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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62&article_id=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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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좌 오딧세이]스타리그의 진정한 본좌는 누구인가? (4)
- 잊지 마라, 0대 본좌 기욤 패트리를!
 


2009.7.13.월요일

* 3편을 쓴 후 자료를 찾아보니, 임요환의 2001년 토스전 승률이 70%가 넘더라. 이 정도면 "임요환은 전성기에도 플토전이 구리니 본좌 아님 ㄱㅅ" 운운하는 이들에 대한 반론은 데이터로도 충분한 듯 하다.
**덧글에서 자꾸 저를 충용횽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ㅠ.ㅠ 저는 충용무쌍 님이 아닙니다. 으헝헝 ㅠ.ㅠ 저도 충용무쌍 님의 AV본좌론을 잼있게 보고 있긴 하지만...... 저는 엄연히 다른 사람입니다. ;;;


스타리그 본좌론을 연재하면서 올드팬들의 애교 섞인 항의를 많이 받았다. 스타리그 탄생 초창기에 대해서 너무 무심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스덕들이 공인한 '임이최마'론을 중심으로 두고 쓰다 보니 그렇게 된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나 자신이 스덕이 된 것이 2003년경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온 국민이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던 90년대 후반에 고등학생이었으면서도 거기에 무심했다가 나중에 스타에 빠져든 케이스였다. 그러니 그 시절의 기억이 많지 않을 수밖에. 하지만 이번에 스타리그의 여명기에 대한 자료조사를 해보면서 나는 스덕질 하면서 들은 과거의 얘기들과 내 고교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들이 재배치되면서 큰 틀로 정리되는 체험을 했다. 추억을 더듬는 기분으로 그것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역사시대와 선사시대


대회 소개 하나부터 하고 시작하자. 한국 e스포츠 10년사를 기념하는 해리티지 매치라는 것이 7월 한달 동안 열린다. 10년을 기념하여 참여 게이머는 스타리그사를 대표하는 10명. 임요환, 최연성(SK 텔레콤), 박정석, 오영종, 홍진호(공군), 이윤열(위메이드), 마재윤(CJ), 강민, 박용욱(해설자), 서지수(STX)로 구성된 10명이 2개조로 나뉘어 풀리그 방식으로 경기를 치른 후 4강전과 결승전을 거쳐 우승자를 뽑는다. 이 맴버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본좌'인 임-이-최-마가 포함되어 있다. (본좌 라인에는 플토가 업ㅂ어)
둘째, 왕년의 3대플토인 광(강민)-등(박정석)-녹(박용욱)이 포함되어 있다.
셋째, 플토는 그 외에 2005년 가을의 전설의 주인공인 오영종이 포함되어 있다.
넷째, 영원한 2인자 홍진호와, 여성 프로게이머 대표 서지수가 포함되었다. 


이렇게 보면 맴버는 테란 4, 플토 4, 저그 2가 되는데, 저그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진락(조용호/홍진호/박경락)-변태준(변은종/박태민/박성준)-마준동(마재윤/김준영/이제동)으로 이어지는 저그의 계보 중에서 스타리그 10년사를 대표할 수 있는 선수로 최소한 조용호는 포함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해설자로도 남아 있지 않은 은퇴자 조용호의 경우 경기력과 흥행성이 의문시되었다고 생각된다. 박성준의 경우는 상징성은 충분하지만 지금도 나름 현역으로 쟁쟁한지라 여기 끼게 될 경우 너무 쉽게 우승을 하게 될 우려가 있다. 박태민은 아무래도 다른 이들보다는 인기나 커리어가 모자라다고 판단된 것 같다.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이 해리티지 매치는 흥행과 밸런스를 적절히 고려한, 스타리그 10년사를 기념하는 이벤트 경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해리티지 매치가 보여주는 시대가 바로 스타리그의 역사시대다. 


