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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여행

오키나와 기행 6

2016년 8월 28일 by 이상한 모자 Leave a Comment

숙취 속에서 깨어났다. 김 선생님은 아직 자고 있었다. 다시 잠들었다. 그러나 곧 김 선생님의 스마트폰이 내는 소음에 깼다. 고국의 뉴스를 시청하려는 것이다. 차례로 씻고 일단 밖으로 나갔다. 이 와중에도 굳이 뭔가를 둘러보겠다고 하는 김 선생님의 열정에 감탄하였다.

나미노우에 해변 인근

나미노우에 해변 인근

공사 중인 건물 담벼락에서 발견한 고양이

공사 중인 건물 담벼락에서 발견한 고양이

골목 골목을 누비며 일상의 삶을 관찰하였다. 때는 8시를 좀 넘은 시각이었는데, 출근에 발이 바쁜 사람들을 몇몇 보았다. 글쎄 여기나 거기나 다들 힘들고, 사는 게 비슷하다. 바쁜 사람들은 공사 중인 건물 옆의 사무소 같은 데로 들어갔는데 그러니까 건설 현장에 관계가 돼있는 직업을 가졌을 것이다. 뭘 짓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해변과 주거지역과 공장과 상업지역이 마구 뒤섞인 공간이 낯설지 않았다.

해변에서 바라본 바다

해변에서 바라본 바다

해변 위로 지나가는...

해변 위로 지나가는…

해변에서 야구공을 발견한 김 선생님

해변에서 야구공을 발견한 김 선생님

먼저 향한 곳은 나미노우에 해변(波の上ビーチ)이다. 앞의 건설 현장과 가까운 것을 볼 때 동네 사람들도 많이 이용하는 곳으로 추측됐다. 바다 저 멀리 배를 끌어 올리는 크레인이 보였다. 샤워시설 등은 9시부터 쓸 수 있었다. 어차피 온 몸이 타버려서 해수욕을 할 마음은 없었다. 그 아침에 벌써 수영을 하고 있는 젊은이도 있었다. 꽤 전문적인 포즈였다. 자세히 보니 그가 수영을 하고 있는 주변에 수중차단막 같은 게 쳐져 있었다. 그 안에서 이른바 스노클링 등을 하라는 의도인 것 같았다. 이외에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노인들과도 마주쳤다. 날은 덥고 햇빛은 세고 숙취에 배까지 아파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미노우에 신사

나미노우에 신사

한참 해변을 걷고 나서는 나미노우에 신사로 이동했다. 해변에 우뚝 서있는 바위절벽 위에 있는 신사로서, 오키나와 신사들의 대장 격인듯 했다. 오키나와에는 8개 정도의 신사가 있는 듯 했는데 아무래도 중국 문화가 섞여있다 보니 본토의 신사와 좀 의미가 다를 듯도 싶었다. 절벽 위에 서서 해신의 나라를 향해 풍요를 기원했다고 하는데, 그 광경을 상상해보았다.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에 있는 건 중국인데… 그때도 알았으려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중국문화권이었다고 해도…

신사에 도착한 김 선생님은 경내를 이리 저리 둘러보았다. 그리고 물이 있는 곳을 발견해 국자로 물을 마셨다. “안 시원해!”라고 외쳤지만, 난 왠지 그게 아닌 거 같아 물 마시기에 동참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곳은 참배 전에 손과 입을 씻는 의식(手水)을 치르는 곳이었다. 국자에 입을 대서도 안되고 의식이 끝난 후에는 국자를 씻기까지 하는데… 뭐 난 안 했으니 됐다. 그리고 그 옆에서 어찌된 일인지 메이지 천황의 동상을 발견했다. 1879년 메이지 정부가 류큐 왕국을 오키나와현으로 만든 흔적인 것 같기도 했다.

메이지 덴노의 동상

메이지 덴노의 동상

기이한 식물

기이한 식물

신사를 보고 이제 그만 숙소로 돌아갔으면 했는데, 김 선생님은 신사 주변까지 모조리 탐험하려는 것이었다. 숙소 주변에는 숲길과 앉아서 쉴 수 있는 긴 의자 등이 조성돼있다. 기이한 식물을 구경하면서도 숙취와 더위와 복통을 어떻게 이겨낼까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기이한 동상을 발견했다. 한 여인이 아동을 안고 있는 모양인데,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상의 이름은 ‘바다울음의 동상(海鳴りの像)인데, 대단히 슬픈 사연이 있는 기념물이었다.

