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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음모론 시대'의 이면

조회 수 4015 추천 수 0 2011.03.09 12:19:45

*오해가 있어서 덧붙이는데 여기서 제가 '음모론'이라 밝힌 것은 '조선일보 사주 가문의 누구가 장자연씨에게 성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이것을 은폐한다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좀 넓게 보면 '리스트'가 진실임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이를 막고 있는 것은 어떠어떠한 권력의 개입 때문이라는 생각까지를 포함합니다.) 그 이상의 문제에 대해, 가령 2009년 당시 공개된 장자연씨의 주장이나 이번에 발견된 편지의 진위 여부에 대해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저는 성접대 사건이 있었을 거라고 믿는 편이며 이번에 나온 편지의 진위에 대해선 알 수 없지만 꽤 많은 언론들의 보도가 '장자연씨 편지의 복사본에 따르면'이라고 보도함으로써 일종의 논점선취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의 본문에선 정황적 판단이란 것을 거의 넣지 않았습니다.  



음모론의 번성이 인터넷이란 매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그건 음모론의 '본질'이 아니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매체는 본질이 아니라도 영향을 미친다. 비록 독재자의 '심성의 본질'이 수천 년전이나 지금이나 다를바가 없더라도, 총이 발명된 이후 시대의 독재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나 그 권력 뒤에 숨어 있는 폭력의 양태는 이전과 전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쟈스민 혁명'이 페이스북을 통해 생겼다는 기술 만능주의적 자뻑과 (그에 대항하는) 아랍 민중의 역량을 무시하느냐는 볼멘소리를 넘어서려면 이런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게 다가갈 때에 혁명은 인터넷의 공로이나 음모론은 정치권의 책임이란 식의 '넷부심'의 부적절함도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SBS의 '장자연 자필 편지' 보도 이후의 여론의 향방도 인터넷이란 매체의 속성과 따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좋은 쪽으로도 그렇고 나쁜 쪽으로도 그렇다. 문제는 어느 사회에서나 창궐하기 마련인 '음모론'과 '검증되지 않은 뜬소문'이 공론의 영역을 집어삼킬 지경에 이르렀을 때다. 이런 경우엔 인터넷이란 매체(...때문에 사태가 더 쉽게 이런 방향으로 오게 되었다는 점에 동의하더라도)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가 이 나라의 여론 생태계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음모론'과 '검증되지 않은 뜬소문'의 피해당사자에 해당하는 조선일보가 이 지점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오늘자 사설에서 "경찰은 장씨를 죽음으로 내몬 세력과 인물이 누구이며, 그들과 유착해 그들의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성적 접대를 받은 부도덕한 인물들이 과연 누구누구인가를 가려내 죄(罪)를 묻지도 못했고, 이 사건을 이용한 일부 정치 세력의 악의적 공격에 의해 부당하게 명예를 훼손당한 사람들은 또 누구인가를 확실하게 가려내 그 누명을 벗겨주지도 못했"기 때문에 "일부 언론들까지도 뻔히 진실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며 거기 편승(便乘)해 이득을 노리는 탈선행위에 나서 사회를 더 혼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
조선일보 사설 : 장자연 사건 뒤에 숨은 어둠의 세력 밝혀내라 )


우리는 이 타당한 주장을 부정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인터넷 세상의 '공론 아닌 공론'이 공론을 대체해 버리는 현상에 대한 조선일보의 분석은 이해관계를 빼놓고 생각한다면 누구나 수긍할만큼 적절하다. (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로는
2010/03/13 - [문화/용어] - [경향신문] 사이버 민중주의 와 2010/04/17 - [정치/성토] - [경향신문] 음모론 권하는 사회 을 참조할 것.) 설령 조선일보 사주가문의 행태에 의혹을 가진 사람이라도 지금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저버릴 만큼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 시점이라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조선일보가 결백하고 이 사설이 진심이라 가정하더라도, 경찰이 조선일보가 원하는 그 조치를 취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사실에 있다. 이를테면 (별로 그렇게 믿지는 않지만) 조선일보가 결백한 만큼 경찰 역시 결백하여 뭐라도 하고 싶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사건의 '해결' 앞에 놓인 난관에 대해서는 아시아 투데이의 이 기사를 참조할 것.) 한편으로는 한 여성 연예인의 자살 사건 뒤에 숨어 있는 '어둠의 세력'들의 면면이 조선일보 사주 가문을 제끼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화려하여, '고작 조선일보'를 위해 그들 모두를 파헤치는 일이 엄두가 안 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중 어느 쪽이든 경찰 조사가 다시 진행되어 '거물'을 치지 않을 경우 조선일보를 싫어하는 대중들은 "조선일보가 어둠의 흑막이라서 경찰이 파헤치지 못한다."는 버전의 음모론을 가장 깊게 신뢰할 것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재수사가 진행되어 '거물'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꽤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 사주 가문이 진짜로 이 일과 연관이 없었구나라고 여길 때 어떤 '매니아'들은 조선일보 사주가문이 '거물'들을 제물로 내놓을 수 있는 위대한 베엘제붑임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 사실 이건 입증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는 얘기다.)