해리티지 매치의 주관인 e스포츠 서울스타즈 출범식 현장. 왼쪽부터 강민, 이윤열, 그리고 최연성의 모습. 사진출처 - fomos.co.kr


하지만 역사시대 이전의 추억의 시대도 존재한다. 최근 곰티비 클래식의 해설진들이 스캐럽이란 프로에서 프로게이머들의 초창기를 얘기하면서 방담을 나누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초창기의 배고픈 프로게이머들이 오프라인 대회를 하면 끝나고 갈 때 컴퓨터 랜선을 떼어가 팔았다는 얘기를 했다. 자기들끼리 깔깔 거리고 웃으면서, "아니 그게 가능해? 손을 이렇게 뒤로 뻗치고 떼어 와야 하는데?" / "본체가 책상 아래 있잖아. 이렇게 떼어오면 안 보여."라고 얘기를 하는데 웃음도 나오고 짠하기도 했다. 프로게이머들이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하고) 대회 상금만으로 생계를 해결해야 했던 그 시기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신주영, 이기석, 그리고 기욤


1998년 출시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전 세계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IMF 이후의 IT 산업 육성과 PC방의 확산 등과 함께 겹친 한국에서의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것이었다. 한국의 유저들은 배틀넷에서도 악명을 드높였다. 배틀넷에서 일반적인 외국 유저들은 러시를 들어갔다가도 상대방이 너무 일찍 패배할 것 같으면 병력을 물려 상대방이 테크를 올리고 고급 유닛들을 뽑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서로 게임을 즐기기 위해 노력했던 반면, 한국인들은 특유의 전투성과 경쟁심으로 다른 유저들을 학살했다. 초반 저글링 러시를 너무 일삼는 한국 유저들이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재미를 압살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래더에서도 한국 유저들의 강세는 두드러졌다. 98년 무렵 현재 온게임넷 해설을 맡고 있는 김태형(당시 이름은 김도형)은 종종 래더 랭킹 1위로 명성을 드높였다. 


최고수를 가리고 싶어하는 유저들의 열망에 블리자드 역시 충실히 부응했다. 블리자드는 래더 토너먼트라는 것을 만들었다. 스타크래프트가 세계적인 게임이었던 시절이라 처음부터 한국인들이 강세를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98년 래더 토너먼트 시즌1(스프링 시즌)에서는 대회 기간 동안 가장 오래 래더 랭킹 1위를 유지한 이를 우승자로 꼽았는데, Villert라는 아이디를 쓰는 미국인이 우승했다. 98년 시즌2(썸머 시즌)에는 eVERLAST라는 아이디를 쓰는 빅터 마틴이란 이름을 쓰는 스웨덴 인이 우승했다. 98년 시즌3(어텀 시즌)부터는 우승상금도 3천달러에서 5천달러로 늘어나고 대회 방식 역시 래더 랭킹 1위부터 16위까지를 모아 블리자드 옵저버가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16강 토너먼트를 실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여기서 우승한 것이 한국 최초의 프로게이머 신주영이었다. 신촌의 슬기PC방에 그 연원과 어원이 있는 SG길드 소속의 그는 Honest'[SG]라는 아이디를 썼다. 그의 우승은 한국에 스타붐을 일으켜 KPGL을 비롯한 수많은 리그가 생겼다.


이 리그들을 제패한 것은 저 유명한 쌈장 이기석이었다. 그는 KPGL을 2연패하고 한국의 오프라인 대회를 싹쓸었던 위인이었다. 게이머의 시초는 신주영이었지만 업적이나 커리어를 볼 때 당대 한국 최고수는 이기석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는 99년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 시즌2에서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한다. 그런 이유로 어떤 이들은 당시의 본좌를 이기석으로 봐야하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쌈장 이기석이 기억 나냐능?? 초창기 한국 스타판의 거의 유일한 스타였다능


그 유명한 이기석의 광고


하지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99년 당시에는 '한국 최고수=세계 최고수'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았다. 그리고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의 경우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어뷰저'라는 이름의 래더 승률 조작 프로그램이 그것이었다. 당시 래더에서는 어뷰저가 만연했고 그리하여 어뷰저를 쓰지 않으면 16위 안에 포함되기가 어려웠다. 이기석은 최소전적 무패 기록으로 래더 순위 안에 턱걸이로 토너먼트에 나갔다. 누가 봐도 어뷰저스러운 전적이었다. 물론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것은 그의 실력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당시 베틀넷에서 최강자로 소문이 났던 Grrr이 어뷰저를 쓰지 않아 아예 래더 토너먼트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잦았다는 것이다. 즉 이기석은 한국 유저들을 압살했고 어지간한 외국 유저들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것은 당대 최강자로 알려진 사내를 배제하고 얻어진 승리였다.


