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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SNS의 진보성?

조회 수 23759 추천 수 0 2011.07.10 12:37:48

소위 SNS의 진보성이란 것은 공간적으로 멀리 있는 사건도 내가 직접 경험한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그 '착각'의 메커니즘에서 나온다고 본다. 이에 대해선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칼라티비의 리포터였던 진중권이 오히려 가장 건조하게 설명한 바 있다. <문화과학> 2008년 가을호(55호)에서 진중권은, 칼라티비 시청자들에게서 일종의 '역매개'였다고 설명한다. '역매개'란 건 별 소리가 아니고 방송보다 발달한 게임 장르의 문법이 방송에 틈입했다는 것이다. 칼라티비 시청자들은 화면에 나오는 캐릭터(?) 진중권에게 이런저런 명령(?)을 내리고 그게 어느 정도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 시위 바깥에서도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부분을 분석한다면 내용이 조금 달라지겠지만, 스마트폰을 만지는 사람이 시위 현장의 바깥에서 실시간으로 시위참여 주체의 호소를 들으며 스스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끼는 상황 자체는 진중권이 직면한 상황과 흡사하다. 


기성매체의 관심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활동가들이 트위터를 선택하고, 그것이 다수의 시민들에게 전파되고 공감을 얻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리고 이 과정엔 우연적인 부분도 있고 시대를 드러내는 측면도 있는데, 그 지점에 대해서는 이택광의 다음 글들이 적절한 분석을 제공하는 것 같다. 


이택광 / 김진숙
이택광 / 김진숙과 김여진 (경향신문)


다만 특히 두 번째 글에 나오는 사뭇 의도된 장밋빛(?) 전망에 대해 부연할 말이 있는데, 이택광이 기술한 추세는 사실일지언정 그것이 '대세'로 변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사실이 지적되어야 한다는 거다. SNS의 진보성이란 것이 기술진보에 의해 실현된 경험의 확장의 부산물에 해당한다면, 이것이 가지는 파급력이 제한적일 거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진보진영의 입장에서 SNS가 성공적으로 활용된 경우, 사람들은 이념지향이나 정치적 전망의 변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참여한 일'이기 때문에 그 활동을 지지하게 된다. 


여기서 정치의 문제는 오히려 심리학이나 자의식의 문제로 변동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발화는 이명박 대통령만이 쓰는 것은 아니다. 전후사정이야 어찌됐든 우리가 그 투쟁을 지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이 시선의 어두운 부분은 '내가 잘 모르고 참여하지 않는 (그들만의) 투쟁은 별 의미가 없거나 부당하다.'는 것이다. 생활세계의 상식인들은 뉴스에서 경찰이 '과격시위대'나 '붉은 조끼를 입은 노조원'이나 '운동권'을 구타하는 모습을 보여도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가령 아파트 재개발 관련해서 시위를 하다가 전경과 충돌을 하게 되면 입에 게거품을 물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어디로 실종된지 모르겠다며 세태를 질타할 것이다. 이것은 좋고 나쁨/옳고 그름을 떠난 자연스려운 현상인데, 어떤 식으로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이 투쟁현장을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감정의 흐름도 사실은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이것은 '운동권 초년생' 의식이다.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한, (혹은 이 말이 좀 종교적이라 생각된다면 모순이 존재하는 한, 이 말도 좀 과하다 생각한다면 부당함이나 부조리가 존재하는 한) 어디선가 운동권 초년생은 생겨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운동판이란 건 좀 묘하게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닮아 있어서, '뉴비'일수록 발언권이 세다. 막 투쟁에 눈을 뜬 열혈청년이 '당신들이 지금까지 한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고 질타하면 선배란 작자들이 꼰대 낙인 찍히지 않으려 서로 눈치를 보며 박수를 치는 곳이 운동판이다. 그렇게 "운동권은 때려도 되지만 나-시민은 때려도 안 되지."라고 믿던 소년은 그 믿음을 그대로 가진 채로 하나의 좁디 좁은 세계로 합류한다. 그리고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이 다른 '시민'들에게 '맞아도 되는 놈'으로 취급받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SNS의 진보성이란게 이 운동권 초년생 의식을 좀 더 기술진보적으로 광범위하게, 요즘 유행하는 시쳇말로 '유비쿼터스적으로' 실현하고 있을 뿐이라면 그 한계도 '원본'과 동일하다.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더 이상 조중동에게 그들의 공포의 대상인 '순수한 시민'으로 호명되지 못함을 깨닫게 된다. 그가 사회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는 한 그는 어떤 현장에서 '외부의 불순세력'으로 낙인찍힐테고, 조중동은 억울하게도 그를 과거의 운동권과 구별하지 않고 '전문시위꾼'이라며 똑같이 빨간칠을 할 게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억울한' 일인가?) 덧붙여 실존적으로 가장 심각한 상황은 그가 어느 순간 본인이 처음에 분노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이 세상은 울화병으로 뒤지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라는 것이다.   