물론 이 음모론은 이 다소 복잡한 '현실정치'에 대한 매우 단순한 가설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설령 조선일보와 경찰이 둘 다 뒤가 구린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이 사실을 공유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 <부당거래>에서도 (약간은 단순하게) 제시되었듯 권력기관들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상호견제의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도 단순하게 쓴 것이고 실제로는 내부에서도 정보가 균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변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대개의 음모론이 그렇듯 그게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라도, 사태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있는 가설이라 보긴 어렵다. 아마도 진실은 훨씬 더 애매모호하고 지저분하며 깜깜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론의 차원에서 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주장은 조선일보 사설의 바로 그 주장을 되풀이 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일보와 인터넷이 한마음으로 이런 주장을 되풀이한다 하더라도, 경찰수사에 뒤바뀌는 것이 크게 없을 것이라는 점을 (왠일인지 이미) 알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것을 합리적으로 행사하지 않을 때 '음모론'이 사실 여하와 상관없이 그것들을 삼켜버리려는 욕망에 들끓게 된다는 점은 '자업자득'이라 말할 여지도 있다. 조선일보와 경찰의 해명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여론의 현실은 사회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이 사건의 사실 여부는 판정내릴 수 없지만, 조선일보와 경찰이 그간 신뢰를 잃은 것은 그들 자신의 문제 때문이었기 때문에 이 상황을 방치해야 하는가? 수많은 쿠데타나 혁명이 결과적으로 뜬소문으로 판명난 거짓 선동에 연유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즐겁게 맞이해야 하는가? 조선일보엔 이미 '죄'가 많기 때문에 이것이 확실한 '죄'가 아니라도 우리는 단죄할 수 있어야 하는가? 혹은 내가 그러지 않더라도 그러는 사람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안 되는가? 이것은 하나의 윤리적 문제다. 사실 '헬게이트'의 문을 열 것이냐란 문제에 대한 책임은 대개 개인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이 상황을 방관하더라도 조선일보가 무너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 엄청난 사건의 전조에서, 우리는 대부분 끌려들어가 그 문을 억지로 열게 되거나, 열고 싶어 발광을 한다 하더라도 남들이 따라오지 않아서 못 열 뿐이다. 그래도 생각은 해볼 수 있다. 정당한가?


이를테면 "조선일보와 경찰은 기득권이므로 이 선동은 정당하다."란 견해는 충무로와 평론가의 '선빵'이 <디 워> 사태 누리꾼들의 난동에 책임이 있다는 견해와는 얼만큼 다른가? 조선일보와 경찰은 실제로 기득권이고 충무로와 평론가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고 말하면 되는가? 기득권이란 것도 상대적인 개념이 아닌가? 사건의 팩트 확인과 별개의 심리적 현실을 도입하면, 그것이 뇌내망상과는 어떤 지점에서 차이를 지니게 되는 것인가?


물론 질문은 근본적으로 던지더라도 언제나 상대성의 차이라는 것은 있다. 나만 해도 조선일보와 경찰의 기득권을 말하는 이들을 충무로와 평론가의 기득권을 말하는 이들과는 다르게 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내리지 못했기에, 그리고 나는 '역사의 간교한 지혜' 따위를 주재할 수 없는 일개 상식인에 불과하기에, 이 경우에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렇다. "나는 '장자연 리스트'의 공개를 주장하는 사람들보다는 조선일보의 사설을 지지한다." 


notcool

2011.03.09 1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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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음모론....이라....조선일보가 그동안 언론으로써 피의 사실 공표 등과 관련해 피의자들의 인권, 명예에 대해 보여준 막무가내들을 생각해보면, 조선일보는 언론이 가진 언론 자유를 가장 향유한 매체가 아닌가, 싶구요. 또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조선일보에게 '무죄추정의 원칙' 같은 게 과연 있었나, 하는 것은 뭐......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물론, 언론이 가진 소위 알 권리 같은 것과 충돌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이 보편적 윤리나 상식의 논리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발언권자의 이해에 따라 사안 별로만 작동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원칙'이 아닌, 무죄추정의 '기득권'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흠....저는 님이 '공론'이라는 호명에 사로잡혀서, 사회적 발언권을 독점한 이들의 편향되고 부당한 논리의 유통에 비해 그렇지 못한 이들을 손쉽게 '음모론'이라고 부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원칙적으로 넷상에 퍼지고 있는 논리들을 음모론으로 불러도 무리가 없다고 해도 그렇다면 저 음모론을 음모론으로 호명할 수 있는 '공론'이나 '원칙'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여부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저 개떼같은 음모론자들의 존재가 '공론'의 존재를 상대적으로 증명하는지, 여부도 한번 더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아요.

공론의 바깥이 음모론인가요? 아니 이 음모론의 바깥이 존재하기는 하나요??

하뉴녕

2011.03.09 1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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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조선일보가 무죄추정의 원칙을 잘 지키지 않았고, 언론자유를 과도하게 향유했으며, 기득권세력이라는 것은 동의하는 바이나 이 사안에 있어 그 점을 말씀하시는 건 '인신공격의 오류'에 해당하죠.


2. 사실 현실세계에서 '인신공격의 오류'를 행한다 해서 그것들 모두가 심각한 오류가 되는 건 아닙니다만...이 경우엔 좀 엄청나게 심각합니다. 이 문제를 그런 식으로 처리해 버리면 정적을 숙청하거나 역사를 왜곡할 때 많은 '음모론'을 들이대는 북한은 이명박 정부에게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상조사를 요구할 권리도 없습니다... (실제로 우익들은 이런 식으로 말하죠?) 물론 저는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라 생각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것과 북한의 반론권은 별개의 문제죠. 또한 (<안티조선 운동사>에 기술했던 딜레마인데) 한총련 친구들은 제가 보기엔 '사상의 자유'를 별로 중요한 가치로 취급하지 않는 듯 한데 법정에서 처벌을 받게 될 때는 '사상의 자유'를 통해 국가보안법을 단죄하니 이도 '원칙'이 아닌 '기득권'이 되겠지요?

사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한다손치면 우리의 어떠한 얘기도 무의미해집니다. 모든 정치적 담화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그나마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길이겠죠.


3. 이어지는 얘기인데 아마도 제가 여러차례 글에서 (이 글에 링크된 글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공론'을 호출하는 짓거리들을 많이 했을 겁니다. 공론이 저를 호명하는게 아니라, 제가 있지도 않은 것을 필요하다고 우기는 중이죠. 냉소적으로 말하면 한국은 권력만 있고 공론은 없는 사회입니다. (물론 이는 말 그대로 '냉소적인 언명'으로, 어떤 사회도 공론이 전혀 없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편의상...) 공론을 담당해야 할 언론들도 (주류든 비주류든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본인에게 유리할 땐 사담과 음모론을 도구로 사용하고 불리할 땐 손사레를 칩니다. 음모론자들의 존재는 공론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의미를 획득하는 지점에서 공론은 자신의 부재를 증명합니다.