저 Grrr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가 저 유명한 캐나다 퀘백 출신의 프로게이머 기욤 패트리였다. 어뷰저를 쓰지 않아 베틀넷 최강자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래더 토너먼트에서 자주 미끄러져야 했던 비운의 사내였다.


기욤 패트리의 세계정복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욤 패트리는 래더 토너먼트에서도 한을 풀게 된다. 어뷰저 논란 등 래더 토너먼트에서 잡음이 심해지자 블리자드는 99년 월드 챔피언십을 개최한다. 이 대회는 역대 래더 입상자들 중 16명을 추려 토너먼트 우승자를 가리는 일종의 '왕중왕전'이었다. 이것은 블리자드가 공인 세계최강을 기리기 위해 개최한 블리자드 주최의 최후의 스타크래프트 대회였다. 우승상금도 1만 달러로 기존의 래더 토너먼트의 두 배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이 대회에서 기욤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상대방을 압살하고 결승에 올라가 결승에서 현재 온게임넷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창선 [Bblade]_reader을 만난다. 이 경기에서 기욤은 3대0의 일방적인 스코어로 1시간도 지나지 않아 김창선을 셧아웃시키고 '세계 최고'의 명성을 재확인한다.


그러나 기욤의 전설은 배틀넷 강자와 99년 월드 챔피언십의 마지막 우승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만이었다면 기욤의 이름 앞에 '세계최강'이라는 수식어가 붙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99년 당시 기욤은 전 세계 각지의 대회를 쓸어담으면서 '최악의 상금사냥꾼'으로 악명을 떨쳤다. 당시에는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스타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상금이 아니라 커리어에 집중하여 굵직굵직한 경력만을 짚어보자. 일치감치 프로게이머가 있었던 북미 프로게이머 협회에서 주최한 PGL에서 우승하면서 북미 대륙 제패. 유럽의 고수들과 전 세계 상위 랭커들이 출전한 유럽 오픈 우승으로 유럽 대륙 제패. 그리고 전 세계 세계 상위랭커들을 초청하여 벌인 세계대전 l2e2 초청 월드 토너먼트 우승. 그야말로 그가 왜 세계최강자인지를 알려주는 커리어들이다. 그랬던 그가 2000년 한국 땅을 밟게 된다. 월드 챔피언십을 끝으로 블리자드 래더 토너먼트가 종료되고 PGL 역시 종료되는 등 전세계적으로 스타의 열기가 식어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스타 대회가 성행한다는 얘기를 듣고 '세계 최강', '최악의 상금사냥꾼'은 새로운 사냥터를 찾아 한국으로 오게 된다.


상금사냥꾼의 앳된 시절의 사진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협소설을 보면 아득한 옛날 달마조사가 중원으로 와 중원의 고수들을 격파하면서 무공의 혁신이 일어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강호무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서쪽에서 온 '푸른 눈의 전사' 기욤 패트리가 한국 땅에 왔을 때 일어난 일은 정확히 그것이었다. 2000년 한국 땅에 강림한 '세계최강'은 베일에 쌓여 있던 그의 플레이를 한국인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훗날 온게임넷 엄재경 해설위원이 평가했듯이 '컬쳐 쇼크'를 가져 왔다. 기욤은 실시간 대응, 심리전, 전략, 컨트롤 등 모든 부분에서 한국 게이머들을 압도하며 오프라인 대회들을 석권했다. 그가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참가한 하나로 통신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역시 가뿐하게 우승했다. 랜덤 유저로서 여러 게이머들을 농락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기욤은 스타리그의 융성을 예측하지 못했다. 기욤이 한국에 와서 보여준 플레이들은 거의 준비되지 않은 것이었다. 한국 생활에 재미를 붙인 그는 오프라인 대회 결승날 전날에 나이트에서 놀다가 올 정도였다. 훗날 그는 인터뷰에서 스타리그가 이렇게 오래갈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열심히 연습해서 더 오래 활동했을 거라고 한탄했다. 한국 게이머들이 기욤을 따라잡은 것은 기욤이 스타에서 손을 놓은지 1-2년이 지난 후였다.


