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졸저에 보면 반대의 정치 개념이 나오는데, 책을 그냥 후루룩 읽으면 아 그냥 진보가 싫어서 보수가 된다 이런 얘기구나 하실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얘기라기 보다는,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때는 그 방향이 너무 옳다고 다들 생각한 결과라기 보다는 무언가에 반대해서 그 반대편으로 달려간 결과일 때가 많다는 얘기다. 일본 정치의 우경화라는 것도 무언가에 대한 반대였는데, 그 반대의 대상이 된 것도 이미 무언가에 대한 반대였고요. 그건 책을 보시면 알 수가 있다.
어제 어떤 분과 푸틴 욕을 한참 했다. 나도 오다가다 전문가라는 분들과 자꾸 대화를 나누는데, 푸틴의 선택은 합리적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어떤 경우든 침략은 정당화되지 않지만, 정당화되지 않는 선택을 해서라도 추구할 이익이라는 게 별로 없다는 거다. 매드맨 전략이 아니고 실제 매드맨인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일 거다.
근데 그러면서 이런 대화를 했다. 푸틴이 세계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버린 것 같다. 그것은 푸틴을 반대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이다. 독일이 분쟁지역 무기수출을 재개한달지, 아베 신조가 대놓고 핵공유 얘기를 꺼낸달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러자 그분이 답을 했다. 어벤저스 같은 세상이다. 빌런이 출현하면 그 빌런을 막기위해 히어로들이 힘을 합쳐 막아낸다는 세계관 말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더 많은 힘을 갖게 된 히어로들이 새로운 빌런을 지목할 때, 그게 진정한 빌런이 맞는 것인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 맞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우크라인들의 투쟁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거다. 가령 우크라이나인들의 서구 지향은 소련-러시아에 대한 반대였다. 저의 이전의 졸저 냉소사회의 개념을 갖고 오자면, 소련-러시아는 ‘진정한’ ~(무엇무엇)이 아니다. ~(무엇무엇)에는 각자가 원하는 걸 넣을 수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고, 문명이 아니고, 우리 편이 아니고 등등… 그렇기 때문에 소련-러시아의 반대편에 있는 유럽을 지향해야 하고, 우크라이나인들의 인식 속에 유럽은 진정한 ~의 위치를 점하게 된다.
그런데, 앞에도 썼지만 러시아반대냐 극우반대냐의 반대전선에서 친러파에 맞선 친유럽파 정치인들의 실상 역시도 진정한 ~(무엇무엇)은 아니었다. 진정한 ~을 지향하는 것 같으면서도(인민의 종) 전형적 친유럽파(유셴코 혹은 티모셴코 블록)는 아닌 것처럼 보이는 젤렌스키가 소환된 것은 그 이유였는데 그 역시 진정한 ~은 아니… 게 될 뻔 했으나 이번에 진정한 지도자로 거듭나고 있는 거다.
그니까… 지금까지 떠벌떠벌한 이 구조를 직시해야 상황의 본질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이라고 한 것과 똑같은 오해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촛불시위가 의미있었던 것처럼, 우크라이나인들의 싸움은 인류사에 기록할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