4. 그래서 저는 받아서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 음모론의 바깥이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안티조선 운동사>의 사이버 민중주의 챕터를 기억하시겠죠. 박재범 비판 여론을 규탄하면서도 그것을 트래픽 장사에 활용해먹던 동아일보의 그...) 정말로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떠들고 있는 겁니까? 포스트모던적 수사는 당위를 뒤집어도 나오는 겁니다. 이를테면 제가 니체처럼 "신은 죽었다."라고 말하지 않고 "공론이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 것이 불만이신 모양인데, 사실 니체도 어쩌면 절실히 신을 찾아다녔던 인간일 수도 있지요. 그의 단편 <광인>을 보면 좀 그런 느낌이 납니다. 신이 죽었는데, 사람들은 신이 죽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저 좋을데로 떠들고 있으니 화자가 화딱지가 나서 성질을 부리는 것이 <광인>의 내용이죠.


5. 저는 문성근이 왜 조선일보 앞에 가서 일인시위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선일보가 사설과 사회면 기사에 쓴 바 이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요? 문성근은 조선일보 사주나 기자들이 이 사태에 관계가 있다는 무슨 심정적 근거를 가지고 있을까요? 조사를 해서 무언가가 더 나온다면 항의시위를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지금이 그런 상황인가요? 음모론이 음모론에서 끝나지 않는다면, 조선일보가 싫어하는 우리 모두는 실은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자금을 받고 있다고 말해도 할 말이 없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그래서 북한 인민들이 굶고 있나 봅니다...

notcool

2011.03.09 16: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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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이야기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언론을 포함한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허구'를 조선일보 스스로 폭로해 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최소한 대한민국의 공론 혹은 언론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환타지에 가깝지 않나요? 님이 말한대로 제 이야기가 '인신공격의 오류'가 되려면 '공론'과 '인간 일반'의 '상식', '공정성'이 '상수'로 작동되어 왔다는 준거가 필요하지 않나요? 그런데, 님의 가정은 논리적이긴 하지만 지나친 일반화에 가깝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저도 님처럼 말해볼까요? 제가 조선일보에 대해 정치적으로 적대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경우 님이 말하는 공론의 기능, 인간 일반의 권리와 상식, 공정성은 아주아주 예외적으로만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은데요. 특히 우리나라 언론 환경에서는 더욱 더요.

2. 제가 말하는 기득권은 '사회적 발언권'의 문제와 연관돼 있습니다. 단순히 논리적으로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죠. 말씀하신 북한이나, 한총련의 딜레마는 그 상황에서 그들이 얼마만큼의 발언권을 가지느냐, 보장받느냐의 문제이지 그들이 가진 논리적 일관성은 부차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요. 즉 제가 '기득권'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원칙'이라는 허구가 '발언권'에 따라 논리적 일관성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거죠.

3. 그런데 이건 뭐 저의 아주 개인적인 의견이고, 그냥 님의 독자로써 말씀드린다는 전제 하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만....어떤 주체도 공론을 호출할 수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는 님이 '공론'을 반복적으로 호출하는 일에 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가능하다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님이 '공론'을 호출하는 게 아니라, '공론'이라는 허구가 님이 가지는 구체성과 입장을 지우고 님을 '좌표'화 한다는 생각이 사실 많이 듭니다.

4. 반대로 만일 님이 스스로의 구체적이지만 때로는 편향되기도 하고, 적대적이기도 한 입장을 완전히 지우고(혹은 외면하고) 좌표화되는 것을 감내하고서라도 '공론'에 대한 호출을 중지할 수 없다고 한다면..저도 그 결과를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도 님이 마침내 공론을 호출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냥 뭐 독자로써 혹 님이 뭔가 새로운 정치 주체가 되기 전에 그냥 냉소적 주체가 되기로 투항하게 되는 건 아닌가..뭐..제가 님을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냥 그렇다구요..

5. 문성근이 조선일보 앞에 가서 일인 시위를 하는 이유는요. 모르겠습니다. 꼭같이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은 아닌 것 같구..또 머 피의 사실 공표 뭐 이런 논란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그렇구요. 걍 선배된 연예인으로써 간 것이 아닐까 싶네요...여담인데, 아주아주 예전에 문성근 아저씨 메이데이날 어느 대학교 운동장에서 막 연사로 나섰는데요. 다른 연사들이 뭐라뭐라 외치면 스탠드에 앉아있던 군중들이 '투쟁!'하고 화답을 하는데, 막판에 성근이 아저씨가 뭐라뭐라 외치니까, 다들 와~~ 하고 박수를 쳤더랬습니다. ㅋ

하뉴녕

2011.03.09 17: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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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제가 존재하지 않는 공론을 호출한다고 우려하시지만, 제가 보기에 님은 존재유무를 증명할 수 없는 '정의의 신'을 호출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정의의 신'은 인간세상의 사법권력이나 윤리적 잣대와는 달리, 사태에 대한 적합성 판단을 1) 그가 지금까지 지어왔던 죄의 크기 와 2) 그가 가져왔던 권력의 크기로 가져가지요. (물론 2)는 1)로 소급될 듯도 합니다. 권력이 크면 죄도 크게 지을 수 있겠죠.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일종의 '인과응보론'이죠. 하긴 역사를 볼 때엔 대단한 유혹입니다. 설령 이렇게 말하는 저라도, 제가 역사가이고, 시간적으로 안전하게 떨어진 거리에 있을 때, 조선일보가 어떤 유언비어에 의해 멸망했다면 이런 평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실을 멀리한 대가를 치루었다."


