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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일전에 기획회의에서 300호 특집으로 '한국의 저자 300인'을 선정했는데 대한민국 출판시장이 협소하고 특히 비소설 분야에 젊은 필자가 별로 없는 관계로 저도 주제넘게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와 별개로 이 특집에서 일군의 저자들을 소개하는 글을 한 꼭지 맡았는데요. 제가 잡지세계에서 부여받은 역할이 '세대론 설거지'인만큼.... 그 키워드는 여러분들의 예상대로입니다. 잡지가 나온지 한달이 지났으므로 블로그에도 원고를 공개합니다. 

301호도 나왔지만 알라딘에선 아직 300호를 구매신청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481004

관심있는 분들은 구입해서 소장하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원고는 제가 보낸 버전이고 여기서 어떻게 더 편집되었는지는 저도 잡지를 안 봐서 잘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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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살펴보는 저자-20대 멘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우석훈·박권일, 『88만원 세대』(레디앙, 2007), 
김어준, 『건투를 빈다』(푸른숲, 2008)
우석훈,『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레디앙, 2009)
김난도,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 2010)
엄기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푸른숲, 2010)
김형태, 『너 외롭구나』(예담, 2011) 


멘토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일단은 지금의 세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현실인식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삶의 지침이 필요할 것이다. 전자를 평가하기 위해 현실인식의 적실함을, 후자의 실질적인 효과를 위해 청년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권위의 필요성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논하는 모든 책들은 제각각 어떤 현실을 담아내거나 담아내지 못한다. 그리고 이 저자들은 어떤 방식의 권위를 체득하고 있고 그것을 행사한다. 김난도와 우석훈과 엄기호의 경우 ‘강의자’라는 데에서 권위가 나오고, 김어준과 김형태와 박권일에게는 ‘남들과 다르게 살았는데도 안 죽고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권위가 나온다. 그런데 한편 다시 생각해보면 여기서 언급한 강의자들도 자신의 인생의 성공담을 늘어놓는 이들은 아닌지라, 결국엔 ‘남들과 다르게 살았는데도 안 죽고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권위의 근거로 수렴된다. 20대들의 말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하는 엄기호라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청년들은 그 권위를 인정하는 문맥에서 그들의 말을 받아들인다.  


이런 실정을 알면서, 20대의 마지막 국면을 지나가는 내가, 이 저자들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는 우석훈과 박권일의 조언이 현실세계의 20대들에게 전혀 와닿지 못하더라고 비판해야 할까? 다시 돌아온 우석훈이, 일본의 아마미야 카린 같은 활동가가 한국에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것은 또래가 자신의 위에 서는 걸 견디지 못하는 20대들의 성정을 무시하는 것이라 말해야 할까? 김난도의 조언이 결국 그의 강의가 이루어지던 서울대생들에게나 최적화된, 80년대 대학을 다닌 기성세대의 꼰대질이라 말해야 할까? 자못 진보적인 척하는 김어준과 김형태의 조언이,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과 동떨어진, 서구 68세대나 한국 386세대의 추억을 더듬는 퇴행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말해야 할까? 엄기호는 이들과는 다른 방식을 취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결코 20대들의 멘토가 될 수 없었다고 말해야 할까? 물론 이 모든 말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질없어 보인다. 그것이 부질없어 보이는 이유는 이들의 담론이 소비되는 양상이 이런 식의 조언의 내용에 대한 비판과 전혀 다른 층위에 놓여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한 번 이 책들을 당신의 발밑에 일렬로 늘어놓아 본다고 상상해보라. 그리고 책을 어떻게든 배열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보라. 당신은 이 책들을 어떤 순서로 늘어놓고 싶은가? 이 책의 저자들은 아마도 스스로를 ‘진보’로 포지셔닝하는 사람들일 거라 여겨진다. 그래서 저자들의 정치성향의 스펙트럼으로 책을 배열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인 것 같다. 차라리 이 책들은 ‘스타일’을 통해 배열될 수 있을 것 같다. 서툴게 손을 놀리고 나니 책이 두 패로 갈린다. 한편에는 일종의 ‘상담 수기’의 역할을 하는 책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무언가에 대해 ‘설명’하는 책들이 있다. 전자에는 김어준, 김난도, 김형태가, 후자에는 우석훈, 박권일, 엄기호가 배열된다. 그런데 이러한 스타일의 분류는 어떤 보수 성향 필자들이 청년들에게 조언하는 책을 저술한다 할 때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게 되는 일이 아닐까? 가령 복거일이나 공병호와 같은 이들이 이 도식에서 후자에 배열될 수 있다면, 허다한 자기계발도서들은 전자에 소속될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사태는 오늘날 ‘좌’와 ‘우’의 대립쌍이라는 것이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의미는 물론 통상적인 의미, 사회를 바라보는 총체적인 시각에 있어서의 좌우변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더욱 부각되고 있는 두 번째 의미는 사회를 바라보는 총체적인 시각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진보적인 행위가 될 수 있고, 그 반대편에 있는 보수성이란 것은 그 총체적인 시각에서 진보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총체성을 포기할 뿐이라는 데에 있다.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이 복거일이나 공병호와 같은 우익 필자들을 비판하거나 조소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은,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총체적인 시각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것, 본인과 복거일(공병호)이 경쟁하고 있는 그 장에 청년들을 끌어오는 일이다. 출판시장에서 그들의 대립각에 서 있는 것은 복거일이나 공병호가 아니라 차라리 김훈이나 장영희일 수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상대편의 광활함에 화들짝 놀라면서 우리의 약소함을 인지하게 되는데, ‘김훈이나 장영희’라는 말이 포섭하는 바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적어도 김훈의 독자들은 스스로 보수주의적이라 생각하거나 보수주의자의 책을 읽고 있다 생각할 가능성이 있지만, 장영희의 독자들은 정치적 보수주의의 차원에 있다기보다 아예 그 변별 바깥에 있다. 거듭 말하지만 진보 지식인들이 링 위에 올라온 이들을 상대할 수 있다고 천명할 때 사실상 링이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 거다. 결국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것이냐다. 


