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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동아일보의 문제

조회 수 5560 추천 수 0 2011.02.28 19:24:24

동아일보는 1990년대 말만 해도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와는 사뭇 다른 신문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광고탄압'을 받을 만큼 가장 정권에 비판적인 신문이었단 점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광고탄압 이후 사주가 굴복하여 113명의 기자들을 해직한(1975년. 해직기자들은 동아투위를 결성. 이들 중 상당수는 훗날 한겨레신문의 창간 멤버가 된다.) 이후에도 다른 보수언론과는 차별점이 있었다. 가령 1980년 광주항쟁 때, 조선일보가 전두환 찬양기사에 열을 올리던 그 시점에 동아일보는 5일 동안 사설란을 공백으로 내보냈다. 1990년대 초반에는 김중배 편집국장이 참신하고 과감한 편집을 선보이다가 사주와 갈등을 겪고 쫓겨나기도 했다. 그런 우여곡절 속에서도, 1990년대 후반에도 당시 개혁적이고 참신한 이미지였던 젊은 유시민에게 유일하게 칼럼 지면을 허락한 것이 동아일보였다.


내부자의 적극적인 증언이 없는 이상 동아일보의 몰락, 혹은 변동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정확히 살펴보기는 어렵지만 당시의 정황들을 대략적으로 기술해 볼 수는 있다. 본인의 책과 다른 이들의 책에서 관련한 구절을 가져와 봤다.


<안티조선 운동사>에서


강준만은 월간 《인물과 사상》 1998년 10월호에서 《동아일보》에게 노골적인 ‘러브콜’을 보냈다.《동아일보》 측 사람들이 보기에는 호된 비판으로 볼 수도 있었겠지만, 강준만의 관점에서 그것은 틀림없는 러브콜이었다. 강준만은 《동아일보》의 역사가 《조선일보》와 구별되는 점에 대해서 언급한 후, 《동아일보》가 ‘일등신문’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조언을 했다.(p81)


그의 호소는 결국 《동아일보》의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동아일보》는 《조선일보》를 흉내 내는 길을 택했고 그 앞에는 내리막길이, 이른바 ‘조중동’의 막내가 되는 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p83)


한편 신문 시장 역시 급변하고 있었다. ‘4대 일간지’ 중 하나였던 《한국일보》의 세력이 급격하게 약화됐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와 구별되는 나름의 전통과 특색을 지니고 있던 《동아일보》가 내리막길을 걸으며 영남권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p170)


정연주는 분명 그 흐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서 그는 10월 25일에 <한국 신문의 조폭적 행태(2)>라는 칼럼을 썼다. 거기서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신문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은 (중략)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세습 사주들이 지배하고 있다.” 《한국일보》의 탈락과 《동아일보》의 약세를 보여 주는, ‘기득권 신문 연합군’을 일컫는 역사적인 호칭인 ‘조중동’이라는 말이 정연주의 필봉에서 탄생했다.(p170-171. 2000년의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언론사 세무 조사는 ‘조중동’과 한나라당, 김대중 정부와 안티조선 운동 진영의 정면 대결 양상을 만들어 냈다. 검찰 수사 과정에 《동아일보》사주의 부인인 안경희 씨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p175. 2001년 상황)


가령 《신동아》는 2000년 11월호에 강준만에 대한 심층적이고 호의적인 인터뷰를 게재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주목을 끌었다.(p183)


당시 《동아일보》는 9월 9일자 <대구 경북에는 추석이 없다>는 보도에서 알 수 있듯이 노골적으로 한나라당 지지층에 구애하는 마케팅을 벌이고 있었다. 기사의 근거로 삼은 자료에서조차 영남과 호남의 상황이 고만고만했는데도 《동아일보》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독 영남에만 추석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당시 《신동아》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월간조선》에 대항하는 가장 진보적인 월간지였다. 박성태는 이 상황에 대해 《동아일보》가 일간지와 월간지의 ‘역할 분담’을 통해 보수·진보 독자를 모두 잡으려 한다고 해석했다.(p184. 개인적으로 이 해석을 지지하진 않는다. 그냥 신동아가 좀 느리게 변화한 것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이제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안티조선 운동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정으로 방관하지 않았다. 이문열의 예언대로 세무 조사 이후에는 ‘조중동 편이냐, 아니면 김대중 정권 편이냐’라는 전선이 성립한 셈이었다. 그러면서 안티조선 운동은 사실상 실천적으로는 ‘안티조중동 운동’과 비슷해져 버렸다.(p184)