그러나 여기서 제가 지적한 문제는 조선일보가 아니라 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이죠. 이를테면 1) 제가 사람들이 이번에 조선일보를 욕하는 이유가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2)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조선일보에게 죄가 많다고 생각한다고 칩시다. 이때에 제가 '침묵'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저는 침묵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다른 일이 많고, 이걸로 조선일보가 망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혹은 앞장서서 조선일보가 그 이유 때문에 부정하다고 지탄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괜히 제가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말을 대충 사용한 것 같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원칙은 법원이 죄를 확정하기 전까진 정황상 죄가 맞는 것 같아도 무죄를 추정해 줘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 제가 하려는 말은 그보다 더 넓은 의미, 지금 상황에서 조선일보 사주 가문의 누구가 연예인 성상납 사건에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는 것 같단 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유죄 확정이 확실해 보이는 프로게이머 M군에 대한 애도가를 법원 판결 이전에 썼었죠.) 애초 2년 전에 장자연의 문건에서 나온 '조선일보 사장'에 대해 '(당시) 스포츠 조선 사장'이란 검증이 있었다면, 새로 공개한 편지에서도 아직 조선일보 누구란 말도 나오지 않는 시점에서, 그를 걸고 넘어지는 건 그냥 연예인 성상납에 참석했을 가능성이 있는 '대한민국 1%' 아무나 호출하는 것에 다름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존재하지 않는 리스트에 대해 그럴리가 없다고 분개하고 그 '악마'의 이름을 집어넣은 새로운 리스트를 억지로 만들어내는게 전형적인 음모론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적'을 거꾸러뜨리기 위해 윤리적으로 부당(하다고 생각되는)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차라리 제가 조선일보에 어떤 사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없어진 후의 세계에 대해선 상관하지 않겠다는 정당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이 문제에 대해 아무 고민이 없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상대를 비판할 때엔, 그 비판대상이 없어진 후의 상황도, 그 비판의 방법이 횡행할 때의 상황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님이 믿는 '정의의 신'이 구약성서의 야훼처럼 직접 이 세상에 개입하지 않는 다음에야, "힘이 센 녀석들이 유언비어에게 당하는 건 정당해."라고 믿는 약한 녀석들은 당장 조선일보가 당하는 것보다 훨씬 약한 파도에도 궤멸적인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은데 말입니다. (외려 인터넷에서 습관적으로 분노하는 이 군중이 조선일보를 '멸망'시킬 가능성에 대해, 저는 별로 높게 보지 못하겠습니다.)


본문에서도 분명히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님은 제 얘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님은 위 문단에서 명백히 구별되는 1)과 2)의 사실을 뭉뚱그려 비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님은 조선일보가 합리적 근거로 비판받을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부정하고 ('무죄추정의 원칙' 부정) 조선일보의 결백을 우리가 판단해서는 안 도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에 대한 판단)


이 얘기는 대단히 난감한 것입니다. 님이 믿고 있는(?) 그 동양적인 '인과응보의 정의의 신'을 호출한대도 그렇습니다. 대체 그 힘의 판단은 어떤 식으로 내려지는 겁니까? 사실 조선일보도 그것을 이미 써먹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자신들은 정치권력에 비해 약자이니 정당하다고 우겼더랬습니다. 이에 맞서 소위 개혁세력은 이제는 언론권력이 정치권력보다 우위인 시대라고 맞서기도 했고, 상대방을 '수구기득권세력'이란 이름의 '영원한 강자'로 호명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노동자계급의 대변인인 스탈린이 자본주의에 비해 영원한 약자이니 언제나 정당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혹은 일제시절 핍박받던 항일무투파를 계승한 북한 정권이 친일기득권 주구의 후예인 남한 정권보다 언제나 정당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님이 착각하는 부분은 제가 냉소적인 사람인 것은 제 글의 논지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 인식이 냉소적으로 변하는 지점은 이 글의 논지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님의 항변에 대해 귀기울일 때입니다. 저는 제가 주장하는 대로 행동하든(?) 님이 방관하는 대로 행동하든(?) 별반 달라질 것이 없고 따라서 이런 얘기들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제가 언젠가부터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을 정서해서 다른 곳에 보내지 않고 이 블로그에서나 쓰게 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어떻게 써도 오해될 얘기에 대해 접근하려면 제가 엄청나게 품을 들여 친절하게 써야 한다 생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정되는 모든 오해에 싸움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저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notcool

2011.03.09 18: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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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고 보니 저는 조선일보의 정당한 자기 변호(?)를 부당하게 비판하는 이들을 옹호한 적도 비판한 적도 없군요. 다만, 이 음모론의 바깥이 존재하느냐고 물어봤을 뿐인데.....

제 이야기가 어떤 점에서 인과응보론으로 비춰졌는지는 모르겠네요. 조선일보가 무죄추정의 원칙이든 피의 사실 공표든 그 원칙들을 무시해왔고, 그들의 자기 변호는 논리적 일관성이나 공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발언권의 문제라고 말한 것 같은데요..그러니까 그들의 자기 변호는 '무죄추정의 논리'와 무관한 '발언권'의 문제이므로, 그것을 '무죄추정의 원리'로 판단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제가 발언권의 문제라고 했잖아요? 조선일보는 인과응보가 작동하지 않는 영역에 있다는 게 굳이 말씀드리자면 제 말의 논지에 가깝지 않을까요?

2. 머 제가 본의 아니게 피로감을 드린 것 같아서 걍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릴께요. 저는 공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 역시 무슨 황금률과 같은 공정성을 가진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님이 공론이라고 말하는 그것 역시 여러가지 당파적 입장 가운데 하나라는 겁니다. 스탈린이 자본주의에 대해 언제나 옳을 수는 없지만, 코뮤니즘이 자본주의에 대해 언제나 옳다고 말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당파성 아닌가요? 저의 오해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님이 공론을 호명할 때 마치 당파적 입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어떤 공정성을 전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공정성은 '정치적 적대'와 상관없이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구요. 또 더 오해하자면, 님은 정치공학적 적대가 정치적 적대와 완전히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구요. 그래서 제가 님을 감히 냉소적 주체가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구요....머 암튼 성의 있는 답변 감사합니다.

허...

2011.03.10 01:15:31
*.183.41.95

notcool과의 논쟁을 지켜보니, 이건 뭐 부정할 수 없는 한윤형의 승리네.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절대적 원칙'일 수 없다고 치더라도, 지금 상황에선 무죄추정의 원칙의 허구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런 약점을 발판삼아 아무나 찍어 올리는 자기자신들을 정당화하려는 이 음모론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게 훨씬 상식적인 일이지. 당파가 어디에 있나, 진영이 어디에 있나, 나는 누구편이가 따위는 사실 여기 별 쓰잘데기가 없다고 본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공고한 이상적 이론이 현실이란 지평 내에서 권력 불균형에 영향을 받는다면, 이런 언칙 자체를 해체시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이론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 권력 불균형에 대한 개입을 요청하는 것이 더 맞지 않나?

notcool

2011.03.10 09:29:43
*.53.247.194

제가 이야기하는 건 조선일보 반대편으로써의 당파성이 아니라...공론이라고 호명하는 것의 당파성이구요.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의 당파성이에요....

