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이택광 : 폴라니, 그리고 인문학의 개입
김에녹시아 : 이택광 비판 1
한윤형 : 이택광과 칼 폴라니 논쟁, 그리고 독해의 문제
김에녹시아 : 비판 2
한윤형 : anoxia 님 글에 대한 답변
김에녹시아 : (1) 우생학과 진화심리학
김에녹시아 : (2) 박정희와 우생학
김에녹시아 : (3) '균열' - '한윤형의 우생학', '이택광의 우생학'
이택광 : 박정희와 파시즘
한윤형 : 자연주의적 오류와 메타 윤리학
한윤형 : 자연주의적 오류와 규범 윤리학
김우재 : 대안사회담론의 진화생물학적 자장?
애초에 김에녹시아 님이 지적한 것은 이택광의 글에서 사용된 우생학이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고, 우생학과 진화생물학의 관계를 허황되게 기술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글의 의도가 대략 이런 것이 아니었겠느냐는 나의 설명 이후에도 그는 1) 우생학이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고, 2) 우생학과 진화생물학은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누가 뭐래?)라는 이유로 이택광이 글을 잘못 썼다는 견해를 고집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의 글을 두둔하는 사람마저도 1) 대충 무슨 맥락으로 우생학이라는 말을 썼는지 알겠고 2) 무슨 맥락으로 우생학과 진화생물학을 엮었는지도 알겠고 3) 그래도 글이 좀 그렇다. 한윤형의 옹호도 좀 그렇다. 라고 반응한다. 아예 논점 자체가 사라진 거다. 이쯤이면 누가 잘못했는지는 명백한데도 김에녹시아의 글은 이해가 가고 한윤형의 반응은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그가 허황된 논점을 잡아두고 이택광 뿐만이 아니라 인문학적 글쓰기 전반에 대한 평가를 하고 "인문학은 역사 빼곤 사라져야 한다."라는 말을 늘어놓는 그 모든 활동 자체가 괜찮다는 거다. 이런 일들을 정당화시키는 논법은 무엇인지 모르겠고, 도대체 누가 오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에녹시아는 이택광과 나의 글을 현실에서 동떨어진 구름 위의 비평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택광의 얘기가 애초에 실천적인 얘기였다는 거다. 더구나 이택광은 그래도 학자니까 어려운 용어도 쓰고 하니 그렇게 이해한다고 치고, 나처럼 정치평론 혹은 스타리그 평론이나 하는 양반이 언제 구름 위의 얘기를 했냐는 거다. 나는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다가 벽에 부딪혔을 때에야 책을 뒤적거리는 너무나도 무식한 사람이다. 이런 이가 구름 위에 있다고 말한다면 대부분의 블로거들은 대기권 바깥에 있다.
'대중적 진보담론'이란 말을 다시 적나라하게 말할 것 같으면, 한윤형 같은 꼬꼬마 좌파가 군대 내무반에서 고참 혹은 후임과 정치토론이란 걸 했을 때 쓸 수 있는 무기가 뭐가 있느냐는 거다. 주제가 이런 얘기인데 진화생물학이라는 학문의 맥락에 대한 토의가 중요할까?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만 애초에 중요한 논점이 아닌 거다.
