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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요즘 정치권이 참 혼란스럽다. 한나라당에서는 친박계와 쇄신파가 대립하고 있고, 민주당에서는 전당대회에서 폭력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따갑다. 거의 모든 언론이 우리 기성 정치권의 실망스러운 모습에 대해 매일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나라당의 혼란은 공천권을 수복하려는 친박계 정치인들과 대통령과 명확한 선을 그어 총선에서 살아남으려는 수도권 쇄신파 정치인들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친박계의 입장에서는 이제 비로소 큰 권한을 손에 움켜쥐게 됐는데 판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쇄신파들의 입장에서는 판을 뒤엎어야 이명박 대통령과의 명확한 차별화가 가능해진다. 박근혜 전 대표가 뒤늦게 수습에 나서 이들의 이러한 갈등은 봉합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각자의 불만은 언제 어떤 형태로 다시 떠오를지 모른다.

민주당의 혼란은 민주당이라는 틀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전통적 지지자들과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정치를 냉소하는 부동층에게 강력하게 어필하고 싶은 신진세력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이는 세간에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갈등으로 비쳐졌다. 손학규 대표는 대권을 향한 그림을 그리고 있으므로 민주당이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는 통합을 결의해주길 바랐을 것이고,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당권의 쟁취를 꿈꾸고 있었으므로 전통적 지지자들까지 껴안는 통합이 이루어지길 바랐을 것이다. 결국 전당대회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나자 당내의 유력한 정치인들이 모두 나서 갈등을 조정하려는 모양이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전당대회 결정의 법적 효력에 대한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주장도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우리의 냉소를 더욱 강력한 것으로 자리잡게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이러한 과정 그 자체가 현대의 대의정치에서는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정치란 갈등을 통합하고 합의하는 과정이며, 민주주의의 기본은 정치세력 내부의 논의까지 국민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위에 언급한 여야의 상황이 보도되는 것을 접하며 각 정치세력의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들이 실제로 하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아챌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상황을 섬세히 짚어보면 어떨까. 결국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혼란은 당 지도부의 정치력 문제다.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쇄신파를 설득할 만한 매끄러운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고,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손학규 대표가 통합에 대한 당내의 이견을 조정할 만한 바람직한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지금 이러한 기성 정치권의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이들에게 좀 더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해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 만일 우리의 판단이 더 이상 기성 정치권의 틀로는 그러한 정치적 기술의 진수를 볼 수 없다는 것이라면 우리가 요청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해서도 그러한 잣대를 똑같이 들이밀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이 과연 그렇게 표현되고 있는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여론이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정치세력에 보내는 기대가 그다지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소위 ‘안철수 신당’, ‘보수신당’ 등에 대한 높은 기대가 그렇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된다면 정치인들은 그저 새로운 당만 자꾸 만드는 것으로 자신들에게 맡겨진 진정한 정치개혁의 소임을 대신하려 할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영원히 정치개혁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가져야 할 태도는 정치권을 냉소하기 위한 근거를 하나라도 더 찾아내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도대체 왜 저러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이 글은 주간경향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112201551291&code=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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