나 자유연상으로 진중권을 공격하는 그의 글은 얼마 남지도 않았던 조선일보라는 신문의 권위를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중이다.    

그랬다. 여전히 그는 강준만주의자였던 것이다. '잃어버린 십년'에 대한 수구세력의 공세에는 (김대중 정부가 아니라) '참여정부의 문제'로 치환하여 합류하면서, 지식인 사회의 생산적 논쟁이 필요하다는 강준만의 문제인식은 '386 패거리'가 담론 시장을 망치고 있다는 조선일보적 세대론적 주장으로 환원하면서, 인쇄매체의 신뢰성에 대한 강준만의 믿음을 포탈권력 vs 신문권력(조선일보)의 대립구도로 치환하여 후자를 편들면서, 그는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강준만주의자로 남았던 것이다. 이 명백한 모순은 그에 있어서 모순이 아니었다.

변희재 문제에 있어서의 강준만의 역할

그리고 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도 있었다. 강준만 스스로가 변희재에 대해서 강단있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변희재가 궤도를 이탈한 뒤에도 포탈 문제의 선구자로 높이 평했으며, 그가 주도하는 포럼에 변희재와 우석훈을 같이 초청하여 토론을 시키기도 했다. 그 결과는 변희재가 '88만원 세대'론을 386 패거리 규탄론으로 전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므로 변희재는 강준만의 자신에 대한 신뢰에 아무런 의심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변희재의 주장이나 위치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과, 그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긍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지난 정권 때 임용된 인사들 잘라나 보자는 식의 이명박 정부의 막가파적 문화정책과 그에 조응하는 변희재의 비평(?) 활동은 변희재의 아Q적 정신승리와는 상관없이 날이 거듭될수록 강준만주의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10년'을 줄기차게 까대고 있는데 강준만과 변희재가 지지했던 김대중 정부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몇몇 참여정부 인사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386세대 전반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진중권이 친노인사라는 주장을 납득할 수 있을까? 김민선은 발언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강준만의 소통론에 얼마나 조응할까? 

변희재는 진중권에 대한 자신의 평가에 강준만은 100% 동의할 거라고 확신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2002년 옥석논쟁을 통해 결별한 강준만과 진중권의 애증관계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강준만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로 정치평론계에 데뷔한 진중권을 한때는 너무너무 좋아했다. 진중권은 (나중에는 그것을 좀 끔찍하게 여기기도 했겠지만) 강준만이 찬탄할 만한 상업성을 갖춘 저자다. 강준만의 상업주의를 배웠지만 상업성과 거리가 먼 행보를 밟기 시작한 누군가와는 차이가 있다.

변희재의 진중권에 대한 격렬한 증오는 그 점에서부터 나오는지도 모른다. 변희재는 진중권이 자신보다 상업성이 뛰어나서 잘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진중권은 능력이 안 된다고 공박하면서, 그 능력이 안 되는 진중권이 잘 나가는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으려 든다. 여기서 정말로 슬픈 일은 설령 사회주의적으로(?) 시스템을 만들어 시장에서의 판매와 상관없이 글쟁이들이 쓴 글의 퀄리티만으로 임금(?)을 지불한다 하더라도 진중권은 변희재보다는 수십 배는 더 많은 임금을 챙길 거라는 점이다. 물론 그 경우 진중권보다 더 받아야 하는 이들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변희재는 사회주의자였던가?  

강준만과 진중권의 애증관계를 돌이켜보며

강준만과 결별하기 전의 진중권이 변희재의 행태에 넌더리를 내면서 (강준만과 진중권이 결별하기 전에도 변희재는 진중권과 싸우고 있었다.) "강준만이 변희재 하는 짓 좋아하지도 않더라. 직접 만나서 물어보면 '그 친구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강준만이 진중권 앞이니까 그렇게 얘기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변희재에게도 해당하는 말일 게다. 그 사람이 자기 앞에서 말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2002년의 강준만-진중권 논쟁은 안티조선 좌파와 우파의 결별을 위한 마지막 수순이었다. 그후 두 진영은 한번도 공동행동을 해본 적이 없다. 그 논쟁의 논점이나 내용에 대해서 여기에 기술할 수는 없다. 정 내용이 궁금한 분은 필자의 졸저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의 3장을 참조해주시기 바란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논쟁이 정치적인 후과도 나빴지만 논쟁당사자들에게도 큰 상처를 줬다는 것이다.