허...

2011.03.10 10:03:20
*.183.41.95

당파성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완벽한 선택은 없는 법이고, 적어도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 스킬이나 뽑기보단 나아요.

하뉴녕

2011.03.11 11:04:25
*.149.153.7

저는 님이 "공론장에도 당파성은 있다."는 하나마나한 얘기를 왜 하시는지 잘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현실인식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님의 관념과 언어체계에 입각한 유희적 비판으로 여겨집니다.


제가 공론 공론 그러는 이유는 딱히 대체할 단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적절한 단어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됩니다. 이를테면 상이한 주장들을 지지하는 근거들이 모든 방향에서 유입되는데 그것들의 설득력이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문성근이 조선일보 앞에 가서 일인시위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조소하지 않는 이 상황은 모든 근거들에 대한 설득력 판정의 기제가 없는 상황입니다. 제가 공론이 필요하다고 말한 건 그 필터링의 기제를 말한 것입니다. 언제 제가 그것이 중립적이라고, 혹은 그 안에 당파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나요? 말로만 재단하면 빨간색과 노란색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을 설정할 수 없으므로 빨간색이든 노란색이든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경계션은 명확히 말할 수 없을 지언정 빨간색이나 주황색이나 노란색과 같은 말들을 의미있게 사용할 수 있지요. 물론 그 안에도 당파성은 있을 겁니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권리'라는 건 그 권리를 무시하는 이들에게까지도 보장될 때에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님 말로 번역하자면, 공정성이나 불편부당함을 '가장'할 때만이 그 원칙이 당파적으로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죠. 솔직히 무죄추정의 원칙이 무너지면 당파적으로 더 피해를 보는 건 소수집단과 약자들입니다. 국가가 무너지고 다들 텍사스 건맨이 되기 시작하면 기업이나 마피아보다 일개 개인인 제가 더 피해를 받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근데 당장 산적떼들이 총들고 조선일보를 습격했다고, 국가의 붕괴에 환영해야 합니까? 제 얘기는 그런 차원에 있는 겁니다.

notcool

2011.03.11 14:18:19
*.53.247.194

중언부언이긴 한데 명확하게 하면 공론장에도 이런저런 당파성이 있다, 등장한다, 가 아니라 공론이라는 것 자체가 당파성을 가진다는 것이구요. 그것은 님이 지적했듯이 공론이 필터링의 기제로써 작동하기 때문이죠. 바꿔 말하면 공론의 필터링으로써의 기능이란 배제의 논리와 편입의 욕망을 통해 작동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공론이라는 호명이 주는 뭔가 공적이고, 공공성의 문제라는 것에는 언제나 환타지가 섞여 있다는 거구요. 물론, 그렇다구 그 환타지를 무조건 깨뜨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이 필터링의 작용을 '공론'이라고 호명하는 것과 그것을 들여다보는 방식이 좀 단선적이라는 거에요. 과연 그런가? 하고 물어보게 됩니다.

님이 조선일보의 사설을 옹호한다고 할 때 그 지점을 이해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문성근 아저씨도 웃기는 짓거리인 것도 맞구요. 조선일보가 공론의 기능을 하거나 말거나,의 비판의 문제와 '공론'의 기준으로 조선일보를 판단함으로써, 충분히 옹호할 때는 옹호해야 한다는 논리에도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님의 논의에 동의하려면 님이 공론의 조건, 그러니까 필터링의 기준, 즉 배제와 편입의 논리의 기준이 일관되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 일관성이란 것이 그냥 논리적 일관성만으로 확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냐는 질문이에요.

님이 옹호하는 조선일보의 사설을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판단해도 되는 걸까요? 정말 무죄추정의 원칙은 '공론'의 논리를 판단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아니 합당한 판단 조건일 수 있을까요? 만일 그것이 그렇다면 님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그 합당한 판단 조건으로 내세운 이유는 뭔가요? 제가 보기에 님이 '무죄추정이 원칙'을 최소한 합당한 판단 조건이라고 보는 이유는 그것이 정치적 입장이나, 적대와 상관없이 '원칙적으로' 옳다는 것 외에 별 근거가 없지 않나요? 저 '원칙'적이라는 가치 판단을 사실 판단으로 전환할 때 남는 것은 법조문에 적힌 근거 뿐인데...조선일보라는 특수한 언론 현상과 또 언론이 가지는 '무죄추정의 원칙'vs'알 권리' 사이의 갈등은 사실상 '무죄추정의 원칙'이 그저 특정한 가치판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온 것은 아닐까요?

제가 보기에 조선일보가 그런 사설을 쓴 것은 '장자연'씨가 죽은 사람으로써 '면소'된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는 장자연씨를 고소할 수도 없고, 명예훼손으로 기사꺼리를 만들 수도 없죠. 그 편지의 내용을 장자연씨 스스로 취소할 수 없으니, 조선일보도 대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부득이 자신의 발언권을 사용한 것인지도 모르죠. (물론 뭐 방씨들이 피소된다고 해도 유죄인정이 될지 여부에 대해서까지 다 조사했겠죠). 그런데, '장자연'씨는 자살을 통해서야 겨우 '면소'된 주체가 될 수 있었지만, 조선일보는 스스로의 '발언권'을 통해 그동안 거의 쭈욱 '면소'된 집단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법적 개념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임의대로 '불러낼' 수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약자들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는 것은 올바른 가치 판단이기는 하지만, 그게 언론, 특히 조선일보에서 사실판단의 기준으로 작동한 적이 있나요?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들은 조선일보라는 언론의 필터링에서 이미 배제되어 '무죄추정의 원칙'이 논란이 되기도 전에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사실 판단'입니다. 조선일보에서 '무죄추정의 원칙' 정도의 권리를 누리거나, 설사 누리지 못하더라도 논란이 되려면 뭐....