사실은 사람들이 이택광의 그 글을 못 알아먹겠다고 했을 때 '아 이 양반들은 사람을 설득해 본 적이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혹은 과학을 너무 잘 알아서 과학지식을 활용하는 것에 부담이 없었거나. "과학도 모르는 놈들이 과학 용어를..."이라고 일갈하는게 이 문제에 안 맞는 이유는, 애초에 이 얘기가 과학과 무관하게 살아야 하는 이들이 과학을 호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서글픈 얘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군대 내무반으로 돌아가자. 이제 대략 고참과 말을 섞을 수 있을 상병이 꺾인 정도 짬밥의 한윤형이 말년 병장 고참과 대충 정치적인 얘기를 하고 있다. 고참이 경제성장에 대해 말할 때 그는 분배가 이루어져 사회구성원들이 고루고루 잘 살게 되면 내수시장이 활성화되고 어쩌고 식의 얘기를 해야 한다. 이런 게 대중적 진보담론의 프레임이다. 잘못 되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렇게 하느라 지쳐서 다음이 없는 그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다들 이해를 할 것이다. 그런데 "약자는 죽어야 돼."라는 말을 지껄이며 한미 FTA를 찬성하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이것은 경제학적인 주장도 아니다. 여러분은 다들 머리를 굴려보시라. 한윤형은 이때 내무반에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지인이 아닌 인간이 블로그에서 그런 리플을 날렸다면, 나는 냉소적으로 "그래 니가 약자하렴."이라고 반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참에겐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그의 프레임 안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자 이제 그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놀라지 마시라. 생물학도 모르는 그는 "다양한 유전자를 보전해야 종의 생명력이 높아진대더라." 따위의 얘기를 해야 한다. 열성인자를 제거하면 뭐가 좋아진다는 소리는 비과학적이고, 철지난 소리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그때부터 얘기가 좀 될까 말까다. 이런 얘기는 사실 잘 아는 얘기도 아니고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토의에서 줏어들은 얘기일 텐데, 이런 논의를 확장해서 약자도 옹호해야 하고 좌파도 옹호해야 하고 가끔은 인문학도 옹호해야 한다. 언젠가 내가 <현대 인식론> 책을 읽고 있는데 "그딴 거 읽으면 뭐에 도움이 되는데???"라고 고참이 시비를 걸어서 "컴퓨터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말입니다."라고 답을 해야 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런 게 한국 사회의 담론에서 인문적 접근이 용인받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무례한 질문을 반지성주의라고 개탄하면 과학도들이 난리를 친다. 특권을 누린다고. 그래, 정말로 특권을 누려서 행복하다.
이제 김에녹시아 님의 질의에서 좀 벗어난듯한 김우재 님 등의 남은 의문은 1) 진화생물학자들이 사회평론을 한 적도 없는데? 2) 대중들이 정말 진화생물학을 진보담론으로 써먹어? 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적시하고 있는 사례는 1), 2)와 상관없이 작동하는 어떤 구조를 보여준다. 내가 생물학을 알아서 써먹는게 아니라 '약자 척살론'을 말하는 고참에게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었던 거다.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이런 식으로 그와 얘기를 섞은지 한참이 지나서부터다. 그러므로 자연주의적 오류를 토대로 우생학과 진화심리학을 결정적으로 구별하고 이택광이 오류임을 입증하려는 김에녹시아의 논의는 얼마나 사변적인가? 저런 글이야 말로 구름 위에서 놀고 있다고 해야 마땅하다.
"이런 관점에서 진화생물학적인 진보담론은 우생학의 패러다임 내에서 작동하는 것이고, 경제학적인 진보담론은 경제개발의 패러다임 내에서 작동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게 끝까지 김에녹시아가 이해를 못하겠다고 설레발치는 이택광의 '틀린 발화'다. 이 진술이 그렇게도 이해가 안 되는가? 그래서 "엄훠. 진화생물학이 우생학의 패러다임 내에 있대!! 진화생물학이 우생학이랑 비슷한 거래!!! 나쁜 놈!!! 개객기!!!!!" 라고 반응하는 글에 내가 "어휴, 독해력 부족!! 답답!!!" 이라고 얘기하면 잘못된 태도가 되는 것인가? 짜증이 나서 한편쯤 더 쓸 것 같기도 한데, 실천적인 논의를 용어 검증의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면서 김에녹시아는 무수한 오류를 범했다. 아마 자기가 하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도 몰랐을 거다. 그런데 우리의 과학도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관대하다. 아마 인문학은 애초에 뻘 소리를 된장스럽게 하는 분야라고 생각했을 테니, 이 바닥에서 우리가 대충 뻘소리를 해도 그건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인문학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인문학을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할 게다. 하지만 이택광 정도의 글이 명료하지 않다고 툴툴대는 독해력으로 "인문학은 사라져야 한다. 역사 빼고." 따위의 말을 늘어놓을 수 있고 그걸 그로테스크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조류는 분명 정상은 아니다. 아, 물론 나도 안다. 한국 땅에서 20년이 넘게 의식을 가지고 살아 왔는데 그걸 모르겠는가. 왜 그게 그로테스크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지를. 사실 그런 얘기들이 대충 사회적으로 성공해 돈 만지고 있는 강남 아저씨들이 하는 한국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걸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 그들의 자장 안에 있으면서도, 혹은 있기 때문에 자기가 샤프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믿는 김에녹시아는 한윤형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공박한다. 내가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게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 죽고 살아 있다는 것 외엔 누리는 게 없는 것 같다. 인문학이 사라지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입 밖에 내어 떠드는 사회는 인문학도들에게 죽으라고 강요하는 사회다. 그런 강요를 받는 이들에게 특권이 어쩌고 하고 있는데 내가 열이 안 받으면 그게 더 신기한 거다. 인문학도들이 가끔 경전을 읽는다고 성인이 될 수는 없잖은가. 너희들은 물리학책 읽으면 아인슈타인이 되더냐?