진중권은 한동안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모든 종류의 정치평론에 '강준만 욕'을 끼워넣어서, '진빠1호'를 자처하는 내가 보다못해 그만 좀 하시라고 만류할 정도였다. 들은 바로는 강준만 역시 당시의 논쟁에 대해서 매우 후회하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당시 자신이 표방했던 견해가 잘못이라고 느끼지는 않았겠지만, 논쟁을 전개한 방식이나 논쟁 말미에 진중권에게 퍼부은 비난에 대해선 과했다고 생각한 듯하다. 결국 전달되지는 않았던 듯 하지만 강준만이 진중권에게 사적으로 사과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사실 개인적인 사과가 필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상처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사건의 진정한 문제는 정치적인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생각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된 진중권의 편에 서서 계속 발언할 수 있을까? 안티조선 좌파와 우파는 2002년 이후의 최초의 공동행동의 보조를 맞출 수 있을까? 생각의 차이를 용인하면서 '상식'을 말하던 그 연대는 복원되어 오늘날 이리저리 왜곡된 상식의 의미를 재연할 수 있을까?

변희재가 좀 더 막무가내로 설치면 가능할 듯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는 강준만에게 던지겠다는 변희재의 질문이 기대되기까지 하다. 그리고 나는 강준만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변희재의 때늦은 변설에 현혹되지 않도록 '기축년 변희재의 난'을 체계적으로 비평해 보고자 한다. 변희재의 '진중권 비평'이 진중권은 정권의 특혜를 받았다고 하는 잘못된 전제조건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논객으로서 그리고 대학 강의자로서 진중권의 전문성에 대해 상식 수준의 견해를 피력하며 변희재를 논박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변희재식의 막무가내의 실력(?)주의가 그의 실크세대론을 구성하는 핵심이기도 한 바, 그 이론이 어째서 자승자박인지를 밝혀내려고 한다. 앞으로 쓸 글의 큰 틀이 위와 같다. 연재를 기대해 주시라.

<뉴라이트 사용후기>,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 저자 한윤형
(a_hriman@hotmail.com
)

 


여울바람

2009.09.03 19:13:16
*.222.202.200

오, 이런 사정 사정들이 있었군요.

낮아지는자

2009.09.03 19:42:37
*.42.48.52

와.. 긴 호흡의 글..
변희재는 이런 비판도 다 받아보고..
복받았네요.

고모

2009.09.03 21:53:10
*.53.125.161

딴지에서 봤지만, 이쪽에 리플. 이거 참 잘봤습니다.

정해찬

2009.09.03 22:52:01
*.199.134.229

"혼이 담긴 똘기"라는 점에서 이명박과 변의 로망(?)이 닮았다는 생각은 어렴풋 하고 있었습니다만 변에게 이런 과거사가 있었군요. 진정성을 가진 바보가 힘을 가졌다는 점에서 참 이래저래 앞이 암담하군요. 그것도 둘씩이나...

이너컨

2009.09.04 02:33:45
*.98.119.142

한윤형씨. 님의 식견과 논리에 찬탄을 금치 못하겠군요(전 91학번입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취하고 계신 포지션도 적절해 보이고요. 부디 절차탁마 하셔서 큰 인물로 성장해가시길. 님이 궁금해서 조금전 뉴라이트 사용후기 주문 했습니다. ^^

블랙프란시스

2009.09.04 06:54:41
*.223.187.193

1년전의 가카 요정설이 떠오르네요. 강준만과 진중권이 다시 힘을 합치면 변은 어케 될지 궁금합니다 ㅎㅎ

인사이드아웃

2009.09.05 12:56:24
*.137.223.113

잘 읽었습니다,앞으로의 글도 기대되는군요,지속적인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한윤형님의 출판방식(?)이나 시각은 그간의 논객들이나 셀러브리티(?)들에게
낯설뿐이지 독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신선하고 새로운 공기를 흡입하게
하는 긍적적인 면이 많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지나가다

2009.09.05 23:08:10
*.170.73.148

<하지만 강준만이 진중권에게 사적으로 사과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오해의 과정과 추후 저간의 사정을 알게된 강준만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안읽어보신듯 하군요.

지나가다

2009.09.05 23:18:50
*.170.73.148

옥석논쟁이후 강준만은 누군가로부터 '진중권이 강준만을 공격한 것으로 인해 죽고싶다'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더군요. 그에 대해서 강준만이 걱정되어 진중권에게 서신을 보냈고,이에 대해 진중권은 그걸 강준만의 사과로 받아들였인 모양입디다.

후에 진중권이 '죽고싶다'라고 했다는게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전달임을 알게된 강준만이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았고, 몇개의 진중권 비판을 한후 일체의 비판을 접겠다고 했죠. 일일히 비판할 가치조차 없다면서. 대신 자료를 모아 추후 진중권에 관한 책으로 내겠다고 했죠.


그 이후 강준만이 진중권에 대한 글을 쓴게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압니다. 거의 7년 쯤 되나요?


이번 강준만의 서명은 원칙론으로 봅니다.조갑제를 정권차원에서 손본다고 해도 아마 강준만은 거기에 대해 반대할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진중권 문제에 서명한 것으로 봅니다.

