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의 메모

9월 22일의 메모

(이 날은 모 행사에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체’에 대한 강연을 한 날이었다. 이런 메모를 남겨 놓았다)

백석역까지 가서 잠시 카페에 앉아 뉴스 정리를 했다.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았기 때문에 미리 좀 정리를 해놓는 게 좋겠다 싶어서였다. 그리고 시간이 다 되어 중딩들이 기다리고 있는 극장으로 갔다. 그들과 함께 짧은 다큐멘터리 두 개를 보고 예의 ‘강연’을 시작했다. 중딩들이 눈에 시작하기 전부터 지루하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제대로 하려면 2시간도 할 수 있는 얘길 말투를 엄청 빨리 긴박하게 바꿔서 30분만에 끝냈다. 프리젠테이션에 박대기, 명탐정 코난, 스트리트파이터4, AVGN, 손오공, 내 얼굴이 나올때 애들이 반짝 환호를 했다. 질문을 하라고 하니 몇 키로냐고 묻는다. 97킬로그램이라고 하니 그렇게 많이 나갈 것 같지는 않다고 한다. 흠… 놀랐던 건 다 끝내고 나오는데 중딩 3~4명이 악수를 하자고 덤벼든 것이다. 그냥 호승심에 그런 건지 정말 뭔가 마음 속으로 느끼는 게 있어서였는진 모르겠다. 그냥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그런 결말이면 좋겠다. 한 나이든 교사는 내 전화번호를 따갔다. 대화중학교에서 나중에 한 번 하잔다. 거기가 어딘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상영이 늘어졌기 때문에, 이제 또다른 전쟁에 돌입해야 할 때가 됐다. 방송 원고를 써야 했던 것이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도저히 쓸 시간이 안 됐다. 지하철에서 비장의 무기인 아이패드와 키보드를 꺼냈다. 바로 이 날을 위해 새로 구비한 키보드이다. 전에 있던 애플 제품은 사망했다. 로지텍의 키즈 투 고!라는 건데 보기에 좀 장난 같고 완벽하진 않지만 만족스럽다(동영상의 저 스탠드는 나한텐 없는데!? 왜지??). 국내엔 안 팔아서 해외구매를 했다. 하여간 이것들을 무릎위에 올려놓고 미친듯이 타이핑을 쳤다. 계속 기사를 검색하면서… 무릎이 모자라 키보드를 아예 아이패드 위에 올리고 화면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타이핑을 하기도 하고… 그러고 있으려니 옆에 앉은 여성들이 “멋있다”라고 자기들끼리 그러는 거였다. 지하철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내 모습이?? 그건 아니고 키보드더러 한 얘기 같았다… 아무튼 간신히 뭐 했다.

토니 클리프의 레닌 전기 중 레닌과 트로츠키에 대한 설명

확실히 트로츠키는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을 되돌아보곤 한다. 그는 자신의 역사적 역할을 가슴 속에 새긴다. 그는 참된 혁명지도자의 후광에 둘러싸인 인류의 기억으로 후세에 전해지기 위해서, 어떠한 개인적인 희생-모든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희생, 즉 목숨을 버리는 일도 배제하지 않는-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으리라. 그의 야망은 변함없이 그런 특징이 있다. (중략) 레닌은 조금도 야망이 없다. (중략) 레닌이 한 걸음 뒤에 물러나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후세에 사람들이 그에 관해 뭐라 말할 것인지 그가 생각한다는 것은 더욱 믿어지지 않는다. 그는 단지 자신이 맡은 일을 계속 할 뿐이다. – 루나차르스키

그의 외모는 모든 혁명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개성 없이 보였다. – 안젤리카 발라바노바

첫눈에 사람들의 지도자가 아니라 지방의 야채장수 같았다. – 부르스 록허트, 모스크바주재 영국 영사

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처음에 그는 내게 대단히 모호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검소하고 한눈에 보더라도 평범한 그의 외모는 우리한테 그다지 커다란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 어느 고참 볼셰비끄

레닌이 그렇게 생겼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는 좀 모자라 보였다. 그는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r’ 자를 발음했고, 어찌된 일인지 주먹을 겨드랑이 밑에 찔러넣고 팔짱을 낀 채로 서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너무나 평범했다. 그가 ‘지도자’라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 막심 고리키

대다수의 혁명가들이 당의 돈 문제와 같은 행정에 개입하기 싫어했다고 한다. 말하고 글쓰고 선전선동을 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지 않았던 거의 유일한 사람이 레닌이었다고 한다.

