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주사파냐?
북쪽에 정은이가 민족을 부정하기 시작한 이래 조선일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짖고 있다. 가령 오늘 사설과 같은 논리다.
북에 상응해 우리도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거나 동족 개념을 폐기하자고 하는 것은 역사 발전을 거스르는 반시대적 주장이다. 헌법상 영토(제3조)·통일(제4조) 조항을 위배하는 위헌일 뿐 아니라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통일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패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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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북한 정권의 행동은 독일 단일민족론을 부정하며 분단 고착화를 시도했던 옛 동독을 연상시킨다. 만약 서독이 여기에 편승해 ‘독일 민족은 하나’라는 원칙을 포기했다면 독일 통일도 없었을 것이다. 김정은의 반통일 선언으로 종북·좌파 세력에겐 통일이 금기어가 됐다. 자유민주 진영이 통일 담론을 주도할 기회이자 적기다. 통일은 김정은 정권의 폭정 아래 노예와 가축으로 전락한 2500만 북한 주민을 구출할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일 수밖에 없다.
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4/02/05/3CE6AIDGJNBSLB6YWHKSXXAJRQ/
이걸 기사로도 쓰고, 칼럼으로도 쓰고, 사설로도 쓰고, 잊을만하면 또 쓰고, 윤석열 정권 장단 맞춰 또 쓰고 그런다. 문정권의 대북정책을 통일지상주의로 거칠게 규정하고 주사파 운운한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제 민족은 하나라는 조선일보가 주사파인가? 내가 책에도 쓰고 기회가 될 때마다 말씀드리는데, 그들은 그게 성과가 되고 장사가 되고 표가 되기에 한 것이지 주사파여서 그렇게 한 게 아니다.
이제 문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분이 쓴 글을 보자.
사실 민족주의적 접근은 오래전에 이미 끝났다. 황혼의 남은 한줌 빛이 이제 꺼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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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남북 관계도 민족주의적 접근과 거리가 멀다.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 때문에, 언제나 국제질서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다섯번의 남북정상회담은 하나의 예외 없이 북-미 관계가 풀려서 남·북·미 삼각관계가 선순환할 때 가능했다. 남북 양자 관계만으로 현안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끼리’는 관성에 의한 구호일 뿐, 정책 현실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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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움직임을 알지 못하고 민족주의에 호소하던 시간이 끝났음을 인정할 때가 왔다. 김정은 위원장을 포함하는 남북의 분단 3세대는 통일에 부정적이다. 남북 관계의 상대적 자율성도 줄어들면서, 적대적인 상호 의식도 층층이 쌓였다. ‘북핵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할 가능성도 급격히 줄었다. 전술적이 아니라 전략적 변화이고, 사건이 아니라 구조가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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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공조’나 ‘흡수통일’은 달리 보여도 공통적으로 민족주의적 접근이다. 이제는 달라진 질서를 반영하는 탈민족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통일의 미래는 어떨까? 북한이 미래로 가는 다리를 끊었다고 해서, 우리까지 동조할 필요는 없다. 오지 않을 줄 알면서도 왜 고도를 기다리겠는가? 기다림 자체가 삶의 존재 이유이듯이, 통일의 미래는 분단국가의 숙명적 과제다. 아무리 멀어도 미래로 가는 문을 닫을 필요는 없다.
현재 상황에서 통일의 당위를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은 같다. 다만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수단으로는 되지 않고, 또 민족주의적 당위로서 목적으로 할 일도 아니라는 거다. 분단국가라는 현실과 당면한 외교적 조건 속에서 군사적 대립 구도를 극복하고 평화를 쟁취하려면 현실이 되지 않더라도 최종 목표에서 통일 자체를 지워버릴 수는 없다는 취지다.
제가 문정권의 대북정책대로 하면 실제로는 통일이 아니라 영구분단이 될 거라는 얘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이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만 하면 주사파 운운… 그런 건 제발 그만들 두시고… 뭐 하긴 이제 통일은 포기하고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자는 얘기하면 조선일보에서 김정은의 지령 받았냐고 하는 시대가 올 거 같은데, 주사파의 규정이 달라지려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한풀이로 세상을 볼 수는 없다는 말씀을 마저 드리면서… 이만 가상 세계의 하와이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