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최근의 나는 여동생과 함께 투룸에서 살고 있다. 여동생은 새내기 때의 나에 비하면 술을 먹는다고 볼 수도 없고 학교도 꼬박꼬박 잘 나가는 모범생이지만, 여하간 그 또래에서는 뭔가 잘 마시는 아이로 통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하루는 밤에 출타 중인 내게 여동생이 전화했는데, 저 횡설수설하고 긴 통화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1) 나 취했다. 2) 그런데 아직 들어가기는 싫다. 3) 하물며 택시비도 없다. 4) 나중에 전화하면 택시비 들고 나와라. 였다.
여동생 때문에 요새 나는 술도 마음놓고 못 마실 지경에 이르렀다. 대충 술값부터 먼저 쓰고 나머지 생활은 궁핍하게 하던 내 몇 년 간의 자취생활 패턴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가령 나는 대충 있는 걸로 먹어도 문제가 없건만 생활수준이 부모님 집에 살 때 보다 떨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여동생은 자기 돈을 쓰거나 내 돈을 뺏어내서 장을 보고야 만다. 하여간 그날도 나는 마침 친구와 늦은 음주를 즐기려는 참이었는데, 부득이 그날의 ‘실탄’에서 일 만원을 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여동생이 집 앞에 닿을 때까지 나는 꼼짝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요새 대학은 인심이 좀 황폐해져서, 여자 신입생은 좀 취했다 싶으면 돌려보내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게 택시비 구원을 요청한 여동생의 행동도 어지간히 쓸데없는 것이었던 것이, 아무리 그래도 새내기가 택시 타고 집에가는 데 택시비를 주는 선배가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내 여동생은 원래 이런 식의 쓸데없는 구조요청이 잦은 사람이다. 지하철을 잘못 타도 옆 사람한테 묻는 게 아니라 나한테 전화를 하는 분이니까. 만일 그녀가 스타크래프트를 한다면, 클릭 두번 하면 될 걸 다섯 번은 해서 마린을 성질나게 만들 것이다.
여하간 여동생이 출발할 때쯤 그 선배라는 사람이 연락이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전화를 받을 때 보니 부재중 전화가 다섯 통 찍혀 있었다. 나중에 들어온 여동생이 이렇게 얘기했다.
“선배가 어이없어 하더라고. 세상에 여동생이 취했는데 오빠라는 사람이 전화도 안 받는다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얘기했어. ‘우리 오빠는 술 먹으러 간 사람이 열두시 이전에 들어오는 걸 이해 못해요. 전화올 거라는 생각 못 했을 거에요.’라고.”
...단지 폰이 진동으로 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런 다음 그녀는 술자리에서 뭔가 실수를 한게 있다고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는데, 꼬락서니를 보니 도저히 스스로 잠이 들 때까지는 내게 칭얼거리는 걸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버려두고 술을 마시러 나갔다. 뭐, 너무 냉정하게 버려둔 것 같기도 해서 사당역 부근에 이르렀을 때 ‘그대로 내버려두면 안 잘 것 같아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잘 자라.’고 전화를 해주긴 했지만. 그때가 밤 열두시 쯤이었다. 다음날 아침, 아니 내 기준으로는 새벽에, 여동생은 득달같이 모의토익을 보러 나갔다. 나는 잠귀가 밝아서 그녀가 나가는 기척이야 들었지만, 술 마시고 새벽 네 시에 복귀한 터라 거의 점심시간 때까지 뻗어 있었다.
“선배 언니들이 묻더라. ‘오빠한테 혼 안 났어?’라고.”
그네들의 상식에서는 술먹고 취해서 늦게 돌아와 투정 부리는 여동생은 오빠에게 혼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말했어. 우리 오빠 취한 날 버려두고 친구랑 같이 술마시러 나가서, 새벽에 복귀해서, 내가 아침에 나올 때는 뻗어 있었다고. 그러니까 다들 굉장히 이상한 집이라는 눈초리로 쳐다보더라.”
참 이상할 것도 많다. 최근에 나는 이번에 알바비를 타면 여동생에게 아웃백스테이크에서 스테이크와 맥주를 사주겠노라고 공약을 했는데, 그녀는 그 공약을 듣고 열광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하기를,
“내 친구들에게 그 얘기 하면 ‘아웃백에서 맥주라니,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 @.@’라고 반응할거야.”
하지만 스테이크를 팍팍 잘라 먹으며 맥주를 퍽퍽 들이키는 행위는, <앰버연대기> 1권에서 코윈이 플로리멜의 저택에서 그렇게 하면서 보여준 바와 같이, 매우 마초적인 로망이 있다. 맥주값이 비싸서 거기서 그리 오래는 마시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닭꼬치에 맥주밖에 못 사주던 무능한 오빠가 스테이크에 맥주를 사주고 싶어하는 건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