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옛날 사진을 많이 찾아봤다. 나만의 추모 방식이다. 빈소에 갈까도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남들과 똑같은 기준이 아니다. 그런 게 있다. 여기다 다 쓸 수가 없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여기다가 다 쓰는 게 아니다…

공익근무요원을 마치고 돌아오니 다들 다른 데로 떠나고 없었다. 순전히 나만의 평가지만… 그때는 아무래도 막내 근성의… 홍무슨표라는 분이 뭐라도 해보겠다고 나서는 지경이었다. 우리는 마치 고아였다. 그런데 선생님이 나타났다. 갑자기 든든한 백이 생겼다. 물론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하여튼,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남들은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올랐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우리 입장에선 그랬다.

회식 같은 것을 종종 했는데, 노래를 부르자 하면 프랑스 유학파(비유다)답게 고엽을 애창하셨다. 그런데 꼭 이브 몽땅 버전(사실 이게 오리지널이기도 하지만…)을 부르시는 거였다. 그 버전은 전주에 독백이 붙어있다. 고엽은 고전이고 스탠다드인데, 그 나레이션 부분까지 ‘고전’과 ‘스탠다드’로 간주되진 않는다. 그러니까 그 나레이션은 이브 몽땅 고유의 것이다. 그런데 꼭 그걸 다 읊조리고 본론에 들어가시는 것이다. 반주도 없는데… 그 독백을 다 하고 나야 세트느샹송~ 퀴누아상~브레~ 하고 노래가 시작된다. 회식 자리의 청중들은 프랑스어 독백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무튼… 이걸 보면 아마 이브 몽땅은 좌파일텐데, 어쨌든 하다 못해 회식 자리에서의 노래조차 허투루 하지 않는 분이었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어디서 했는데 잘 안 와닿는 모양이더라.

사진을 찾다 보니, 김선생님의 거사에 대한 기록도 있었다. 통진당 지도부가 예방을 온 거였다. 거기에는 돌아가신 노 의원님도 포함돼있었는데, 나름대로 선배 세대에 각별한 김선생님이 ‘진보신당 전 대표 노 의원은 돌아가시기 바랍니다’란 피켓을 급조해 시위에 돌입한 것이었다. 난감해 하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노 의원님과 마찬가지로 곤란해하는 홍 선생님 표정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장면에 나오는 사람 중 내가 아는 이들만도 벌써 4명이나 고인이 되었다. 노 의원님, 홍 선생님, 그리고 노 의원님을 수행해 온 오재영 실장, 김선생님을 제지하며 어딘가로 끌고 간 사람들 중 하나였고 당시에는 대변인이었을 박은지 부대표…

한겨레21의 마지막 인터뷰를 읽으며, 원내 진보정당 0석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는 대목에 또 다시 죄를 지은 거 같고, 지금까지 무엇을 한 것이며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라는 식의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선생님의 마지막 선택과 나의 선택이 똑같았다는 것 정도? 어디로 누구와 어떻게 가야 하는 것일까. 말하고 써봐야 가닿지 않는 이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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