20대 세대론과 청년 담론의 범람은 내게 이 필요성을 무의식 중에 자각한 진보진영의 나름의 대응방안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대응의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청년들을 사회문제 인식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말하는 지식인들이 새로운 자기계발 담론을 통해 ‘멘토’의 역할에 대한 경쟁을 시작한 것에 가깝다. 물론 여기서 ‘멘토’나 ‘멘토링’ 자체가 보수적이라고 질타하는 것 자체는 큰 의미를 지닌다 보기 어렵다. 시장의 문제가 되었든 사람들의 심리의 문제가 되었든 ‘멘토’를 요구하는 구조가 있었을 때, ‘88만원 세대’ 담론의 주창자도 멘토로 군림하게 되었고 그 세대론에 기반하여 청년층에게 이런저런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이들도 멘토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는 분석이 더 타당하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진정한 문제, 혹은 슬픈 현실은 사회문제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 대해 열심히 말하던 ‘진보적 어른’들에게 청춘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을 요청할 경우 ‘보수적 멘토’들과 다르게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는 것이다. 명문대생들이 고시나 공무원 시험에 몰리고 대학생 일반의 ‘취업 눈높이’이가 높아져서 대기업에게만 지원하는 현상에 대해선 이명박 대통령이나 조선일보도 우려를 한다. ‘취업을 안 해도 살 수 있으니 겁먹지 마라.’고 당부하는 박원순이나 진중권의 충고가 이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진보적 평론가들은 특히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대해 이런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지만, 김어준이나 김형태의 ‘남 눈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라.’는 조언의 현실정치적 함의가 ‘공무원이나 대기업 정규직 지망하지 말고 중소기업 가거나 창업하라.’는 우파들의 조언과 겹쳐 보인다고 말한다면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앞서 나는 멘토의 구성요소로 현실인식과 삶의 지침을 들었다. 그런데 일단 후자에 집중할 경우, ‘삶의 지침’이 청년들에게 수용되는 방식에는 굉장히 묘한 구석이 있다. ‘무규칙 이종예술가’라는 김형태의 ‘이태백’ 세대에 대한 독설이 블로고스피어에서 크게 ‘히트’친 것이 2003년이었다. 청년들은 자신들을 강하게 질타해주는 ‘어른’을 바라는 듯했다. 그리고 그 질타가 하나의 관심이 되기를 바라는 듯했다. 김형태의 청년에 대한 조언들의 모음이 『너 외롭구나』라는 제목으로 묶여 나온 것은 그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전에 이미 네이버와 싸이월드에서 크게 히트친 김난도의 ‘슬럼프’란 글을 보면 “나는 ‘슬럼프’라는 말을 쓰지 않아. 왠지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아서……. 그냥 게으름 또는 나태라고 하지.”라는 식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비난이 이어지다가 “여전히 너는 너야. 조금 구겨졌다고 만 원이 천 원 되겠어? 자학하지 마.”라는 구절로 맺어진다. 오늘날의 청춘은 질타받기를 원하는데, 그것은 질타받는 것도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의 질타가 쌩뚱맞으며 그 뒤엔 구조적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오히려 그들의 ‘자기’에겐 더 감당하기 힘든 문제일 수 있다. 


이런 실정에선 멘토가 청년들에게 멘토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지친 청년들이 어떤 종류의 조언들을 소비하기 원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생산할 사람들을 바란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88만원 세대』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 드러나는 시대인식조차도 청년들에게 이와 같은 조언을 ‘토해내 달라는’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석훈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서, 마치 ‘멘토’처럼 등장해서 오히려 청년들에게 ‘운동’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한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엄기호는 청년층의 말하기를 이끌어내면서 오히려 기성세대에게 이 시대의 청춘에 대해서 ‘들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작업들이 가장 성공한 경우엔, 결국 청년들을 향한 ‘조언’은 사라지고 그들은 자신들이 던진 질문을 되돌려 받게 된다. 그리고 이는 지친 삶을 위안받기 위해 서가를 기웃기웃하는 대다수의 청년들이 원하는 바는 아니다. 


사회과학과 멘토링, 현실인식과 저자의 권위라는 두 개의 링이 있다. 이것은 한쪽이 진보적이고 다른 쪽이 보수적이라는 식으로 양자택일될 사안은 아니며, 양쪽 모두 (좌파든 우파든 간에) ‘개입’해야 할 하나의 영역이다. ‘20대 멘토’라는 영역에 묶이는 저자들은 이 두 개의 링에 개입하면서 어떻게든 답을 찾고자 한다. 특히 진보주의자들의 시각에서 지금까지 그 답들이 만족스럽지 않지만, 김난도의 조언을 냉장고 앞에 붙여놓고 삶에 대한 주문을 외우는 어떤 청춘도, 우석훈이나 엄기호의 책을 읽고 위안을 받고 상처를 치유했다 말하는 어떤 청춘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멘토는 추상적인 단언이 아니라 멘토링이란 활동에서 나올 것이니, 나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이들의 시도가 지속되는 활동을 통해 업그레이드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계속 이들에게서 위안을 얻기를. 


Q

2011.08.25 10:33:01
*.192.131.207

이건 일종의 제보인데,
제가 페이스 북을 하는데, 갑자기 무상급식 투표 전날에 누군가가 투표 참여를 이야기하더군요. 그 뒤로 무상급식에 대해 사람들이 글을 올리고 추천 받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페북에서 정치이야기가 나온게 처음인거 같습니다. 제 경우에는 처음 봐요. 보수 측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요. 보수의 결집이라고 해야하나..

애독자

2011.08.29 12:01:12
*.140.58.209

이게 EBS에 책광고로 나오는 꿈을 꿨어요 ㅋㅋ

123

2011.08.30 17:29:25
*.149.186.64

욕해도 좋으니까 제발 곽노현이랑 진중권-조국 트위터랑 엮어서 한마디해주십쇼!

경계인간

2011.08.31 20:05:12
*.180.37.93

오늘날의 청년에 대한 진보적 아저씨들의 '조언'이 불유쾌한 이유는, 한윤형씨 말씀처럼 그들의 논리가 구체제의 논리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직 안 해도 살 수 있으니까 남 눈 신경쓰지 말고 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는 소리가 청년들은 중소기업에 가서 자기 꿈을 펼칠 기회를 찾아보라는 이명박류의 논리와 뭐가 다른지도 모르겠고, 이보다 좀 더 강경하다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네가 사회의 불의에 분노하고 저항하지 않아서 세상이 이모양 이 꼴이다'라는 소리가 '아무리 취업이 힘들대도 취직하는 애들은 다 취직하더라. 네가 열심히 하기에 달렸다'는 소리와 어떻게 다른지도 잘 모르겠네요. 이 점에서 본다면 차라리 386들보다 유신세대가 지금 20대의 입장에서는 더 친숙하지 않나요? 최소한 유신세대 손에서 우리 밥과 용돈이 나오니까요.

