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은 후 감상을 보내주셔서 감사
아직도 내가 책을 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뭐 당연하지 않냐고요? 60억 인구가 있는데? 내가 얘기하는 건 그런 게 아니고, 제 주변분들 말입니다. 워낙에 저한테 관심이 없어서…
아무튼 이런 와중에도 책을 읽고 감상을 보내주신 문들이 있어 셀프로 소개를 해본다. 보내주신지는 좀 됐는데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다보니 올릴 기회가 없었다.
아래 글을 보내주신 분은 냉소사회까지 읽은 분이다. 같은 사람이 썼으니 두 책에서 논한 개념이 이어지는 맥락이 분명히 있다. 이것을 알아주시는 분, 많지 않다. 크게 감사드린다.
좋은 서평은 서평을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구해서 읽게 끔 만드는 것이라 알고 있는데, 추천한다. 이 책에는 누가 대통령이 될지, 누굴 뽑아야 할지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이제 20대 대선이라는 데 처음이든, 몇 번 했든지 간에 이번에 뽑는 후보를 내가 왜 뽑으려 하는지 되돌아 볼 수 있었다. 혹은 투표를 안하려 했었던 이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투표 그거 남들은 주변에서 하라는 데 어쩌란 건지 찝찝하던 기분에 선거만이 민주주의를 체험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떠올리게 한다. 냉소 사회(로 진단 할 수 있는 한국은) 저쪽이 싫어서 (이쪽에) 투표하는 민주주의 꼴을 보인다. 전작(냉소 사회)에서 저항과 통치에 대한 구분을 지었던 것이 생각난다. 책 귀퉁이에 원샷게임, 게임이론(플레이어, 룰, 보상)따위의 것들을 적어두었더랬다. 뽑을 인물이 있냐는 반문이 지겨워 누굴 뽑을 거냐는 질문도 안한다. 그렇지. 인물이 없지. 경제학에선 “균형”을 찾는 일에 골몰한다. 가격도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서 찾을 수 있단 식의 소리다. 정치경제학에서 정체세력은 점점 중도를 균형점으로 찾을 거란 모형을 본적이 있는데, 반대 쪽이 싫어 대척점에 표를 행사하는 민주주의와는 다르다. 다시 생각해 보니,변화를 바라지만 결국 한 몸에 머리 둘 있는 새 꼴이다. 다수가 권리를 행사하는 민주주의가 통치가 아니라 소비로 행사하면 실패한다. 반대를 불매하는 것만이 남은 민주주의는 기능과 목적을 수행하지도, 달성하지 못한다. 이에 저자는 전면적 통치자로서 민주주의를 권한다. 냉소 사회에서도 읽을 수 있었던 내용을 한국, 미국, 일본 등의 사례와 평가로 결을 더 채워 왔다. 민주주의의 적극적인 행동이 투표만이 아님을 환기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내 표가 사표가 될까 걱정하면서 유사경험하면 퇴적이 안된다. 앞에서 주억거렸던 원샷게임입네 하고 끼적였던 것은 아마도, 과거에 했던 투표에 대한 기억만으로 오늘의 투표를 했던 것을 잊지 않기 위함이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이렇게 끼적여 놓으니까 비교도 하고 좋다. 하물며 민주주의라는 것을 피곤하고 힘든 사람들아 오늘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어렵겠지만 조금씩 해보자. 마무리 하면서 능력주의에 대해 언급이 있었는데 박권일님의 최근 저작「한국의 능력주의」이 생각난다. 알면 행한다고 그리스인들이 그랬다던가. 적어도 모르고 행하진 않겠지. 그 길이 어렵고 좁은 길이라면 더더욱. 쉬운 응원도, 좌절도 싫다. 대신에 이 책을 주변에 알리고, 이야기 해보자. 길은 처음부터 거기에 있던 게 아니라 자꾸 다니고 이어져야 길이라고 했다. 다시 읽어보니 이글은 좋은 서평은 아니다. 염치불구하고 그래도 이 책을 권한다. 읽어보시라.
그리고 삶의 애환이 담긴 감상평도 있었다. 이게 꼭 이런 구도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측면에서, 심지어 양당 지지자들도 다들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이게 사는 건가? 이러한 삶이 최선인가? 이런 이따위 선거가… 하여간 감사드립니다.
지난 번 책도 이번 책도 읽고 지인에게 소개(라기보다는 강매)했습니다. 저는 이주노동자인데, 오늘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재외국민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미리 등록을 해두었으니 투표권이 있습니다. 과연 저는 누구에게 한 표를 줘야 할까요. 괴롭습니다. 저만 이런 게 아니겠지요. 누군가 차라리 ‘영업’을 한다면 쉬이 넘어갈 의향도 있는데, 늘 저에게 영업당해서 진보정당에게 투표하시던 어머니께서 윤** 씨가 된다면 큰일이라고 꼭 이**에게 표를 주라고 하시는 판국입니다. 이게 사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