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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개혁당 해산이라는 사기극

조회 수 2280 추천 수 0 2004.05.03 21:34:00
진보누리에 아흐리만이란 이름으로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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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지났으니 이제 명확하게 말해보자. 열린우리당을 위해 개혁당은 '해산'되었다. 아니, 개혁당은 해산되지 않았다. 애초에 개혁당원들은 개혁당을 해산시킬 법적인 '권리'가 없었다. 그래서 선관위는 당원투표 결과 90%의 지지를 받아 통과된 개혁당 해산 조치를 '반려'했다. 그건 니네들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땅하다.


"당원들의 직접 투표로 인한 해산은 직접 민주주의의 발로다. 다수결의 발로다. 민주주의의 승리다. 선관위 니네, 나빠나빠!" 할 분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무식한 분들을 위해 보충설명을 하고자 한다. (한국인들은 설령 자신이 무식하지 않다 하더라도 무식한 이들의 난동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도움이 되면 '방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계몽의 의무를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넘긴다. 매우 안 좋은 버릇이다.)


1. 가령 저작권 협회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회원이 1천명이라고 치자. 어느날 900명의 회원들이 "이제 우리들의 저작권은 충분히 보호되고 있다. 협회는 더 이상 필요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치자. 이들은 '저작권 협회'를 해산할 '권리'가 있을까? 남은 100명은 아직도 보호받아야 할 저작권이 있다고 믿는데 말이다. 애매할 것이다. 어쩌면 해산을 하든, 안 하든, 별 상관이 없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남아있는 100명은 새로운 '저작권 협회'를 만들테고, 아무도 이에 대해 간섭할 권리는 없으니까.


2. 자 그럼 정당에 대해 생각해 보자. 정당은 정강 정책을 바탕으로 한 이념 집단(좌파 이념 말하는 거 아니다. 가령 누군가 "우리당은 이념이 없다."라고 한다해도, 그게 우리당의 '이념'인 셈이다.)이다. 그리고 그 이념의 보존 및 확산을 바라는 집단이고, 일반적으로는 집권까지 목표로 하는 집단이다. 개혁당은 집권 목표 없었다고 할 사람이 많을테니, 뭐 그 부분은 빼고 일단 '정당'의 정의에 들어가야 할 '보존 및 확산'만을 남기자. 이 목적은 공공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단지 어느 시점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집단이 어느 이념을 대의하기로 했다면, 그 집단은 원칙상 후세대까지 의무를 가진다. 심지어 후대에 이 이념에 동의하고 정치활동을 원하는 사람들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A라는 이념에 동의해서 모인 집단이 정당이라면, 그리고 어느날 이 이념의 원칙적 혹은 전략적 가치를 폐기한 사람들이 등장했다면 그 사람들이 당을 나가는 것이 맞다. 이건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나가고 나가고 해서 마지막 몇 사람이 "우리들로는 정당 못하겠다. 그만하자."고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그 정당이 끝나는 것이다. 정당은 정체성이다. 그 정체성을 가지고 계속 가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해산은 불가능하다. 개혁당원들이 '해산' 논의를 했다는 것 자체가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기 때문에 서구 사회의 정당들은 지지율 변동에도 불구하고 수십년 이상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개혁당원들이 지역주의에 흔들리며 수시로 사라지거나 재창당하는 정당들을 '정당'으로 알고, '민주주의 정당'도 그런 식으로 팔아치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비극이다. 시스템에 걸맞는 문화가 없었던 것이고, 그래서 시스템을 위배한 것이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 한다. 법적으로나, 원칙적으로나, 개혁당은 해산된 것이 아니다. 유시민을 필두로 한 개혁당원 대다수가 '집단탈당'하여 열린우리당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그런데도 전 개혁당원이란 사람들은 그들이 당을 해산했다고 말하고, 남은 이들의 선택이 문제가 있다고 말하며, 그들이 여전히 '개혁당'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한다. 도둑이 주인에게 성내는 격이다.


그렇다면 '개혁당 해산'의 정치적인 평가는 어떻게 내려야 할까? 이 부분은 원칙적 평가와는 다를 수 있다. 가령 노사모는 원칙적으로 대선 이후에 존재할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 결정은 정치적으로 그리 현명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체를 주장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발걸음을 돌린 '국민의 힘'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체도 아니었지만.) 이처럼 원칙적 평가와 정치적 평가는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개혁당원이 개혁당 '해산'의 권리가 없었다는 전제하에서, 개혁당원의 열우당행은 정치적으로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전혀 아니올시다다.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 보자. 먼저, 이념 정당으로서의 개혁당엔 정강 대신 네가지 목표가 있었다. 갑자기 개혁당은 이 목표를 채울 수 없고, 열린우리당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이유가 뭘까? 별다른 이유가 없을 것이다. 두번째로, 전술 정당으로서의 개혁당은 명확한 레토릭이 있었다. 유시민이 언명한 바, "민주노동당의 시스템, 민주당의 정책." 개혁당은 민주당의 이념/정책에 동의하지만 민주당의 정당 시스템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만든 '전술당'이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당의 목적이 사멸했고,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는,  


1.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의 시스템(진성당원제를 기반한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2. 다수의 개혁당원들이 입당한다면 열린우리당에서 그것이 실현될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라는 두 가지 경우에만 성립할 것이다. 1번은 일단 제끼고, 2번에 대한 전망이 충분했는가? 유시민은 그렇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품도록 만든 일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열린우리당에 민주노동당의 시스템을 도입하는데 성공할 수 있다면, 개혁당에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영입하는데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어차피 도찐개찐 아닌가.


게다가 유시민은 아직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의 시스템을 구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민주당은 동원형 정당이고, 열린우리당은 참여형 정당이다."라고 주장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참여형 정당이라고? 그 정당의 몇퍼센트나?


결국 유시민은 "열린우리당 중앙당을 떠나며"란 글을 통해 본인의 행위의 정당성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말았다.


"제가 우울한 것은, ‘권력을 국민에게, 당권을 당원에게’ 돌려주는 정치개혁 정당혁명의 꿈을 열린우리당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분명하게 확신이 묻어나게 외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 대해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짐은, 사기꾼이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드러냈을 때 사람들의 동정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애초에 안 될일을 추진한 사람이라도, 내가 계속 노력하고 있으며 나도 안 되는게 답답하다는 메세지만 적절히 남기면 계속해서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개판이 되는 날이 오더라도 사람들은 유시민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안에서 노력한 유시민에게 존경의 념을 표할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통석의 념을 표한다. 설마하니 유시민 의원이 당신들만큼 순진하겠는가. 그가 처음부터 자신이 있었다면, 도대체 왜 개혁당을 '해산'시키려고 했겠는가. 그 선택의 정치적 올바름에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우리가 저런 일을 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유시민의 개혁당 해산이라는 사기극은, 희극이다.

대구솔빵

2014.06.27 04:48:33
*.10.197.10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때가 그립습니다.... 소수지만 고고하게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합니다.. 특히 협력과 상생을 위한 포괄중도 정당이 절실합니다... 영호남 협력과  남북 통일을 위해서도 더욱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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