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김여정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바람(흑흑 제발 우리한테 뭐 제안하지마~~)에 라디오 방송에서 준비 없이 막 떠들었는데, 이런 얘기였다.
그니까 비핵개방3000이다, 이러는데 이것의 핵심은 비핵화 관련 조치가 있어야 경협이든 뭐든 그 다음 장으로 나아간다는 거다. 근데 윤정부는 뭐라고 하는 거냐면, 그거 아니다.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주시고, 가능하면 로드맵에도 합의하고 등등, 여튼 그 정도만 되어도 그 담부터는 행동 대 행동으로, 우리가 초기에 제재 완화까지도 츄라이를 해볼 수 있는 그런 거기 때문에 비핵개방3000하고는 다른 거여… 이런 설명이거든? 심지어 권영세 씨가 국회에서 했다는 말을 보자.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한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18일 윤석열 정부의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과 관련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면 협상 앞부분에 북·미 관계 정상화를 두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 폐기를 완료하기 전이라도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면 상응 조치인 미·북 관계 정상화를 먼저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권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중 수교 때처럼 ‘선(先)수교, 후(後)문제해결’의 ‘키신저 방식’이 적용 가능한지를 묻는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의 질의에 “키신저 방식에 저도 동의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담대한 구상 가운데 엔드 스테이트(최종 단계)에서는 틀림없이 북한과 미국이 수교하는 부분을 예상하고 있다”면서 “그 진전을 앞쪽에 둘지, 중간쯤에 둘지, 맨 마지막에 둘지에 대해 여러가지 얘기가 있을 수 있다. 저는 앞에 두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상 북한의 핵 폐기 완료와 미·북 수교가 비핵화 로드맵의 마지막 단계로 여겨지는데 이 단계를 조정하는 선택지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정도까지 나오면 ‘비핵화 의지’를 어떻게 확인하느냐가 문제인 거지. 뭘 하면 비핵화 의지가 확인이 되는가? 오늘 박진 씨가 동아일보와(라디오 방송에선 송구하게도 중앙일보라고 잘못 말했다) 인터뷰 한 내용을 보면 이렇게 돼있다.
―‘담대한 구상’에 따르면 초기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부터 북한에 단계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어떻게 판단하나.
“담대한 구상의 큰 틀은 실질적 비핵화 후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정치·경제·군사 분야에 필요한 조치를 단계적으로 해 나간다는 것이다. 북한의 추가도발 여부가 바로 진정성이 있는지에 대한 시금석이라고 본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자제하는 게 진정성의 출발점이라고 보고 있다. 로드맵이 정교하게 만들어져있어도 북한이 먼저 호응을 해야 하고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전개될지는 북한과 직접 협상해봐야 된다.”
―북한이 얼마나 도발을 자제하면 비핵화를 향한 초기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있나.
“몇 개월이다 이렇게 단정할 순 없다. 누구나 느끼기에 북한이 태도를 바꿨구나, 변화 했구나 느낄 수 있는 합리적인 기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니까 추가 도발과 7차 핵실험이 없으면 진정성이 있다는 건데, 이게 웃긴 얘기지. 풍계리 핵실험장을 부숴버리고 핵동결을 선언해도 비핵화 진정성이 없다고 하던 분들이 아닌가? 물론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가 곧바로 핵동결인 건 아니지. 왜냐면 우라늄 농축은 계속 했을테니까. 근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하노이 회담 시즌2 되는 거지. 진정성이라는 거는 결국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이지, 안 믿기로 하면 영원히 따질 거리가 남을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럼에도, 어쨌든 구상을 갖고 있다면 그 구상 자체에 진정성을 갖고 제대로 해보라 이 말이다. 자칭 전문가들은 이미 국내용 아니냐고 보고 있다. 예를 들면 한겨레에 김종대 씨가 쓴 글의 일부이다.
남북관계와 관련한 대통령의 선언은 크게 두가지 유형이 있다. ‘7·7선언’으로 불리는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 ‘베를린 선언’으로 알려진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선언’,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정착을 향한 ‘신베를린 선언’ 등은 평화에 대한 일관된 신념과 철학, 치밀한 계획으로 주변국을 설득해 과감한 실행으로 이어졌고, 나름 성과도 거뒀다. 국제 정세의 변곡점에서 역사적 전환을 몰고 온 이런 선언은 ‘담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바탕에는 장기적 안목의 국가 대전략, 주변 정세를 우리가 주도하겠다는 결기가 있다.
반면 “통일 대박”을 말했지만 통일과 더 멀어진 박근혜 대통령이나 ‘비핵·개방·3000’을 말해놓고 북한 붕괴나 기다리던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상상력과 구체적 계획이 결여된 자기만족형 퍼포먼스였다. 수시로 북한과 일본을 상대로 유화정책과 강압정책을 오가는 갈지자 행보는 이도 저도 아닌 소신 없는 행태, 즉 얄팍함이다. 이런 무소신이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줬는지 기억하라.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은 어디에 속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이 궁하다면 담대함의 유혹을 버리고 우선 냉정해짐이 어떠한가.
김종대 씨는 어차피 정의당이고 넓게 보면 참여정부 인사이며 아카데믹으로 봐도 연정라인 아니냐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문정권 정책에 비판적이었고 제재를 풀면 안 되고 비핵화 압박이라는 틀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는 경향신문 기자의 글 일부를 발췌한다. 다른 접근을 했지만 공통된 결론에 다다르고 있다.
담대한 구상은 협상을 위한 제안으로서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교환하겠다는 의지 대신 내가 정해놓은 룰 안에서 게임을 하겠다는 의도가 드러나 있다. 따라서 담대한 구상은 대북 제안(proposal)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대북 결심 또는 다짐(resolution)에 가깝다. 현재 북핵 상황에 맞지 않고 북한을 끌어들일 유인도 없다는 점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진 국내용으로 보인다. 역대 정부의 대북 구상처럼 허망하게 사라져도 결코 이상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통렬히 비판하고 이를 정권교체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윤석열 정부의 첫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