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으로서의 삶

언젠가 당신의 작가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그 자리에서는 좋게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아주 불편한 질문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결국 너의 뭘 어디에 팔겠다는 거냐는 물음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디다 글 쓰고 어디 나가서 떠들고 이런 걸로 먹고 사는 사람은 뭐 다른 그런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상품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마음에 안 들면, 특히 속았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막 숨겨진 힘을 꺼내듯 와가치카라오미세테야루! 이러면서 불매를 선언하고, 그러면 뭐가 미안한지 알지도 못하면서 미안하다고 하고, 그 미안하다고 한 것이 또 무슨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잘 나가는 상품들은 이런 일을 계속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인간관계도 다 구매(투자)-손절매 관계로 본다는데, 오늘 어디도 썼지만 젊은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고 요즘은 다 마찬가지다. 세상이 그렇게 변한 것에 더해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라는 환경이 이 관계를 재생산하고 있다. 친구 추가 또는 구독과 차단 또는 구독 취소는 구매(투자)-손절매의 시뮬레이션이다.

상품의 세계 속에서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고가에 팔리기 위해 나 자신을 속여야 한다. 인간관계와 사회와 정치가 모조리 상품관계가 돼버린 한에선 어떤 세력의 이해관계에 복무한다는 것은 이 세력의 상품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 운명을 거부할 수 없다. 거부할 수 없다면 즐겨라?

그러나 어차피 망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누가 글을 안 읽는다거나 말을 못 알아 먹는다거나 그런 것에서 즉자적인 좌절과 절망과 무기력함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지만 거기에 존재적인 어떤 위협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제 문제를 문제로 다루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나는 하고 싶은 것만 있고 되고 싶은 것은 없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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