청년실업에 대한 메모

대졸초임 삭감… 2009년에 경기도당에서 기상천외한 일들을 수습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아무튼 당시 대응은 나름 중앙당에서 했을텐데, 내 마음 속에는 은연중에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뭐 그래도 취업들은 했군!” 계급이 없으니(대중의 인식이란 차원에서), 계급부터 만들어주자(계급적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자)라는 문제의식이 벌써 이 때부터 무너져있었던 거다. 그리고 이 문제는 내 기억 속에 사회연대전략이라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9월 28일의 메모

(이 날은 핸드폰을 분실한 다음 날이었다)

어제 고향 친구를 서울에서 만나 맥주를 마시고 택시를 탔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잘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내린 직후 손을 넣어보니 없었다. 이미 택시는 지나간 후였다. 카카오톡에 살아있는 인물들에게 부탁을 했지만 이들은 새벽 5시에나 전화를 걸 수 있었고 그 때는 벌써 꺼진 후였다. 집에서는 아무데도 전화를 걸 수 없어 사무실로 갔다. 어찌어찌하여 택시 회사와 차량번호까지 알아냈지만 그들은 핸드폰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 했으면 1차적으로 못 찾는 걸로 해야된다. 경찰에 분실물 신고를 하고 통신사에도 분실신고를 했다. 발신차단으로 데이터쉐어링으로 사용하는 아이패드도 통신불가능 상태다. 아이폰6S가 출시될 때까지는 아직 시일이 남았다. 그때까지 전화 없이 살 것인가? 일본에는 파는 것 같던데…

9월 29일의 메모

오늘은 정선생님이 화성에 대해 약간 화를 냈다. 여튼 나사가 너무 오버를 한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물 있는거 모른 것도 아니고 이 난리를 치는 건 뭐냐, 마션 홍보하려는 거 아니냐… 머니투데이 기사를 보신 것 같았다. 그래서 맞장구를 쳤다. 오바마가 달 탐사 계획 취소하고 화성 탐사 계획을 세워갖고 그거 장단 잘 맞춰서 다음 정권에서도 잘해가려고 그럽니다… 예산 문제도 있고…

휴대폰에 대해 생각하였다. 전화는 상관없는데 아이패드를 쓸 수 없는 게 심각한 문제다. 그래서 집에서 놀고 있는 아이폰4를 올레프라자인지 뭔지에 가서 되살려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아이패드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버티고 있다가 아이폰6S가 나오면 그걸 고려해보자는 생각이다. 그런데 과연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이폰6S일까? 나에게 필요한 것은 맥북프로레티나가 아닐까? 맥북프로레티나 신작이 내년에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내년까지 아이폰4로 버티는 건… 이렇게 되지도 않을 상상을 해보았다. 오늘 시비에스 옆에 있는 스타벅스에 잠깐 갔는데 어느 여성이 보란듯이 맥북프로레티나를 사용하고 있었다. 과연 화면에서 거의 빛이 났다. 그런데 뭐, 그런 모든 것들이 과연 필요한가. 그냥 되는대로 살지… 되는대로 살아도 되는데…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는데… 죽으면 어떤 놈이 블로그에 잘죽었다고 덧글 달겠지… 망상 그만하고 통신 안 되는 아이패드로 역전재판이나 조금 하고 자야겠다.

추석에 대한 메모

추석! 이젠 진짜 어디 갈 데도 없고, 어머니와 식사나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시도 때도 없이 잠이나 자고 그랬다. 어머니는 꽤 충격적인 일을 말해줬는데, 몇 년 전 쯤 그 뭐라 그래야 하나… 가족 문제로 여튼 삼류드라마를 찍는 일이 있었다는 얘기다. 겉으로는 낫살 처먹고 참 품위 없이들 산다고 반응했지만 속으로는 아주 화가 나고 완전히 속이 뒤틀렸다. 없는 돈에 어디서 광어회도 사먹고 그러면서 어머니의 자존감이 조금이라도 회복되길 바랬다. 그러다가 어차피 말을 안 할 수도 없으니, 최근의 가정 문제에 대해 말해드렸다. 대뜸 나오는 소리가 남들에겐 뭐라고 하느냐고… 또 망한 분위기가 돼서 조금이라도 기분 좋으시라고 요즘 라디오 나온다는 얘기도 하고 그랬다. 라디오에 나와서 떠든다니까 못 믿겠다는 반응이었다. 그게 그렇게 그런 게 아닌데 어쨌든 하나 있는 아들이 그렇게까지 인간쓰레기처럼 사는 건 아니다, 그런 항변을 하고 싶었다.