바다울음의 동상

바다울음의 동상

오키나와 전투 당시 방어를 맡았던 제32군은 북부를 포기하고 슈리성을 중심으로 남부만을 방어하기로 하고 장기전 체제에 들어갔다. 주식이던 쌀을 고구마로 바꾸고 각 지역에 보급소를 만들어 남쪽 지역 전체를 요새화 하려고 했다. 문제는 민간인들이었는데, 군사자원으로 활용하기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은 밥만 축내게 하느니 차라리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게 나았던 것이다. 그래서 제32군은 소개령을 내려 비전투인원을 전부 본토의 큐슈 등에 보내게 했다. 이 중에는 보호자와 떨어진 아동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을 태운 화물선인 쓰시마 호가 군함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 중에 미군 잠수함의 공격에 휘말렸다. 당시 탑승객은 1788명이었는데 이 중 1484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희생자 중 780명은 학동(學童), 즉 어린이들이었다. 그래서 나미노우에 해변 근처에는 이를 기리기 위한 쓰시마마루 기념관(対馬丸記念館)과 작은 벚꽃의 탑(小桜の塔)이 있다.

그런데 당시 오키나와 근해에서 희생된 민간인은 이들 뿐이 아니었다. 당시 이런 식으로 격침된 조난 선박은 26척이며 앞서 쓰시마마루를 제외하고도 오키나와 현 조사 기준 1927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 중에는 물론 어린이들도 포함돼있다. 이 상은 이 사람들을 기릴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

다시 숲을 헤치며 걸어 내려오니 옆에 운전학원 같은 게 있었다. 그리고 또 절도 있는 것 같았는데 시간도 없고 상태도 좋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비틀비틀 걸어가는 와중에 패밀리마트를 발견하고 거기서 아침식사거리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놀랍게도 화장실이 설치돼있었다. 이용해본 바 아주 깨끗했다. 감탄하였다. 도시락코너로 가서 김 선생님은 돼지고기가 들어간 파스타 같은 것을, 나는 돼지고기 덮밥을 골랐다. 점원이 데워준 도시락들을 들고 숙소로 복귀해 펼쳐놓고 먹었다. 드디어 술이 좀 깨는 듯 하였다. 돼지고기 덮밥은 베스트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었지만 편의점 음식이라는 걸 감안할 때에는 꽤 괜찮았다. 소스가 좀 새콤했는데 특이했다.

돼지고기 덮밥과 돼지고기 파스타

돼지고기 덮밥과 돼지고기 파스타

짐을 챙기고 숙소를 나서 공항으로 가기 위해 유이레일을 다시 이용했다. 이번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대량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뒷사람이 뭘 기다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안하무인격으로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며 민폐를 끼쳤다. 일본에 있다가 갑자기 한국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그들의 괴이한 행동들은 내내 이어졌다.

천신만고 끝에 나하공항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김 선생님은 다소 헤매는 듯 했다. LCC 터미널로 가는 셔틀을 타야 하는 것 아닌지 얘기해보려 했으나 그만두었다. 김 선생님은 걸어서 국제선 터미널로 이동한 후 거기서 다시 LCC 터미널로 가야 한다는 걸 깨닫고 국내선 터미널로 돌아왔다. 어차피 LCC 터미널로 가봐야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김 선생님은 이미 아침을 먹었다는 이유였는지 오니기리를 선택했으나 나에게는 그런 도량이 없어 오키나와 라멘 세트를 선택했다. 여기에는 드링크와 쥬시가 포함돼있다고 써있었는데, 쥬시는 쥬스 같은 것이 아닐까 해석하였으나 알고 보니 오키나와에서 먹는 일종의 양념밥 같은 것이라고 한다. 여튼 오키나와의 돼지고기 사랑은 대단하다. 맛있게 잘 먹었다.