213s

2011.08.31 22:16:04
*.140.58.209

진보적 아저씨들은 그래도 마음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이문열류의 인간들이 생존과 권력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진보적 아저씨들은 행복과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그걸 불쾌하게 느끼는 건 그와 같은 문제를 억압하고 있었는데 그걸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에서 개인의 행복추구권은 늘 억압되어 왔고, 은밀한 형태로 달성되어 오거나 집단을 유지하는 것이 개인의 유일한 행복이라는 식으로 취급되어 왔으니까 그게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는 관습이 되어서 그 문제를 건드리고 지나가는 진보적 아저씨들의 말에 반감을 느끼는 건 용돈주고 밥주는 유신세대의 눈치를 보고 사는 게 익숙한 소년들에게는 당연히 그런 걸 보는 게 좀 신경이 쓰이겠죠.

경계인간

2011.09.01 01:39:18
*.39.188.161

213s//행복과 즐거움을 이야기 하느냐, 아니면 생존과 권력을 이야기 할 것이냐는 문제는 그 이야기를 하는 당사자들이 중요하시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달린 것이겠죠. 아마 저도 그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소위 진보적 아저씨들이 이야기하는 마음의 문제를 더 중요하다고 선택할 것 같습니다만, 제가 한 이야기가 그런 차원의 문제는 아닌데요. 저는 그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말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수꼴 꼰대든 진보적 아저씨든 결국 그들은 청년들이 가치를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자신 때문이라고 말함으로써 사회와 자신들이 져야 하는 책임을 청년들에게 전가하고 있고, 더 나아가 자신들이 만들고 구성해 온 사회의 부조리까지 청년들이 어리석고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가치는 서로 달라도, 그것을 말하는 방법은 똑같다는 거죠.
이걸 '유신세대의 논리에 따라 그들의 눈치를 보고 사는 데 익숙한 소년들이 느끼는 불쾌함'이라고 말씀하시는 건, 213s님의 주장을 '지적으로 386에게 종속된 청년이 자신들의 정신적 지배자에게 보이는 과잉충성'으로 해석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억지와 무례일 텐데요.

213s

2011.09.01 03:09:39
*.140.58.209

저도 그 인간들이 좋아서 변호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식의 화법이 가진 문제를 님은 인격적인 부분과 연결지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진정성을 중요시하는 과거 386이 좋아할 법한 그런 생각과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겁니다.

걔네들이 말하는 게 똑같다고 주장하는 건 걔네들이 서로와 싸우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고 실제로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만큼 거기에는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계기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내 생각에 그들에게 젊은이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어떤 경향을 상기시키는 것이라 그에 대해 그와 같은 방식 이외의 방식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그런 게 분명히 있어요. 나는 걔네들이 가진 문제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젊은 사람들에게 하고 젊은 사람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대화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인식론적 우위에서 그들을 귀엽게 볼 수 있다는 거죠

213s

2011.09.01 03:15:28
*.140.58.209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그것 이외의 대화방식을 젊은 사람을 상대하면서 떠올릴 수가 없는 거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그건 여성을 상대할 때 어리숙한 남성 일반이 그 여성에게 보이는 태도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그들도 젊은이와 대화를 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할만큼 성숙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 대화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건 그런 미숙한 그들이 할 일이 아니라 그 현실을 알고 있는 상대가 할 일이 아닐까 하는 겁니다. 솔직히 그게 기분 나빠 보이는 건 그런 그들의 미숙함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있지 않나요

하뉴녕

2011.09.01 09:31:51
*.118.61.175

글쎄, 저는 진보적 아저씨들만 마음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자기 잇속만 차리는 속물이 존재한다면, 그런 속물은 자신과 비슷한 속물들만이 가득 찬 사회에선 오히려 처신하기가 불편하지요. 실제로 보수파 아저씨들이 청년들에게 말하려는 것도 '다른 종류의 마음'이지 속물성 그 자체는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보수파든 진보파든 (단순화시켜 말할 때) "공무원 시험을 치지 말라."는 충고를 하고 있다고 제가 지적하는 것이지요. 학벌문제와는 달리,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과 대기업 정규직이 아니면 인간답게 살지도 못한다."는 진실(?)을 용감하게 발설(?)하는 비평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진보파 쪽에서 더 지적을 한 상황이겠죠...

그리고 진보파 아저씨들이 행복과 즐거움에 대해서 보수파 아저씨들에 대해서 우위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행복과 즐거움을 얘기하곤 있습니다만...안 먹힌다고 생각하거든요...가령 제가 일반적인 기업에 취직한 또래 친구들보다 '행복'할까요? 소득에서도 물론 차이가 나지만 정신건강, 인간관계 등 여러가지 '삶의 질'의 요소에서 압도적으로 제가 뒤질 텐데요. 그들이 말하는 '행복'이 진짜 행복이 될 수 없음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봐야겠죠.

이런 문제가 "용돈주고 밥주는 유신세대의 눈치를 보고 사는 게 익숙한 소년들"에게만 해당하는지도 의문입니다. 이제 제 또래의, 혹은 저보다 몇살 더 많은 삼심대 직장인들 중에선 '유신세대에게 용돈주고 밥주는' 처지가 된 이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갑자기 386세대의 말에 더 공감을 표한다던가 할 것 같지는 않거든요.

다만 386세대의 미숙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 세대가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리라는 해석에 대해서는, 꽤 함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어느 한쪽이 각성한다고 갑자기 대화가 이루어질만큼 만만한 것 같지는 않네요.