운동논리의 측면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정서적 공감은 힘이 세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어떤 사람들은 운동진영이 설파한 논리의 허점이나 은폐된 지점을 찾아낼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국가나 사용자나 시위진압자의 논리를 설득력있게 대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거기에 동의한단 건 아니다.) (운동권이 잘 모르는) 맥락, (혹은 숨기려는) 맥락, (혹은 부각시키려는 것들 이면에 숨겨진) 맥락들이 튀어나와 사람들을 포위할 것이다. 냉소주의자나 쿨게이들이 튀어나와 (어제의 쿨게이였지만 지금은 달라진) 운동권들을 질타할 텐데 이들을 '병리적 증상'으로 취급하고 넘어가는 것이 온당한가? (그거야말로 정신승리 아닌가?)


이전 글(2011/07/09 - [문화/기록물] - [프레시안books] 더 울퉁불퉁하게 기록하고, 더 섬세하게 요구했으면... )의 말미에서도 지적했지만 사회개혁을 위해서는 활동가의 요구와 관료의 논리가 모두 필요하다. 현실세계에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단 얘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두 문화의 언어를 매개하고 중재하는 작업 없이는 어떤 유의미한 정책대안이나 폭넓은 대중들을 규합할 수 있는 운동의 구호가 따라나오지 않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그런 거 없이 한방에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얘기하는 건 어디까지나 확률적 문제다. 잭팟이 한 번쯤 터질 수는 있지만 언제나 터질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잖은가? 박정희 정도 되는 독재자나 김대중 노무현 정도 되는 통치자들은 충분히 잭팟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젠 잭팟으로도 사태가 개선이 안 되는 지경인데, 이제 로또를 바랄 것인가?


SNS의 진보성에 관한 논의에 내가 상대적으로 '무심'한 것은 이때문이다.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이지만, 기존의 어휘로 분석될 수 있고 지금까지 한국 정치에 존재했던 한계를 반복할 뿐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문제에 대해 좀더 개별 매체들을 분석하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글을 원한다면 졸저 <안티조선 운동사>의 '닫는글'을 참조해 주시길.
2011/01/20 - [문화/기록물] - <안티조선 운동사>, 닫는글 : 다시 언론 운동을 꿈꾸며


오히려 최근의 한진중공업 사태나 희망버스 등에 대해 얘기하려면 SNS의 진보성과는 다른 차원을 따져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2000년대 초중반의 '뉴미디어'로 각광받았던 인터넷 게시판/블로고스피어의 주요한 정치적 화두가 언론운동/정당운동이었는데 2010년 이후 뉴미디어로 호명되는 SNS의 정치적 화두는 구체적인 투쟁현장 (홍대 미화원노동자, 두리반,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이후 활동들, 마리, 그리고 김주익이 올라갔었고 지금은 김진숙이 올라가 있는 한진중공업 크레인 85번 등등) 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이에 대해서도 매체론적인 분석이 가능하다. 텍스트의 길이와 빈도 등이 정서적 몰입도의 차이를 가져와 SNS에서는 장기적인 계획에 관한 얘기보다 구체적인 현장에 관한 얘기가 어울린다고 답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이 답일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막 정치적 주체가 되고자 하는 '시민'들이 있을 때, 십 년의 시간을 두고 이들의 관심사가 현격하게 달라진 현실은 한국 사회의 정치변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정당이나 언론과 같은 '매개체'에 대한 신뢰가 2000년대 내내 판판이 깨져나가면서 개인들의 구체적인 삶이 피폐해졌던 현실과 결부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을 '긍정적인 변동'으로만 간주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시민들이 SNS를 통해 스스로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 노동자나 자영업자의 먹고 사는 문제들에 감정이입하게 된 것이 환영할만한 일이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말이다. 최장집이 2008년 촛불시위를 '뭐가 잘 되어서 생긴 게 아니라 뭐가 잘 안 되어서 생겨난 현상'이라 파악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정당과 언론에 대한 기대치가 사라져 버린 현실이 마냥 긍정적이라 볼 수는 없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이 사회개혁의 실천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정당이나 언론과 같은 매개체들을 우회할 수 없다고 본다. SNS에서 발현되는 정치논의들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실판단을 더 폭넓게 공유하게 된다면,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희망의 총량도 더 커질 것이다. 