오키나와 라멘 세트

오키나와 라멘 세트

나하 공항 LCC 터미널

나하 공항 LCC 터미널

그리고 LCC 터미널로 이동했다. 혼돈의 도가니였다. 여러 시행착오와 혼란을 겪은 후(이 중에는 김 선생님이 차가운 것으로 혼동하고 뜨거운 커피를 사온 것도 있었다) 간신히 비행기에 탑승, 꾸벅 꾸벅 졸며 귀국했다. 이 와중에도 김 선생님은 비행기 안에서 저기가 여수니 지형이 이렇느니 저렇느니 하며 설명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고국의 땅을 밟자마자 여기가 과연 ‘헬조선’이라는 게 느껴졌다. 에스컬레이터에, 또 공항으로 이동하는 셔틀에 재빨리 들어가지 않으면 바로 뒤쳐진 사람이 되어 손해를 본다. 과연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할까? 여행을 떠나는 마음이라는 걸 35년을 살고 나서야 알게 된 기분이었다.

Posted in: 글, 기고 안 된 글, 여행 Tagged: 나미노우에 신사, 나미노우에 해변, 바다울음의 동상, 쓰시마마루, 여행기, 오키나와 전투, 인천공항, 중국인 관광객, 편의점 도시락

오키나와 기행 5

2016년 8월 24일 by 이상한 모자 Leave a Comment

새로운 숙소를 찾아 걷는 도중에 나하 시내를 이것 저것 관찰하였다. 특히 사람들이 사는 집에 대해서는 각별한 관심이 있다. 밖에서 볼 때 다들 좁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대개 공동주택에들 사는 것 같고 아파트라고 하면 좀 남루하고 맨션이라고 하면 그럭저럭이며 최근에 지은 걸로 보이는 건물들은 좀 더 허세가 들어간 이름을 달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타운이라든지… 무슨무슨마치(町)라고 써있는 것도 봤는데, 지나가다 슬쩍 본 거여서 그냥 그게 그 동네 이름인지 한국처럼 ‘무슨무슨 마을’이라는 아파트 이름 같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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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양한 주거환경

오키나와의 다양한 주거환경

시내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택시다. 대개 백미러가 본네트 양 옆에 달린 고전적 디자인을 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앞뒤가 짧은 차를 주로 타고 있는 걸 볼때, 과거 택시 회사를 만들 때 구입한 차를 여전히 쓰고 있는 것으로 추측됐다. 나하 시내에만 여러 회사가 있는지 차량 위에 달린 표식이 제각각이었다. 사람이 없는 차는 우리나라 처럼 ‘空車’라고 표시된다. 내 기억에 80년대 까지 한국 택시에 이 시스템이 없었다. 누가 타고 있는지를 밖에서 봐야 알 수 있었다. 여기도 그랬는진 물론 잘 모른다. 다음에 방문한다면 택시를 한 번 꼭 타보고 싶다. 자동차들을 보면서 일본인에 대한 선입견이 약간 깨진 게 있는데, 다들 질서를 잘 지킬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데도 차가 슬그머니 지나간다. 오키나와만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양심냉장고 프로젝트를 해야 하나?

'약'이라고 쓴 글씨와 택시

‘약’이라고 쓴 글씨와 택시

그 밖에… 간판에 표시된 글자체도 유심히 보았다. 표지판부터 약국 이름까지 진지한 내용이면 영락없이 ‘나루체’가 쓰인다. 나루체는 한국 굴림체의 원조이다. 하도 보다 보니까 일종의 공공디자인으로 보일 정도이다. 이 동네가 이러는 의도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공공디자인이란 관점에서 접근을 해야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하였다. 그리고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마찬가지인가 싶은 것도 있었는데, 웬 학원 등에 ‘동대를 몇 명이 갔다’는 식의 선전 문구와 학생들의 사진이 죽 붙어있는 거였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요소들이 의외로 많았다. 또 역시 오키나와라서 그런지 스테이크 하우스를 표방하고 있는 곳도 종종 있었다.