이를 두고 진중권에 대한 화해라? 그것은 아닐겁니다. 아마도 강준만이 죽을때까지 그것은 불가능할꺼에요.강준만은 진중권을 거의 인간취급을 하지 않더만요. 오히려 변희재보다 더.

하뉴녕

2009.09.06 13:13:56
*.49.65.16

잘못 알고 계시는 겁니다. 죽고 싶다 얘기 드립은 강-진의 1차 논쟁 이후에 있었던 일이구요. 그건 중간에 낀 어느 PD가 자기 딴엔 상황을 중재한다고 꾸며낸 말입니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그냥 글에 밝힌 것 이외에는 함구하겠습니다. 저도 그냥 그런 얘기를 언듯 들었다 정도입니다. 강준만도 복잡한 심경이겠지만, 뭐 변희재가 진중권 보듯 하지는 않을 거라는 추측만 전해드립니다. 하려던 얘기는 그 정도가 전부입니다.

홍수

2009.09.07 07:10:40
*.8.142.82

정말 합성사진 중에서 이렇게 빵 터지는 거 오랜만이네요.

참 변희재 아저씨 짜증스럽지만 종종 허탈하게 웃겨요

서현주

2009.09.07 13:53:47
*.149.254.227

변희재가 다 옳은건 아니지만 진중권보다는 낫습니다

하뉴녕

2009.09.07 14:04:49
*.49.65.16

십 년 전에도 참신하고 극단적인 견해였는데, 오늘날에 와서 보자면 대단히 엽기적인 견해로군요...ㅎㅎㅎ

홍수

2009.09.08 18:18:23
*.37.86.25

진중권이 다 옳은건 아니지만, 변희재 보다는 낫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ㅋ

하뉴녕

2009.09.09 00:38:03
*.49.65.16

홍수// 크레파스가 이쑤시게보다 그림그리기에 좋다는 말을 그렇게 진지하게 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뭐 지금 아방가르드 하는 것도 아니고...ㄷㄷㄷ

andante

2009.09.08 09:18:51
*.37.195.181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건강 조심하십시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 [딴지일보] M을 보내며 [7] [2] 하뉴녕 2010-05-20 2071
19 [딴지일보] 야권연대 파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9] [2] 하뉴녕 2010-04-22 3674
18 [딴지일보] '반MS단일화',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정 [37] [1] 하뉴녕 2010-04-19 6045
17 딴지일보 심상정 인터뷰 [12] 하뉴녕 2010-02-03 1365
16 [딴지일보] 변희재의 논변 검증 (2) - 논객으로서의 진중권의 능력 검증에 대해 [5] 하뉴녕 2009-09-18 3325
15 [딴지일보] 스타 본좌론 최종화 - 하지만 홍진호가 출동하면 어떨까? [32] 하뉴녕 2009-09-15 7260
14 [딴지일보] 본격 정치평론 : 2PM 재범이 남기고 간 것 [38] [1] 하뉴녕 2009-09-10 1811
13 [딴지일보] 변희재의 논변 검증 (1) - 강의자로서의 진중권의 능력 검증에 대해 [14] 하뉴녕 2009-09-09 11974
» [딴지일보] 변희재 요정설 [16] [1] 하뉴녕 2009-09-03 3233
11 [딴지일보] 프로게이머 FA, 그 노예계약의 진실 [4] [2] 하뉴녕 2009-09-03 2133
10 딴지일보 기사 리플에 대한 답변 [13] 하뉴녕 2009-08-28 1507
9 [딴지일보] 김영삼을 위하여 [21] 하뉴녕 2009-08-27 2000
8 [딴지일보] 스타리그 본좌론 (5) - 마재윤 이후의 본좌론, 그리고 본좌론에 대한 회의 [5] 하뉴녕 2009-07-31 4937
7 [딴지일보] 스타리그의 진정한 본좌는 누구인가? (4) - 잊지 마라, 0대 본좌 기욤 패트리를! [8] 하뉴녕 2009-07-13 41416
6 [딴지일보] 스타리그의 진정한 본좌는 누구인가? (3) - 임이최마 계보론의 정당화 [5] 하뉴녕 2009-07-03 2651
5 [딴지일보] 노무현의 부활 [21] [3] 하뉴녕 2009-06-01 3894
4 [딴지일보] 스타리그의 진정한 본좌는 누구인가? (2) - 임이최마 계보론의 문제점 [7] 하뉴녕 2009-05-16 1454
3 [딴지일보] 스타리그의 진정한 본좌는 누구인가? (1) - 마재윤과 본좌론의 탄생 [14] 하뉴녕 2009-05-07 1611
2 [딴지일보] '노무현 시대' 이후에도 진보정치는 가능할까? [15] [2] 하뉴녕 2009-04-21 4701
1 [펌] 딴지일보 주대환 인터뷰 [2] 하뉴녕 2008-01-19 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