213s

2011.09.01 15:05:42
*.140.58.209

밑에 했던 이야기의 연장입니다만, 나는 그 둘 중 어느 쪽을 우위에 놓을지는 선택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위라는 표현보다는 우선적이고 실행되어져야 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쪽으로써 판단한다는 게 더 좋은 표현 같네요. 나는 그 판단 행위의 자유를 유보하고 있는 게 소년적 태도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솔직히 저와 같은 '하나마나한 지적'을 굳이 반복하는 건 '꼰대들이 다 그런데 왜 그 중에 진보인 녀석들에게 그들이 꼰대라는 이유만으로 걸고넘어지냐'라는 지적을 하고 싶게 만들어요. 지적의 내용적 차원이 맞다고 해서 지적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것에 정치적 차원이 없는 건 아니잖습니까

하뉴녕

2011.09.01 15:17:00
*.118.61.175

그런 질문에도 당연히 답변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파 어른들은 본인이 어른이란 걸 알고 있고 어른은 꼰대질 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차원에서 청춘들과 불화하거든요. 그런데 좌파 어른들은 (뭐 단순화된 얘기기는 하지만) 먼저 본인들이 어른이라 생각하지 않고요. 그래서 사실상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지지도 않구요. 자신이 아직도 청춘이며 오늘날의 청년들보다 청춘의 본질을 더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꼰대질을 한단 말입니다.

굳이 말하면 저는 "꼰대질이 꼭 나쁘기만 한가?"라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사회엔 꼰대도 필요하고, 어떤 국면에선 꼰대질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돈이 없는 저조차도 후배들에게 충고질을 할 때 그 자리 술값은 제가 계산합니다. 사회적으로 볼 때 특히 김형태 같은 사람들의 충고는 종종 후배들에게 술 얻어먹으면서 충고질 하려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굳이 '사회적으로'라 표현한 이유는 제가 사적으로는 386들을 많이 뜯어먹고 다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ㅎㅎ) '유신세대는 용돈과 밥이라도 주지'라는 경계인간 님의 푸념이 그런 차원에 있었던 게 아닌가 추정합니다.

저는 세상에 어른은 없고 다 큰 애들만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특정한 관계에서 자신이 애라는 걸 숨기는 것은 가능하겠죠. 꼰대질이란 건 결국 상대방에게 어른이 되겠다는 것이고, 상대방을 아이로 대우하겠다는 것이니, 그런 일을 할 때엔 당연히 그에 수반되는 책임을 요구받게 되겠지요. 그에 대한 푸념을 듣기 싫으면 그냥 꼰대질을 안 하면 되는 건데, 그걸 푸념하는 이들이 자신을 소년으로 위치지운다는 게 문제의 핵심은 아니죠. 애초에 꼰대질 자체가 상대방을 소년취급 하는 것이니까 말이에요.

386적 꼰대질을 요약하자면, 상대방을 아이로 몰아붙이면서 그런데 나는 너보다 더 순수한 아이야, 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제가 말한 것은 그런 태도의 문제도 아니었고 충고를 하겠다고 나선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컨텐츠가 있느냐는 그런 문제제기였지요...

213s

2011.09.01 15:29:00
*.140.58.209

제가 좀 그런 현실을 무시하고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만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좀 듭니다. 그 원론성이 현실의 한 양태라면 그걸 밀어붙이는 것도 가능한 태도가 아닌가 하는

213s

2011.09.01 15:38:07
*.140.58.209

이와는 별개로 이 문제를 좀 이야기하고 싶은데, 아는 입장은 모르는 입장보다 부담스럽습니다. 한윤형씨 말대로 그들이 그런 황당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고 그게 역겹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 아는 입장 자체를 그들이 견디지 못하면서도 아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될 젊은이와의 마주함이라는 상황에 대해 그들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밖에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좀 듭니다. 그런 귀여운 인간들로 바라볼만한 시선을 가지게 되는 건 꽤 좋을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213s

2011.09.01 15:45:55
*.140.58.209

나는 자기보다 어리숙한 사람과 마주하는 인간의 입장이라는 건(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여성과 마주하는 남성의 입장과 구조적으로 상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꼰대성의 핵심에는 그들의 그와 같은 미숙함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들을 상대로 자신을 주체화하는 것에 별 문제가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젊은이들이 그들의 충고를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건 그에 대해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위상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그런 게 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좀 들거든요.

그걸 듣는 입장이 된다는 건 일종의 상징적 거세가 될 텐데(자신을 소년으로 구성한다는 점에서),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강박에 사로잡힌 소년적 마인드가 그걸 '꼰대성 일반'으로 취급하고 넘어가는 태도와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 아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는데(그렇다면 그냥 혼자 뻘짓하는 게 되고 있는 게 될 텐데), 소년을 향해 어른이 되라고 요구하는 걸 실제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소년들 자신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저 충고들 사실은 전부 내면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컨텐츠가 없다'는 지적이 유효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13s

2011.09.01 23:03:41
*.140.58.209

저 이거 꽤 확신하고 끌어들인 말이었습니다. 한윤형씨 저 그거 전공자입니다. 그래서 정신분석 담론의 위험성 잘 알고 있어요 일이년 건드린 것도 아니라서. 그래도 맞는 것 같으니까 한 말이었는데, 틀렸다면 저도 그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알고 싶습니다. 한윤형씨가 신경쓰실 생각이나 시간이 없다면 저도 뭐 더 할 말이 없겠습니다만

213s

2011.09.01 23:14:16
*.140.58.209

그리고 이 이야기는 소통이 아니라 그들이 존재하는 현실과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한 걸 지적하고 싶어서 한 말입니다. 제가 뭐 꼰대처럼 보이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저 한윤형씨보다 어린 사람이고, 한국 꼰대들 혐오하는 부류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걔네들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걔네들이 존재하는 현실에 대해 그들이 가진 프레임을 넘어서서 그들의 존재를 다른 시선으로 인식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걔네들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 겁니다

경계인간

2011.08.31 20:15:48
*.180.37.93

특히 저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김형태씨 같은 경우가 그렇지요. 개인적으로 김형태의 '너, 외롭구나'는 300페이지에 걸쳐 써 내려간 채무불이행 선포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내가 진 빚을 못 값겠으니 너희가 값아라. 밥은 내가 먹었지만 그릇은 너희가 씻어야 한다는 소리를 뭐 그리 거창하게 늘어놓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논리가 대체 어느 지점에서 복거일, 조갑제, 이문열의 논리와 다른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복거일이 '그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조갑제가 '너희가 우리 먹은 밥그릇을 씻지 않는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씻게 하겠다고 말하는 데 비해, 김형태는 '내가 먹은 밥그릇을 너희가 씻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주장하고, '집 안에 벌레와 악취가 들끓는 것은 너희가 설거지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이 면에서 김형태와 가장 닮은꼴은 이문열이라고 봅니다. 둘 다, 자기들 먹은 밥그릇의 설거지를 떠맡기는 것이 옳은 일이고, 그걸 떠맡은 어리고 천한 것들이 설거지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여기면서 자기들 먹은 그릇이 아니니 설거지 못 하겠다고 하는 소리에 분노하고 있으니까요.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이문열이 그 근거로 '도리'를 내세우는 데 비해 김형태는 '젊은이의 열정'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요?

