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마초의 위기

조회 수 942 추천 수 0 2007.04.18 00:17:53

'불어녀' 소동을 보면, 한국 남자들이, 혹은 전체 한국인들이 여자를 대하는 방식이 얼마나 못돼먹었는지 알 수 있다. 어떤 시민의 억울한 옥살이 사연에 대한 네티즌의 분노가, 그를 억울하게 기소한 사람, 그를 그릇되게 수사한 사람, 그를 그릇되게 판결한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여자 경찰 하나만을 빼내어 '불어녀'라고 칭하는 '폭력'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논점은 그 경찰이 잘못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구조에서, 혹은 과오가 있는 이들의 집합에서 여자 한명을 끄집어 내어 마녀사냥하는 그 정신머리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동안 온갖 '...녀'들을 만들다보니 그들은 그 짓에 재미가 들렸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다만 고약한 취미의 관성적인 현존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는 가령 '군삼녀' 사건 보다도 훨씬 더 심하다. 나는 군삼녀 사건 때 남자들의 반응을 보고 피식 웃었지만, 적어도 그것은 그 사람 한 명의 발언에 대한 문제였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집단의 과오에서도 쉽사리 '...녀'를 호출하고야 만다. 아예 머리 속에 '세상을 어지러뜨리는 여자'의 관념을 쳐박아두고 사는 모양이다.

이런 악취미가 성립하기 위해선, 일단 '그들에게 만만한 것은 여자!'라는 등식이 필요하다. 물론 그들은 입으로는 대한민국은 외려 남자가 차별받는 사회이며, 여성가족부와 페미니스트만큼 악랄한 족속은 세상에 없다며 징징댈게 뻔하지만 말이다. 또한 한 시민의 억울함을 둘러싼 사건의 모든 국면 중에서, 그들이 진정 견디기 힘들었던 건 그의 억울함이 아니라, 그 남자에게 소리친 한 명의 여자의 존재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국 남자들이 한국 여자들을 비난할 때는 픽하면 군대를 걸고 넘어지므로 여기서 거기에 대해 한마디 안 할 수는 없겠다. 도대체 '군인'이라는 정체성은 '자부심'인가, '컴플렉스'인가? 만일 자부심이라면, 그들이 군대생활이 의미가 있었으며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군대에 가지 않은 이들에 대해 "자식들, 그것도 못 해봤다니."라며 가볍게 경멸할 수는 있을지언정 악다구니처럼 악을 쓸 이유는 없다. 오히려 자부심의 소유자들은 자신의 자부심의 원천을 많은 이와 공유하지 않으려는 경향마저 있다.

만일 그 정체성이 그저 '컴플렉스'이기만 해도 문제는 더욱 단순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컴플렉스에 어느 정도 사회적인 이유가 있을 경우 그를 동정하지만, 그래도 컴플렉스를 극복한 이를 그렇지 못한 이보다 훌륭한 이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인종, 학력, 성정체성, 지역 등 모든 문제에서 그렇다. 비록 모든 이에게 컴플렉스를 극복할 것을 주문하는 것은 폭력이라 하더라도, 컴플렉스를 극복한 이를 훨씬 더 존중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군인'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 사이에선 외려 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이들이 더 설치며, 심지어 그것이 컴플렉스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왜일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그 정체성이 '컴플렉스를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끌어들인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그 자부심에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물론, 군인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징병제를 무조건 모병제로 바꾸는 것이 '선'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군대는 매우 방만하고, 인력을 쓸모없이 소모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그리고 노동의 효율성과 상관없이 그들은 노동에 대한 적당한 댓가도 지불받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국가에 의해 차압당한 세월을 아까워 하지만, 그 분노를 국가에 터트리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은 쓸모있는 일을 했다는 국가의 세뇌를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입각하여 군대에 안 간 이들에게 분노를 뿜어낸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본질적으로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다.

