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핵 재배치와 담대한 구상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어제 대통령 발언과, 여러 정황들을 보도한 기사를 보며… 또 이게 뭐지 했다. 바이든 황제 폐하께서 러시아더러 아마게돈이라는데 여기다가 전술핵을 갖다 놓으면 그게 뭐가 되는 거냐, 미국이 해주겠냐 이런 생각도 들고 하는 와중에…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을 잘 경청하고 따져보겠다”라는 대통령의 이 발언은 어떻게 봐야 할까? 미국이 “전술핵을 배치해야 할 거 같은데 어때?”라고 하는 상황이면 그나마 방어적인 대답으로 볼 수 있지만, 한국이 “전술핵 배치 해주세요”라며 부정적인 미국을 설득하는 국면이라면 대단히 무서운 얘기가 된다. 근데 전자의 가능성이 있겠냐?
근데 이런 얘기 다 떠나서, 전술핵이 뭔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핵에는 핵이다’라며 핵억지력 얘길 하지만, 결국 쏘는 걸 막을 뿐 북한의 핵 개발 자체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가 되는 거 아닌가?
요즘에 뭐 미국 사람들도 그런 얘기를 하는 모양이다. 비핵화는 이미 끝났고 비현실적이다 라는… 전술핵 재배치는 이 맥락이라면 가능한 옵션일 것이다. 근데 이렇게 되면 담대한 구상과는 충돌이 생긴다. 담대한 구상의 전제는 북한의 비핵화 선언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핵이 없으니 너네도 포기하라”는 명분을 지워버리면, 그러니까 우리는 전술핵을 재배치한다고 하면서 북한에는 비핵화를 촉구하는 게 무슨 의미를 갖겠나? 전술핵 담론은 담대한 구상의 자살로 끝날 것이다.
그럼 어쩌자는 거냐? 가령 얼마 전에 대표적인 문정권 문씨 중 한 명인 문정인 교수가 주장한 바를 봐라.
윤석열 정부의 비핵화 절대론과 확장억지 강화론이 사태의 근본적 해결을 도모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핵을 가진 북과의 평화공존을 주장하는 호헤빈의 북핵 인정론도 한국으로서는 수용하기 어렵다. 특히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이는 우리에게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비핵화 담론이나 현상 수용론 모두 대안이 되기 어렵다. 말 그대로 딜레마다.
최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은 “자꾸 북핵 언급 말고 한반도 평화공존만 얘기하자” “북한 문제는 북한 입장에서 생각해야 실마리가 나온다, 이제 미국에도 중국에도 할 말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의 주장은 북한의 핵을 당장 없애야만 평화가 올 것이라고 믿기보다는 평화를 만들어가면서 비핵화의 물꼬를 트자는 평화 견인론, 북한의 의도를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대신 있는 그대로 보자는 전략적 공감론, 미국과 중국을 맹목적으로 뒤따라가는 대신 우리가 대국적 견지에서 해법을 만들어 내자는 창의적 주도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상식과 순리, 그리고 실사구시의 원칙에 따라 돌파구를 찾자는 원로의 경륜 어린 혜안이 어느 때보다 울림이 크다.
우리 좌파의 관점으로 적극적 해석을 하자면 평화-군축의 맥락에서 일단 전제는 회색지대로 놓고 구체적인 실천을 해나가면서 최종적으로 비핵화를 달성하자는 얘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상당 기간은 북핵 보유라는 현실론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기성의 논의로는 답이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얘기 해봐야 친일 친북 얘기나들 하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