213s

2011.08.31 22:18:29
*.140.58.209

오히려 불쾌한 건 그 진보적 아저씨들이 젊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려고 하고 있는 데에 비해 별로 진보적이지 않은 저 꼰대들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냥 굳건하게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만 신경 쓰고 있으니, 그 굳건함을 발판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김형태류의 충고가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건 분명히 그 인간의 인간적 편협함도 있겠지만 말하지 않아야 하던 그 토대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좀 드는데요

213s

2011.08.31 22:25:48
*.140.58.209

솔직히 그 정도 수준의 충고는, 기분이 나쁘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정도에 들어가는데, 그 충분함에 기분 나쁨을 느끼는 건 소년들이 기성세대 전반과 두려고 하는 거리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저 인간들의 삶을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저 인간들이 무슨 말을 하건 듣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변형되어 김형태류의 충고를 꼰대일반에 싸잡아 묶어넣게 만드는 게 아닐까요

경계인간

2011.09.01 01:52:41
*.39.188.161

먼저, 소위 진보적 아저씨들 전부가 수꼴 꼰대들 전부 보다 더 능동적으로 젊은이와 대화를 하려고 하고 있다는 전제 자체가 억집니다. 적지 않은 꼰대들이 나름대로 젊은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거든요. 다만, 젊은이의 가치가 보통 진보적 아저씨들에게 더 가까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꼴 꼰대들과 대화의 코드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을 뿐이죠.
개인적으로 절은 사람과 대화를 해 보겠다고 평소에 자기 삶의 원칙으로 삶던 나이의 권위까지 포기하고 상대 비위를 맞춰주던 꼰대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결국 이 사람과는 몇시간이나 이야기를 하고서도 서로의 입장이 단 한발자국도 가까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말긴 했지요. 하지만 '꿈을 갖고 싶지만 그러기가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청년들에게 (사회적 상황은 배재하고)'너희가 꿈을 꾸지 않는 바보들이기 때문에 세상이 이모양 이 꼴이다'는 소리만 집요하게 반복하면서, 심지어는 기성 세대가 만들어 낸 경제구조의 문제까지 책임을 청년들에게 전가하고, 사회적으로 훨씬 큰 권리를 가진 자신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다고 우기는 김형태씨가 그 꼰대보다 더 능동적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렵군요.

경계인간

2011.09.01 02:07:07
*.39.188.161

물론 김형태씨가 무슨 소리를 하건 그건 그 사람의 자유겠죠. 그리고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제 자유일 겁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김형태류의 '충고'가 이명박, 조갑제, 이문열, 복거일의 '수꼴들의 망언'과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굳이 '수구꼴통의 논리에 익숙한 소년의 불편함'으로 해석하시는 이유가 참 궁금하군요. 김형태씨를 비판하기 위해 '그의 주장이 보이는 구조가 수구꼴통들의 주장과 똑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수구꼴통의 주장이 비판 대상임을 전제로 했을 때 성립하는 논법일 텐데, 왜 제가 비판대상으로 삼은 논리가 제 주장의 근거라고 억지를 부리시냐는 겁니다. 이건 결국 김형태에 반대하는 주장은 곧 편협한 수구꼴통의 주장이라고 몰아붙여서 수구꼰대와 맞서 싸우는 김형태의 옮음을 주장하는 논리인데, 이런 논리가 모든 반대파에게 북한의 간첩이라는 혐의를 뒤집어 씌우던 군사독재정권의 논리와 뭐가 다르죠?

213s

2011.09.01 03:12:26
*.140.58.209

님 좀 공격에 익숙하지 않으신 것 같군요. 나는 김형태를 이문열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게 세대론적 자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판단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한 겁니다. 김형태를 더 좋아하고 이문열을 더 싫어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 둘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차이를 특정 프레임에 기대서 지워내려고 하는 경향에서 어른에 대한 소년 일반의 존재론이 언뜻언뜻 보이니까 그런 이야기를 한 거예요

213s

2011.09.01 03:17:09
*.140.58.209

그리고 진보적 부류의 아저씨들이 젊은이와 대화를 하려고 한다는 건 젊은 사람을 독자층으로 잡고 글을 쓰는 짓거리를 그들이 한다는 것 자체가 증명하고 있죠. 이문열류의 인간들보다는 그 부류의 인간들이 더 많이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게 대화의 시도가 아니면 뭡니까. 그 방법이 어쨌건 간에, 그들이 그런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팩트잖습니까

213s

2011.09.01 03:29:20
*.140.58.209

그리고 걔네들이 현재의 청년들을 문제시하는 건 제 얼굴에 침뱉기죠. 젊은 사람들이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을 자기들이 만들지 못했으니까, 자기들의 실패를 인정하는 게 되는 건데.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한국의 실패한 진보들과 대화를 해서 대체 걔네들로부터 뭘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그러니까 그들과의 그런 대화 자체가 '니들은 왜 그렇게 무능하냐'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일 수 있는데, 그럼 당연히 그들도 그 사실을 알텐데 수세에 몰리니 그런 이야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지겠죠. 모르긴 몰라도 군사독재 시절을 어떻게든 뚫고 지나온 걔네들의 삶에서 쌓인 피폐함이나 상처가 님이 생각하는 범주는 넘어서고 있을 것 같군요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213s

2011.09.01 03:44:41
*.140.58.209

가장 하고 싶은 말은 그들이 채무를 불이행한게 그들의 잘못이라고 해도, 그들이 무능하다는 현실을 그들 자신을 향해 추궁한다고 해서 뭐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님 말대로 김형태씨는 그런 방식으로 채무불이행 선포를 한 거고(그건 참 탁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바로 님이 본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거죠. 그들이 젊은이들을 향해 윽박을 지르거나 젊은이들을 향해 꼰대적인 태도를 보일 때 그들이 그러는 건 그들 자신이 무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걸 도와달라고 말하고는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까지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불쌍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님은 거기에서 상처를 받으시고 그게 싫다고 생각하고 있으신 것 같은데, 근데 젊은 세대가 되었건 누가 되었건 의지할 수 있는 게 없는 건 어느 쪽이건 마찬가지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건 젊은 세대에 대한 연대의 제의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어요. 그 여지를 님은 '꼰대성 일반'이라는 프레임을 동원해 걷어차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거기다 걔네들이 무능하면 어떻습니까. 최소한 김형태는 최소한 자기가 채무를 불이행했다고 선포는 했어요. 이문열은 그조차도 안 하고 끝까지 자기 잘났다고 '도리'를 운운하는데 그게 어떻게 똑같은 게 될 수 있습니까?