누군가는 그러더라. 반대로 인문학도들이 경제학과 생물학을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말이야 맞는 말이다. 인문학도가 공부해서 득이 안 될 학문이란, 거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인문학은 사라져야 한다."고 예사로 말하는 사회에서 인문학도들이 인문학 공부라도 제대로 하고 있을까, 라는 것이다. 신경써야 하는 다른 문제가 산더미처럼 많은데, 그럴 리가 없다. 나 역시 공부를 너무 못해서 스스로를 인문학도라고 칭하는데 서글픈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한 진단을 '너네들이 현학적이라서 그래.'라고 정리하는 게 우리들이다. 사실 "너네들이 게을러서 가난한 거지."라는 말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흘러간다.
와갤러
그나저나 저로선 윤형님의 글에 충분한 지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근대적 학문의 전공자들이 인문적 필드를 접하거나 관련되게 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갑작스레 전혀 다르거나 복잡화된 의미를 띌 수 있다는 점, 이것에 대해선 동의합니다. 또한 인문계열 사람들은 (어쨌거나) 무엇이든 글을 통해 결과를 보는 만큼 글을 일반인보다 훨씬 유려한 글쓰기 실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그렇고요.
그래서 저는 문제가 여기 있다고 봅니다. 글로써 논쟁하는 곳에선 (당연히) 글을 더 많이 써봤고 잘 쓰는 인문계열 사람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넘어, 논쟁에서 상대방에게 문장력과 독해력 역시 인문적인 그것을 (무의식적으로)요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들이 일반 언어를 좀 더 확장된, 풍부한 뜻으로서 사용하는 것은 학문적 특징이지만, 정작 논쟁에선 인문적 훈련을 통해 확장된 자신의 글쓰기/독해 능력을 논쟁의 기본적 요소로 요구하는 것이죠. 과학자들이나 Anoxia님이 논쟁에서 상대방의 과학적 오류를 끄집어내 조소하고 논점을 이탈시킨다는 (유효한)지적을 하셨는데, 제겐 윤형님 역시 ‘인문학적 글쓰기/독해 프레임’을 빌어 상대방을 조소하고 논점을 이탈시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결국 두 세계의 글쓰기 방식이 다름에도 계속해서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자기 언어로 대화한다는 인상입니다. 가능하다면 윤형님께서 뭔가 좀 더 명징한 글을 쓰셔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뭐, 진화생물학에 대한 코멘트를 하자면 밑도 끝도 없이 길어질 듯하니 이만;;
그리고 무언가를 깔 때 그 대상을 잘 알아야 한다는 말에는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위에도 누군가 지적하셨네요. 만일 ‘알아야 한다’는 것의 정도가 전공자 그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논리라면 세상에 비판할 수 있는 건 아마 하나도 없을 겁니다. 어떤 학문이나 체계에 대한 비판 논거의 최소 한계는 방법론에 대한 비판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저는.
그리고 "알아야 비판한다."는 말은 아주 많이 알아야 한다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가령 저는 김일성이 쓴 주체사상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사파를 비판하기는 하지요. 그들이 평소에 쓰는 논리들을 가지구요. 근데 이 경우에도 사상으로서의 주체사상을 당대의 맥락에서 비평한다고 치면 안 읽고는 말이 안 되겠지요? 김에녹시아 님의 경우 밑도 끝도 없이 얘기를 했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얘기한 겁니다. 사실 겉핥기라도 한 사람이라면 과학과 결부되어 있는 인문학 분과라도 따로 떼내어 얘기했을 테니까요. EE!
이거 원... 중국집 '자장'면도 아니고....그렇다고 모기'장'도 아니고..수영'장'?? 해수욕'장'?? 도대체 뭐여.....