제가 보기에 님은 공론을 조선일보건, 한겨레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일정한 기준으로 그것을 옹호합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조선일보의 무죄추정의 '권리'가 정당하게 작동한다고 해서 약자들의 무죄추정의 '원칙'이 일관되게 보호될까요? 그건 전혀 다른 문제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님도 그건 전혀 다른 문제이므로 조선일보의 무죄추정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하겠죠. '무죄추정의 원칙'은 물론 어떤 인간이나 공동체에게도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법적 권리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 약자들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은 '공론'의 필터링 기준에 따라 거의 배제되는 권리입니다. 즉 말하자면 조선일보의 논리 안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자신들의 논리와 입장 안에 편입될 수 있는 이들에게만 보장되는 권리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조선일보를 '공론'의 기준으로 호명하면 할수록, '무죄추정의 원칙'은 보장된 기본권이 아니라, 선별적 특권으로 작동되어 왔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은 아닐까요.

즉, 이와 같은 사실 판단 이전에 논리적 가치 판단만으로 언론의 판단 기준을 세운다면 님은 저 수많은 사실들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이론적으로 존재 가능한 주체'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기우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오직 상대적으로만 올바를 수 있을 뿐인, 메타비평적 주체는 오직 논리 사이에서만 자신의 좌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저의 사견인데요. 그런데 그 좌표는 일관된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논리적 일관성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좀 의문이 듭니다.

제가 음모론의 바깥이 존재하느냐, 고 물은 건 저 음모론이 실은 조선일보 같은 '공론'들이 배제시킨 논리들의 거주지가 아니라, 저 공론에 미친듯이 편입하고 싶은 욕망들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두서 없네요...쩝...

하뉴녕

2011.03.11 16:28:01
*.149.153.7

"제가 음모론의 바깥이 존재하느냐, 고 물은 건 저 음모론이 실은 조선일보 같은 '공론'들이 배제시킨 논리들의 거주지가 아니라, 저 공론에 미친듯이 편입하고 싶은 욕망들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좀 흥미롭네요. 근데 전 (아시겠지만 이 표현에서 약간 오해의 소지가 발견되어서) 조선일보가 쓴다고 다 공론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말씀을 들으니 이런 정도의 질문거리가 떠오르는데요.

1) 필터링이 당파적이라 '문제'라면, 필터링이 전혀 없는 상태는 존재할 수 있는가?

2) 만일 그런 상태가 있다면, 그게 필터링이 있는 것보다 좋거나 진보적일 이유는 뭔가?

3) 필터링이 당파적이라 '문제'가 안 된다면, 이 문제제기의 의의는?


그외 구체적인 영역에서는 제가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것이 마뜩치 않거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말을 제가 좀 안일하게 쓴게 사실이고 그 원칙이 언제 어디서나 관철되어야 할 원칙이라고 보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 경우엔 장자연 사건과 조선일보를 엮을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들이 사라졌는데 여전히 그 연관관계를 만들기 위한 망상이 횡행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뭐 편지들을 더 봐야겠습니다만...)

게다가 저는 누리꾼들의 조선일보 비판을 방어해야 하는지, 방관해야 하는지 문제에 대해서도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퀘스천으로 남겨놓은 셈인데, 그래서 님의 비판지점이 어디에 있는 건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론이란 말을 단순하게 쓰는 건 하버마스주의자여서가 아니라, 복잡하게 설명하려고 하면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에...이글 본문에서 공론장에 대한 설명을 notcool님이 하는 것 만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글이 산으로 가게 되겠지요....-0-;;;

notcool

2011.03.11 18:05:23
*.53.247.194

1) 필터링이 당파적이라 '문제'라면, 필터링이 전혀 없는 상태는 존재할 수 있는가?
- 필터링이 당파적이라서 문제라는 건 아니고...필터링은 당파적인데, 즉 공론의 형성은 실제로는 당파적인데, 때때로 공론에 대한 비판이나 요구가 '초당파적(?)'으로 흐른다는 게 제 문제제기구요. 근데 조선일보의 경우 그게 공론이 당파적일 수 있다고 해도, 언론으로써 부르는 게 적절하냐는 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조선일보는 당파적을 넘어서 '사파적'(- -;;)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안티조선운동사를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한 것이 만일 조선일보가 '당파적' 지향이 뚜렷한 언론이었다면, 안티조선운동이 그렇게 많은 정파들이 자기 색깔을 모두 지우면서(?) 싸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사실 들었습니다. 사실 언론이 가진 아주아주 기본적인 기능은 배제, 편입을 통해서 주체들을 국가에 복속? 시키는 것일텐데요..조선일보가 어떤 국가를 지향하느냐,의 문제는 더 이야기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조선일보는 국가 통합의 이데올로기조차 거의 작동하지 않는 게 아닌가, 싶어요.

2) 만일 그런 상태가 있다면, 그게 필터링이 있는 것보다 좋거나 진보적일 이유는 뭔가?
- 필터링은 상수고, 필터링이 없는 공론은 없죠. 필터링이 공론의 존재이유니까요.

3) 필터링이 당파적이라 '문제'가 안 된다면, 이 문제제기의 의의는?
- 1)번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 -;;

음모론이 공론으로부터 게토화된 논리라면, 즉 게토처럼 걍 거기 다 몰아넣으면 사회적 비용이 덜 드니까요. 근데 저 게토화된 음모론자들이야말로 공론이 정말 공정하고, 공적이며, 원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일 거에요. 또 그래서 언론의 배제, 편입의 논리에 가장 순치된 이들일 거구요. 저 음모론들이 다 공론에 자기 지분을 갖고 떠드는 상황은 우리나라 언론들이 공론의 조건조차 잘 못갖춰서, 저 음모론들을 게토화시키는 데 실패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아마도 그 장면이야말로 국가 이데올로기가 가장 원하지 않는 장면일 겁니다. 국가 이데올로기가 언론을 공론으로 호명하는 이유가 충족되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근데, 저 공론의 허구를 유일하게 해명하고, 비판할 수 있는 존재는 음모론도, 공론에도 못끼고 논의의 지형도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들이거든요. 이를테면 정치적 적대의 입장이 분명한 것들이요. 적대까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당파적 입장이 분명한 것들이 아닐까, 싶어요.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대충...머... 그리고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할께요. 제 용량이 한참 모자라네요.