213s

2011.09.01 04:17:26
*.140.58.209

거기에 걔네들이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걔네들이 뭔가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해석하기 힘든데, 실제로 그들에게 발언권이 존재한다고 볼 수야 있겠지만 그건 말하자면 그들만의 리그로써 존재하고 있는 거고, 그 리그 바깥에 있는 시민 일반에게 저와 같은 이야기는 순전히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꼰대론을 동원해 공격하려는 건 님이 그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멋대로 가정하고 있는 것 뿐이고, 거기에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건 그리 좋아보이지 않네요. 그냥 진보적 아저씨들의 조언을 그들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님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죠. 그걸 이야기하는 건 님 자유인데, 그걸 청년 일반이 불쾌해하는 이유 전체로 환원시키는 건 논리의 비약이죠

213s

2011.09.01 04:42:21
*.140.58.209

그리고 저거 치명적인 문제가 있네요. 님의 말대로라면 모든 꼰대의 말이 죄다 불쾌한 거니 '진보적 아저씨(더 나쁘게 말하면 '진보적 꼰대들')의 조언'만 불쾌할 이유가 없어요(님이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진보적 아저씨들을 그 이유로 걸고 넘어졌죠 분명히) 처음에 제가 '그건 한국에서 억압되어왔던 부분을 그들이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그러고 있는 것이다'라고 한 말에 님은 그걸 이해를 못한 건지 그런 이야기를 하셨는데, 오히려 젊은이들의 보수성이 오히려 그들의 진보적 이야기를 불유쾌하게 느끼는 이유가 될 수 있으면 될 수 있지 그들의 꼰대성이 문제가 되진 않는다는 말입니다. 다 똑같은 꼰대인데 누구 말은 듣고 누구 말은 안 듣는 게 대체 누구 잘못입니까?

하뉴녕

2011.09.01 09:42:47
*.118.61.175

213s님의 생각처럼 김형태 부류가 굳이 청춘들에게 말을 거는 행위가 본인들의 실패에서 나온 히스테리일 수는 있겠습니다. 그 실패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욱 히스테릭하지요. 하지만 그 히스테리를 우리가 수용해야 한다면, 그에 못지 않게 어버이연합 회원들의 히스테리를 수용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문열은 김형태나 어버이연합에 비한다면 제 앞가림 잘 하고 사는 훌륭한 사람으로 여겨지는군요. 이문열은 그냥 자기가 돈을 많이 번 거고, 김형태는 경계인간님 비유에 나온대로자기가 진 빚을 청년들더러 갚으라는 수준이 되지요. 제가 김형태를 싫어하는 이유는 청년들에겐 징징대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다른 좌담회에 나오면 사회가 자기같은 비주류 예술가를 챙겨주지 않는다고 징징대기(!) 때문입니다.


사실 청춘들에게 말을 거는 행위 자체가 어떤 무력감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암시는 제 글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력감을 화자 본인이 인지하고, 드러내지 않는다면 청자가 '내가 그의 무력감을 발견했다.'고 정신승리해봤자 대화가 될 일은 아니지요. 막말로 제가 김형태에게 "사실 당신이 외로워서 책낸 거지?"라고 말해봤자 인정할리도 없고 말이에요.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저도 모릅니다. 저는 김형태에 대한 정교한 인물비평을 할만큼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보수주의자들의 충고와 진보주의자들의 충고가 같은 구조라는 지적은 충분히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되는데요. 213님은 이에 대해 보수주의자의 충고는 받아들이고 진보주의자들의 충고는 받아들이지 않으니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듯하지만, 사실 우리는 양쪽의 충고를 모두 다 무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보수주의자의 충고'란 정치문제 신경쓰지 말고 토익공부하라는 부모님이나 지인들의 충고가 아니라, 사회의 청년 일반에 대한 보수주의자의 충고, 외국인 노동자를 밀어내고 3D 업종에 취직하라거나 중소기업에 취직하라거나 따위의 것들을 말하는 겁니다.

213s

2011.09.01 14:50:32
*.140.58.209

저도 그 구조가 문제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만, 한국 사회에서 진보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진보라는 개념이 그 구조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한윤형씨의 지적이 전부 맞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런 식이면 진보성을 추구한다고 명목상으로라도 이야기하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를 구분할 수가 없게 되죠. 내 생각에 한국에서 진보는 그들의 그와 같은 히스테리에 불과한 태도를 진보에 대한 제스쳐로 해석하는 적극성을 통해 어떤 생산적 성취를 가능케 할 것 같습니다.

213s

2011.09.01 14:56:16
*.140.58.209

난 진보라는 게 그들의 실존적 조건 하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면 거기에는 맹목적인 도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똑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진보라는 관념적 차원에 대한(설령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규정을 통해 그에 대한 도약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진보라고 생각되어지던 가치들은 사실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거니, 중요한 건 그와 같은 도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의 연장에서 경계인간님을 비판해봤습니다.

하뉴녕

2011.09.01 15:06:16
*.118.61.175

지금의 실정에서 보수파나 진보파나 청년들에게 비슷한 수준의 도약을 요구하고 있는 건 맞습니다만, 저는 그중 어느 쪽이든 당면한 현실문제를 명확히 인지하는 차원 위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을 청년들에게 얘기했다면, 그런 대화의 시도를 했다면, 지금보다 청년들에게 훨씬 더 어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런 노력없이 청년들을 진보적이다, 혹은 보수적이다라고 비난하는 일도 가능하겠지만, 그건 좀 부질없어 보인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런 '실용적인' 측면을 빼고 생각하더라도, 청년층에 대한 보수파/진보파의 충고가 공히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층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건 참 심각한 문제겠지요.