스테키하우스 미스터 마이크

스테키하우스 미스터 마이크

스테이크 하우스의 동족상잔 디자인

스테이크 하우스의 동족상잔 디자인

숙소를 찾아가는 도중에 ‘旅の宿’라는 이름이 붙은 곳을 보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그냥 호텔인 것 같았다. 개중에는 공용 목욕탕이 딸린 곳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묵기로 한 숙소는 ‘오키나와 호텔 콘티넨탈’ 이라는 2성급 호텔이었는데 세상에 소프란도 밀집지역 한가운데 있었다. 소프란도 직원들의 분별없는 호객행위를 뚫고 어찌어찌 도착했다. 김 선생님은 자신있는 태도로 무슨 서류 같은 것을 내밀고 우리가 예약을 했다, 이렇게 설명을 했다. 여권을 주고 숙박비를 계산하니 5천엔 정도가 나왔다. 문제는 현금이 다 떨어졌다는 거다. 카드로 결재할 수 없냐고 물으니 직원은 놀라면서 그러면 가격이 좀 더 비싸진다고 말했다. 계산을 해보니 7천엔 정도로 올라간다. 다소 자린고비 기질이 있는 김 선생님은 당황하였다. 근처에 혹시 ATM이 있느냐고 물으니 어찌어찌 가면 콘비니안스스토아가 나온다고 가르쳐 준다. 그러나 김 선생님은 멘붕을 일으킨 것 같았다. 하릴없이 숙소를 나와 콘비니를 찾아서 간다. 그런데 편의점은 나오지 않고 리우보우(りうぼう)라는 마트가 나오는 거였다. 일단 거기에도 ATM이 있으니 여러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ATM은 한국인의 카드를 읽지 못했다. 김 선생님의 멘붕은 점점 더 심해졌고 나는 왠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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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점인 소프란도

풍속점인 소프란도

일단 인터넷 검색을 했다. 우리는 어쨌든 환전을 해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세븐뱅크나 유초은행 ATM을 찾아야 한다. 세븐뱅크는 세븐일레븐에 가면 있다. 사람들을 붙들고 세븐일레븐이 근처에 있느냐 물으니 모른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키나와에는 세븐일레븐이 없다(2018년에 진출하겠다고 한다)! 나하 공항에 세븐뱅크 ATM이 있을뿐… 유초은행은 겐초마에역에 가야 있는데 다리가 아파서 거기까지 갈 엄두가 안 났다. 일단 호텔 직원이 알려준 편의점을 찾고자 근방을 뒤져 패밀리마트를 발견했다. 물론 성과는 없었다. 멘붕에 휩싸인 김 선생님에게 호로요이를 카드 결재로 사드리고 나도 하나 마시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혹시나 해서 편의점 주인에게 익스첸지-를 해야 한다고 손짓 발짓으로 질문을 했으나 모른다고 한다. 길 건너에 류큐은행이 있어 마지막으로 허망한 시도를 해보았다. 결론은 그냥 7천엔을 카드로 긁자… 다시 호텔로 돌아가 패잔병의 기운을 씻어내고 여봐란듯이 410호실에 입실했다. 호텔 직원의 마음을 이심전심 해보았다. 아마 그는 그냥 우리가 ATM을 찾으니까 환전이고 뭐고 그게 있는 곳을 가르쳐준 것 뿐일 거다.

마트에서 팔고 있는 흰 달걀과 파란 바나나

마트에서 팔고 있는 흰 달걀과 파란 바나나

황망한 마음을 다스리며 샤워를 했다. 낮에 햇볕에 완전히 구워져서 온 팔이 다 따가웠다. 그래도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마음이 편했다. 아이패드를 활용해 그리운 고국의 JTBC 뉴스를 틀었다. 대우조선해양을 털다 보니 ‘특정 언론’ 고위 관계자 이름이 나왔다는, 애초에 난 찌라시에서 본 내용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이거 어째야 하나 생각하면서… 곧 잠들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다시 리우보우로 향했다. 소프란도 형님들의 호객을 뚫고 마트에 들어가 스시 코너로 이동했다. 그럴듯해 보이는 스시와 참치 사시미, 타다끼, 문어숙회 등등을 샀다. 그리고 맥주와 발포주를 적당히 섞어서 샀다. 신기해 보이는 것은 하여튼 다 샀다. 그 마트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파란 바나나와 하얀 달걀을 판다는 거였다. 멋지게 내 카드로 계산을 할 차례였는데 마트 직원은 내가 외국인인줄 모른다. 암 포리너 라고 말했더니 당황을 하면서 비닐봉지를 손으로 가리키는 거였다. 나는 두 개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투! 라고 말했다. 마트 직원은 거기에 산 물건들을 친절히 담아주었다. 두 봉지의 균형을 맞춰 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냥 관뒀다. 그걸 들고 다시 오키나와 호텔 콘티넨탈 410호실로 돌아왔다.