친한 형이 2001년 경 술집에서 알바를 하다가 기욤을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팬이라고 인사를 한 후 몇마디를 나누다가 기욤에게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게이머는 누구입니까?"라고 질문하자 기욤은 단호하게 "임요환"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2001년 6월 1.08 패치 직전에 펼쳐진 'Last 1.07' 매치에서 임요환에게 패하면서 2년 넘게 아마추어와 프로게이머, 온라인과 오프라인, 전세계를 넘나들며 스타크래프트를 쥐락펴락했던 기욤의 시대도 끝나게 된다. 훗날 그는 삭발까지 하며 다시 스타리그에 대한 욕망을 불태우지만 실패하게 되고, 겜블러와 쇼핑몰 사장 등으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IT계열 회사에 취직해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2008년 인크루트 스타리그 결승전에 기욤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방년 27세, 전성기만큼 앳된 모습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준수한 모습 그대로였다.


2008년 인크루트 스타리그 결승에 나타난 기욤의 모습. 흰 양복이 잘 어울린다.
사진출처 - fomos.co.kr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인기를 기반에 둔 오프라인 스타 대회의 시대가 끝나고 소멸할 것 같았던 스타리그가 임요환이라는 슈퍼스타의 등장으로 4개 케이블 방송국을 통해 스타리그로 재편되면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이중 두 개의 게임방송국만 오늘날 살아남아 우리는 그것을 '양대리그'라 부르고 그것의 커리어에 따라 '본좌'들을 판단한다. 임성춘, 송병석, 김정민, 김대건 등 각 종족을 정초한 초기게이머들보다 김동수, 최진우, 국기봉 등 온게임넷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게이머들이 더 역사에 남게 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한국의 스타리그의 품격을 '메이저리그'로 올려 준 저 달마조사의 강림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기욤 패트리와, 은퇴한 모든 프로게이머들의 안위를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 참고 자료
1. 무자년의 시작 님, "기욤패트리,동영상 및 기욤패트리 전설에 대하여",
http://shoutworld.tistory.com/836
2. 코넷ID쌈장 님, "98년~99년 역대 블리자드 래더토너먼트 리뷰"
포모스 http://www.fomos.kr 매니아 칼럼방 2008. 11. 2
3. 그 외 포모스 유저 여러분 

전편

(1) 마재윤과 본좌론의 탄생

(2) 임이최마 계보론의 문제점

(3) 임이최마 계보론의 정당화

다음편 예고

(5) 마재윤 이후의 본좌론, 그리고 본좌론에 대한 회의

(6) 하지만 홍진호가 출동하면 어떨까?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 저자 한윤형
(a_hriman@hotmail.com
) 


나사실기욤패트리임

2009.07.14 16:14:15
*.153.141.81

읔..뭔가 중요한 게 나오려다가 끝난 느낌이에요..좀 짧군요.
홍진호편을 기대해 봐야죠..

ㅠㅠ

2009.07.15 00:47:40
*.5.239.246

제대하고 잠깐 고깃집 알바를 했는데 갑자기 왠 양놈 둘이 여자 하나를 끼고 들어오는 겁니다. 근데 처음 보는 양놈인데 왜 이리 친숙하게 느껴지지...
알고 보니 기욤 패트리였다는... 그 고깃집 단골손님이었다는... -_-;; 사인해달라 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이라 그냥 고이 보내줬습니다. 영어 잘 하대요...

