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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원본 주소 :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010261754351&pt=nv

아래는 원래 제가 보낸 버전. (제목 바꾸고 소제목 단 것 빼곤 별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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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론을 넘어 시대론으로
- 20대 담론의 굴곡, 그리고 새로운 전망


‘20대 담론’의 유행 이후 갑작스레 ‘20대 논객’이란 이름으로 호출된 나는 여기저기 그것에 대해 쓰게 되었다. “88만원 세대 온라인”(이하 “88온”)이란 게임에 대한 ‘패치’에 저자들 뿐 아니라 나도 관여해온 셈이다. “니네들 얘기하는 게임 나왔으니 제발 패치는 니들이 좀 해라.”는 게 담론시장의 요구였고 나는 수동적으로 그에 따랐다.


“88온”은 처음부터 한국 사회를 충분히 진보시키지 않은 386세대를 비판했다. 이 비판은 역설적으로 “88온”의 시장타켓이 바로 그 386세대란 점을 드러냈다. 보수화된 기성세대가 되었단 평을 듣는 이들 중 일부는 후배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다. “88온”은 바로 그 지점을 공략했다. 20대나 10대들은 이들이 “88온”을 꽤나 소비한 이후에야 ‘우리 얘기를 한다는’ 혹은 ‘논술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풍문에 이끌려 이 게임을 소비하게 되었다.


게임 출시 이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잡지 편집회의에서 세대론 기획을 하면 8∼90년대 학번은 눈을 반짝이는데 정작 ‘20대’ 기자들은 심드렁하더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20대들은 이 게임에 관심이 없었거나, 여기에서도 소외감을 느꼈다. 또한 게임의 편파적인 진행은 애초 “88온”에서도 ‘세대론의 오류’로 지적되었던, ‘한국 사회의 문제를 20대라는 세대의 품성으로 환원하는’ 습속을 보여줬다. 게임 출시 이전에 20대들에게 주로 경제적 문제에 대한 ‘죄’가 문책되었다면 출시 이후엔 정치적 문제에 대한 ‘책임’이 요구되었다는 것 정도가 차이였다. 


