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몇 년 전에 반수생거북을 키웠었다. 어릴적에도 3마리를 키웠다. 거북은 수명이 길다니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세상을 떴다. 살려보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았다.
이젠 어른이므로 잘 해보고 싶었다. 나름대로 신경써서 어항을 만들었다. 독일산의 외부여과기도 구입했다. 그러나 원하는대로의 어항 환경은 잘 조성되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조류(algae)가 창궐하였다. 몇 번인가 어항 생태계를 리셋해보았으나 조류를 이길 수 없었다. 그게 원인인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간 1년쯤 지나 거북은 죽었다. 다시는 생물을 키우지 않으리라 하고 ‘물생활’용품을 모두 내다 버렸다.
최근 의미없는 유튜브 영상들을 보다가 무환수무여과 어항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화 싸이클이 잘 작동하도록 완벽하게 균형을 맞춰 놓으면 따로 손 댈 필요가 없다는 개념이다. 그런 개념 자체는 생소하지 않다. 다만 지금까지는 자연과 같은 환경을 어항에 조성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고 이런 저런 각종 장치로 빈 구멍을 보완하는 방식이었는데 수초를 활용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귀가 솔깃해진다. 이걸 과거에 알았더라면 좀 달랐을까? 적어도 조류 제거에 힘을 쓸 필요는 없었을 거다. 다시 시작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거북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15큐브에 베타나 아니면 좀 튼튼한 물고기로 도전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으나 또 쉽게 할 일은 아니다. 무엇을 기른다는 것에 대해선 한 번도 성공적이었던 일이 없다. 애초에 뭔가를 길러야 하는 이유가 있나? 없다.
진보신당을 창당한 직후 이장규라는 분(요즘도 음주 페북을 많이 하시는지…)이 어항을 강매당한 일이 있다. 무슨 우렁이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친환경 방식으로 관리를 잘 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럴듯했다. 물론 우렁이들이 죽으면서 그러한 개념은 깨졌다. 김선생님이 어디서 우렁이들을 구해와 투입했던것 같은 기억도 있는데, 하여간 잘 안 되었다. 친환경 우렁이 어항은 그냥 보통 어항이 됐고, 거기 살던 물고기는 박근혜 당선 다음날? 어항 밖으로 점프해 죽었다.
그 시절 그 어항을 강매한 사람이 내가 알기론 언론이 586 운동권 대부라고 부르는 허모씨다. 우렁이 어항은 그이의 야심찬 사업 아이템이었다. 그는 지난 정권에선 태양광황태자가 되어 있었다. 관련한 여러 잘못으로 죄를 받거나 받게 되었다.
친칠라님 법인카드 의혹 관계자가 사망했는데, 그 기사에 유승경이란 이름이 등장한 걸 보고 새삼스레 생각났다. 사건 자체와는 별 관계 없는데 아무튼. 아까 낮에 좌파라고 썼는데, SNS 시스템에 기생하는 거 아니면 자기 존재감도 찾을 수 없는 우리 좌파들의 처지에 대해 할 말 많지만 다음에 하겠다. 어항의 유혹은 잠시 미뤄놓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