 

hwal-in

2011.07.10 13:33:07
*.48.234.26

이번 글도 정말 좋네요.^^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계속 건필하시길 : ) 아, 그리고 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잭팟으로 적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하뉴녕

2011.07.10 13:41:49
*.171.89.66

그만하면 잭팟이 맞죠. 물론 저는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고 실현가능성이 없다기 보다는 여러 가능한 방식의 하나였을 뿐이지만) "2002년 이회창- 2007년 노무현" 순으로 이어졌다면 더 좋은 세상이 오지 않았을까 생각은 합니다. 이건 아마 노무현 전 대통령도 수긍할 수 있었을 거에요. 미국 금융위기 이후에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이란 식의 회한이 엿보였으니까요. 하지만 이쯤 되면 잭팟을 넘어서 로또죠...;;;

이상한 모자

2011.07.11 13:07:39
*.114.22.71

한윤형님 제 홈페이지 좀 고쳐주세요!

이상한 모자

2011.07.11 15:19:20
*.114.22.71

와 미치것네.. 홈페이지는 안되고 트위터에도 못가고 어디서 뭘 할 데가 없네.. 와..

이상한 모자

2011.07.11 15:20:05
*.114.22.71

아 맞당 이럴때를 대비해서 블로그가 있었징 ^_*

http://127thshelter.tistory.com

시만

2011.07.11 22:24:36
*.25.134.119

(뭔가, "꼭 그런가...너무 어두운 전망인 듯" 싶기도 하지만) 절창이다! +@로 끈질긴 책 홍보까지!

하뉴녕

2011.07.12 15:32:34
*.171.89.66

아....저 닫는글은 실제로 쓴게 저것 밖에 없어서 저렇게 기록한 것인데...;;;; 닫는글 안 올려봤자 책 더 팔리지도 않을테니 저건 공개한 후 링크를 띄워야겠군요....;;; (예약기능으로 예전 날짜로 닫는글을 올린 후 링크 추가하였음요 ㅎㅎㅎ)

으흐흥

2011.07.12 02:56:20
*.205.71.175

이젠 날파리를 넘어 똥파리들이 막 꼬이는걸 보면 한윤형씨도 어느정도 유명해진듯^^

글고 이 멍충한 넘들아 주인장이 트위터로 책을 홍보하건 말건 너네가 뭔 상관이냐? ㅋ 글 한 꼭지라도 더 쓸수 있도록 책이라도 사줬냐 ㅎㅎ

z

2011.07.12 09:54:47
*.143.73.67

너만 하겠야 시바것아 ㅋㅋ

으흐흥

2011.07.13 21:52:02
*.205.71.190

오오미 성님 지리것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 같은 넘들은 똑같이 대해줘야제 암~

d

2011.07.13 22:25:32
*.21.178.96

똑같이 해줘라 ㅋ

전격Z작전

2011.07.12 11:29:05
*.114.22.71

오오미 z 이 잡것을 보소
달린 손가락이라고 함부로 놀리는 것이 아니여 알긋냐 아그야?
분명히 경고혓다

ㅎㅎ

2011.07.12 12:26:51
*.143.73.67

어쩌라고 경고하면 우짤낀데 ㅋㅋ

숲속얘기

2011.07.14 15:15:57
*.91.137.78

개인적으로 트위터는 매체진보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체 파급력과 전달력이 강한것 뿐이죠. 오히려 같은 생각의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커넥션 시켜주는 페이스북이야말로 매체로서의 진보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트위터에 비해 익명에 기대는 사람의 수도 더 적기에 외곡의 가능성도 더 적구요.
대신 반대로 정부에서 맘먹고 탄압하고 나서면 페이스북은 개개인을 때려잡기에는 더 용이하죠. 그러나 그것 역시 페이스북의 다른 작용으로 인해 정부는 더 역풍을 맞을 수도 있고.

트위터는 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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