리우보우 점원을 압도하는 나

리우보우 점원을 압도하는 나

맥주는 과연 맛있었다. 참치 사시미는 다소 신 맛이 났다. 이건 한국의 마트에서 사도 똑같다. 맛을 위한 처리를 한 것인지 아니면 상하지 말라고 뭔가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먹고 마시고 탄산수에 첫 날 먹다 남은 국화눈물인지를 섞어 마셔 얼큰히 취했다. 그동안 김 선생님과 꽤 아카데믹한 대화(김 선생님은 사회학 석사이시며 박사를 할 뻔 하셨다)를 나누었다. 취한 상태로 맥주를 더 사러 아까 그 패밀리마트에 갔다. 생햄과 마카로니 사라다에 에비수 맥주를 샀다. 점원에게 나는 외국인이다 라고 하니 재패니즈는 모르시냐고 하는 것 같았다. 저스트 잉글리시 라고 대답했는데 사실 술에 취해서 이게 무슨 대화인지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또 소프란도 형님들의 호객을 뚫고 오키나와 호텔 컨티넨탈로 돌아왔다. 김 선생님과 맥주를 마셨다. 얼마 후 김 선생님은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나도 잠이 들었다.

산토리의 에일 맥주

산토리의 에일 맥주

산토리 맥주와 마트 음식들

산토리 맥주와 마트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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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기행 4

2016년 8월 23일 by 이상한 모자 Leave a Comment

8월 21일 / 숙취 속에 깨어났다. 6시 정도였다. 나머지 4명의 투숙객들이 모두 잠을 자고 있어 다시 잠이 들었다가 7시에 일어났다. 김 선생님이 씻는 동안 전날 먹다 남긴 무슨 차 음료 같은 걸 마시며 아이패드로 고국의 여론을 검토하였다. 황당한 얘기들이 많았다. 김 선생님과 교대해 씻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힘든 하루를 예고하는 출발

힘든 하루를 예고하는 출발

오늘의 계획은 섬에 가는 것이다. 게라마 제도의 자마미 섬이다. ‘페리 자마미’로는 2시간 걸리고 쾌속선인 ‘퀸 자마미’로는 1시간 정도라고 한다. 김 선생님이 퀸 자마미 예매에 실패했기에 페리 자마미를 이용해야 했다. 10시 탑승인데 여객 터미널에 8시에 도착했다. 티켓팅을 마치고 코인락커를 활용해 짐을 정리했다. 짐을 최소화한 후 근처의 도마리 수산시장을 방문해 김 선생님이 좋아하는 생선들을 보기로 했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걸어가야 하는데 가는 길을 쉽게 찾는 게 어렵다. 잠시 헤매던 김 선생님은 외국인 묘지에 잠시 앉아서 구글지도를 보며 길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걷는 도중에 모기에 물리기도 하면서 겨우 도마리 수산시장에 도착했다.

외국인 묘지 앞에서

외국인 묘지 앞에서

도마리 수산 시장에 들어가며

도마리 수산 시장에 들어가며

도마리 수산시장

도마리 수산시장

이곳의 수산시장 자체는 노량진처럼 크지는 않았는데, 항이랑 붙어있기 때문에 경매를 하는 장소가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작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했다. 스시나 참치 스테이크를 팔고 있는데 상당히 먹음직스러웠다. 중간에 ‘덮밥 스시 참치집 본점(丼・すし まぐろや本舗)’이라는 이름의 가게가 있다. 참치 덮밥과 오차즈케를 파는데 아침부터 손님들이 많다. 가격에 비하자면 아주 맛있었다. 여기에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잘 먹는다는 ‘바다포도(海ぶどう)’란 해초가 들어가는데 좋은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뭘 먹으니 또 살 것 같았다. 다음에 오키나와를 방문하게 되면 근방에 숙소를 잡고 세끼 정도는 이 시장에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참치 덮밥