소위 ‘20대 논객’들에게 요구된 것도 그런 문맥 안에 있었다.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그리고 희망은 10대에게……)란 김용민의 주장에서부터 시작된 ‘20대 치죄하기’는 20대에 관한 물음을 “어떤 놈들이길래 이렇게 무력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나?”라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 후 오마이뉴스에서 ‘세대론’ 기획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꼰대’들이 ‘20대’에게 희망이 있는지 없는지를 한참 갑론을박한 후 “어… 그러니까 너희들도 한마디 해야지?”란 취지로 원고 한 꼭지를 배정해주는 말석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신참 자유기고가인 내 처지가 서글플 건 없었고, 다만 이 거지같은 세대론의 꼬라지가 한심했다. 그리고 이런 기획에서 나는 ‘안티테제’의 입장을 취해야 했기 때문에 세대론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대응방식도 있었다. 나와 함께 ‘20대 논객’으로 호출된 노정태란 사람은 현재의 ‘20대 담론’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공박하는 길을 택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20대는 대학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데도, ‘20대 담론’이 사실상 ‘대학생 담론’이 되어가고 있고 그 결과 “미성년자 취급을 받는 대학생이 20대를 위한 일종의 ‘시혜적’ 정책을 요구하는 쪽으로” 방향이 틀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고려대학교를 자퇴한 김예슬이 ‘20대 담론’의 핵심이 된 반면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한 후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박지연 씨나 천안함 희생장병들이 ‘20대’로 호명받지 못한 것이 이 문제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일부 386들이 김예슬의 등장 이후 그녀에 대한 열광과 다른 20대들에 대한 비판으로 후세대를 향한 죄책감의 ‘면죄부’를 발급받으려는 세태에서, 분명 그의 주장은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노정태의 주장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여기서 노정태는 ‘대학생’을 사실상 ‘명문대생’이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대학생’은 20대 중 특권층이 아니고, 이미 그 안에 계급모순과 계층상승을 향한 욕망을 지니고 있는 울퉁불퉁한 집단들의 총합이다. 오히려 문제는 ‘20대 담론’이 ‘대학생 담론’이 되었다는 게 아니라, ‘대학생’이란 말을 우리가 너무 매끈하게 사용하는 것일 수가 있다. 이 지점에선 노정태와 그의 비판자들이 동일한 것은 아닌지? 모든 특수집단의 요구는 사실상 시혜적 정책을 요구하는 것임에도 대학생의 등록금 문제와 주거권 문제에 대한 요구가 시혜적 정책을 요구하는 것이라 보편성을 상실한다고 보는 진단에서도 ‘대학생=특권층’이란 노정태의 인식의 일단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대학진학률 80%를 넘나드는 세태에 대한 올바른 비평은 아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건 윗세대의 규정을 벗어나 20대들이 자신들의 세대에 대해 말하고자 할 때 언제나 ‘대표성’의 문제가 대두한다는 거다. “88온”의 문제에 대해서는 ‘패치’가 가능하다. 이 담론이 한국 사회의 정치문제를 20대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변형되어갈 때, 우리는 그 기저에 깔린 386세대의 욕망과 그들 방식의 정치의 실패에 대해 비평할 수 있다. 그리고 IMF 이후 십년간 전개된 경제적 변동과 이에 수반된 정치적 사건들 속에서 오늘날의 20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논하고, 10대들 역시 ‘같은 세계’를 경험할 거라는 점에서 ‘10대 품성 예찬론’이 민망한 일이란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남는 건 세대를 ‘설명’하는 것과 세대와 시대를 만나게 하는 것은 다른 거라는 거였다.


‘20대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바로 그것을 말하고, 그것에서 세계와 20대를 위한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몇몇 사람들이 노력했다. 다큐멘터리 <개청춘>은 ‘노동하는 20대’에 관해 찍었고, <요새젊은것들>(자리)은 뭔가 좀 이상한 짓을 벌이는 젊은이들을 인터뷰했으며, <이십대전반전>(골든에이지)은 아예 서울대생들의 에세이를 담아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특수’를 통해 ‘보편’을 말하려고 한 사례들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나는 그중에서 최근 출간된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푸른숲)만한 것을 보지 못했다. 몇몇 20대들의 작업이 ‘나’와 ‘세대’간의 간극과 대표성에 대해 고민할 때, 오히려 이 선배세대는 ‘타자’로서 수강생들과 대화를 나누며 사회와 시대의 문제를 통째로 절단한다. 연세대 원주캠퍼스와 덕성여대의 학생들과 2년여의 시간 동안 나눈 이 기록은 이 세대의 인식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그것을 구성해낸 시대를 이해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많은 윗세대들이 그들의 ‘정상범주’에서 다수의 젊은이들을 재단할 때, 그들은 ‘정상범주’가 윤리적 범주가 아니라 다수와 소수를 가리키는 이름일 뿐이란 걸 잊고 있다. 이제 그들의 정상범주에서 소외된 젊은이들이 다수가 되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의 사회비평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20대 담론’의 수혜를 입은 글쟁이를 부끄럽게 만드는 책속 젊은이들의 절절한 쪽글들은 인문학과 문화비평의 언어가 세상을 설명하는데 쓸모가 없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문제는 그것으로 혼자 세상을 재단하지 말고 세상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법을 익혀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대론은 세대품평을 벗어나, 이 시대가 구성한 그 세대의 눈으로 다시 시대를 바라보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고민하는 담론이 되어야 한다. 엄기호의 책은 그것을 위한, “88온”이 아닌 새로운 언어게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똠방

2010.10.29 19:22:43
*.233.150.18

가슴 뜨끔거리는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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