하뉴녕

2011.03.09 17:33:25
*.33.84.154

그리고 notcool 님의 논지에 따르면 안상수 아들내미의 대입 비리 의혹을 부정한 조국 교수야말로 역사의 반동인데, 이는 그가 역사의 큰 기득권자이며 큰 죄를 지은 서울대와 한나라당 모두를 구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상수 아들이 안상수의 덕을 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뭐겠습니까? 음모론 바깥엔 뭐가 있을까요? 서울대학교 로스쿨 입학기준? 그게 다 뭡니까? 어차피 그것도 '공정'하지 않긴 마찬가지일텐데... 그리고 이런 얘기는 제 냉소성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notcool 님의 주장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냉소적 결말이죠...;;;

notcool

2011.03.10 10:22:45
*.53.247.194

그래도 이건 좀...제가 한 이야기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는....님은 제 이야기를 너무 비약시킨 거 아님?....암튼 성의있는...감사합니다.

그래도 그들의 주장엔 동의할 수 없습니다

2011.03.09 18:00:07
*.56.77.69

현실에서 가장 합리적인건 때로 가장 최악의 수라는건
바로 우리가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내고 경제성장은 커녕 물가도 못 잡는
무능한 경제대통령의 친서민시대를 선거로 이룩함으로써 끝난 논쟁일겁니다..

오히려 음모론이 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는 지혜의 열매라는건
불행히도 위키리크스가 증명하지 않았나요?

권력기관간 상호견제따위는 대한민국에 존재한 적이 결.코.단.하.루.도.없으며
정보는 충분히 공유를 넘어 오히려 1인자 혹은 실세에게 집중되어
이들에 의해 조정되고 있을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밤의 대통령도 나오고 자본으로 헌법위에 군림하는 재벌도 나오는거죠

어차피 진실따위는 밝혀져도 거짓으로 매도되는게 현실입니다
우리는 비록 힘없는 역사의 상식인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사설따위로 궤변이나 늘어놓는 자들의 거짓에 동의하기보다는
차라리 냉소적으로 명단 공개를 통한 음모론자들의 자체정화를 더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당위적으로 옳은 주장을 하더라도 그것에 반하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자들에게
동의하는건 영혼을 팔고 그들에게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것보다
우리가 더 경계해야할 일입니다
그것이 제가 위키리크스로 얻은 교훈이며 노무현을 죽음으로 내몬
대중의 한사람으로서 가진 반성입니다..

하뉴녕

2011.03.09 18:10:25
*.33.84.154

위키리크스는 국가기관의 정보를 빼온 것이구요. 얘기가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저는 위키리크스 보니까 일반적인 '음모론'에 대한 신뢰가 뚝 떨어지더군요.

권력을 가진 치들, 세상을 그렇게나 '대충' 운영하던데 도대체 거기 무슨 치밀한 '음모'가 존재한단 말입니까?

지나가다

2011.03.09 18:01:20
*.218.117.62

조선일보 사설은 한마디로 말해 장자연 죽음의 배후를 철저하게, 한 점 의혹도 남기지 말고 파헤치라는 것이로군요. 물론 이 사설을 올린 의도에 대해선 여러 가지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1. 정말로 무관하고 떳떳하기 때문에 사실이 밝혀진다 해도 부끄러울 게 없다. 2. 사주와의 연관은 있지만 대의를 위해서 사실을 밝히라고 한 것이다. 3. 도마뱀 꼬리 자르기처럼 스포츠조선 사장만 희생시키기로 결정했다. 4. 사설에서 무슨 소리를 떠들건 검경에서 재조사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가능성 높음)

그나저나 문제는 이제부터... 조선일보의 이 사설은 '장자연 리스트'의 공개를 주장하는 인터넷의 일반적인 여론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 거죠?

하뉴녕

2011.03.09 18:16:16
*.33.84.154

첫문단은 어차피 의도추정이므로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더 큰 문제는 (어쩌면) 재수사를 하더라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데에 있을 겁니다.

둘째 문단에 대해선, 무슨 차이가 있냐하면, 확인되지 않는 (설령 장자연씨가 직접 쓴 것이 있다 해도 그것이 진실임은 또 다른 문제란 점에서, 그리고 누리꾼들이 만들고 있는 리스트가 장씨의 편지의 내용에서 연유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리스트에 의한 여론재판을 용인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여론재판을 옹호할 수 있는 말은 그런 것이겟죠. 분명히 '악'이 존재했고, 제대로 된 '처벌'이 있을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확실한 죄가 아니든 우리가 심판의 총을 난사하는 것이 정의다...라는...

사고실험

2011.03.09 19:06:32
*.18.199.173

한윤형은 장자연 편지 문제로는 일찌감치 손털었네요. 자기는 오히려 <조선일보> 사설의 맞는 소리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요.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이런 모습 보면 역시 좌파 포스트 386세대의 총아답다 싶습니다.

http://www.skepticalleft.com/bbs/board.php?bo_table=01_main_square&wr_id=94880

숨은 인재를 몰라 뵈었습니다.

하뉴녕

2011.03.09 19:19:03
*.62.215.80

읽어봤는데 링크하신 글은 제 글의 논지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안 그래도 그런 오해가 있을까봐 본문 앞에 몇문장을 추가한 참입니다...

한편, 난닝구 커뮤니티에서는

2011.03.10 00:20:35
*.229.204.119

http://theacro.com/zbxe/free/348672
까느라 정신이 없네요

지나가던 행인

2011.03.10 00:49:09
*.40.242.62

조선일보 사설을 보면 기본적으로 '우린 뭐가 뭔지 잘 모르지만, 경찰이 수사를 애매하게 해서 뜬소문이 나도는 거 아냐, 그러니 그거 안돌게 잘 좀 조사해' 라는 말을 하고 싶은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경찰이 수사를 통해 이런 진실을 소상하게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에 일부 언론들까지도 [뻔히 진실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며] 거기 편승(便乘)해 이득을 노리는 탈선행위에 나서 사회를 더 혼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라는 문장에서 "[뻔히 진실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며]"라는건 뭘 말하는 건가요? 이 건 관련해서 뭐 어찌 돌아가는지 통 몰라서 말입니다;; 영 찜찜해서 그냥 넘기기가 그렇군요.