2000년 이후 《동아일보》는 ‘시대에 뒤떨어진 메인스트림을 위한’ 신문 《조선일보》나 ‘금언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신문《중앙일보》와 구별됐던 독특한 품위를 벗어던지고 자발적으로 ‘조중동’의 막내가 되었다.(p218)


1997년 대선까지만 해도 ‘중립’을 지켜 보수인사들에게는 오히려 ‘김대중 지지 언론’으로 인식됐던 《동아일보》는 1990년대 후반부터 김대중 정부를 호되게 비판하는 ‘야당지’로 가닥을 잡았고 언론사 세무 조사 이후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와 완전히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p259)



<프리라이더>, 선대인, 더팩트. 이 책을 보고 이 포스트를 쓰게 되었는데, 1999년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필자의 경험담이 담겨 있다.


제가 과세 형평성 문제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된 때는 1999년 초여름이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와 참여연대가 공동기획으로 '공정 과세로 가는 길' 시리즈를 13회에 걸쳐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동아일보와 참여연대가 서로를 거의 백안시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공동기획까지 할 정도였으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참여연대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동아일보가 시간이 갈수록 너무 많이 바뀐 탓이 크다고 봅니다.(p55)


1999년 저는 동아일보 사회부의 사건 팀 기자였습니다. 당시 참여연대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계열사들을 동원해 아들인 이재용 씨에게 편법 상속하려는 시도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후 10년 이상 온갖 논란을 불렀던 삼성그룹 상속 문제가 공론화되는 발단이었습니다.

(...) 발표 당일 아침 일찍부터 기사 계획을 회사에 자세히 보고했습니다. 이어 사건 팀장으로부터 해당 기사가 사회면 톱과 사회2면 박스 기사로 채택됐으니 '잘 만들어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며칠간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열심히 기사를 작성해 보냈습니다.
 
(...) 그런데 초판에 제 기사는 단 한줄도 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경제부에서 출고한 기사가 1면에 크게 실려 있었습니다. 참여연대의 문제제기는 불과 두세 줄로 요약돼 있었고, 삼성 측의 주장을 대부분 반영한 기사였습니다.

(...) 마감시간 한시간 전까지 지면 계획에 변화가 없으니 기사를 빨리 보내라고 재촉까지 받았는데, 기사 한줄 실리지 않았다니요.

(...) 그리고 몇달 후 당시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아들인 김재열씨가 삼성가의 사위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동아일보에서는 삼성에 대한 비판 기사가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습니다.(p114-115)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사회평론. 2007년 삼성 비자금 양심 고백을 할 당시의 상황이다.


대검찰청에서 일하는 후배 검사를 찾았다. 그는 조선일보와 공중파 방송사 한 곳 정도가 일주일쯤 삼성 비리를 집중적으로 다뤄준다면, 검찰 수뇌부도 수사를 승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 중앙, 동아 등 3대 주요 신문사 가운데 그가 굳이 조선일보를 꼽은 것은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삼성과 특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과거 삼성 계열사였다. 1998년 삼성으로부터 계열분리를 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중앙일보는 여전히 삼성 구조본의 통제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동아일보는 사주가 삼성 이건희 회장과 사돈 사이다. 그러니까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삼성 비리를 제대로 다룰 수 없으리라는 것은 명백했다. 후배 검사를 통해 조선일보 법조팀장에게 내 의도와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취재를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기사화되지도 않았다.(p30-31)


오늘날의 동아일보는 '고려대'라는 연결고리로 이명박 대통령과 얽혀 있고,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에 비해서도 정권 비판을 하지 않는 신문이 되었다. 2000년 이후 신문 시장에서 줄곧 쇠퇴하던 이 신문은 이명박 대통령 이후의 이 짧은 평온한 시기를 즐기며 3등 신문의 본분에 맞는(?) 안분자족의 삶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한국 사회가 이렇게까지 보수화된 원인을 꼽는다면 '동아일보의 변화'라는 사건이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것이다. 김대중 정권 말기의 사주의 선택, 그리고 삼성가와의 혼인, 언론사 세무조사 과정에서 있었던 사주 가문의 비극과 같은 몇 가지 우연적 요소가 얽혀 들어가 동아일보의 우연적 선택을 운명처럼 바꾸어 버렸던 것이다. 씁쓸한 일이다.