213s

2011.09.01 15:13:35
*.140.58.209

세대론을 그대로 이용해서 젊은층들이 한국자본주의의 구조를 더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처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그쪽을 향해 거꾸로 말을 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청년들을 향해 그렇게 말하는 그들을 좋아할 수 없긴 하지만, 그게 현재 존재하는 진보의 개념을 달성하는 한 방식이 아닐까 해서 말입니다. 한윤형씨가 그 중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뉴녕

2011.09.01 15:22:12
*.118.61.175

젊은층이 한국자본주의의 구조를 더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을 리가 없죠. 그냥 자기에게 닥친 문제나 아는 거지...이건 어떤 직종의 사람이든 자기 영역에 대한 충고가 현실적인지 비현실적인지는 파악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와 별개로 저는 진보파 선배들에게 계속 제 나름의 방식으로 말을 걸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대화가 되는 사람들도 있지요.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저한테 무슨 들을 얘기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더군요. 청년 글쟁이의 지분이란 것도 있지만,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뭔가 새끈하고 참신한 걸 보여봐."라는 것일 뿐 사태를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00년대 정치담론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인데,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실 필요는 없겠지요.

213s

2011.09.01 15:26:11
*.140.58.209

한윤형씨 말이 맞네요. 제가 주제 넘는 이야기를 했군요

213s

2011.09.01 15:32:03
*.140.58.209

그런데 그런 정리작업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그들에 대해 인식론적 우위에 서게 되는 게 아닌지요.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하뉴녕

2011.09.01 21:52:53
*.118.61.175

음 아래에서 말한 애기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만약 어떤 청년이 한국 정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해명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 말하면서 계속 윗세대들 탓만 한다면 "그 사람들도 다 자기네 삶의 문제 때문에 그러고 있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고 이 세대가 해야 할 몫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충고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차라리 저같은 사람에게라면 그런 충고가 더 성립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저는 그런 얘기 듣기엔 너무 본인의 작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적절한 충고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문제는 제가 본문에서 언급한 진보담론이 청춘들에게 충고를 하는 상황은 이와 비슷하지도 않다는데 있는 거 아닐까요? 사실 문제의 핵심은 한국 정치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려는 이들이 없어서 그 지점을 설득해야 한다는 건데, 처음 만난 사람 호객하면서 우리 업계의 사정을 헤아리고 우리를 불쌍하게 봐달라는 게 말이 되냔 말입니다. (게다가 정작 말을 하는 분들은 전혀 그런 취지로 말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래서 님의 지적은 좀 꼰대질을 옹호하는 2차꼰대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 앞서 설명했다시피 저는 꼰대질도 필요할 때가 있다고 보는 사람이긴 한데, 님의 그 지적이란 건 별로 동세대와 소통하는데 (그리고 386세대나 유신세대와 소통하는데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더 그렇습니다.


그리고 님이 논의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 충고 한마디 하자면 정신분석학 담론을 사안에 대한 충분한 고려없이 마구 끌여다쓰면 나중엔 자기가 무슨 소리 하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저는 정신분석학 담론이 충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논의 자체가 폐쇄회로인 측면이 있어, 얼척없는 주장에 대해서도 근거를 강화시키는 기제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스스로 깊이 확신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그 담론을 활용해서 사태를 설명하는게 훨씬 더 현명한 일일 것 같습니다.

213s

2011.09.01 22:00:58
*.140.58.209

좋은 지적/충고 감사드립니다. 님 말대로 그런 포지션에서 이야기를 좀 했죠. 그 꼰대들을 옹호하는 이야기가 되었으니 2차 꼰대질보다 꼰대x꼰대가 된 것 같아 저도 좀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그냥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야기한게 좀 있는 것뿐이고 논의 하고는 별로 관계도 없이 말만 늘어놓은 게 된 것 같아 제가 보기에도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만,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213s

2011.09.01 22:40:30
*.140.58.209

그런데 이미 존재하는 어떤 이해관계의 틀 속에 다른 이해관계를 억지로 집어넣으려고 하면 거기에 꼰대성이 생기는 게 되는 건가요?

2011.09.01 10:01:59
*.143.73.117

안녕하세요. 한윤형님의 블로그를 자주 들락거리는 학생입니다. 언제 시간 되시면 한번 뵙고 싶습니다. 열정은 왜 노동이 되는가 행사때 싸인 받기도 했고요 몇마디 나누고 싶었지만 시간도 안되서 가봐야했고 낯설어서요. 무튼 늘 건강하십시오. 요즘 한윤형님이 추천한 박정희 평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ㄷㄷㄷ

123

2011.09.01 12:14:04
*.149.185.223

한윤형님이 추천한 책도 있었나요 ㅠㅠ 그런거 어디서 찾나욤.

702

2011.09.01 17:24:42
*.36.33.64

http://www.yes24.com/24/goods/2124019?scode=032&OzSrank=1

아마도 전인권 선생님의 책일 것 같아요.

,ㅇ

2011.09.02 10:01:45
*.143.73.117

한윤형님 답변 좀 주세요.

하뉴녕

2011.09.02 10:07:59
*.118.61.148

a_hriman@hotmail.com

제 메일 주소입니다. 이쪽으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

경계인간

2011.09.02 03:59:11
*.39.188.161

이야기가 한윤형님과 213s님 사이에서 거의 마무리 된 듯 합니다만, 일단 처음 말 꺼낸 사람으로써 몇 마디 정리하려고 합니다. 주로 213s님이 하신 말씀에 대해 대답하는 성격의 덧글이 되겠습니다만.