설마 magnetic field 할때의 자장????? ㅋㅋㅋ 미치겠다. 그야말로 내용의 심오함이 아닌 단어의 심오함이 묻어나는.... 개인적으로 field하면 기하학에서 곡선의 길이 측정과 관련이 있는데 인문학자가 말하는 field란 것은 무엇과 관련있는지 모르겠군요.
곡선의 길이와 진화생물학이 만나다.
= 진화생물학의 자장
2009/07/06 15:22
김우재 수정/삭제 그냥 어떤 커다란 조류 정도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자기가 뭔가를 끌어당기고 자장이 보자기 같으니까, 대충 그런 이미지를 진화생물학이 사회담론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미지로 그리시면 됩니다. 은유입니다. 무시할 이유 없습니다.
2009/07/06 19:06
더모 수정/삭제 설명 감사합니다. 갑자기 죄송스런...
조소하려는 건 아닌데 이런 걸 보고 웃으면 인문학도들이 잘할 수밖에 없는 '유려한 글쓰기 능력'으로 과학도들을 쓸데없이 무시하는 게 되는 건가요. ;;; '자장'가를 부르는 것 같아 졸립네요.
으음
환경은 지속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다양한 유전자 풀을 구비하고 있는 것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할 수 있다는 지적은 좋네요. 바뀐 상황에서는 이전의 부적응 개체가 적응 개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제가 보기엔 개념 혼란 지적 안 하고 반박하려면 그게 유일한 옹호방법일 듯합니다. 사실, 애초에 '진화'와 '진보'는 다른 개념이고, 종종 서로 상충하는 듯한데, 어떻게 진화 개념으로 진보를 옹호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네요. 그게 가능하긴 한 건가요? 진보담론은 잘 몰라서. 하나는 no one left behind가 모토인 것 같고, 다른 하나는 suvival of the fiittest인 듯 한데. 이택광님도 애초에 이 부분을 서글프게 생각하시는 것 같고.
그리고 생활세계의 얘기들은 대개 학문의 권위를 동원하지만 님 말씀처럼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수준인 경우가 대부분이겠죠. '대중적 진보담론'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텐데, 진화생물학과 우생학의 대립관계를 설명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피곤해지는 거죠.
그리고 나는 인문학이 현실생활과 동 떨어져있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어. 대개 그런 사람들의 주장은 인문학은 고답적이고 현학적이라는 것들이 주된 내용을 이루지.
하지만 와우를 할 때 아이템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거든. 스토리의 치밀한 구성과 이야기의 흐름에 감동해서 와우를 하는 나같은 사람도 있으니까. (난 워크래프트 소설도 원본을 샀다는...)
내 생각엔 인문학은 산소와 같은 것. 사람들은 일상에 가장 필수적인 것들이 늘 그자리에 있으니까 소중한 줄을 몰라. 하지만 당장 손가락이 하나 없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불편할까. 인문학이 그런 위치에 존재하는 학문인 줄 한국사회가 깨닫는데는 좀 더 오랜시간이 필요할 것 같네. 아 짜증난다.
bethejoker
이공계라면 이공계인 학부 학생의 삶을 살면서 느낀 건데, 이쪽 사람들은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ex.인문학 전공자)'이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잘 모르고' 쓴다고 느낄 때 격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학과 관련된 용어 하나도, 문맥과 상관없이 원래의 의미에 맞게 써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인가 봐요. 혹여나 '과학적 사고'와 그런 '반응'이 연관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2.
특권에 대한 이야기에 당황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이공계 종사자들이 묘하게 인문학을 포함한 문과 전공자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원인 중 하나는, 이공계의 학문이 '교양에 속하지 않는 것'(디트리히 슈바니츠, 『교양』)으로 인식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불어서, 그 말이 사실이건 아니 건과 관계없이 '인문학의 위기'란 말이 유행하는 모양인데, 비슷하게 '이공계의 위기'란 말도 유행한 지 좀 되었습니다. 사람의 경험이란 늘 협소해서 자신밖에 보이지 않죠. '이공계의 불공평한 대우'란 말이 있으면 불공평함의 비교 척도로 등장하는 것은 비이공계일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성장해온 것을 감안해, 그냥 쟤네가 억울한 게 많나 보다, 식으로 넘어가세요.
얼마 없는 인문학적 정치평론가인 이택광씨의 상징성 때문에 두팔을 걷어부친 거 같은데 애초에 김에녹시아의 글이 크게 신경써줄 글이 아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