독자

2011.02.28 21:44:45
*.121.253.33

근데 대구 경북에는 추석이 없다가 아니라 대구 부산에는 추석이 없다 아닌가요?

하뉴녕

2011.02.28 22:06:46
*.149.153.7

"대구 경북에는 추석이 없다."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asianote

2011.03.01 05:02:49
*.184.46.46

다시 비극 : 한겨레나 경향 같은 진보언론 중 누구도 현 동아만큼의 영향력조차 행사하지 못한다!

덧붙이는 글 : 오늘 난필이나마 리뷰 써서 올려드리겠음.

하뉴녕

2011.03.01 15:24:20
*.149.153.7

발행부수는 분명히 그런데 영향력이나 의제설정능력 같은 걸 보면 꼭 그런건 아니었다능...ㅎㅎㅎ 한겨레의 영향력은 중립을 지키던 동아일보가 '조중동' 쪽으로 기울어버린 이후에 더 커진감도 있지요...

....

2011.03.01 21:00:29
*.141.216.153

동아는 명실상부한 꼴등신문이라고 봐야죠.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최근 몇년간의 중앙의 변화가 더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중기까지도 조선 동아에 비해 논조가 약했었는데, 최근 문창극이나 김진 글 같은거 보면 정도가 심하죠.

그리고 동아의 영향력은 한겨레나 경향보다 약할 겁니다. 조중동의 의제설정이야 거의 같은데 그 중에서 꼴찌라는게 문제죠.

그만

2011.03.02 10:24:14
*.218.97.42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 동아일보는 반드시 봐야 하는 신문이었고 제 꿈은 기자가 되는 것이었죠. 이십여 년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고 나니 그 시절 동아일보와 확실히 요즘의 동아일보는 다른 차원의 신문이 된 거 같습니다.

하뉴녕

2011.03.02 13:11:39
*.46.4.29

어찌보면 1990년대 동아일보가 지금의 한겨레/경향보다 더 진보적이거나,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면이 있었으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ㅡ.,ㅡ;;;

Reznor

2011.03.13 02:24:06
*.37.109.203

전 늘 한겨레를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어쩔 때는 좀 어리둥절 할 때도 많은것 같더라구요...
가령 무상급식 논란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하면 지역농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타이틀을 내걸고 기사를 낸 걸 본적이 있었는데, 근거가 추상적임과 동시에 빈약해서 왜 이러나?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다른 예로는 한국의 진보언론을 자임하는 입장에서 '위키리크스'의 언론역할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의 등장 뭐 이런 기사나 심층적인 취재기사가 나올 줄 알았더니, 전부 외신인용한 기사만 잔뜩 나오고...

오늘날 한겨레가 경향, 그리고 여러 인터넷 매체(프레시안,오마이) 등등과 차별화 될 방안이나 뭐 그런것들에 대한 논의가 뭐 야권연대에 휩쓸린 진보신당처럼 사장되어가는 상황이 별로 그렇게 낙관적이지 만은 않은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저도..

독자

2011.04.26 13:16:33
*.149.185.62

안티조선운동사를 읽고 동아를 다시봤는데 제가 옛날에 작성한 자료가 생각이 나서 동아는 진짜 다시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문사 경향도 알 수 있고요

교육감 직선제 폐지해야 할 때다-전부 다 10월 7일자 사설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07/2010100702244.html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aid/2010/10/08/4040101.html?cloc=olink|article|default

동아일보 --없음

국민일보 http://news2.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4193233&cp=nv

해럴드경제 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01008000198

세계일보 http://www.segye.com/Articles/News/Opinion/Article.asp?aid=20101007004499&subctg1=02&subctg2=01

서울경제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1010/e2010100717063748010.htm

한국경제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100796231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100701033137161002

내일신문 http://www.naeil.com/news/NewsDetail.asp?nnum=574437

부산일보 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subSectionId=1010110000&newsId=20101007000139


반대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010/h2010100721101976070.htm

한겨례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442752.html

경향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0072149515&code=9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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