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대환을 위한 변명
1.
주대환 민주노동당 전 정책위원장의 시대정신 기고글은 사실 별다를 것이 없다. 기고한 매체가 뉴라이트 성향이라는 것이 문제면 문제였지 그 글은 평소에 그의 주장을 정리해 놓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대환을 여전히 1991년 신노선 이전의 기억으로 바라보거나 아니면 유럽 사민주의와 인상비교만으로 그를 질타하는 것은 별로 적확한 것은 아니다.
많은 분들의 현란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주대환이 제기하는 문제제기는 명확한 것이다. 역시 낡기는 했지만 영국노동당 노선이 한국에서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된 지금 과연 지금 현재 한국의 진보진영이 정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2.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마디로 주대환이 이야기하는 사민주의는 필자가 이해하기로는 세금이다. 사민주의의 기초는 세금이며, 이를 통한 복지가 대중적으로 사민주의의 기반이다. 지금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유럽의 사민주의 체제들이 버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분야의 복지는 보수적 사고를 하건 진보적 사고를 하건 보통 사람들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이것이 유럽통합 이후에도 유럽의 복지의 광범위한 후퇴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한다. 1990년 이후 실제로 조세부담률은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줄어들지 않았다. 즉, 이른바 작은 정부는 재정적으로 실현되지 않았고, 심지어 영국에서 대처의 집권 이후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3.
그러나, 세금과 복지의 확대는 한겨레와 경향 같은 곳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국민의 40% 가까이가 여기에 찬성을 해도 쉽게 확대되지 않는다. 체제의 변혁을 꿈꾸는 급진적 집단에게 세금은 사소한 개량이겠지만, 혁명적 시기가 아닌 일상시기에서 지배계급에게 세금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양보는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게다가 세금-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조직화된 지배계급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강력한 조직은 두말할 것 없이 노동자총연맹과 그에 기초한 정당이다.
영국노동당은 1920년대 초(1차대전 직후), 전쟁으로 인한 투기 및 불로소득을 환수하기 위하여 유산자들의 재산의 일정비율을 몰수하는 1회성의 부유세를 제안하였다. 당시 영국은 전비를 국채로 조달하여 1년 예산의 50%를 국채이자로 지불하였는데, 사람들이 세금을 내서 전쟁으로 이득을 본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광범위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영국노동당의 이러한 제안은 광범위한 공감을 불러일으켜 영국노동당의 급속한 성장에 기여하였고, 당시 재무장관인 처칠인 이러한 반소유권적 정책에 위기감을 가지고 역으로 상속세를 강화하고 노동당으로부터 중간계층을 떼어내기 위해 중산층에 대한 감세안으로 이를 완화시키기도 하였다.
필자가 이해하기는 세금을 통한 복지확대 전략은 조직적으로 노동조합총연맹과 이에 기반한 노동당이 없이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다. 이것은 OECD에서 조세부담률을 봐도 실증이 되는데, OECD의 경우 오히려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나라일수록 조세부담률은 높은데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의하여 국제경제에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일수록 복지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다면 일본과 미국인데 이러한 나라들은 경제규모가 커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아일랜드 같은 경우는 한국처럼 보수양당이 집권하고 있어 노동당이 3당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조세부담률과 복지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여기서도 한국은 극단적인 예외이다.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은데 복지는 극히 미약하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노동당이 약하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4.
필자가 보기에 사실 추상적으로 복지를 원한다고 해서 사민주의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는 조직노선에서 노동조합-노동당 노선이 아니면 사민주의는 실현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대환이 보기에 한국에서 이것은 파탄이 난 것이다. 그것이 1900년대 영국의 낡은 노선이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한국에서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아마 가장 큰 것은 노동당-노동조합이 민족주의자에게 장악된 것이고, 주대환이 보기에 사민주의 노선을 실현해야할 민주노총 내 다수파인 이른바 국민파가 시대착오적인 자주파와 철의 연대를 하고 있고 자신들의 협소한 경제적 이해만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대환을 비판하는 좌파들이 답해야 할 것은 유럽 사민주의자가 주대환보다 훨씬 폼난다는 이야기이거나 아니면 그것이 1900년대 이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복지”라는 유럽에서의 사민주의 우파의 정책을 정치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어떤 정치적 기획과 실천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적극적인 답이다. 한마디로 주대환은 1991년도 신노선을 주장한 이래 노동조합-노동당 노선을 위해 온갖 일을 해보았지만 더 이상 한국에서 실현되기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린 것인데, 이러한 주대환에 대한 비판은 ‘당신은 후지다’가 아니라 ‘이런 정치전략과 기획이 필요하다’이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대환이 던진 문제의식은 그가 진보신당을 지식인 집단이라고 힐난했지만 진보신당 재창당 과정에서의 주요한 문제의식이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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