참치 덮밥

덮밥을 먹는 나

덮밥을 먹는 나

페리에 승선하기 전

페리에 승선하기 전

피곤을 이끌고 승선한 페리의 내부

피곤을 이끌고 승선한 페리의 내부

다시 여객터미널로 돌아와 용변을 해결하니 벌써 9시 40분이었다. 페리에 승선했는데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이다. 2층은 실내외에 좌석이 있고 1층은 바닥에 눕거나 앉아서 가도록 돼있다. 실내 좌석은 이미 찼고 실외 좌석은 남아 있었는데 더 이상 더워서는 안될 것 같아 난민 분위기인 1층으로 갔다.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승객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멍하니 있는 사이 배가 출발했다. 올림픽에 대해 떠들다가 쇼기를 두기 시작한 TV를 곁눈질하며 스마트폰으로 드래곤 퀘스트 5를 잠시 했다.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사먹으며 더위를 진정시킨 후에 밖으로 나가니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망망대해를 바라 보았다. 마시지 못하는 물이 모래와 무엇이 다르랴, 물의 사막이여. (??)

게라다 제도를 지나면서 본 바다

게라다 제도를 지나면서 본 바다

배 위에서 본 바다

배 위에서 본 바다

호기심 천국 김 선생님과 배의 오만 군데를 돌아다니며, 그러니까 배 안에서도 또 걷고 있는 중에 배는 뭐 어딘가에 도착했다. 아카 섬이 아니었나 싶다. 게라마 제도를 구성하는 섬 중에 가장 작은 것 같다. 일단 여기에 사람들이 내리고 배는 방향을 바꿔 다시 자마미 섬으로 간다. 이 섬들은 오키나와 전투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에 미군이 점령했다. 앞의 두 섬에 가장 큰 도카시키 섬 등에서 모두 전투가 벌어졌다. 특히 자마미와 도카시키는 격렬했다고 한다. 끌려와서 노역을 당하던 한국인들도 있었다. 지금은 물이 맑고 아름답고 관광자원 외에는 별게 없어서 그저 즐거운 관광지이다.

섬에 근접하자 바다 색깔이 이렇게 변했다

섬에 근접하자 바다 색깔이 이렇게 변했다

섬마을의 풍경

섬마을의 풍경

12시 정도에 하선을 해 먼저 자전거를 빌리러 갔다. 자전거 대여점을 운영하는 할머니는 친절했다. 자전거가 좀 낡아 보였지만 모처럼 걷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기뻤다. 그런데 출발 5분 후 끝이 나지 않는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언덕을 넘어 다시 내리막을 내려가니 후루자마미 비치가 나왔다. 이곳 매점에서 얼굴이 타버릴 것 같아 모자를 사려 했으나 고정시키는 끈이 없어서 관뒀다. 모자를 사기 위해 다시 언덕을 넘어가기로 했다. 이럴수가,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고 끌고 다니는 꼴이다!

자전거 대여 직후

자전거 대여 직후

오르막을 오를 때에는 끌고 올라가야

오르막을 오를 때에는 끌고 올라가야

후루자마미 비치

후루자마미 비치

다시 언덕을 넘어와서 귀여운 모자를 1200엔 주고 샀다. 이제 달리는 일만 남았다. 오르막이 없는 반대쪽 도로로 달렸다. 그러다 어느 소년들이 낚시를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곳은 ‘비치’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모래에 산호가 섞여 있었다. 이곳에서 허물을 벗는 작은 게들을 목격했다. 작은 섬의 생태계에 대해 잠시 감탄한 후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허물을 벗은 작은 게

