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사실 얘기하면서 “우리는 팩트”이러는 거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한심하기도 하고 그렇다. 일베도 그랬다. 저들은 선동하지만 우리는 팩트…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엔 대안적 사실과 대안적 사실, 선동과 선동의 충돌이다.
가령 우리가 밥을 먹는 이유가 뭔가? 허기를 해결해 생존하기 위해서인가 맛을 느껴 쾌락을 얻기 위해서인가? 둘 다이다! 당연하지 않나? 저 자식이 맨날 평론가랍시고 방송 나가서 떠드는 건 먹고 살기 위해서인가 그래도 뭔가 공적 사명의 실천을 위해서인가? 둘 다야! 그러나 우리가 보는 건 한쪽은 “맛을 모르고 허기만 채우면 된다는 무식한 놈들아!”, 다른 한쪽은 “남의 고통은 외면하면서 맛에만 관심이 있는 쾌락주의자들아!” 뭐 이러는 거다.
그러니까 한쪽이 대안적 사실을 갖고 장난을 친다고 해서 반드시 반대쪽이 얘기하는 대안적 사실을 ‘팩트’라고 해야 할 이유가 뭐냔 말이다. 뉴욕타임즈에 누가 또 트럼프 현상을 갖고 좌파들아 우린 왜 이렇게 편협하냐, 우리가 종교는 아니잖냐, 반성하자 이렇게 썼다는데 어떤 인간적인 태도의 문제라기 보다는 한쪽 거짓에 대한 분노로 반드시 다른 쪽 거짓을 진실로 믿어야 한다는 시대적 행동 양식이 원인이다. 여기엔 또 반드시 ‘속았다’는 서사가 들어간다. 내가 원래는 저쪽의 대안적 사실을 믿었는데 정신차려보니 거짓말이더라…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말… 냉소사회는 읽었습니까?
이래서 얘기를 하기가 싫어요. 무슨 얘기를 하면 양쪽에서 왜 상대편 대안적 사실을 인정하기 위한 꼼수를 펴냐며 난리 난리… 요즘에는 양쪽도 아니고 삼파전 사파전이야. 조국백서, 조국흑서, 진보, 태극기…
그러나 진지하게 ‘팩트’를 다루고 싶은 사람들이 할 일은 어느 쪽 버전의 대안적 사실을 선택해서 밀어줄 거냐 이게 아니다. 대안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들, 그러니까 음모론은 대개 한 톨만큼이라도 진실을 포함하고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것들을 영끌해서 각자의 ‘진짜 사실’을 재구성하는 게 필요하다. 당연히 이 ‘진짜 사실’은 진실과 같지 않을 거다. 그러나 각자의 ‘진짜 사실’들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요소들을 서로 따져봐서 진실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서는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하는 게 언론이고 이상적인 의미로서의 정치이다.
Comments are closed, but trackbacks and pingbacks are o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