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궈니횽 같은 사람들은 옛날 버릇대로 이 정권이 뭘 하면 다 주사파적 세계관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닌 것도 있고… 그래 보이지만 아닌 게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가령 문통이 김원봉 얘기 하면서 술 한 잔 올리고 싶다 이러는 거는 주사파적 세계관과 관계가 없다. 그 세계관이라면 김원봉은 숙청을 해야겠지…
이건 안티 박정희적인 민족주의 세계관일 뿐이다. 한일회담-일본군-독재의 대립항으로서 친일청산-광복군-민주주의의 조합을 내세우는… 1960년대 이후 장준하 계열의 특징이다. 이 정권이 대북 문제의 성과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통의 후보 시절 행보나 임기 초 행동을 봐도 나타나는데, 이 흐름은 기본적으로 반일과 자신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북한을 용인한다는 태도를 깔고 간다. 실제로는 대북 성과를 내는 게 정무적으로 이익이라는 점을 겨냥하고 있고, 민족주의적 서사에서 대북 온건론이 용인된다는 점을 알리바이로 활용하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왜 재개가 안 됐는가? 결국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런 것 말고 권력의 의도된 내셔널리즘 동원 전략이라는 것도 있다. 권력에 별달리 호소할만한 조직기반이 없거나 이게 훼손된 상태일 때 이런 게 등장한다. 가령 양제츠가 블링컨 거의 멱살잡고 자기 동네 가서 영웅된 것 봐라. 중국의 내셔널리즘 부상은 덩샤오핑 이후 공산당 지배의 근거가 훼손된 것으로부터 기인한 현상이다. 공산당이 부정부패와 반민주로 타겟팅 되면서 새로운 대중동원전략이 필요해진 것이었다. 이게 시진핑대에 와서 완전히 무르익었는데, 꼬리가 개를 흔드는 형상이다. 즉, 공산당이 내셔널리즘 동원전략을 통해 지지기반 유실을 막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셔널리즘의 동원전략이 시진핑 독재 강화를 정당화하게 된 것이다. 이게 지금 우리가 보는 광경의 실체이다.
일본 정치의 극우화 역시 아베 신조의 가문이 아니라 자민당이 조직 기반을 스스로 파괴하는 ‘개혁’이 수반한 변화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관저 주도의 정치는 아베 신조 대에 이르기까지 민주당까지 포괄, 정파 불문의 개혁 과제 중 하나였다. 파벌정치가 나눠먹기와 ‘삼각동맹’의 원흉으로 지목 되었기 때문에 그 반대를 택한 결과이다. 메이지 유신에서 ‘막부가 아니니까 천황’으로 간 것과 비슷한 거다. 자민당이 휘청하면서 비자민연립정권과 그 여파로서의 지샤사 연정이 성립됐고, 정권을 잃기 직전의 고노 담화라든지 지샤사 연정의 무라야마 담화라든지 이런 게 중도화 의제로 제시됐던 거다.
그러나 실제 대중이 호응한 것은 교과서 문제로 대표되는 백래쉬였고 자민당이 ‘삼각동맹’ 즉 자기 지지기반을 파괴하는 대신 기댄 것도 극우주의였다. 우정민영화와 극우화를 동시에 추진한 고이즈미 정권은 이러한 현상을 여실히 드러냈다(이 시기 동아시아라는 공간 내에서 일본 외교가 장쩌민의 내셔널리즘에 대응하였다는 특성 또한 있다). 또한 고이즈미가 구현한 극우주의는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분열할 시장주의와 국가주의를 봉합하는 아교로 기능했다. 해외 자본에 국가 사업을 넘겨줄 수 있다는 국수주의자들의 우려를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잡아 맨 것이다. 대중적 백래쉬의 배경은 고이즈미의 방북 전후 납북자 문제가 쟁점화 됐다는 것도 작용했다. 이제 일본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서 뭔가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국가로 거듭난 것이다.
이 정권에선 조장관님이 죽창가 올리고 김현종 씨가 다카스키 신사쿠 언급하고 유니클로 불매하고 이런 게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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