허물을 벗은 작은 게

살아있는 산호

살아있는 산호

불가사리? 이름 모를 생물

불가사리? 이름 모를 생물

아마 비치와 캠핑장이 나왔는데, 여기서 화장실을 이용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이미 비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시 자전거를 달리는 도중 드디어 오르막이 나왔다. 나는 돌아가겠다고 했으나 김 선생님은 오르막을 올라 카미노하마 전망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걸 또 올라갔다. 언제부터 이름이 카미노하마였는진 모르겠지만 과연 그럴듯 했다. 먼저 와있던 유럽인 여성이 우릴 보고 인사했는데 뭔가 여행객 다운 대화를 기대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는 중에 찍은 셀카

자전거를 타는 중에 찍은 셀카

자전거를 타는 중에 찍은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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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하마 전망대에서 찍은 섬 전경

카미노하마 전망대에서 찍은 섬 전경

아이패드를 꺼내 정성들여 사진을 찍고 (사진을 보면 느낄 수 있지만 아이폰의 카메라는 고장이 나있다) 땀을 식히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러다 또 다른 이름없는 해변을 발견해 김 선생님과 잠시 앉아 쉬었다. 다른 일본인 관광객 가족이 작은 천막을 쳐놓고 있었다. 아이들이 ‘곤니치와’라고 인사를 해서 손을 흔들어 줬다. 물에 발을 담궈 보기도 했는데 산호 때문에 발이 아파서 그만두었다. 바위는 너무 뜨겁고 마음 편히 쉬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이름 없는 해변에 앉아있는 김 선생님

이름없는 해변에 앉은 김 선생님

이름없는 해변에 앉은 김 선생님

100킬로그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해변의 모래

100킬로그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해변의 모래

아마 비치로 돌아와 점심을 해결했다. 소바와 카레를 파는 매점인데 시원한 차를 제공한다. 나는 돈까스 카레, 김 선생님은 소바를 먹기로 했다. 김 선생님은 소바를 뜨겁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어했으나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손짓 발짓 영어를 섞어 이게 뜨겁냐고 물었는데 매우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뜨겁다고 대답하는 거였다. 그래서 김 선생님은 아주 뜨거운 소바를 먹게 되었다. 과연 오키나와의 소바답게 큼직한 돼지고기가 올려져 있다. 내가 먹은 돈까스 카레는 기성품인 것 같았다. 지친 와중이니가 맛이 없을리 없다. 다만 평가의 대상이 될만한 음식은 아니다.

아마 비치 옆 매점에서 먹은 돈까스 카레와 소바

아마 비치 옆 매점에서 먹은 돈까스 카레와 소바

그리고 나서 다시 쏜살같이 달리는 중에 웬 개동상을 발견했다. 마리린상 이라고 써있었는데, 별 신경을 안 쓰고 지나쳤다. 나중에 찾아보니 아카 섬에 사는 시로라는 개가 마리린이라는 개를 만나기 위해 바다를 헤엄쳐 왔다고 한다. ‘마리린을 만나고 싶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1988년에 개봉을 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카 섬에 가면 시로 동상이 있다는 거다. 흠… 개를 말이지… 흠…

마리린상과 김 선생님

마리린상과 김 선생님

다시 배를 타는 곳으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가게에 들러 음료수 같은 것들을 사먹었다. 내 팔은 시뻘겋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배를 타려고 줄을 서있었으나 난 더운 게 너무 싫어 에어컨이 나오는 기념품점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승선 시간이 임박해 다시 배에 올랐는데 거의 뭐 난민선이었다. 놀라웠던 건 돌아갈 때에도 아카 섬을 거쳐야 하므로, 그들이 탈 수 있는 공간은 펜스를 쳐서 따로 남겨 놓게 해놨다는 거다. 역시 대단하다. 앉을 데가 없으므로 2층 실내 좌석의 맨 앞 바닥에 방랑자처럼 앉았다. 졸다가 드래곤 퀘스트 5를 하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루한 항해 끝에 간신히 나하에 도착하니 오후 6시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코인락커에서 짐을 찾아 새로운 숙소로 향했다.

Posted in: 글, 기고 안 된 글, 여행 Tagged: 게라마 제도, 덮밥, 도마리 수산시장, 마리린상, 바다포도, 아마 비치, 아카 섬, 여행기, 자마미 섬, 카미노하마 전망대, 페리 자마미, 후루자마미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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