이상욱

2011.03.10 10:35:58
*.151.40.188

진실은 논변에 있지 않습니다. 차라리 조선일보 사설의 심리적 저변에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이해하는 게 보다 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궁예는

2011.03.10 10:44:20
*.229.204.54

관심법으로 모든걸 해결보려고 하다가 망했지요.

이상욱

2011.03.10 11:30:50
*.151.40.188

네.ㅎ 그렇습니까? 제 말씀은... 조선일보의 사설을 지지하는 것이 보다 사실적이고 이성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우선에서 그들의 의도를 모른다면 혹은, 모른 체 한다면 더욱 더 진실에 멀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늘타리

2011.03.10 15:24:23
*.36.172.167

'진실은 논변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실 때의 진실은 아마도 윤형님이 이 글에서 말하고자 했던 '진실'과는 그 층위가 다른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글은 이상욱님이 말씀하시는 그 층위의 진실에 대해서는 별도의 '사회학적 설명'이 필요한 별개의 문제라고 제껴놓고 있다고 봅니다.

이글에서는 훨씬 일반론적이고 개인적인 윤리적 판단에 직결된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저는 오히려 너무 일반론적이고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별다른 논쟁점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조선일보와 장자연씨 사건이라는 좀 뭐랄까 극단적인 예를 화두삼아 이야기를 전개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렵게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데요, 아마 나치 옹호자(부역자?)의 발언'권'마저도 옹호했다가 엄청 욕먹었던 촘스키의 사례와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결국 윤형님이 이 글에서 던지는 문제는 거시적 수준에서의 진실을 옹호하는 이들이 반대편에게 상식적이고 합당한 시각이나 접근을 선점당하고, 그 반대급부로 음모론을 무기삼아 취할 수밖에 없을 때 개인이 현실적으로 어떤 판단을 해야하는가 이겠죠. 저는 기본적으로 윤형님의 의견에 동의를 하는데, 생각을 정리해보니 대략 세 가지 이유가 떠오릅니다.

첫째, 음모론은 본질적으로 그 진위를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반증 불가능하죠. 그 이유는 음모론 자체가 과학적, 법적 권위에 의해 기각된 결론을 사후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음모론은 그 자체로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둘째, 정치적으로 음모론을 옹호하기는 어렵습니다. 궁극적으로 음모론 같은 담론으로 어떤 사회적, 정치적 세력이 결집력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기적인 역할을 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장기적으로 음모론적 접근에 의존하는 것은 결국 건강한 대항세력이 형성되는데 악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음모론을 판정하는 기준이 되는 법적, 과학적 권위의 근거들에 권력이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결국 사회적 상식, 진리라는 것이 기득권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거나, 사회적 약자 내지는 대항세력이 정보접근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어 결국 음모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과정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음모론 자체를 비호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건강한 비판 세력은 두 문제를 잘 구분해서 선별적으로 비판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뉴녕

2011.03.11 10:57:44
*.149.153.7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느냐는 문제에 대해선, 이러쿵 저러쿵 얘기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몇 개의 주장이 설득력을 지닌 채 공존할 수 있겠구요. 그런 작업의 유효함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본문에 약간 써놓았잖아요?) 하지만 제가 제기한 문제는 다른 영역에 있는 것입니다. 님이 말씀하신 영역만 정당하고 제가 얘기하는 영역이 부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갑제의회개

2011.03.11 09:26:22
*.149.40.249

'공론장이 없는데 왜 조선일보를 욕하나'는 무슨 의미입니까

하뉴녕

2011.03.11 18:51:15
*.149.153.7

에에? 누구에게 무슨 질문을 하신 건지 ;;;

허...

2011.03.12 17:11:49
*.183.41.95

근데 한윤형씨에게 진짜 부탁드리는 데, 어처구니 없이 물고늘어지는 댓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허수아비 치기에 열중하는 댓글, 지가 신경써서 독해할 생각도 안하면서 죽떠먹여달라고 손님인양 행세하는 덧글, 그냥 어떻게든지 간에 윤형씨를 조롱하고 비꼬는 게 승리라고 생각하는 뇌내망상자의 댓글등등...이런 것들은 좀, 완전히 까마득하게 무시해주실 수 없어요?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한윤형씨는 너무 친절해. 그냥 친절한 것도 아니고 너무 지나치게 친절해. 이러다 성자 되시겠어. 수없이 많은 댓글속 논쟁들을 목격해왔지만, 유의미한 발전이 이뤄진 경우는 단 한차례도 본적이 없고 끊임없는 순환이라던가 존심 내세우기라던가 주장밖에 없는 독선이라던가에 너무 심하게 시달리시더라구 윤형씨가. 이렇게 시달리고 친절해질 시간에 조금만 더 차도남이 되시면, 진짜 윤형씨의 황금같은 시간들을 지켜낼 수 있을것만 같아...

개떡같은 댓글에 찰떡같이 답글 달 시간에 차라리 글을 써주시거나 휴식을 취하시는 게 백만배는 더 나을 듯. ㅡㅡ

음..

2011.03.13 03:46:11
*.214.245.240

저도 예전엔 님처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좀 다릅니다. 흥분한놈한테 그자리에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라며 잘못을 논리적으로 지적해본들 더 화를 돋울뿐인 건 맞죠.

그러나 제 경험으론 말이죠. 상대의 비판이 논리적이라면 감정이 가라앉고 혼자가 되었을 때 나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살피기 마련이란거죠.

그런의미에서, 제가 볼 땐 notcool정도의 머리라면 한윤형씨의 글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

2011.03.13 07:01:39
*.183.41.95

낫쿨님정도의 제기라면 그나마 양호한 거죠. 낫쿨한테도 제가 이런 소릴 한다면 저는 한국에서 못살아요. 븅신들 어떻게 참아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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