9월 30일의 메모

머릿 속이 아주 복잡하였다. 돈도 없고… 알바를 끝내고 만원버스를 타고 달렸다. 월드컵경기장 정도 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냥 내려버렸다. 연신내역이라고 써있는 아무 버스나 또 탔다. 오만 생각을 하며 가다 보니 수색동 주민센터였다. 가만 있었으면 될 것을, 내렸다. 그냥 방황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수색동 주민센터에서 DMC역까지 걸어서 불광천에 진입했다. 걸으면서 만가지 생각을 했다. 건너편에 다정한 명박이라는 이름의 가게가 보여 깜짝 놀랐다. 다시 보니 나뭇가지가 가리고 있어 그렇게 보인 것 뿐이었다. 좀 더 걷자 건너편에 야키토리라고 써있는 가게도 나왔다. 무작정 들어가서 맥주를 달래볼까 생각했지만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계속 걸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집에 와서 원고를 만져야 할 터였다. 책을 빨리 끝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이미 귀갓길에 방황을 하면서 그 계획은 무위로 돌아갔다. 이렇게 된거 체력이라도 빼서 잠이라도 잘 자는 게 나을지 모른다. 어제 못 잤으니까. 그런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계속 걸었다. 불광천의 산책로라는 것은 응암역에서 끝났다. 구산역쯤 왔을 때에는 온통 ‘다정한 명박’이 원래 뭐였는지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아무데나 들어가 저녁을 먹자고도 생각하였으나 마음에 드는 가게가 나오지 않았다. 걍 집에 왔다. 다정한 명박은 다정한 망각이었다. 이제 배가 고프니까 분명 맥주를 사오게 될 것이다.

책에 대한 메모

맥주를 마시며 쓴다. 나는 반드시 10월 안으로 책 작업을 끝낼 것이다. 회사가 좀 안정(????)이 되면 휴가라도 내서 책을 반드시 끝낼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이 책 한 권만 딱 남기고 죽을 것이다! 후대의 어느 누군가가 “그는 유약하고 비겁했으되 책 한 권은 남겼다”고 딱 한 줄만 평가해주면 그만이다.

요리에 대한 메모

엊그제는 우연히 요리인류인가 뭔가 하는 다큐멘터리를 잠시 보게 됐다. 마지막편인것 같았는데 모더니스트 퀴진을 필두로 해서 소위 과학적으로 요리를 하는 분들을 소개하였다. 요리는 취향과 정성이 아니고 기술(지식)과 자본(재료)이다.

요리 프로그램에 대한 메모

여론이라는 곳에는 언제나, ‘진정한 무엇이 있다’는 태도와 ‘진정한 무엇은 없다’는 태도가 반복해서 나타난다. 먹거리 X파일(진정한 ‘무엇’은 없다) -> 스타 셰프(진정한 ‘무엇’은 있다)

신동아 10월호 / 실력? 예능감? 냄비는 끓고 있지만…

10월 2일의 메모

술을 먹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어제는 우리 존경하는 나선생을 꼬셔서 참치를 먹으러 갔다. 나선생은 참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으나… 알 게 뭐냐! 낮부터 술을 먹었기 때문에 금방 취했다. 뭐라고 떠들었는지 잘 생각도 안 난다. 참치를 계속 주는 집인데, 주인이 이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면 옆에 와서 이러쿵 저러쿵 말을 시켜 산통을 깨는 전략을 쓰는 것 같았다. 뭐 충분히 먹었으니까 일어나서 웬 카페에 갔다. 책장을 보고 놀란 기억이다. 자본론이니 하는 책들이 잔뜩 꽃혀있었다. 그 다음에는… 길에서 개에게 욕을 했고 웬 성Castle과 싸우려 들기도 했다. 뭐 하여튼… 그래서 오늘은 죽을뻔 했다는 이야기다. 알바를 마치고 카페에서 잠시 일을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도중에, 꺾었다. 만원버스를 상상하니 타고싶지 않아졌다. 차라리 지하철을 타면 좀 한적하다. 그러나 시간은 좀 더 걸린다. 그래서 또 쓸데없이 방황을 하고 제육덮밥을 사먹고 지하철로 집에 왔다.

10월 2일의 메모 2

또 맥주를 사왔다. 술을 먹지 않고 배길 것인가. 오늘까지만 방황하자, 다시 다짐한다. 오늘까지만… 그놈의 오늘까지만… 내일은 드디어 다시 원고에 손을 대기 시작하고, 또 레선생의 업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일요일에는 오전 모임 후 급히 귀가해 다시 작업에 몰두하고 월요일 아침에 나갈 글을 만들어야 한다. 팟캐스트 녹음도 하면 좋겠다. 휴일 내내 완전히 집중해야 한다. 시간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주말용 요리 같은 것에는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 인스턴트 식품을 먹거나 배달음식을 잘 활용해야 한다. 그래서… 맥주를 사면서 편의점 도시락을 사서 냉장고에 넣었다. 내일 먹어야 한다. 그냥 컵라면을 사거나 아니면 비빔면 같은 걸 살 것을 그랬다. 아니다. 그랬으면 지금 먹어버렸을 것이다. 어차피 다른 걸 먹고 있으니 상관은 없긴 하지만… 고기를 구워먹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그건 다음주에 하자.