1. 213s님이 가장 납득하시기 힘들어하시는 문제가 왜 똑같은 꼰대인데 진보꼰대에게는 기분나쁘다고 하면서 수구꼰대에게는 아무 말을 하지 않으냐는 것 같군요. 그런데, 수구꼰대에게는 기분나쁘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위 현대의 진보적 젊은이들과 수구꼰대의 가치체계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어서 애초에 대화라는 게 힘들고, 입장을 같이 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죠. 그에 비해 진보꼰대들은 상대적으로 청년들과 유사한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통하여 대화하거나, 입장을 같이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받아들여지고 있죠. 상대편의 실수는 많을수록 기쁘겠지만, 우리편의 실수에는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진보적 아저씨들'이 내세우는 가치 중 일부가 꼰대가 되지 말자는 것이기 때문에 더 그렇죠. 꼰대질은 수구꼰대 아저씨들의 정체성이고, 그들은 꼰대질을 위해 살고, 꼰대질을 하는 게 옳다고 주장하죠. 그래서 그들이 꼰대질을 하는 건 정상입니다. 그에 비해 꼰대는 나쁘다, 꼰대를 물리치자고 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보다 어린 누군가에게 꼰대질을 한다는 건 자기모순 아닌가요? 진보에게 보수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어대자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입장에는 스스로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거죠.

213s

2011.09.02 04:25:51
*.140.58.209

그 모순을 걔네들도 알고 있으니까, 자기들의 모순에 대해 짜증이 나는데 그걸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그걸 눈 앞에 있는 사람을 향해 푸는 겁니다. 그런 히스테리 발작적 차원이 걔네들한테 있는 거라서 님같은 분들이 그걸 보고 '뭐야 이건!'이라는 반응을 보이시는 거죠. 그런 히스테리가 걔네들한테 있는 게 중요하다는 게 제가 말하고 있는 이야기의 골자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한윤형씨는 제가 '그들은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좀 가볍게 해석하고 넘어가고 있으신 것 같아요. 뭐 이미 하고 있는 게 많으신 분이고, 워낙 생각할 게 많아서 그런 것까지 건드릴 여유가 없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긴 한데...

경계인간

2011.09.02 04:30:39
*.39.188.161

2. 그리고 전부터 수구꼰대보다는 진보꼰대가 '청년들과의 대화'를 더 많이 실천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213s님이 수구꼰대들이 하는 말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생긴 착각이에요. 그들도 수 없이 청년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어요. 홍준표의 호통이나 강용석의 성희롱조차 그들이 나름대로 청년들과 대화를 하려고 모색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불협화음이죠.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경멸하는 이유는, 그들이 대화라고 부르는 것이 실상은 쌍방적인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훈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보꼰대들은 그 수구꼰대들이 내리는 훈시에 맞서 싸우자고 청년들에게 훈시하고 있다는 거죠. 결국 양 꼰대는 청년들에게 훈시를 내리려고 하고, '청년들이 자기들 앞에 단정히 무릎꿇고 앉아 묵묵히 훈계를 들으면서 반성하고 감동하는 것'을 대화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똑같다는 겁니다. 김형태의 히스테리를 대화라고 부른다면 강용석의 성희롱도 대화예요. 김형태가 젊은이의 말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면, 강용석은 젊은이들과 유쾌한 Y담을 나누고 있는 거겠죠.

213s님은 자꾸 제가 세대론의 입장에서 진보꼰대와 보수꼰대 사이에 있는 막대한 차이를 무시하고, 일반적 꼰대성으로 둘러씌워 걷어차고 있다고 하시는데, 사실 전 두 집단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한번도 부정한 적이 없었고, 어떤 면에서는 진보꼰대들이 이야기하는 가치가 저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이기도 하다는 것 까지 인정했어요. 다만, 그들이 말하는 방식이 똑같다는 것, 그들이 젊은이들 대하는 태도가 똑같다는 것은 어떤 가치를 주장하느냐와는 별개로 문제가 될 수 있고, 특히 진보꼰대들은 그로 인하여 자신들이 주장하는 가치를 스스로 배신하고 있다는 게 제 이야깁니다.

213s

2011.09.02 04:37:32
*.140.58.209

제가 분명히 그래서 '그 중에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두느냐'는 선택의 문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386꼰대들보다 수구꼰대들이 젊은 사람하고 하는 이야기가 실제로 적긴 합니다. 님은 잘 못사는 사람이 젊은 사람들한테 빌붙으려고 하는 게 더 많이 일어날 일일 것 같습니까 잘 사는 녀석들이 굳이 시간 내서 젊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들의 잘난 모습을 어필하려고 하는 게 더 많이 일어날 일일 것 같습니까. 그런 대단한 의미값도 없는 팩트를 가지고 걔네들의 수꼴과의 구조적인 일체감을 굳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 자체가, 어떤 콤플렉스를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게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213s

2011.09.02 04:39:59
*.140.58.209

그리고 그걸 스스로 배신하고 있다는 거 걔네들이 모를 수가 없는 거예요. 그걸 그냥 생각하려고 하지 않을 뿐이지. 근데 그것 말고는 알고 있는 대화 방식이 없으니까 그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못해보겠습니까? 걔네들이 가진 문화적 토대가 그런 것이라서 그런 것에 지나지 않는 거라면, 그들이 말하는 방식이 어떻건 간에 그 말 속에서 실제로 전달되고 있는 관념은 그것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요. 왜냐하면 그건 별개의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윤형씨가 그래서 그걸 굳이 '정리'하는 거예요

213s

2011.09.02 04:45:34
*.140.58.209

또 꼰대 쉴드치고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할까봐 하는 말인데, 나는 그 꼰대들이 좋아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나도 그 인간들 안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그걸 '꼰대성'이라는 방식으로 인식하고 넘어가기엔 진보성과 꼰대성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엄연히 양립하고 있고, 그것이 양립하고 있는 방식을 생각하는 건 실존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진보할 것이냐를 생각하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나는 꽤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굳이 그들의 히스테리를 꼰대 일반과 동급으로 놓으려고 하지 않는 거고(게다가 님은 그게 다르다고 인정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걸 등치시키고 있잖습니까. 님이야말로 말의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지 않아요), 그걸 제대로 반성하지 않으면 우리들도 그런 꼰대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근데 그걸 그냥 '꼰대니까 그런 거다'라고 말하고 넘어가면 걔네들이 자기들이 더 순수하다고 주장하면서 자기들이 꼰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그와 같은 태도를 반복하게 될 뿐이지 않겠습니까?

213s

2011.09.02 04:47:55
*.140.58.209

아니면 아예 그에 대한 인식론적 총체화를 포기한 평범한 냉소주의적 일반인이 되거나-ㅅ-.. 나로써는 이 가능성이 더 높아보입니다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 미도리가 했던 이야기에 감명을 받고 평범한 삶을 꿈꾸는 그런 인간이 되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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