신체 건장하면서 군대에 안 간 이들에게 그 분노가 뿜어지는 경우에야, 그것은 형평성의 차원에서 정당할 수 있다. 하지만 '여자들도 군대가라'는 땡깡은 너무나도 생뚱맞다. 말을 내뱉을 때, 자신의 말이 실현되는 가능세계를 상상해 보는 버릇이 안 든 탓이다. 지금 한국군은 여자를 수용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 그에 적합한 시설을 만들려면, 엄청난 자금이 들어갈 것이고, 그 돈으로 차라리 모병제 전환을 하는 게 더 낫겠다. 이스라엘군이 그렇게 좋으면 이스라엘로 이민가라. 대체복무제 얘기할 때는 해외사례에 코방귀도 안 뀌던 인간들이, 꼭 이럴 때만 이스라엘 들먹인다.  

인터넷에서 이런 저런 얘기하는 이들을 대개 마초라고 칭한다. '사이버 마초'라든가, 혹은 '예비역 마초'라든가. 요샌 그런 표현에 점점 더 회의가 든다.

마초라는 말은 나도 많이 쓴다. 사석에서, 나는 나 자신을 마초라고 칭한다. 좀 거들먹 거릴려고 그렇게 말할 때도 있고, 일종의 자아성찰적인 의미에서 그렇게 말할 때도 있다. 또한 사석에서 가끔 나는 누군가를 마초라고 칭한다. 그건 칭찬일 때도 있고, 비난일 때도 있다. 나는 마초를 '저급하지만 하나의 완결된 윤리의식을 지닌 사람'으로 파악하기도 하고, '여성을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고 대상화시키는 위인'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이렇게 마초라는 말엔 의미의 격차가 많지만, 그래도 본질적인 의미규정은 있다.

어찌됐든 마초는 남성성을 과시하는 자이다. 남성성을 과시하는 자가 패거리 속에서 여자만 빼내어 다구리 친다는 것이 될 말일까? 남성성을 과시하는 자가, 여자들더러 군대에 오라는 게 말이나 될 소릴까? 아무리 한국군이 남성성을 발현하는 곳이 아니라 남자가 자신의 찌질함을 체험하는 곳이라도 그렇지. 공자님의 정명(正名) 사상을 존중하여 우리는 그들을 올바르게 호칭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이들을 부를 땐 마땅히 '마초도 못 되는 것들'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P.S 그렇구나. 난 마감 때만 남자들에게 신경질을 부리는 거야. 어서 마감하자, 마감!


lee

2007.04.18 01:29:04
*.43.238.227

그냥 의견을 물어보는건데..

직업 여군은 받아드리는데
의무 여군은 받아드리지 못하는건 왜일까요 ??

단순히 직업 여군은 숫자가 적어서 당장 수용하기에 무리가 없어서 일까요 ??

또 한가지는 ..
효율성이나 합리성으로 보자면 여군을 수용할 비용으로 모병으로 전환하는게 낫다고 보시는데 ...

형평성으로 보자면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여자도 남자와같이 의무복무제로 ? 하면 안되는건가요 ??

헌법상으로는 여남 모두 국방에 의무를 해야한다고들었는데 ..
신성한 국방에 의무를 ...
비용에 문제만으로 여성의 의무복무제도를 현실화 시킬수 없는건가? 의문이 생겨서요 ...

( 여자도 군대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게 아닙니다만^^)

하뉴녕

2007.04.18 01:47:48
*.176.49.134

1. 의무 여군 돈 들여 받아봤자 전투력이 오를리가 없구요. 더 떨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그건 형평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인 것 같구요.

2. '국방의 의무'와 '군복무의 의무'는 다른 개념입니다.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여성들은 병역세를 내게 한다든지 하는 식의 조정을 말하는게 더 현실적인 얘기일 듯합니다.
지금 남여가 다르게 내는 세금이 어떤 종류의 것이 있는지
고려해 봐야 겠지만요.

lee

2007.04.18 03:57:08
*.43.238.227

그렇군요 ..

"국방의 의무 와 군복무의 의무는 다르다"..

명쾌한 답변이네요 ^^ 시원해지는 느낌입니다 ..
감사합니다.