ㅁㅇㄴㄹ

2009.07.16 02:34:56
*.44.151.128

1. 저 때 당시의 "어뷰저"는 승률 조작프로그램이 아니라, '어뷰징을 한 사람' 즉, 지인들과 짜고, 베틀넷 아이디 수백개를 만들어서 래더방을 만들고 패배해 줌으로써, 한 아이디의 점수를 높이는 방법을 사용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지금처럼 하루에 수천승 무패 아이디를 만드는게 아니었어요. 스타 래더가 1000점에서 시작되고,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가 붙으면 높은 점수의 게이머는 점수가 오르지 않는다는 기초적인 사실만 알고 있으셨어도 착각하지 않으셨을 듯..이기석이나 최진우 같은 경우엔 브루드워 래더 시즌2부터 어뷰져로 1700점대를 유지해서 해외에 악명을 떨쳤죠..

2. 저는 국내에 스타리그가 정착되고, 프로게이머가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잡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기욤도, 임요환도 아닌 이기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에 레이스가 날아다니고, '모든 인터넷은 코넷으로 통한다'라는 카피와 함께 위풍당당하게 서 있던 이기석의 모습은, "겜덕질을 통해서도 5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시의 게이머들에게 인지시켰고, 마케팅 담당자들에게도 '겜덕 마케팅'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첫번째 예시였습죠. E-sports의 역사에서 이기석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것이 저는 언제나 불만입니다. 이 글이 '본좌론' 시리즈물 중에 한 편인걸 감안해야겠지만요.

3. 오리지날 래더 시즌3쯤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기욤은 브루드워 래더 시즌1 토너먼트 직전까지 4달 간 1위를 수성했었죠. (아, 참고로 기욤은 원래 저그 중심 랜덤유저였고, 플토유저로 이름을 날린건 한국에 온 이후였습니다. 한국 오기 직전의 프랑스 대회에서도 저그로 우승을 했구요. 히드라웨이브의 창시자죠. 엄재경이 기욤이 무슨 유명한 플토니 섬맵에서 무적이었니 어쩌구저쩌구 한건 다 질리아스와 헷갈렸던겁니다.) 토너먼트가 다가올 즈음해서 다들 어뷰징을 했기 때문에 토너먼트 직전에 15~16위 정도로 떨어지긴 했었지만요. 어쨌든 기욤은 브루드워 1차 래더 토너먼트에서 16강에 진출했음에도 바로 탈락했었습니다. 단순히 어뷰징때문에 래더 토너먼트 우승을 못했던건 아니었죠. 뭐 그 이후엔 한윤형님의 말씀대로고요.

하뉴녕

2009.07.16 02:45:59
*.49.65.16

앗, 넵, 딴지일보 독투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들었어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

바둑이

2009.07.16 13:00:08
*.119.33.237

당시 온게임넷이었는지 투니버스였는지 잘 모르겠는데 기욤이 처음 나와서 우승하는 대회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시트콤 '세친구'와 같은시간에 중계를 해 주어서 기숙사에서 '세친구'파와 '스타'파가 채널 선택권을 두고 다투던 기억도 납니다.

엄재경이 해설하면서 천편일률적인 우리나라 교육어쩌고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만큼 당시로는 파격적이었던 창의적인 방법을 많이 사용했었습니다.

하뉴녕

2009.07.16 16:20:39
*.49.65.16

ㅎㅎㅎ 투니버스 시절에 "저게 배럭스에서 제일 처음 나오는 유닛인 마린이란 것인데요~"라는 해설을 엄재경이 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어요. 정말 아련한 여명기로군요...;;;

뭐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게 스타리그이긴 하지만서도...쩝 --;

스카이락

2009.07.19 23:10:20
*.10.19.155

아~ 한윤형님이 딴지일보에 글 올리는 그 분이셨나요?

김기홍

2009.08.13 17:40:08
*.114.22.106

향수에 젖게 만드는 기사로군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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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펌] 딴지일보 주대환 인터뷰 [2] 하뉴녕 2008-01-19 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