고양이

2007.04.18 03:36:27
*.207.45.183

실용성 다 떠나서 상징성의 세계에서 말한다면 우리 나라의 (국민개병제 모병 대상에 해당하는) 어떤 남자나 '의무 여군'을 애인으로, 여동생으로, 누나로, 아내로 맞아들여야 하는 광경을 떠올려 보면 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대부분의 남성들은 '준 남성'을 '여성'의 자리에 넣어야 하는 악몽에 몸부림칠 것 같습니다.

하뉴녕

2007.04.18 03:49:16
*.176.49.134

그럼요. 당장 여성에게 다이어트를 요구하지 못하게 될진데. 물론 그들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겠지요.

까막

2007.04.19 10:01:05
*.148.227.26

군대 관련 논쟁은 늘 재미있어요. 군대도 안 가는 것들이 말이 많다며 2류 시민 취급을 하는 남자들도, 여자는 애 낳으니까 안 가도 된다고 받아치는 여자들도요. 또 요즘은 출산률이 낮으니까 애 안 낳을 여자들은 군대 가라고도 하지요. 결론도 이해도 없는 논쟁이죠. 아니 여기에 '논' 자가 들어가면 안되겠군요, 피차 논리가 형편없으니까.

글 잘 읽었습니다. : > 마감 잘 마치셨길.

하뉴녕

2007.04.19 17:17:28
*.176.49.134

이렇게 출산률이 낮아질 줄 몰랐겠죠. 90년대 중반만 해도요 ;;;;

마감이 있긴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엄살이었죠. 밤을 샌 것도 아니어요. 새벽 2시에 끝냈다는. -_-;;

김대영

2007.04.19 17:03:17
*.138.150.124

마초되기가 얼마나 힘든데... 요새 많이 느낀다.^^;

하뉴녕

2007.04.19 17:17:49
*.176.49.134

오랜만이오. 그래도 형 정도면 훌륭한 마초지. ^^;

N.

2007.04.22 14:02:38
*.46.112.3

<마이애미 바이스>의 콜린 파렐을 보며
"오오오 나의 마초님"을 외친 게 불과 이틀 전이군요.;;;

아큐라

2007.04.25 15:04:27
*.241.136.2

트랙백 신고합니다.

無難

2008.03.12 09:06:42
*.54.35.200

마초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음... 젠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41 3만 히트 돌파 [8] 하뉴녕 2007-05-01 806
340 이기적 전체주의 vs (일)국가적 자유주의 [4] 하뉴녕 2007-05-01 850
339 어떤 좌파의 한미FTA 분석에 관한 코멘트 [6] 하뉴녕 2007-04-29 914
338 늦잠 하뉴녕 2007-04-28 798
337 민주복지국가와 '유럽병' [2] [2] 하뉴녕 2007-04-27 944
336 토론식 수업의 괴로움 [9] [1] 하뉴녕 2007-04-27 878
335 해상시계 이야기 : 한 남자의 집념으로 포착된 기술문명의 힘 하뉴녕 2007-04-26 1469
334 키워드 통계 [3] 하뉴녕 2007-04-26 856
333 스포츠조선 이 저열한 콩까들 같으니... [2] 하뉴녕 2007-04-24 940
332 호모 코레아니쿠스가 칭찬받는 이유에 대한 하나의 가설 [3] 하뉴녕 2007-04-24 939
331 박정석 스타리그 진출 자축 펌글 퍼레이드 [1] 하뉴녕 2007-04-23 1018
330 미국적 허위와 지극히 한국적인 솔직함 [14] [1] 하뉴녕 2007-04-22 870
329 박정석 스타리그 진출 [1] 하뉴녕 2007-04-21 864
328 아령 구입 外 [6] 하뉴녕 2007-04-19 916
327 도서 구입 外 [4] 하뉴녕 2007-04-18 1214
» 마초의 위기 [12] [1] 하뉴녕 2007-04-18 942
325 그들이 개혁당을 잊지 못한 이유는 [4] 하뉴녕 2007-04-16 952
324 [펌] 듀얼2라운드 진출한 박정석 인터뷰 하뉴녕 2007-04-14 958
323 엄살의 댓가 [2] 하뉴녕 2007-04-12 803
322 '승리자'에 대한 해석의 문제 하뉴녕 2007-04-12 1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